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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어머니의 수련 이야기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어머니는 방송에서 광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번갈아 비방하는 상황에서 의연히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1년 후, 저도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1. 어머니가 수련하여 온 가족이 혜택을 입다

어머니는 파룬따파 수련 이후, 원래 난폭하고 매사에 남을 탓하던 것에서부터 유순해지고 성격도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어머니가 “네 아버지의 여러 가지 나쁜 점은 사실 모두 내 잘못이고 내가 나빠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해서 저는 매우 크게 감동했습니다. 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었고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며 홧김에 아버지와 결혼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강한 성격으로 가정 분위기는 늘 화목하지 않았고, 저와 아버지는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으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한동안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게 걱정돼 집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친구 집에 가서 숙제하는 게 편했습니다. 이런 가정 분위기 속에는 격려가 없었고 욕설뿐이었습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던 저는 자신감이 없는 것을 빼면 열등감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유순해진 후 가정 분위기도 융화되었고 저의 기분도 점차 풀려 우리 일가족은 드디어 웃음꽃을 피우게 됐습니다. 아울러 저의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중공의 ‘운동’ 박해, 가산 몰수, 굶주림 등 각종 놀라운 일들을 직접 겪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체가 허약해서 8살이 돼서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게다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으며 생활의 온갖 간난신고를 싫증 날 정도로 경험했습니다. 오늘 또 중국공산당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적색공포에 직면했습니다. 늘 나약했던 아버지는 오히려 용감하게 매일 교란하는 마을 간부와 맞섰습니다. 또 여러 번 감시원이 어머니를 불법 수감하려고 시도할 때 나서서 어머니를 보호했습니다. 집으로 찾아와 교란하는 한 무리의 마을 간부와 맞서 아버지는 벽돌을 들고 어머니의 신앙을 지켜줬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는 잘못이 없어요. 아내가 대법 수련을 안 했다면 우리 가정은 일찍이 흩어졌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어머니가 수련 후 성격이 좋아져서 가정이 화목해졌고 아버지도 기분이 좋아졌으며 일 년 내내 앓던 위병도 나았고 전반적인 신체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1년 후, 저도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막 고등학교에 다녔고,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가장 광적으로 박해했던 2000년이었습니다. 적색공포 하에서 겁이 많던 저는 오히려 자신이 강해졌다고 느꼈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불법 수감됐을 때 저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 중국공산당에 의해 통제된 마을과 진의 간부들 앞에서 저는 두려움이 없었으며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 어머니를 지지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닌 3년 동안 공부가 쉬웠고 몸과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학업성적이 보통이었던 저는 미술의 길로 들어서 본 성의 한 대학에 쉽게 합격했습니다. 이것은 수련 전에 감히 꿈도 못 꾸던 일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이 3년은 비록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가장 잔혹하게 박해했던 시기였지만 오히려 우리 일가족은 파룬따파로 인해 윤택한 복을 누렸고 정말 있어 본 적 없는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2. 수련이 느슨해지자 막막하고 고통스러웠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꾸지람 속에서 성장했고 힘든 회색빛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수련 후 고등학교 3년 동안은 행복한 시절을 누렸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 생활은 평온했고 마음속에 대법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떠나 있었고 법공부와 수련환경을 떠나게 되자 대법에 대한 감성적인 인식에만 머물게 되어 저는 바다 위의 부평초처럼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습니다.

남편은 비록 수련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착실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과 만남을 동의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강제로 갈라놓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결혼으로 자칫 대법을 놓칠 뻔했고 대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탓으로 법을 얻은 초기의 행복만 누렸을 뿐 이성적으로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몰랐습니다.

감정에 이끌려 수련을 느슨히 하게 되면서 거의 포기상태까지 갔을 무렵, 결혼 후 시댁에서 몇 년 동안 막막하게 보냈습니다. 대법의 가르침이 없어져 저의 사상 경지는 하루에 천리 길씩 미끄러져 내려갔고 생각이 단순했던 소녀로부터 서서히 고부간의 다툼이 일어났으며, 마음에는 원망으로 가득 차 골머리를 앓으면서 삶을 살았습니다. 수련하지 않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앞에서 저는 막막했고 고통스러워 몸부림쳤습니다. 어머니는 저에 대해 화가 났고 조급했으며 더욱 실망했습니다.

수련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면서 저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종일 다투고 때리면서 가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을 마주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놀음과 마작을 탐닉하는 남편 앞에서 저는 방법이 없었고 스스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습니다. 저는 남편과 다투고 때리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고 희망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어찌할 수 없는 가운데 이혼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 대법의 법리가 조금 남아 지탱해주고 있었으며 이혼은 현대 사회 도덕이 패괴된 방법이며 그릇됐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가 출근하는 유치원의 선생님 중 파룬궁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수련생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저는 서서히 자신이 이미 수렁에 빠진 지 매우 오래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이고 내향적이며 질투하고 원망하는 등의 각종 나쁜 마음을 고쳤으며 이 과정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과 천성은 고치기 매우 어려우며 파룬따파만이 비로소 생명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3. 대법으로 다시 돌아와 가족이 혜택을 받다

새롭게 수련으로 되돌아온 후, 저는 시어머니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녀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나쁘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가 사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것만 생각했습니다(시아버지의 성격이 좋지 않아 일 년 내내 시어머니를 욕하고 때려서 시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우울했음). 지금 시어머니는 하루에도 우리 집에 몇 번씩 오셔서 무슨 일이든 모두 저와 이야기합니다. 시어머니는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저는 시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대법의 이치로 일깨워드리고 가능한 시어머니가 마음을 편안히 하고 부담을 덜게 도왔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시어머니가 잘되기를 바라게 되었을 때 시어머니도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내심에서 우러나 좋은 남편과 아들딸이 없어서 자신을 아껴주지 않지만, 오직 좋은 며느리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시어머니의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힘이 닿는 한 저와 두 아이를 돌봐줬습니다. 시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좋을 때는 우리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서 가져다줬습니다. 시어머니가 돈이 생기면 아낌없이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줍니다. 이것은 제가 수련하기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화목함입니다.

제가 경지를 제고함과 동시에 저는 남편과도 사이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남편이 일을 힘들게 할 때, 저는 남편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보살폈습니다. 시아버지가 늘 사람을 욕하고 경제적으로 남편을 지지하지 않아 주변 또래들은 집안 어른들이 마련해 준 아파트가 있을 때 우리만 없어서 환경이 좋지 않은 주택에 계속 살았을 때 저는 대법의 법리로 남편을 일깨워줬습니다. 부모님과 아들딸은 다른 인연 관계가 있고 우리가 스스로 고생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부모님이 건강한 것은 우리의 복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서서히 남편도 대법의 선한 힘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차를 몰다가 다른 차와 부딪힌 사고가 있었는데, 그 차의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었습니다. 보상 협상을 할 때 저는 남편에게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 없어요. 우리의 차만 잘 수리하면 돼요. 절대 의롭지 못한 재물을 얻어서는 안 돼요”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은 받아들였고 꽤 순조롭게 이 분쟁을 해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친구가 이렇게 빨리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불의를 보고 분개하며’ “그냥 이렇게 해결했다고? 그를 잡고 있어야 하지 않아? 어쨌든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잖아. 그가 정말 너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다니”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평온하게 “아내가 빨리 처리하면 된다고 했어. 그렇게 떠들썩하게 할 필요 없어. 번거로움도 덜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대법의 선한 힘이 남편의 마음과 도덕을 바르게 잡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사람을 속였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7/5/4085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