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수련생을 믿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연속 발생한 일 때문에 나는 줄곧 습관이 된 많은 집착심, 특히 의심이 폭로됐다. 파룬따파(法輪大法) 법리의 인도하에 착실한 수련을 통해 나는 의심을 제거하고 넓고 아름다운 경지를 체험했다.

빈자리가 남긴 아쉬움

수개월 전, 한 수련생이 경찰의 불법적인 행정 구류와 재산 몰수를 고소했다. 법원은 며칠 후 개정했고 나와 가족 두 수련생은 법원에 도착해 수련생의 정념을 가지(加持)하려 했다. 그러나 법원에 도착하니 법정은 텅 비었고 한 사람도 없었다. 돌아온 후에야 재판 시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우리는 경찰을 고소한 수련생을 찾아갔다. 교류하면서 수련생은 재판 및 사건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고 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변호사가 대행한다고 했다. 나는 실망했는데, 원래는 수련생에게 정념을 얻고, 수련생이 어떻게 거듭된 교란이나 두려움을 수련하며 무단 납치에 보복당할 위험성이 높은 상황에서 또다시 소송과 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는지 보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수련생이 이러한데 재판이 열릴 수 있겠는가’라고 의심했다. 우리는 약간의 경험과 의견을 수련생과 교류했다.

돌아온 후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수련생이 한 것이 바르고 옳은 것이기에 가지해야 한다는 점은 확고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재판 시간이 확정됐다. 나는 법원에 가서 방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시간, 차를 타는 장소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하필 재판 전날 나는 다른 일 때문에 매우 피곤해 내일 법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세 명은 모두 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이튿날 수련생이 우리 집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를 본 수련생의 첫마디는 “당신들은 왜 법원에 오지 않았어요?”였다. 이어서 “당신들이 와도 자리가 없을까 봐 일부러 자리를 남겼어요. 법정은 방청석을 네 석만 주었어요. 그것도 우리가 강력히 요구해서입니다. 한 수련생이 오고 남은 세 자리는 당신들에게 남긴 것이죠. 나는 당신들이 온다면 너무 좋았을 거로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수련생의 말을 듣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수련생의 모습을 보니 얼굴은 발그스름했다. 그녀는 재판이 매우 성공적이었고 변호사도 변호를 아주 잘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어떻게 말했고 말도 아주 좋았다고 했다. 이것은 이전에 우리가 그녀를 찾았을 때 본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수련생은 또 우리에게 감사드리면서 우리가 그녀를 찾아가 한 말이 그녀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됐고 일의 두서가 생겼지만, 우리가 마지막에 재판을 보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수련생이 간 후 나는 정말 괴로웠고 또 뼈저리게 뉘우쳤다. 나는 이것은 하나의 교훈이었다. 나는 수련생의 일시적인 표현(가상)에 이끌려 그 수련생을 믿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나는 수련생의 그 일시적인 표현에 가로막혀 그녀가 안 되겠다고 인식했다. 그 후 진정으로 수련인의 각도에서 협조하지 않았고 가지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본 가상을 자신이 협조하지 않은 이유로 간주했다. 만약 내가 힘든 것이 두려워 쉬고 싶고(사실 수련생을 의심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음) 가지 않겠다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이모 두 수련생은 약속대로 갔을 것이다. 그 빈자리는 우리에게 남긴 것이었지만 우리는 가지 않았다. 그 세 빈자리는 우리의 유감이 됐다.

자신과 수련생을 신임하지 않으면 모두 고통

곧 어머니의 행정소송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나와 이모는 어머니의 위탁 대리인이 됐다. 그러나 재판 전에 판사는 많은 불합리한 요구를 했고 또 매우 강압적이었다. 나는 자신이 법률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 끝에 이전의 수련생을 대리한 변호사에게 의뢰했다. 한 당사자는 대리인이 두 명이었기에 나와 이모 중에 한 사람이 빠져야 했다. 표현력, 모든 일에 대한 파악 정도는 여러모로 내가 이모보다 조금 나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상의한 후 내가 물러나고 이모와 변호사가 어머니의 소송 대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나는 똑똑히 알았다. 이것은 하나의 수련 과정이며 최초에 어머니 사건으로 바삐 보냈고 마지막 재판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의 소소한 많은 일은 모두 나의 노력과 지불이며 마지막에 법정을 하나의 무대로 삼아 보여준다. 이것은 보기에는 당연한 일 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제고는 포기하는 것이다. 원고석에 있고 없고는 사실 나로 놓고 말하면 모두 같다. 그러나 이모는 줄곧 묵묵히 협조하고 가지하셨으며 처음부터 고밀도 발정념으로 우리의 이 일을 가지하고 그 과정에서 무조건 협조했기에 마지막 이 기회를 마땅히 이모에게 드려야 한다.

