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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난 속에서 깊이 안을 향해 찾은 약간의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그날은 단오절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수련생 집에 전동차를 몰고 가는데 손잡이가 삐뚤어진 것 같았고 자꾸 한쪽으로 힘이 가면서 핸들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차가 고장 난 줄로 여기고 돌아가서 핸들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이 검사해보고 아무 문제없다며 핸들은 정상이라고 했다. 사실은 내 몸 상태에 문제가 생긴 것인데 그 당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웠으며, 온몸이 나른하고 오른쪽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닥에 서서 아주 힘을 들여야 한 발짝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평소에 병업(病業) 마난이 나타나 고비를 넘긴 수련생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러리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록 특별히 정진하는 제자는 아니지만,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 모든 일에서 빠뜨린 것이 없다고 여겼다.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도 땀이 뻘뻘 나도록 걸어 다녔지만 전혀 피곤한 적이 없었다. 겉보기엔 잘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 상태가 됐을까? 어디에 문제가 생겼을까?

마난이 갑작스럽게 닥쳐왔지만 나는 평소 법공부 기초가 있었기에 가상(假相)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정확히 대면했다. 비록 손과 발이 방망이처럼 굳어서 말을 안 들었고 손은 책을 들 수 없었으며, 앉을 수도 없었고 맥이 풀려 곤죽처럼 되었어도 여전히 연공과 법공부를 견지했다.

나는 사부님의 최근 병업에 관한 법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빈틈을 파고드는바, 이것이 한 방면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집착을 찾아내지 못한다.”[1] 평소에 법공부, 연공, 세 가지 일을 하느라 바빴는데, 이것을 수련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표면형식을 중시하다 보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찾은 적이 거의 없었다. 정말 자신을 잘 찾아봐야 했다. 찾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번에 한 번 찾아보니 문제가 있었다.

나는 평소 주변의 여러 법공부 팀에 참가해 법공부한다. 매주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는데 모두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속인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련환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면할 수 없었다. 함께 떠들썩하기 좋아하는 마음, 섞여서 자신을 과시하며, 이번 공부를 마치면 다음을 바랐다. 단체 법공부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집에서 책을 보고 법공부 할 때는 마음이 조용해지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단체 법공부를 하게 하신 것은, 우리가 더 빨리 제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수련생이 압력을 무릅쓰고 제공한 법공부 환경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함께 모이기 좋아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곳으로 여겼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수련환경을 아끼지 않은 것이 아닌가?

자신이 집에서 법공부할 때는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고, 책을 들기만 하면 졸렸다. 이렇게 심한 교란이 나타났고, 한동안 계속되었어도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법공부를 마음에 파고들게 하지 못한 원인은 수련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마음을 법에 두지 않아 법리의 펼침을 보지 못했고, 불법 배후의 무수하고 무궁한 내포를 보지 못해 법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하여, 법공부가 하나의 형식이 되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에서, 박해 초기부터 지금까지 비록 20여 년 동안, 날마다 해마다 계속 견지하고 있었지만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태만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자신에게 느슨해지기 시작했으며, 몇 명에게 이야기하고는 됐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을 보러 갔으며, 심지어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본말이 전도된 채 장보기와 물건 구입이 주가 됐고, 겸사겸사 진상을 알렸다.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왜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려 하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이다’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내 말의 근본 뜻(意思)은, 여러분에게 당신들의 생명은 바로 이를 위해 왔음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정말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대법제자이다.”[1]

깊이 다시 찾아보니 자신의 근본 집착을 철저하게 제거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때로는 며칠 나가지 않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당황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는 무슨 심리인가? 중생이 구원받지 못해 조급한 것인가? 이 방면의 원인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이는 좋은 일면으로서 생명에 대한 소중함, 연민, 자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종의 부끄럽고 황송한 요소와 두려움이 있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다시 자세히 찾아보니, 원래는 자신이 잘못해서 떨어질까 봐, 대법제자의 칭호에 죄송하고, 사부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까 봐, 사부님께서 만족해하시는 답안지를 내지 못할까 봐, 무슨 낯으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는가? 등등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깨달았다. 원래 내가 중시한 것은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깊이 숨겨져 있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관념이며,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근본적인 집착이었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겉으로 아무리 화려하게 하고,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말해도, 그 근본 목적은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다.

