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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하는 습관과 극단적인 생각을 제거

수련생을 위해 좋은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

글/ 선과(善果)

[밍후이왕] 중국에서 생활한 수련생은 기사를 쓸 때 종종 두 가지 문제가 표현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두 가지 문제 중 하나는 단언하고 또 단언하여 중립적으로 서술할 수 없으며,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물을 극단적인 생각으로 대하는 것이다. 우리 여기서 한번 논의해보자.

1. 단언하다

단언(斷言)을 ‘결론 내리다’라고도 한다. ‘결론’에 대한 사전 해석은 ① 전제 조건에서 추론한 판단, 단안(斷案)이라고도 함. ② 사람이나 사물에 내린 최종 논단. ‘단언’이 명사로 사용될 때 극히 긍정적으로 말하거나 단정, 결론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 해석 ①에서 보면 올바른 결론 프로세스는 먼저 전제를 제공한 다음 명확한 논리를 사용해 판단, 즉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신뢰할만한 전제와 믿을만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정이 있다. 진상을 알릴 때 수련생이 부당한 속단을 내리면 사람들은 극단적이라고 여기기 쉽고 반발할 수 있다. 감정과 관념의 작용 하에 사람들은 매우 이성적으로 당신의 많은 주장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 받아들이긴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겠다. 예를 들어, 회식 때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 이 전제로 만약 이 사람에게 돈이 너무 많다는 결론을 내리면, 이 결론은 남들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여길 것이고, 적어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례의 특정한 전제와 특정한 결론 사이에는 신빙성이 없고, 확실한 논리와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반박하는 사례 중 하나는, 계산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보다 우정을 더 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 사례는, 다른 사람과 논쟁이 발생한 후 항상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있다. 이 전제로 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기에 먼저 사과한 것이라고 하면, 이 결론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반박하는 사례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논쟁이 발생한 후 항상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선량하고 주변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일할 때 주동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바보여서가 아니라,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 결론 혹은 주장은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설득력이 있다.

나는 수련생이 쓴 기사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로 중공 악당’이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결론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법 측면에서 봐도 성립되지 않는다. 주어인 ‘코로나바이러스’는 바이러스(Virus)이고 목적어인 ‘중공 악당’은 당(黨)이다. ‘바이러스는 당’이라는 주장은 추론이 너무나 왜곡되었기에 제목을 보고 이해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단언하기 전에 전제를 제공해야 한다. 즉, 사람들이 이유와 논리를 볼 수 있도록 돕는 주요 사실을 나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우한 폐렴을 생성한 바이러스이고, 각국 전문가는 이 바이러스가 우한 바이러스연구소(P4)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공이 전염병 정보를 엄격하게 통제해 우한 폐렴이 중국에서 널리 퍼지고 전 세계로 확산하였다. 이 전염병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기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우한 폐렴’이라고 불렀고, 이 바이러스가 중공과 관련된 사람만 전문적으로 찾아 감염시키기에 ‘중공 바이러스’라고도 부른다.

위 단락에서 제공한 사실 정보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중공은 이번 전염병을 만든 원흉이다.’, 둘째 ‘이 전염병은 우한 폐렴이다.’, 셋째 ‘이 바이러스는 중공 바이러스다.’ 물론 기사를 쓰려면 더욱 구체적인 사실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이치나 논리가 합당해야 한다. 또한, 본인이 직면할 독자가 이해한다는 전제로 논증할 사실과 숫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다음 일정한 이치나 논리에 따라 분명하게 정리하고 마지막에 제목과 상응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구절마다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기만 하면 단언하는 문구를 쓰면 그걸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

말하는 김에 한번 언급하겠는데,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한 무더기 나열하면 사람들에게 읽을 수 있는 기사로 제공할 수 없고 문자는 초고 단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2. 극단적 사고

극단적 사고는 사람이나 사물을 생각하거나 설명할 때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all or nothing)는 방식을 취하거나 ‘아니다… 그렇다’라는 극단적 분류를 말한다. 이런 이분법 사고는 사물을 ‘좋지 않으면 나쁘다’, ‘옳다거나 그르다’라고만 나눈다. 검지 않으면 흰 것이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며 친하지 않으면 적으로 나눈다.