비록 이렇게 결정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고 이모가 쉽게 이끌릴 것 같았다. 이모가 이렇게 하실까 봐, 저렇게 하실까 봐 걱정됐다. 이어 마음이 좀 초조해졌고 머리는 쉬지 않고 늘 이 사건을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도면밀하게 생각하고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한 번 생각하고 또 대응책을 생각했다. 명절에 가족이 우리에게 나가서 식사하자고 해도 나는 완곡히 거절했다. 시간을 지체할까 봐 걱정됐고 만약 주도면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수할까 봐 두려웠다.

아주 빨리 변호사가 왔다. 재판 전에 판사와 접촉했을 때 변호사가 내가 상상한 것처럼 정념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나와 어머니가 견지해서야 일이 허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았으며 이모의 표현도 그렇게 확고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의 의심이 완전히 드러났다. 나는 일종 이상하게 초조한 상태에 들어갔고 머릿속은 시시각각 고속 회전하고 이것이 걱정되고 저것이 걱정됐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니면 저렇게 말하고 어떻게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드렸다. 어머니 말씀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는 즉시 ‘만약 법정에서 이렇게 하면 끝장인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모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면에서 분명히 말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고 절대 이끌리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심지어 안 되면 내가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건에 관련된 법률 조문, 사건의 경위, 우리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 등 각종 내용을 준비해서 어머니와 이모에게 보여드리고 두 사람에게 배우고 기억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수련에 소질이 있는 수련생이다. 여러 번 사악과 직면해 정념이 매우 강했고 말할 때는 이치와 근거가 있고 동요하신 적이 없다. 이치대로라면 어머니마저 믿지 않으면 안 되지만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고 중점을 말하지 않으실까 걱정됐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말할 것이다. 이까짓 일을 내가 똑똑히 말하지 못하겠느냐? 나에게 지혜가 없어도 법정에 가면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실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할수록 나는 어머니가 조금도 중시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아 더욱 걱정됐다. 이모도 좀 물러나면서 “아니면 네가 말을 잘하니 네가 가라. 나는 아래에서 발정념을 할게!”라고 하셨다.

어느 날 아침 한 시간 동안 포륜(抱輪) 하면서 내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고 그야말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노력과 지불, 어머니의 이 사건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내가 바쁘게 처리했고 압력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매우 억울했고 그녀들은 왜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 같은지 생각했다. 바로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하고 크게 외쳤다. 즉시 머릿속에서 ‘나는 믿는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순간 나는 자신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신의 이 상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과 몸이 극도로 피로했다. 변호사에게 의뢰하면 압력이 완화된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내가 이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한 것을 모두 보았다. 변호사와 다른 가족도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한 일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무엇 때문에 다른 수련생을 믿지 않는가? 나는 이것을 믿지 않고 저것을 믿지 않고 이것이 안 될까 봐 의심하고, 저것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나는 사부님을 믿지 않고 대법을 믿지 않은 것이다! 나는 자신이 사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를 믿지 않았다. 수련생이 잘하겠다는 소망을 믿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이 잘하고 더욱 잘하게 가지해주신다. 그 신기함과 현묘함은 내가 현재 본 것과 내 사상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자 모든 것이 홀가분하고 아름답게 변하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사부님의 기타 설법을 배웠고 ‘각 지역 설법 9’를 읽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매우 격동됐다. 사부님께서 정말 시시각각 신변에 계신 것을 느꼈고 내 모든 생각을 아실 뿐만 아니라 나의 의심, 신임하지 않는 물질을 가져가신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단번에 홀가분해졌다. 다시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는 내가 준 자료를 자세히 보고 계셨다. 이모는 더욱 진지했고 잘하지 못할까 봐,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 자료를 보고 또 여러 번 보셨다. 또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협조할지 생각하셨다.

