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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설 난법에 참가한 것에 대한 반성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일본에서 ‘연설 난법’ 사건이 나타났고, 밍후이왕에 각지 수련생이 연설 난법에 참가한 일을 반성하고 교류하는 문장을 끊임없이 게재했다. 처음에 나는 제삼자의 각도에서 일본에서 나타난 난법 사건을 보았다. 나는 2013년부터 밍후이왕 편집부가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 문장을 게재한 후 우리는 이미 이 일과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수련생과 교류 후 자신의 몇 년간 행위를 되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도 제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해 편집부에서 문장을 발표한 후 나는 우리 지역과 기타 지역에서 연설 난법한 상황을 폭로하고 교류했고 그때 밍후이왕에 발표됐다. 그때 내가 쓴 교류문장은 사실 제삼자의 각도에서 쓴 것으로, 남의 표현과 상황을 말했다. 이 일에서 몇 년간 나는 깊이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폭로된 각종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안으로 찾지 않았다.

지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일본 한 지역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밍후이왕 편집부 문장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가 발표된 지 7년이 지났다. 중국에서 연설 난법 일은 더 이상 없는가? 이전에 연설 난법에 참가한 수련생은 얼마나 진심으로 난법 행위를 인식했는가?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당시 밍후이왕 편집부 문장에 대해 불복, 억울함, 거부하는 감정을 정말로 없애버렸는가?

나를 포함해 그해 어느 정도 이 일에 참여한 수련생은 자신이 이전에는 적극적인 참가자라는 것을 잊었는가? 지금 단지 제삼자의 각도에 서서 일본에서 나타난 연설 난법의 일을 보고 있고, 이 때문에 사부님께서 신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발표하셨는데, 자신을 그 안에 놓고 자신이 이 일에서, 혹은 이전에 이 일을 한 것에서 제때 자신의 각종 사람 마음과 집착심, 의지심, 신기함을 추구하는 마음, 환희심, 과시심, 숭배심,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 등을 찾아보았는가?

사실 현지와 외지에서 나는 이전에 연설 난법에 참가한 자이고 조직자이자 연락인이었다. 2013년 외지 수련생 4명이 우리 지역에 연설하러 왔고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중 2명은 이미 심각한 병업 상태에서 사망했고 또 1명은 납치돼 감금 박해를 당했음) 나는 연락인과 계획자 중 한 명이었다. 현지 수련생을 따라 외지에 가서 이른바 순회교류 했고, 연설 난법 이 사태가 더 번지게 했다. 수련생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상처를 조성했고 무지하게 죄업을 빚었다. 여기서 나는 깊이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참회하고 사부님께서 내 잘못과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고 수련생 여러분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몇 년간의 자신을 뒤돌아보면 연설 난법한 몇 년간 자신의 수련상태는 좋지 않았고 오랫동안 심각한 색마의 교란과 병업 시련에 처해 있었다. 법공부도 큰 교란을 받았고 마음에 닿게 법공부를 하지 못했으며 발정념 할 때도 심하게 흐리멍덩하고 (이전에 이렇지 않았음) 나중에 법을 외우면서 조금 돌파했다. 비록 2013년 후부터 나는 원래의 그런 명확한 연설 난법 행위가 없었지만, 나는 이 일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찾지 않았고 연설 난법에서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줄곧 제거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자심생마, 스스로 비범하다고 여겨서 명리심, 글솜씨와 말재주에 집착했고, 환희심, 과시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색욕심, 노는데 정신 팔린 마음 등이 있었다. 심지어 이런 마음은 갈수록 커졌고 수련에서 진정으로 정진하고 법에 동화하는 데 장애가 됐다. 평소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법공부 팀 교류에서 이런 사람 마음이 폭로됐다. 착실히 수련하지 못해 그것들은 나를 교란했고 나에게 시련을 주었다.

