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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보살핌으로 한 고비, 한 난을 넘었다

글/ 산둥(山東)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과 사악한 중국공산당은 전국적으로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를 납치,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7월 22일 중국공산당의 언론매체가 돌아가면서 파룬궁을 모욕하며 거짓을 보도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공산당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한 차례 겁난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모함을 당하셨는데, 세인들은 그 거짓 보도에 모두 속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를 반복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하고 있을 것이다”[1], “당신들은 늘 나에게 위로 이끌게만 하고 당신들 스스로 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법을 명시적으로 말해야만 당신들은 비로소 움직이며,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런 행위를 수련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후 9시가 넘어서 남편에게 “내일 아침 나는 또 바닷가에 가서 연공 할 거예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죽으려고 그러는가!”라고 부정적인 대꾸를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대법이 모함과 비방을 당하고 있고 우리 사부님께서 터무니없는 억울함을 당하고 계세요. 앞으로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지고 곤란해진다고 해도 나는 영원히 사부님과 함께 있을 거예요.”

이튿날 새벽 평소와 같이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을 향해 걸어가 보니 이미 6~7명 무장경찰이 그곳 연공장을 지키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둘러싸며 “뭣 하러 왔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연공하러 왔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어제저녁 TV를 못 봤어요?” 내가 봤다고 하자, 그들은 파룬궁이 중난하이(中南海)를 공격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것은 공격이 아니며, 톈진(天津)공안국이 불법적으로 40여 명 파룬궁 수련자들을 납치해서 일어난 일이에요. 톈진 경찰이 베이징(北京) 당국의 지시로 납치한 것이기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 당국을 방문해 납치된 사람들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무슨 중난하이를 공격했다는 말입니까?” 그때 경찰차 한 대가 내 앞에서 멈추더니 키 큰 경찰이 내려와 나에게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상사 같은 한 경찰이 그 키 큰 경찰에게 “그냥 가요. 내가 처리할게요.”라며 만류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선량한 사람 같은데 앞으로 대법 수련자를 보면 사정을 좀 봐주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한테 좋을 거예요.”라고 말해주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의 거주지 주소, 전화번호, 이름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늘 공안국, 파출소, 가도 주민위원회 등등의 기관원들로부터 감시당하고 소란을 피우는 주요 ‘주의할 인물’이 되었습니다.

1999년 초겨울과 2000년 여름에 대법의 공정한 평가를 요청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불법으로 납치되었지만, 함께 감금당한 30여 명의 수련생을 위해 나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용감하게 법을 수호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날 나는 시 공안국을 방문해 법의 보호를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출발 전날 밤 모든 집안일은 며느리에게 맡기고, 남편에게 쓴 편지를 남편의 베개 밑에 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서 눈꽃이 날려 좀 슬프고 괴로웠지만 바로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시 공안국 건물이 산언덕에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음침한 공포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건물 앞으로 가까이 갔을 때 두 줄이 쳐진 경찰 차량 20~30대가 정렬해 있었습니다. 순간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면서 맹렬하게 목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모모, 당신은 무엇이 두려운가? 두렵다면 돌아가고 두렵지 않다면 가슴을 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거라.”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져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경찰에게 납치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문 입구에 경비를 서는 경찰에게 “국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국장은 회의에 참석하러 갔으니 민원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민원실에서는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국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라며 12시까지 기다렸지만, 국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경비가 말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미리 써 온 서신을 그 경비 경찰에게 맡기면서 “오후에라도 국장이 오면 꼭 직접 국장에게 전해달라.”고 말한 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 안에 다 있어요.”하고 당부했습니다.

공안국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파출소의 위치를 기억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진상편지를 써서 파출소에 발송했습니다. 후에 그들이 나의 진상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01년 1월 3일 현지 파출소 왕(王) 씨 소장이 5~6명 경찰을 대동하고 집에 들이닥쳐 가택을 수색하겠다며 서명을 요구해서 응하지 않자, 왕 씨 소장은 손을 흔들고 화를 내며 “서명하지 않아도 수색하라!”고 고함을 치며 수하에게 지시하여 방 3개 등 집안을 수색하면서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후 현금 800위안, 아들 결혼식 촬영 비디오 등 다수의 금품을 강탈했으며. 동시에 나도 납치되어 당일로 구치소에 감금되었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던 며느리는 나의 석방을 위해 시아버지와 함께 온갖 위협을 무릅쓰고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유치장을 찾아다녔습니다. 남편은 그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150위안을 강탈당했지만 나는 5일 후 풀려났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강탈당한 금품을 찾아오라고 했고 남편이 파출소에 찾아갔을 때 왕 소장은 여러 경찰에게 “당신들 중 누가 비디오를 봤는가?”라고 물은 후, 남편에게 “당신 마누라는 파룬궁을 연마해서 정신이 멍청해졌는데 그 말을 믿어요?”라고 딴청을 부렸습니다. 남편이 여러 번 찾아갔지만, 경찰들은 그런 물건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관련 물품 세목을 쓴 명세서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명세서는 아직도 있습니다.

