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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제거하고 진수제자가 되다

글/ 프랑스 서양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프랑스 남부에 삽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을 즐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만지면서 닫히는 홍합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열등감은 상처를 받을 때나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대법 항목을 잘하지 못했을 때,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동의하지 않을 때 종종 나타납니다. 저는 사교성이 부족하고, 화를 잘 내고, 늘 우울합니다.

안으로 찾아 질투심의 본질을 찾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면서 저는 안으로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감정과 집착이 드러나면 안으로 찾아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저는 이 내향성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자존심의 표현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외모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침착하고 친절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제 마음은 평온하지 않고 종종 부정적인 생각과 불만으로 인해 혼란에 빠집니다. 저는 내향성과 자존심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생기기 때문에 그것은 보이지 않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느낍니다.

전법륜을 반복해서 읽은 후 과소평가와 과대평가는 모두 질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1]

쟁투심은 무엇일까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쟁투심의 표현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질투심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에 관한 진상을 알릴 때 저는 다른 수련생들이 얼마나 잘했는지 봅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들만큼 잘했는지 저 자신과 비교해봅니다.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 진상을 설명하는 효과를 비교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할 때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저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분명히 알릴 수 있는 것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고 질투심이 생깁니다. 제가 다른 수련생보다 더 잘했으면 자랑스러워하고 심지어 깔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랫동안 저에게 깊이 뿌리 박혔습니다. 저는 질투심의 뿌리를 파낼 때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그렇다면 오만이나 열등감은 어떻게 발생했을까요? 저는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얻지 못했으며, 어떤 일에 기쁨이나 열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왜 이런 기분에 오랫동안 교란을 받았을까요?

질투심이 오랫동안 저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 마음이 ‘자아’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자아는 진정한 내가 아니고 주왠선(主元神)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자아는 인생에서 행복하고 불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념을 형성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그것은 관심을 끌고 보살펴주기를 원했습니다.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시샘을 받고 싶어 하고, 과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샘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면 그 마음에 압도되어 상상의 세계가 무너지고 스스로 고립되는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자아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수줍음과 자신감 부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자아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불안했고, 미래에 대해 침착하고 명확한 견해가 없었습니다.

물론 대법 수련을 시작한 후 질투와 관련된 모든 면이 조금씩 노출되어 제거했습니다. 저의 진정한 영혼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았고,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 가지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수련 상태가 개선되고 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자아는 약해졌습니다. 저는 사람의 관념으로 구성된 내면의 자아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자아를 되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법을 실증하고 더욱더 많은 세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시간을 잘 안배해서 5가지 공법을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정(情) 대신 자비로 손자를 대하다

제 손자는 세 살입니다. 저는 손자와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합니다. 아이의 순박함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손자와 같이 있을 때 제게 긍정과 부정적인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손자는 제게 과도한 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손자를 보지 못할 때 공허함을 여러 번 느꼈는데, 저는 새로운 집착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잘 처신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오후 내내 손자와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대법 활동에 참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격리 규정으로 인해 손자를 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국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습니다. 얼마 후 저는 새로운 종류의 집착을 키우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손자도 내가 떠나서 슬플까?” 제가 떠날 때 손자는 슬퍼 보였습니다. 분명히 제가 떠날 때 제 사상과 상태는 손자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을 담담하게 여기는 것은 내 책임이고 이는 나와 손자에게 모두 좋은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깨닫고 저는 더는 손자에 대한 집착에 얽매이지 않았고 편안해졌습니다.

전 인류사회는 정 속에 잠겨있습니다. 저는 수련자로서 정을 더 높은 경지에서 보고 자신을 법에 동화시켜 정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합니다.

진상을 알릴 때 익숙한 방법에 집착하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확실히 개선되었지만, 최근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대법이 있고, 매일 몇 시간씩 컴퓨터로 진상 항목 일을 하며 보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몇 가지 중요한 대법 항목 일에 참여하느라 바빴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전염병으로 인해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저는 조금 방황하고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기꺼이 제 진상을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진상 후 저는 항상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왔고 에너지가 가득했습니다.

저는 진상 후 빨리 결과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이 일로 진상 항목 일을 할 때 수련자의 표준으로 대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컴퓨터로 항목을 수행하려면 협조, 인내, 겸손이 필요합니다.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려면 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더는 전단을 배포할 수 없고 밖에서 진상을 알릴 수 없지만, 소셜 미디어,이메일,편지, 전화 같은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로잡아야 할 때, 특히 결과에 집착하거나 과시하는 마음으로 일을 할 때 힌트를 주실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대법제자는 모두 에너지가 있는 것으로, 자체가 곧 업을 제거하고 균을 제거하는 자이며, 최후시기 구도의 사자(使者)인바,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모두 이지적으로 할 것이다.”[2]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0 프랑스 온라인 수련 교류회 원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이성(理性)’

 

원문발표: 2020 525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25/40681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0/5/30/1852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