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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하니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사라지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7년부터 수련한 청년 수련생이다. 3년 동안 수련하니 몸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정화됐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께 쌓인 원한도 사라졌다. 아버지도 복을 받아 건강을 되찾으셨다.

질병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헤어지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쾌활한 성격에 잘 웃으셨고 아버지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셨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화목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염색공장에서 일하시면서 늘 독이 있는 염색 염료를 다루다가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생겨 게을러지시고 식탐이 생기셨고 욕도 하셨다. 가족들과 사이도 나쁘게 변했고, 생계는 모두 어머니가 감당하셨다. 아버지는 병이 발작하지 않을 때는 보통 사람과 같았지만 발작하기만 하면 말 한마디에도 크게 화를 내시고 마구 욕하고 때리셨다.

아버지는 병이 발작할 때면 눈빛이 냉혹하게 변했는데 나는 무서워서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 맞으셔서 나와 여동생이 매를 맞은 적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힘이 세셨는데, 어머니를 때릴 때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박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한 줌씩 빠졌다. 나와 여동생이 울면서 소리를 지르면 시골 어른들과 이웃들이 와서 말리고 어머니를 구해줬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친정으로 가셨다. 몇 번이나 이혼하려고 하셨지만 아직 어린 우리가 차마 불쌍해서 이혼하지 못하셨다. 영화 ‘당신을 위해 오다’를 보면 류우따웨이(劉大爲)가 뤼춘옌(呂春燕)을 때리는데, 이 장면은 어머니가 아버지께 구타당하는 모습과 같았다.

어머니는 농약을 마신 적이 몇 번 있었다. 한번은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왔는데 보아하니 금방 우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할머니 집 창틀에서 살충제 한 병을 들이마시고 바닥에 쓰러지셨다. 내가 어머니께 달려갔더니 어머니는 “괜찮아, 너는 앞으로 여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아서 엉엉 울면서 앞집 셋째 할머니를 찾아가서 “엄마가 농약을 마셨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외쳤다.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흰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그리고 이웃들이 어머니에게 비눗물을 먹여 토하게 했다. 그 당시 마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저 옆에 서서 울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병원으로 호송되어 응급치료를 받고 살아나셨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줄곧 아버지를 미워했고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몹시 원망했었다. 그래서인지 내 성격은 내성적이었으며 열등감도 갖게 됐다. 나에게 아버지는 나약하고 게으르며 악한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내성적이었기에 일 년에 몇 마디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가끔 장을 보러 가거나 마을에서 걸을 때도 내가 아들인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아버지와 2~3미터 떨어져 걸었다.

아버지는 여러 번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결국 집에 있는 돈을 다 써버렸다. 나중에 어머니는 도시에 사는 친척 집에 가서 일해서 돈을 버셨고 농번기나 설에만 집에 오셨다.

대학에 입학하던 그해, 설 전날인 28일 날에 큰 눈이 내렸다. 아버지는 병이 또 발작해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방안에서부터 마당 밖으로 끌고 다녔다. 나는 손목만큼 굵은 막대를 찾아서 아버지의 팔을 때렸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으셨다. 나는 화가 나서 아버지의 등을 힘껏 때렸다. 막대는 두 동강이 났고 그제야 아버지는 손을 놓고 등을 감쌌다. 나를 때리실 줄 알았는데 나를 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밖에서 줄곧 흐느끼면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으니 이혼하겠다고 하셨다. 나와 여동생에게 일부 일들을 맡겨놓고 가방을 메고 절뚝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다. 나와 여동생은 마을 입구에 서서 눈보라 속에서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여동생은 소리를 내 울었지만 나는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나는 어머니가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또 어머니가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어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우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밖에서도 계속 돈을 버셨다. 이전에는 쾌활한 어머니가 집에 계셨기에 친척들이 드나들었지만 어머니가 떠나자 아버지가 두려워서 아무도 왕래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떠나신 후, 모든 책임은 내가 맡았다. 나는 가족의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관리해야 했다. 매번 집에 일이 생기면 나는 타지에서 기차를 타고 와서 처리했고 일이 생겨도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 아주 힘들었다.

