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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사유’를 바로잡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인은 중공의 당(黨) 문화 주입과 세뇌로 인한 독해가 상당히 심각하다. 중국인은 자신도 모르게 당 문화의 왜곡된 기준으로 사물을 가늠하는 습관을 길러 왜곡된 사유 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한다. 우리가 만약 오늘날 세인의 사유와 행위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런 왜곡된 사유 속에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사당이 사람의 사유를 왜곡하는 데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었는데, 전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순간에 자각하지 못한 채 이런 왜곡된 도덕 표준으로 문제를 가늠하고, 이런 왜곡된 사유를 이용해 수련 중의 문제를 처리했다.

어느 날 법공부 중에 사부님의 말씀을 배웠다. “구경꾼들마저 이상하게 느낀다. 이 할머니는 왜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지 않는가.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의 사람은 도덕수준마저 비뚤어짐이 발생했다. 기사가 차를 빨리 몰았지만, 그가 일부러 사람에게 부딪히려고 했겠는가? 그는 본의 아니게 한 게 아닌가?”[1]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큰 충격을 느꼈고, 이전의 내 사유 중 많은 것이 왜곡됐음을 보았다. 나는 당 문화 속에서 형성된 이런 왜곡된 사유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의 태도 측면에서 전통문화를 돌아보면 옛사람은 ‘남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것은 인과의 순환 때문이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을 마땅히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당(邪黨)은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인과 순환의 원리를 믿지 못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그를 건드리지 않고, 만약 나를 건드리면 반드시 갚아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면 고의든 아니든 반드시 앙갚음한다.

자동차가 자신을 치면 반드시 원한을 품고 상대방의 이른바 책임을 따지는데, 이것은 이미 전통의 도덕 표준을 벗어났다. 그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온갖 치료를 요구하며 험한 말을 쏟아낸다! 불난 집에서 도둑질하듯 몇 푼까지 뜯어낸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통 도덕 표준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전통의 도덕 표준을 더 왜곡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상대방에게 배상하면서 스스로 도량이 넓다고 주장한다. 오늘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몇 푼만 주어도 그만이었다고 한다! 도덕 표준을 또다시 왜곡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꽈배기를 꼬는 것과 같다. 심지어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정상’이며,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의 도덕 표준이 어떤 정도로 왜곡됐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의 시각에서 수련인은 도덕 표준이 일반인보다 높고,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한다. 수련인은 이런 일을 만나면 상대를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업력을 소멸하고 제고할 기회를 준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아가 자발적으로 상대에게 진상을 알려 상대방을 구도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주변의 수많은 수련생이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이런 왜곡된 당 문화의 사유 방식으로 수련 중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몇 년 전, C 수련생이 외지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수련에 누락이 있어 사악에 틈을 타게 됐고, 자료를 배포하던 수련생들이 납치당했다. 일부 수련생은 이 소식을 듣고 C 수련생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이 모든 것이 그녀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C 수련생에게 미루었다. 나중에 사부님의 가지로, 수련생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해 그 수련생들을 구해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C 수련생을 원망하면서 다시는 그녀와 협력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수련생은 처음부터 C 수련생을 사람의 감정으로 보다가 이번 일이 발생하자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가는 곳마다 C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들춰내며 이야기해 정체(整體)적인 수련 환경을 교란했다.

우리 생각해 보자. 만약 C 수련생이 박해가 일어날 줄 알았더라면 수련생들을 이끌고 박해당하러 갔겠는가? 그녀는 중생을 구도하려 한 것이 아닌가? 마치 승용차를 운전한 그 사람처럼 고의로 사람을 쳤겠는가? 그런데도 다른 수련생이 C 수련생의 책임을 찾는다면 그의 표준은 곧 현재의 일반인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불평을 계속하고, 그녀와 협력하지 않겠다며 가는 곳마다 C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했다. 이런 사유가 바로 왜곡된 사유가 아닐까? 수련인에게 나타난 문제는 모두 자신에게 원인이 있으므로 밖을 향해 찾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극단적인 당 문화의 수법을 동원해 왕래를 끊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수련생 사이의 관계도 왜곡해 흉금을 터놓을 수 없고, 모두 뒷말하고, 여러 가지로 다른 사람을 막는데, 그래도 자신은 아주 수준이 높다고 여긴다. 이런 왜곡된 사유는 대법제자가 품고 있는 거리낌 없고, 단도직입적이고, 자비롭고, 솔직한 사유 방식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당 문화로 형성된 이런 왜곡된 사유는 우리의 제고와 정체 형성과 중생 구도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

나는 늘 한 가지 상황을 보는데, 두 수련생에게 모순이 발생했을 때 어떤 수련생은 마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에 다른 수련생에게는 자신이 수련하기 때문에 그녀와 식견이 다르다며, 만약 수련하지 않고 이런 대접을 받았더라면 용서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또 자신이 표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번의 관을 넘겼다고 말한다.

우리 생각해 보자. 수련인으로서 모순과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2] 애초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태가 높아서 상대방을 용서했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심지어 상대방에게 배상하면서 스스로 도량이 넓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무슨 다른 점이 있겠는가?

나는 늘 내가 사부님과 법을 아주 공경한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단지 ‘밍후이 주간’을 포함한 대법 관련 자료, 물품 등을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사악이 나와 함께 법공부하는 수련생 몇 명을 방에 가두었는데, 다른 수련생의 대법 책은 모두 사악에 압수당했지만, 나의 대법 책은 발견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나는 곧 내가 사부님과 법을 몹시 공경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며칠 전, 나는 법공부를 하면서 나의 이런 이른바 ‘사부님과 법에 대한 공경’이 단지 표면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법공부 중에 이런 구절이 보였다. “우리 많은 사람이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절을 하고 향을 피워 부처님께 경배하며, 마음속으로 좀 경건하기만 하면 공이 자랄 것이다.’ 그것은 다 가소롭다고 나는 말한다. 진정한 연공(煉功)은 전적으로 자신에 의거해 수련해야 하며, 무엇을 구해도 다 소용이 없다. 부처에게 빌지 않고 향을 피우지 않아도, 진정하게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수련하면, 그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특별히 기뻐한다.”[1]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느꼈다.

나는 수련인으로서 진정하게 ‘사부님과 법을 공경’한다는 것은 바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자신을 닦는 것임을 깨달았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겉으로 얼마나 경건하고 정성스럽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가짜이며, 모두 틀림없이 자신의 목적을 안으로 숨기는 것이며, 사실상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대법 속에서 자신을 닦고, 갈수록 순정해질 때라야만 마음속으로부터 대법을 이해할 수 있고, 진정하게 내심에서 우러나온 ‘사부님과 법에 대한 공경’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당문화의 왜곡된 사유는 중국 수련생 속에 아주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사부님께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설법을 통해 이 문제를 언급하셨다. 이런 당 문화의 사유를 지닌 채 법공부를 하면 법을 이해할 수 없고, 스스로 제고할 수 없다. 이런 당 문화의 사유를 품고 진상을 알리고, 세인에게 ‘삼퇴’를 권한다면 그 효과는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다.

당 문화로 조성된 왜곡된 사유는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이를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에서 약간의 얕은 인식을 말했을 뿐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께 시정을 구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원문발표: 2020318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3/18/4026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