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불편함이 좋은 일임을 다시 깨닫다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하루의 몇 가지 작은 일에서 다시 한번 깨닫고 실천하여 사람의 관념을 바꿔 놓음으로써 불편함을 정말 좋은 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하는 사람과 속인의 이치는 반대다. 사람은 편안하면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대법제자는 사람의 편안함을 제고하는데 있어 나쁜 일로 여기며, 제고를 말하자면 불편함이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박수) 이 근본 관념을 당신은 전변(轉變)했는가 하지 못했는가?”[1] “속인 중의 모든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한의 초급과위에 도달한 것이다.”[2]

그렇습니다. 저는 만약 정말 수련 중의 불편함을 좋은 일로 여긴다면, 당연히 즐겁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지금까지도 즐거워하지 못한다면 정말 나한(羅漢)의 초급 과위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신에게 아직도 버려야 할 많은 사람의 관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좋은 일로 여기는 관념은 뚜렷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점을 깨달은 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생각에 영향이 미치니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보고 느낀 것, 저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자신을 일깨웠으며,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좋은 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사실 전염병이 시작된 후부터 저는 집에서 일해 왔으며, 저에게 심성고험을 주는 사람은 가족뿐이었습니다. 비록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큰일은 없었으나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할수록 제 자신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서 일하면서 점심시간을 아끼려고 반제품을 사서 점심에 끓여 먹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족들이 먹어버렸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저는 그때 자신의 거북해하는 사람마음을 틀어잡았습니다. 번거롭게 다시 하게 됐다는 생각은 사실 자신의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저는 곧 자신의 이 불편해하는 마음을 바꾸면서 제가 또 한 가지 사람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좋은 일이라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전까지 이렇게 사소한 일로 깨달은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저는 웃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저는 귀찮아하지 않고 정말 기분 좋게 토마토 라면을 한 그릇 만들어 먹었고, 비록 반제품 맛에 비해 훨씬 못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또 싱크대에 가족이 설거지를 하지 않은 솥과 그릇을 보면서도 바로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일해도 출근해서 돈을 버는 일이지만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작은 화상처럼 지치고 고생하더라도 가족의 편의를 위해 그들에게 부담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줄곧 제가 밥을 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제가 설거지를 거의 안 했는데 그들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와 무슨 마찰이 없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제가 당연히 수련해 닦아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집안일 중에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것이 설거지였습니다. 기름진 그릇이 손에 닿는 느낌이 싫어서 싱크대에 그릇이 있는 걸 보면서도 그들이 하기를 기다렸는데 이제는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계속해서 업무 중에 또 하나의 번거로운 일이 발생했고, 자신은 분명히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상황이 발생하여 멀리 미국에 있는 회사와 연락을 해야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성미가 급하여 관성(慣性)의 반응으로 또 귀찮은 일이 생겨서 짜증난다고 생각하여 저는 즉시 이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틀어잡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번거로운 것이 좋은 일이고, 번거로움이 없이 편안하게 승화될 수 있겠는가?’라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업무 규칙대로만 하면 되므로, 메일을 보낸 후에도 귀찮은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를 좌지우지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완고한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불편하다는 각종 사람마음에 따라 몸도 불편함이 함께 나타나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면서 또 계속해서 콧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콧물이 흘러내리고 안으로 집착을 찾으니 곧 나았는데, 지금도 계속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데 왜 또 불편할까 하면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즉시 몸이 아픈 것을 나쁘게 생각하던 마음을 바로잡고 더 생각할 필요 없이 발생한 모든 일이 다 좋은 일이며, 눈앞의 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그러한 목적은 모두 불순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바꾸자 잠시 후 저도 모르게 알레르기 증상이 가라앉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3]

그렇습니다. 저는 인간으로서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자연스레 고난에 맞서기 싫어하고, 심지어 완고한 관념이 형성되었지만, 자신은 알지 못했는데 제가 고심하여 이 관념을 바꾸려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일어난 이런 평범한 일들을 의식조차 할 수 없었을 텐데, 하물며 그런 것을 닦아 없앤다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수제자인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여러 관념을 고쳐야 하고, 진정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와 불편함이 좋다고 여겨야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으며, 나아가 웃으며 인생의 온갖 고난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상은 저의 층차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4/408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