지난 10년간 매년 설이면 여동생은 어머니에게 갔다. 여동생은 어머니 회사에서 제공해 준 비좁은 기숙사에서 설을 보냈다. 나는 집으로 와서 아버지와 함께 설을 보냈다. 우리는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명령한 어떠한 말도 못 들은 척했다. 목적은 아버지 뜻대로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나를 해칠까 봐, 보통 밤에도 자지 못하고 이웃집에 가서 잤다. 밖에서 지내는 어머니와도 일 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집’이란 나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해 두려움과 원한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때려서 어머니가 떠나셨고, 아버지 때문에 가정이 망가졌으니 아버지가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법을 수련하니 빙설(冰雪)이 녹다

대학교 졸업 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나는 열등감과 온갖 스트레스로 중증 우울증에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던 터라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어머니께 돈을 요구했고 신용카드도 쓰고 대출도 받았다. 그 당시에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내가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금융위기로 하루아침에 돈을 모두 잃었다. 어머니가 몇 년간 저축한 돈도 날렸고 은행에서 대출받은 몇십만 위안(몇천만 원)의 빚도 생겼다.

나중에 구치소에도 얼마 동안 감금됐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불법 납치된 대법제자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줬다. 그의 진심과 선량함은 나를 감동시켰다. 원래 사람은 선량하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 당시 내가 이전에 겪은 모든 고난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대법을 위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법을 얻은 후, ‘전법륜’을 여러 번 읽자 몸이 좋아졌다. 우울증도 사라졌고 성격도 쾌활하게 변했다. 나는 대법의 은혜를 입어 속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과격한 생각도 점차 바뀌었다. 아버지의 일생도 정말 가련하다고 느끼면서 아버지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늘 문제가 있었기에 마음만 먹고 말은 하지 못했다.

하루는 고모가 나에게 전화해 아버지가 소변에 피가 나온다며 돌아가실지도 모르니 빨리 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중에 돈이 없었다. 월급을 적게 받았는데 빚을 갚는 데 다 썼다. 어머니를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5천 위안(약 86만 원)을 주셨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께서 허리를 움켜쥐고 마당에 앉아 계셨는데 아주 괴로워 보였다. 훨씬 수척해지셨지만 돌아가실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어찌 된 일인지 묻자 소변에서 피가 나온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화장실로 가셔서 따라갔더니 바닥에 피가 가득한 것을 보았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화를 내셨다. 어릴 적부터 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았다.

날이 어두워진 후, 아버지는 돗자리를 밖에 갖고 나와서 몸을 웅크리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신음하셨다. “아이고, 어머니, 나를 죽여줘요. 아파죽겠어요.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신음을 듣고 걱정되어 병원에 가실 건지 물었다. 아버지는 가지 않겠다면서 나에게 집 안의 약을 찾아 달라고 하셨다. 내가 서랍에서 찾은 약을 드셨지만 여전히 아파서 소리를 지르셨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나는 정말로 인과윤회(因果輪回)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는 할머니를 꼭 껴안고 어머니라고 소리치셨는데, 설마 오늘 아버지도 내 품에서 돌아가시는 것일까? 안 된다. 나는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나는 얼른 고모에게 전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부와 고모의 아들이 차를 몰고 왔다. 그러나 그들은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치료도 해주기 싫어했다. 왜냐하면 내가 빚이 있어 그들에게 또 돈을 빌릴까 두려웠고, 아버지가 고모 집에 가서 소란을 피웠으며 주변 마을에서도 아버지의 평판이 나빴기 때문이다.

고모부는 “어떻게 할래? 네가 아들이니 네가 결정해. 치료하려면 돈이 얼마 들지도 모르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돈을 빌리더라도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전에 늘 고모부 앞에서 아버지를 원망했기에 고모부는 조금 의아해했다. 고모부는 나가서 고모에게 전화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해서 들을 수 있었다. 고모는 “무슨 치료를 한다고? 가장 좋기는 오늘 죽는 거야. 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라고 하셨다. 나는 고모에게 아주 실망했다. 친누나가 동생에게 그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전에 나도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아버지에게 소변 줄을 연결해 피를 배출하게 했다. 나중에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다. 혈액이 응고되지 않아 쥐약을 잘못 드신 것으로 의심됐다. 아주 위험했는데 한 발만 늦었어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병원은 내가 보증금을 내고서야 치료를 시작했다. 하룻밤이 지나자 많이 좋아지셨다. 조금 나아지자 아버지는 간호사와 나에게 욕하고 내가 사 온 밥도 던져버리셨다.

나는 될수록 대법 법리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화를 내지 않았다. 병실을 청소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내가 진심으로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렸다. 나의 진심이 통해서인지 아버지는 점차 진정되셨다. 그날 내가 한 말은 아마 20년 동안 내가 아버지에게 한 말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줄곧 눈물을 닦으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우시는 것을 처음 봤다. 나중에 사존의 법을 보고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됐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1]

다음 날, 간호사는 나에게 돈을 내라고 재촉했다. 나는 그 당시 좀 멍해졌다. 보증금을 그렇게 빨리 쓸 줄 몰랐다. 빼곡하게 적힌 청구서가 뭔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돈은 모두 보증금으로 사용했기에 나는 고모에게 전화해 돈을 빌리려 했지만 고모는 욕하면서 빌려줄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전화를 끊으셨는데 다시 걸어도 받지 않으셨다.

