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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진수(眞修) 제자가 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었는데 그 당시 ‘전법륜’을 한 번만 읽었을 뿐이고 전부 다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 특별히 큰 변화가 있었고 무척 깊었는데 그 하나는 바로 탐욕스러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자신의 사무실 전화로 개인적인 전화를 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큰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더는 남편의 단점을 보지 않는 것이다. 원래 그의 어디를 보나 모두 눈에 거슬렸는데 ‘전법륜’을 보고 난 후 아주 오랜 시간 상화(祥和)하고 자비로운 에너지가 나의 내심에 충만해 그를 깔보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나 구세력은 나에게 사악한 한 세트를 배치하여 내가 일찍이 대법에서 이탈하게 했는데 아래에 내가 다시 대법에 돌아오고 구세력이 배치를 타파한 역정을 교류하고자 한다. 법에 입각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회귀의 길에 다시 올라서 대법 인연을 다시 잇다

구세력의 배치로(그 당시는 구세력의 배치를 알지 못하고 후에 깨달음) 법을 얻어서 얼마 안 되어서 책을 볼 수 없었는데 사부님 설법 녹화영상도 보지 않았고 연공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마치 어떠한 것이 나를 막고 있었다. 마음은 항상 꽉 막힌 것 같았고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정진요지’ 읽을 때 어찌 이렇게 좋았는지는 기억나지만,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여 법을 얻지 못했고 구세력에 의해 막혀 있었다. 수련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불도신(佛道神)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몰랐고 점차 수련의 환경을 이탈했다. 1999년 7·20 때 기본적으로 대법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대법의 뿌리는 오히려 나의 마음속에 박혔고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그런 것은 지금까지 기억이 새롭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나는 여전히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리고 있었다. 내가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부 업무추진 비용을 내가 관리하고 있었지만, 회사에서 규정한 우리에게 분배한 차 기름값, 차량 유지비, 기사 월급은 자신의 월급에서 나갔다. 대다수 사장은 자신의 돈으로 여겨서 사용하여 여분이 없었다. 우리 팀 업무 실적이 가장 좋고 팀원들 보너스가 높았으며 상품 품질도 가장 우수했고 여분도 가장 많았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날 때 대략 2002년이었는데 남은 금액이 6만 위안이었다. 그 당시는 또 진짜로 적은 비용이 아니었다. 비록 그 당시 이미 대법에서 몇 년간 이탈해 있었지만, 대법이 나에게 준 영향은 너무나 깊었고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며 내심에서 조금의 파문이 없었다.

직무 승진으로 사회 큰 조류의 오염으로 대법을 이탈한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고 점차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머리는 온통 명리색기정(名利色氣情)이었다. 연 수입은 이십몇 위안이었고 평소에 개인, 가정의 지출도 회사 돈으로 하면서 한가하면 쇼핑몰에 가서 옷을 구매하고 돈을 마음대로 썼는데 아주 큰 업을 지었다. 다행히 내심 깊은 곳에서는 진귀한 일념이 여전히 묻혀 있었는데 바로 파룬따파가 좋다였다.

비록 직무가 높아지고 수입도 많아졌지만 내심은 갈수록 미혹되고 즐거움이 없었으며 흐리멍덩했다. 업무와 생활에 흥미가 없었는데 사람들은 흠모하지만, 자신은 다소 반감이 있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수시로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아주 자아적인 사람이라 어떠한 사람도 근본적으로 나를 바꿀 수 없고 이생에 오로지 파룬따파만이 나를 바꿀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한 점의 선념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에게 다시 법 얻을 기연을 주셨다.

2005년 9월 말,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방학해서 아이를 마중 나갔는데 길에서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의 오른쪽 손이 펴지지 않아요. 만약 힘을 주면 손이 떨려요.” 그 당시 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감기 걸려서 열이 나거나 외상이면 문제가 없는데 이 고질병은 무서운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현지 병원에서 병명을 알지 못해서 베이징의 큰 병원에 갔다. 초진에서는 신경염이라고 진단했고 입원해서 호르몬 치료할 것을 건의했다. 그 당시 나는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치료 효과를 보장할 수 없었는데 아이를 망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치료를 보류하고 매일 수입 주사를 맞았으며, 또 아이가 학교 다니는 것에 영향 주지 않았다. 동시에 나는 대법을 생각했고 내심 깊은 곳에서는 오로지 대법만이 아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대법 책을 찾았고 아이와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법공부하고 연공했고 수시로 열이 났지만, 일요일 혹은 월요일이면 열이 없어져서 학교 다니는 것에 영향이 없었다. 다시 검사하지 않았고 지금 아이는 이미 해외에서 연구생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순조롭게 일자리도 찾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히 행복한 가정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존께서 배치하시어 나를 도와 수련생을 찾아주시다