중공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은 흔히 사람과 사물을 절대화하는 데 습관이 되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나쁜 일을 했거나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이 사람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고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면 이 사람을 뭐든 다 좋다고 하고, 영웅으로 받들며, 심지어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한지를 상상한다. 사실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할 수 있고, 나쁜 사람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이라도 어디나 다 완벽한 것이 아니며 나쁜 사람도 온몸의 세포가 모두 악한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가지각색이고 중생은 천태만상이다. 검지 않으면 흰 것이고 0이 아니면 1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전문 염직하는 사람은 육안으로도 30여 가지 검은색을 감별할 수 있다. 흰색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또 빨주노초파남보 유색 무색이 있다. 각종 색상에는 또 서로 다른 많은 포화도와 명도 조합이 있다.

터무니없는 속단과 마찬가지로 극단적 사고의 가장 큰 폐단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편집적이고 당신과 할 말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몇 개월 동안, 수련생은 이번 전염병이 대 도태인가 아니면 구세력의 배치인가를 논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실제로 이런 논쟁이 바로 극단적인 생각이 이번 사건에 체현된 것이다. 우리 좀 분석해보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이미 3개월이 넘었다. 많은 수련인은 이번 전염병은 중공을 선택한 사람, 줄곧 중공을 따르는 사람을 목표로 하여 도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대 도태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 부분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인가? 물론이다. 다만 사부님께서 장계취계 하시느라 사부님께서 동의하셨기에 발생한 것이다. 더는 구원할 수 없는 사람, 중공과 한마음이 된 사람을 도태하는 것이다. 동시에 중공은 이번 전염병을 이용하여 션윈 공연을 교란하고 중국인, 해외 화인을 선동하고 꾀이며 속여 다른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는 대법제자와 사람을 빼앗았다. 사람을 해치고 진상을 알 기회를 박탈한 이 부분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염병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상생상극의 이치는 벌써 절대화됐다. 어떤 일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두 가지 효과가 모두 있다. 그러나 우리 일부 수련생은 눈앞의 이번 전염병을 기어이 ‘대 도태가 아니라 구세력의 배치’라고 단정했다. 그것은 너무 일방적이고 절대적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사고방식은 제거해야 하고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재개[複工]’를 한번 분석해보자.

어떤 사람은 업무 재개를 무작정 나쁜 일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중공이 강행한 재개는 반드시 전염병 진실을 숨겨야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전염병 상황을 속이면 검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검사받지 못할 것이고, 확진된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 완치되지 않은 사람이 퇴원하면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될 수 있고 완치된 사람이 재발하는 일도 있다. 중공의 정치적 재개는 중국 공중위생의 또 다른 큰 재난이다.

그러나 생산을 재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재개를 절대적으로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쁜 것은 중공이 전염병 정보를 강제로 통제하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다. 생산 재개로 중국 사회가 전통으로 회귀할 수 있고 맹자가 말한 ‘민생 보장을 제도화하는 것’을 실천해 국민에게 일정한 개인 생활필수품과 생산재를 주어 국민이 “위로는 충분하게 부모를 부양하고, 아래로는 아이와 아내를 돌볼 수 있으며, 풍년에는 옷과 먹을 것이 풍족하여 흉년이 들어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가 된다.”라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재개로 더 많은 중국인이 중공의 ‘가짜, 악, 폭력’의 본질을 인식하고 마지막 기회를 잡고 삼퇴한다면 어찌 생산 재개를 한사코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사를 작성할 때 특히 평론은 구상이 매우 중요하다. 함부로 단언하거나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맥락이 잘 통하고 요점을 잘 파악할 수 있으며 좋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개인적인 관점을 조심스럽게 교류하는 바이다.

 

원문발표: 2020323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23/4028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