그동안 겪은 일들을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고 병원 복도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빌고 있던 그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친척에게서 돈을 빌렸는데 나머지 병원비를 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건강하게 퇴원하셨다. 정말로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진상을 아니 복이 찾아오다

아버지는 퇴원한 후 정신을 차리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옷과 휴대폰을 사드리고 휴대폰 카드와 은행 카드를 만들어 드리며 아버지가 나와 연락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 달 남짓 지나 다시 찾아갔더니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은행 카드와 휴대폰을 마당쓰레기 더미에 버려두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마당 문을 잠그라고 명령하셨는데, 낮이기 때문에 나는 잠그지 않고 그냥 문을 닫았다. 그러자 아버지의 눈매가 매서워지더니 욕을 퍼붓고 “내가 문을 잠그라고 했지, 들었어? 맞고 싶어?”라며 내 멱살을 잡으셨다. 예전 같으면 화를 내며 집을 떠났을 텐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남을 선하게 대하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밝고 평화로운 기운이 돌면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네”하고 가서 문을 잠갔다.

아버지가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흘기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주의식(主意識)이 명석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 우울증이 대법으로 하루아침에 좋아진 경험을 생각하며 대법이 아버지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속으로 발정념을 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묵념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오신 걸 보고 파룬궁 진상과 중국공산당의 본질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알려 드렸다. 아버지도 가끔 나와 몇 마디 주고받으셨지만, 삼퇴에 대해 말하면 공산당에 가입한 적도 없다면서 일어나서 가버리셨다. 나는 아버지가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소선대에 가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는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원래 말주변이 없었는데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말할 수 있었다. 비록 아버지는 말을 적게 하셨지만 주의식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간혹 아버지의 눈빛이 매서워지면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다. 그러면 아버지의 눈빛이 점차 온화해졌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아버지와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더 이상 아버지를 멀리하지 않았다.

한번은 집에 다녀올 때 아버지가 나를 문밖까지 바래다주셨다. 나는 “아버지, 소선대에서 탈퇴하세요”라고 했더니 “좋아”라고 하셨다. 나는 “그럼 아버지 본명으로 탈퇴시켜드릴게요”라고 하자 다시 한번 “좋아”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당시 사부님께서 무량한 자비로 가지(加持)해 주셔서 한 생명을 구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매우 감동했다.

2019년 연말에 나는 타지에서 집으로 갔다. 마당에 들어서자 아버지의 정신 상태가 많이 좋아지신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채소를 심고 계셨는데 그 당시 나는 많이 놀랐다. 그동안 아버지는 집안의 많은 물건을 내던지고 마당 안에 심어놓은 식물들을 해치기만 하셔서 채소를 심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아버지, 뭘 심고 계세요?”라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꽃도 심고 먹을 것도 심으려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어디에 꽃을 심고 어디에 과일나무를 심을 것이라는 계획도 말씀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내 안부도 물으셨는데, 그것은 최근 10여 년 동안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집에 와서 돈을 드리거나 물건을 사드리면 받아서 방안에 두고서는 밖에 나가 앉아 계시면서 나와는 잘 말하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어릴 적의 정상이었던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았다. 내가 가정용 가스를 배달시켰을 때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버지께서 그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네셨다. 그리고 나에게 그 사람에게 물도 한잔 드리라고 했다.

나중에 고모가 아버지를 보고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네 아버지가 정신이 돌아온 것 같구나. 나한테 트집도 안 잡고 욕도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차차 나아질 거야.”

현재는 나와 고모 사이도 많이 좋아졌다. 아버지 일 때문에 고향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도 아주 좋다.

맺음말

도덕 수준이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는 오늘날, 이기적이고 아버지와 맞서던 불효자가 아버지를 위해 생각하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은 전적으로 대법의 위덕이다. 만약 대법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나를 인도하지 않았다면 나도 사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대법은 세인과 모든 것을 이롭게 했고 오래된 내 마음속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없애주었다. 아버지도 진상을 이해하고 중국공산당을 탈퇴했기에 복을 받은 것이다. 사부님의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더 많은 중국인이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어 파룬궁을 알아보길 바란다. 진상을 명확히 알고 화를 멀리해 복을 받아 정정당당한 중화의 아들딸이 되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청성’

 

원문발표: 2020년 8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3/4095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