예전에 법공부 중에서, 수련생들과의 교류 중에서 이 문제를 깨닫고 자신도 깊이 파본 적이 있었는데, 이 근본적인 집착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을 줄 몰랐다. 원만을 구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위사위아(為私為我)이다. 이 마음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원만할 수 있는가와 연관시키게 되는데, 속인의 이익연결과 같으며, 겉으로는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대법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는 구세력의 생명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실 당신들은 아직 모르는데, 이 사(私)는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관통되어 있다.”[2]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이것은 속인 중에서 형성된 후천적 관념이며, 층층이 모두 그것의 요소가 있고, 모두 닦아버려야 하는바 그것은 진아(真我)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배척해야 하며, 나중에는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들은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고, 내가 대법을 위해 무엇을 좀 할 것인가,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하는 원래의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자신이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거나, 대법을 위해 마땅히 어떻게 해야겠다, 또는 어떻게 해야만 이 법을 위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는데, 당신은 마치 대법 중의 한 입자(粒子)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3]

나는 이제야 자신의 위치와 사람을 구할 때 마땅히 있어야 할 마음가짐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관념을 철저히 바꿔야 하는바, 내가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바로 대법 중의 한 입자로서 대법이 무엇이 필요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자아를 내려놓는,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다음 날, 동공을 연마할 때 머릿속에서 며칠 전에 꿨던 꿈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았는데, 차에는 운전자도 핸들도 없었다. 차는 내리막길을 따라 아주 빨리 내려갔고 야외의 시골에 도착했다. 내가 인파를 따라 장터에 갔을 때, 앞은 성벽으로 길이 막혀 있었다. 성벽은 2~3층 집만큼 높았으며 사람들이 다투어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도 성벽을 따라 기어 올라갔는데, 벽이 민둥민둥하여 잡을 것이 없었다. 손에 힘을 주자 담벼락이 한 층 벗겨졌다. 가까스로 성벽 꼭대기에 다다랐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위에 누군가 오가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저씨 저를 좀 잡아당겨 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이때 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주 깊어서 매우 위험했다. 그때 문뜩 나는 사부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부님께 구원을 청했다.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을 부르자 곧 발에 밟을 것이 있는 것을 느꼈고, 손에도 힘이 생겼다.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 성벽에 올랐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고, 심혈을 기울이신 사부님의 마음을 환하게 깨닫게 되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수련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방향이 없으며 병업의 마난이 곧 닥칠 것을 보고 이런 방식으로 제자를 깨우쳐 주시고, 아울러 제자가 꼭 이 벽을 넘고 마난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신 것이다.

바로 나흘째 되는 날, 저녁 6시 발정념할 때, 나는 일념을 가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다, 사부님의 배치만 따를 것이고 그 외의 안배는 일절 갖지 않으며 승인하지도 않는다, 사부님께서 가지(加持) 해주십시오.’ 당시 머릿속에서 파룬이 강렬하게 회전하는 것을 느꼈는데 마치 하나의 믹서기처럼 ‘촤-악 촤-악’ 위아래로 용솟음쳤다. 대략 30분 정도 지나, 나는 사부님께서 계란만큼 큰 물건을 머릿속에서 빼내시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즉시 머리는 어지럽지 않았고, 메스꺼움도 없었으며 손발에도 힘이 생겼다. 이는 정말 너무 신기했다. 제자는 사부님에 대한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바로 사부님께서 내가 안으로 찾고 자신을 고칠 결심과 용기가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물건을 제거해주신 것이다.

사부님은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오직 우리의 그 향상하는 마음만 보신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나는 꼭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고, 순정무사(純正無私)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이 수련의 길을 따라 줄곧 걸어나갈 것이다.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우리 정법 수련 길에서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타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도항–북미 대호수지구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8/15/4104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