변호사는 내가 그가 될지 안 될지 의심할 때, 마침 그날 그가 수련생을 위해 변호한 전 과정을 보았다. 변론 내용도 매우 힘이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판사를 만날 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않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는다고 속인들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위 수련생, 변호사 혹은 가족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이 내가 본 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불신임과 의심은 두꺼운 물질을 형성해 사람들을 매우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어머니와 이모에게 이 방면에 대해 교류하자 두 분 모두 내가 제고했다고 하셨다. 이모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말했다. “아이고, 사실 네 앞에서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데 너를 도와주는 것은 정말 지친다. 늘 잘하지 못하고 너의 요구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 사실 네가 그렇게 (의심)하지 않으면 나는 더욱 잘할 수 있어.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주신다!” 이후에 이모는 그녀의 일부 생각을 말했다. 내가 들어보니 정말 일리가 있었다. 나는 이전에 늘 사람을 억압해 그들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지혜는 모두 나 때문에 묻혀 버렸다. 나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두 분을 가지하고 저를 가지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두 분을 믿습니다. 나는 변호사도 믿고 판사도 믿습니다. 그녀는 진상을 명백히 알면 바른 선택을 할 겁니다.”

우리는 재판에 대해 교류했다. “수련인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피고와 대립 관계가 아니며 우리는 그들에게 승리하고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며, 대법제자의 풍모를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난세에서 길을 잃어 물결치는 대로 표류해 사악에 협력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들이 대법제자에게서 진상을 듣고 이 일에서 바른 선택을 하면 미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일을 한 취지입니다.”

그 후 판사의 태도는 180도 변했고 더는 이전처럼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우리를 접대할 때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그 전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은 듯했다. 피고도 매우 빨리 그들의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 내용을 보니 악의가 얼마 없었다. 또 주위 가족, 수련생들도 적극적으로 노력해 협조했고 변호사도 재판을 위해 준비했다.

나는 마음이 특별히 홀가분하고 편안했으며 갑자기 믿음은 일종 경지이며 더욱이 일종 흉금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떤 전제 조건에서 자신의 소위 표준에 도달해야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고 대법에 맡기며 사부님을 믿고 자신이 사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믿고 모든 것은 위대하신 사부님이 돌봐주시고 배치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며 세월이 흐르고 행성이 운행하는 것처럼, 창세주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지배하고 계신다.

비가 내린 어느 날 저녁, 나는 집 베란다에서 저 멀리 하늘가에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오색찬란하고 아름다웠다. 이것은 집에서 처음으로 무지개를 본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위 사물을 감상하고 바라보았다. 나는 자신이 만물에 용해되고 있는 것을 느꼈고 생명이 이렇게 경쾌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수련생을 믿어야만 책임질 용기가 생긴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마음을 쓰며,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과 요구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책임지는 것을 가장 꺼리고 책임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의심을 내려놓은 동시에 저절로 책임에 대해 의식한 것이다. 나는 예전에 모순과 충돌, 혹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직면하면 습관적으로 즉시 결단하지 않고 일단 미루고 시간이 흐른 후 결정했는데 이것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지막 결정은 모두 어머니가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결정하기 전에 나는 내가 바라는 결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하지만 이 결정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고 교활하게 배후에 숨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사회에 대해, 매 사람에 대한 강한 통제욕, 하늘을 관리하고 사람을 관리하며 사람의 사상을 관리하고 모든 모세혈관에 깊이 들어가 틈만 있으면 파고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어떤 책임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어떤 책임을 질 용기가 없었으며, 그 누구나 일에 대해 책임진 적이 없다.

나 본인의 의심에 악당 사회, 당(黨) 문화의 세뇌 주입으로 의심은 정상적인 상태가 됐으며 방비, 경계, 긴장으로 마음이 홀가분한 적이 없었다. 주위의 사람과 일에 대해 감상하고 신임한 적이 없기에 이전에 내 주변의 친구는 무엇 때문에 그들을 믿지 않느냐며 화를 낸 적이 있다. 나는 매우 조심하고 심지어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소심하게 살면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심사숙고한 후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했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전족을 한 할머니처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며 일하는 것이 당당하거나 시원스럽지 못하다고 하셨다.

그러기에 나는 늘 피곤함을 느꼈다. 내 나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한 대법제자,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은 사실 가장 중요한 일부분,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부정확한 것이 포함한다.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자로서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신임하지 않았기에 이상의 변이되고 모순된 심리와 행위가 있었다.

이 일을 통해 명백히 나를 알게 하시고, 또 법리로 점화해 주시며, 신임을 배우게 하시고, 내 마음을 넓고 당당해지게 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틀도 되지 않아 판사는 전화로 재판을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당시 마지막으로 확정되지 않아 판사는 우리의 의견을 알아보려고 물었다. 이전 같으면 나는 “기다리세요. 우리가 상의한 다음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판사에게 “우리의 의견은 제날짜에 재판하는 것입니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판사는 “좋아요.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법원이 결정합니다”라고 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하나의 작은 결정 같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 팀 모두의 의견과 준비 상황을 종합해 결정했고, 그 결정에 책임지고 더는 교활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마땅히 책임져야 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14/4089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