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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는 오늘만 본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인과 속인의 가장 본질적인 구별은 아마 바로 유신론과 무신론의 관점일 것이다. 하지만 내포된 구체적인 문제는 너무 많다.

수련인로서 누가 윤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겠는가? 믿지 않으면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그러므로 수련인 사이에서 윤회하는 이야기, 윤회 과정에서 금생은 남자고 전생은 여자인지 토론할 필요가 없다. 만약 수련 과정 중의 사람이 이런 일에 빠져들고 집착한다면 자신의 머리를 혼란하게 하여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인연이고 저것은 어떤 인연이라 생각하고 또 그(그녀)와 어떤 특수한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혹은 그(그녀)와는 다른 사람과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등등이다. 이런 일은 사실 모두 마의 교란이다. 이런 집착심이 있어 마에 교란당해 편안하지 않다.

인정이 많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인정과 도의를 중히 여긴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련인의 사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상태로 오래가면 스스로 피곤해진다. 어떤 사람은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속인도 ‘욕망에 빠져있기’를 좋아하고, 매 이성 간에 분명하지 못한 관계가 있으며, 만인에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며, 욕망에 휩싸인 느낌을 좋아한다. 질투심이 강하고 누구와도 다투어 일등을 해야 하고, 무슨 일이든 모두 승부를 가려야 한다. 온종일 제정신이 아니고 정상적이지 않고 환희심, 과시심이 마에 이용되어 근본적으로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만약 한 수련인이 신기한 문장이 필요하고 신기한 현상으로 위로받으며, 실제 상태는 속인과 비슷하고, 또 무신론의 변이된 사상관념이 있고 사상도 불안정하다면, 이로부터 신사신법의 확고한 정도가 체현된다. 진정한 수련인은 이미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기에 노력해 자신을 닦고 착실히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 대량으로 법 공부하고 착실히 자신을 닦아야 바로 정도(正道)이다. 사람 마음이 하나 발견되면 그것을 제거하고 그 후부터 그것을 가지지 않고 또 나오면 또 제거한다. 많은 사람은 그리 명확하지 않은데 절대로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명확히 수련인에게 알려주셨다. “기연(機緣)이 지나가면 기회 다시 없으리라 천기가 드러나면 후회막급 혼이 놀랄 터 큰 겁(劫) 오면 급히 천문(天門)을 닫으리라”[1]

역사에서 지나간 일은 사실 오늘날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 사존과 함께 있고 지금의 일을 잘하는 것이 윤회 중의 일을 회억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지혜롭다.

특수 사명이 있는 수련인로서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인물의 윤회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사실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속인(무신론자)을 도와 법을 얻게 하고 미래에 기회가 있어 수련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은 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기에 이미 수련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짐작할 필요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문장을 쓴 수련생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보는 수련생이 어떤 집착심이 있는 것이고 너무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왜 대량적으로 법 공부하지 않고 법에서 답안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문장은 수련생을 도와 원만을 성취할 수 없고 대법만이 할 수 있다. 이 점은 반드시 명확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왜 속인보다 더 일찍 법을 얻고 수련할 수 있는가? 대체로 수련인의 본성과 근기는 속인보다 좀 좋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신은 하나의 소원이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미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존께서 이 진심을 보시고 무조건 수련인을 도와주신다. 법공부 과정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착실히 닦아야 사부님의 가지를 얻을 수 있고 점차 제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의 소원은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좋은 사람의 표준은 무엇인지 몰랐다. 자신이 도대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몰랐다. 순수한 마음을 지키려고 희망했으나 그 마음이 정말 순수한가? 어쩌면 답안은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 지키고 있는 것은 아마 자아(변이된 나)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어떤 일에 자극을 받을 때 반영되는 사상 관념은 ‘나는 아주 좋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가장 좋다’, ‘나는 잘못이 없다’ 등 아무리 많은 법을 배웠어도 근본 집착심이 바로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늘 ‘내가 가장 좋다’라고 생각하며 어떤 집착심도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것이다. 갈수록 그 마음이 팽창해지면 자심생마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아주 좋기’에 대법이 나를 선택했고 대법이 나를 선택했기에 ‘나는 아주 좋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는 아주 좋다’라는 사상관념은 속인의 일생을 지배하고 심지어 생생세세 윤회에서 모두 포기하지 않고 ‘나는 아주 좋다’라는 이런 허영심을 버리지 못한다.

윤회는 마치 원처럼 마지막에 우리는 사존과 인연을 맺으면 그것은 원을 그린 것과 같다. 우리는 수련생이고 정사교전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3-세인에게 주노라’

 

원문발표: 2020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16/4151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