2003년 여름 어느 날 시내 파출소에서 2명의 경찰이 와서 “상부로부터 당신에게 5천 위안을 소지하고 지난(濟南) 학습반에 참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으니 꼭 가야 해요. 당신은 명부상에 주의할 인물로 되어 있으니 상부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당신에게는 결정권이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서 상사에게 보고하세요. 나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누가 당신에게 그렇게 지시했나요? 그 지시한 사람에게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하세요. 돌아가서 내가 말한 대로 그대로 보고하세요.” 그런 후 남편과 아들에게 “파룬궁과 관련해서 또는 나를 찾는데 서명해달라고 하면 절대 서명하면 안 돼요! 다시는 그들에게 돈을 줄 수 없어요. 그들보고 직접 나를 찾으라고 하세요. 당신들과 관계없는 일이에요.”하고 일러두었습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문 앞에 있던 쓰레기통의 위치가 바뀐 것을 보고 거리청소부에게 물어보니, 시내 파출소에서 옮겼다고 하면서 이곳에 초소를 지으려고 모래까지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와 우리 집에 오는 수련생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곧바로 발정념으로 사악의 일체 배치를 해체하자, 뒤이어 심한 폭우가 내려 모래가 전부 떠내려갔습니다. 그 후 다시는 어떤 행동이나 조치도 없었습니다. 그 사악한 계획이 완전히 파괴된 것입니다.

2008년 7월 주택가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다가 악인에게 신고당해 파출소로 납치되어 감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길에서 3명의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 원래 있던 병이 모두 사라졌어요.”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국가보안국 부대장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파룬궁을 연마해서 간 질환에 걸렸다고 할 것이요.”하고 역으로 대꾸했다. 나는 그의 머리를 만져보며 “당신은 오늘 머리에 열이 있나요. 아니면 술을 마셨나요. 왜 엉뚱한 소리만 하세요. 나는 분명히 당신에게 사실을 알려줬는데 당신은 오히려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있네요. 당신은 알고 있나요.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꾸며낸 것이어요. 당신은 정말 원숭이처럼 공산당에게 놀아났군요.” 하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당신은 욕을 하네요.”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서 “욕 안 했어요.” 나는 갑자기 원숭이처럼 놀아났다는 비유가 생각나서 “정말 미안해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원숭이에 비유하겠어요.”하고 사과하자, 그는 웃으면서 “오, 이 파룬궁(수련생)은 괜찮구먼, 잘못을 인정할 줄 아네.”라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지만 잘못할 때도 있어요. 잘못했으면 고쳐야죠.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어요. 일깨워줘서 감사해요.”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유치장에 갇혔을 때는 그들에게 어떤 협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으라고 해도, 나는 죄인이 아니니 서명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유쾌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이 상사에게 보고하자, 서명하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심문하면서 때리려 할 때 발정념 했더니 그들은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이 나를 때리면 나는 아프지 않을 것이지만, 오히려 당신이 아플 것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1개월 뒤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국 대장은 남편에게서 1천 위안(한화 약 17만 원)을 강탈해 갔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당당하게 국가보안대대에 가서 강탈해 간 돈의 반환을 요구하자, 돈은 이미 상부에 송부되어 없다고 해서 영수증만 발급받아왔습니다.

2013년 9월 시장에서 진상을 알릴 때 또 악인의 신고로 납치되어 국가보안대장에 의해 나는 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검사해 줄 것이니 만약 병이 없으면 우리가 돈을 내고, 병이 있으면 당신이 돈을 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정의롭고 엄숙하게 “나는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요. 나는 연공해서 아무 병도 없어요.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당연히 당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여러 번 진상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일어나는 이해관계를 알려주면서 자신과 가족들에게 밝은 미래의 길을 선택하라고 알려줬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정정당당하게 사람을 구하는 정법의 길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20여 년간의 온갖 시련 속에서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한고비 한 난을 걸어왔습니다. 사악에게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사악에게 보증한 적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전부 사부님과 중생에게 맡겼습니다. 앞으로의 길에서도 오로지 정진 또 정진하고 수련 초기의 상태를 되찾아 서약을 실천하고, 사존의 자비로운 고도의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원문발표: 202014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4/3973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