나는 줄곧 일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고 속인에서의 표현은 일부 능력과 특기가 있었고 동시에 말주변이 좋았다. 몇 년간 나를 모르는 수련생에게 정진한다는 착각을 주었다. 하지만 몇 년간 개인 수련에서 근본적으로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고 엄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자신을 속인과 혼동했고 심지어 도덕이 타락한 속인 같았다. (며칠간 자신을 반성할 때 자신의 몇 년간의 한 행동을 뒤돌아보면 자신도 몸서리쳐짐) 솔직히 말하면 사람의 겉과 속이 달랐고, 진선인(真·善·忍)을 멀리 위배했다. 그러나 자신이 일부 대법 일을 하고 일부 방면에서 능력 있고 스스로 자신이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착각은 단지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 것일 뿐이다. 지금 발견했는데 이런 상태는 모든 연설 난법자의 공통 특징이다. 일부 공능을 갖추고 능력, 특기와 기능이 있으며 말주변이 있지만 착실한 수련은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덮어 감추고 수련인의 언행에 부합되지 않는 자신의 그런 부분을 폭로하지 못한다.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공능과 능력을 중시한다. 대다수 이런 공능과 능력을 너무 지나치게 본다. 여기까지 쓸 때 나는 갑자기 사부님의 한마디 법이 생각났다. “명(名)에 집착함은 유위(有爲)의 사법(邪法)이라, 세간(世間)에 이름을 날리려 필연 말은 선하게 하나 마음에 마(魔)가 있어, 중생을 미혹케 하고 난법(亂法) 한다.”[1]

자신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연설 상태를 회상하면 사람이 많든 적든 기본적으로 청산유수처럼 거침없이 말한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촉진하기 위해 자신이 잘한 것만 강조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위대하고 정확하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물론 시작할 때는 좋은 점을 다른 사람에게 거울로 삼게 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은 피했다. 결국 인정받고 칭찬을 받은 후 자아가 갈수록 커졌고 갈수록 자신의 공능과 능력을 중히 보고 명리심이 갈수록 심각해졌는데, 나중에 명을 위해 자신의 부족한 점과 착실하지 않은 점을 덮어 감췄다. 이때 다른 수련생이 약간의 반대 의견이나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아주 싫어하고 반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연설 난법 이 일이 폭로되고 건드려지자 감히 대면하지 못하고 반감을 품고 거부했다. 그 원인은 연설 난법에서 명리심을 키웠고 자신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분간해야 한다.

반성하면서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중국의 다른 곳에서 교류할 때 왜 연설 난법 현상이 쉽게 나타나는지 알게 됐다. 하나는 많은 사람은 ‘외부에서 온 스님은 경을 잘 읽는다’라는 속인의 관념이 있다. 둘째는 외부에서 온 사람에 대해 대부분 겸손하고 존중하며 호기심이 있다. 그러므로 쉽게 연설자의 말주변과 글솜씨 혹은 표현되는 공능, 능력, 기능, 특기, 심지어 외모에 쉽게 미혹된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모두 오랫동안 접촉해 서로 잘 알고 있고 장단점을 서로 다 알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외지 교류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사실 자신의 심득 혹은 진상을 알리는 데서 좋은 경험이 있으면 좋은 방법은 글을 써서 밍후이왕에 투고하면 된다.

여기에서 나는 연설 난법한 경험을 회상하고 폭로하며 자신이 이전에 걸었던 굽은 길을 반성하려 한다. 자신이 그 속에서 표현된 각종 집착심, 사람 마음과 교훈을 섭취하고, 이후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으려 한다. 어떤 중대한 일이나 대면적인 사건에서 자신을 찾아야 하고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수련은 극히 엄숙한 일이고 특히 정법수련은 그렇다. 사부님께서는 극히 자비로우시고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우리가 각종 잘못된 일을 한 후, 심지어 죄업을 진 후에도 우리를 위해 크게 감당하시고 죄업을 없애주시며 우리에게 수련 기연을 부단히 주신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거대한 감당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수련할 수 없다. 우리가 한 난법 행위로 인해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이미 구세력이 아래로 떨어뜨리고 형신전멸했다. 그 해, 심지어 지금 연설 난법에 참가한 국내외 수련생이 적지 않았는데, 각양각색이다. 크고 작은 연설 현장에서 연설한 자, 조직한 자, 연락한 자, 조건을 제공한 자, 들으러 간 자, 성원해 준 자, 숭배한 자를 모두 포함한다. 시장이 없으면 이런 일은 성사될 수 없다. 난법에 참가한 자는 모두 죄가 한 몫씩 있다. 정말로 원망하거나 불복종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밍후이왕도 우리를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하고 고치는 그 마음을 바라실 뿐이다. 잘못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넘어지면 일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그런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고, 자신이 한 잘못된 일을 감히 대면하지 못하고 승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품으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어렵다.

한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일은 우리 중국 대법제자 중에서의 연설 난법을 일깨워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부 문제에서 진정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단지 덮어 감추면 시간이 길어지면 잊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안으로 찾아 각종 소홀히 하고 덮어 감춘 사람의 집착심을 없애야 하고 누락을 보충하고 진정으로 정진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걷기를 바란다.

개인의 인식이고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수련자 금기’

 

원문발표: 2020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21/4107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