갓 수련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몰랐고 연공 동작도 할 줄 몰랐으며 책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기에 이미 다른 지역에 가서 일하였기에 내가 아는 수련생이 한 명도 없어서 아주 조급했으며 수련생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최후에 나에게 대법을 배우라고 소개해준 그 수련생이 만약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수련생은 박해로 인해 이미 여러 해 동안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니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갑자기 어느 날 그가 나의 앞에 나타났는데 아울러 우리 도시에 정착하기로 했고 또 우리 작은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모든 대법 서적을 얻었고 나의 수련의 길을 시작했다. 아울러 남편도 부지불식간에 나를 따라서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큰 난을 막아주셨고 빚진 목숨을 갚다

수련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으면 진짜로 너무나 위험했다. 빚을 쫓아온 이, 명을 가져가려는 이. 속인 사회의 대염색으로 독의 오염과 생생세세의 업력의 장애로 교란이 너무나 컸다. 갓 시작해서 나는 저녁 8시 전후에 연공할 때 늘 밖에서 마치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당시 나는 또 ‘자정이 안 되어 이런 소리가 들리는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나쁜 것들이 내가 대법을 배우자 절망해서 통곡하는 것으로 깨달았으나 또한 두렵지 않았다. 후에 수시로 다른 공간의 연공 음악 소리를 들었다.

한번은 주말에 고향 집에 가려고 층계를 내려올 때 나의 마음은 아주 불안한 것이 마치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떠났다. 이틀이 지나서 나와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자 무척 심한 가스 냄새가 확 났다. 그 당시 또 불을 켜면 안 되는 것을 몰랐는데 그렇지 않으면 폭발과 화재를 일으킬 수 있었다. 내가 불을 켜고 주방을 보니 원래 집을 떠나면서 가스를 끄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는 이틀 동안 탔다. 비록 아주 작은 불씨였지만 여전히 피어 있었다. 나는 신속하게 밸브를 잠갔고 남편은 창문을 열고 불을 껐다. 우리는 집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도 집주변에 여전히 아주 가스 냄새가 많이 났다. 지금도 생각하기만 하면 여전히 두려웠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이 큰 난을 막아주셨다.

또 한번은 내가 고향 집에 돌아가서 수련을 갓 시작했을 때 남편은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하지 않았다. 점심에 아주 많은 술을 마셨고 오후 5시가 되어서 나를 데리러 왔다. 차에 오르자 남편 몸에서 아주 강한 술 냄새가 났고 그 당시 몹시 화가 나서 원망의 일념이 생겼다. 마시고 싶으면 마셔라. 상관하지 않겠다. 그를 위해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를 대신해서 차를 운전하겠다는 생각을 못 하고 화만 냈다. 길에는 차가 매우 많았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길을 가로질러 건넜다. 남편은 급정거를 미처 하지 못해 단번에 그녀를 들이받아 그녀는 아주 멀리 떨어졌고, 그 당시 우리는 모두 놀라서 멍해졌다. 바로 신고하고 응급차를 불렀다. 보험회사에서 처리하기 시작했고 마음씨 좋은 행인들은 다친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서 응급치료받게 했다.

나는 우리가 대법 제자임을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은 보험회사도 책임지지 않는다. 비록 그 당시 이미 저녁 6, 7시 되었고 교통경찰과 보험회사에서도 운전자가 술을 마셨다는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 저녁 식사 시간이 아니었기에 운전자가 술 마신 문제를 조사하지 않았다. 점심에 술을 마셨지만 나는 그래도 보험회사에서 배상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배상하든지 간에 우리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한 이렇게 바른 일념으로 사부님께서는 이번 일을 아주 작게 해소해주셨다. 다친 사람은 7곳이 골절되어 대략 한두 달 병원에 입원했다. 약값에 부상자의 간호 비용은 겨우 2만 위안이었고 우리 차의 수리 비용도 2천 위안 정도여서 모두 우리 스스로 감당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부상자의 시어머니도 대법을 수련하는 이여서 조금도 우리에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간호 비용도 아주 적게 요구했고 아무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배상하는 마지막 날 보험회사는 또 우리에게 공지하여 우리가 직접 배상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아쉬운 것은 염려 때문에 보험회사의 사람에게 우리가 왜 배상 처리를 하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구세력은 나에게 사악한 배치를 하여 내가 법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수시로 사념(邪念)이 나타나게 했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고달팠으나 방법이 없었다. 나는 법공부 연공을 견지했고 대법 사이트 수련생 교류문장을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교란이 아주 컸지만 나는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단호히 승인하지 않았고 법공부를 통해 수련생 교류문장을 보면서 일정한 개선이 있었다.

최근에 와서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홍음5’를 통해서 정념으로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을 더욱 명확히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승인하지 않으면 모두 난잡한 귀혼(鬼魂)이나니”[1] 나는 모든 나에 대한 교란에 대해 단번에 알게 되었다. 수련생에 대한 교란 박해, 중생에 대한 박해, 공검법사(公檢法司) 인원에 대한 조종 모두가 난잡한 귀혼이라 반드시 철저히 해체해야 했다. 하여 나는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어 일체 난잡한 귀혼을 해체했다. 집에서, 길을 가는 중에서 모두 강대한 정념을 내보냈다. 전에 발정념은 마치 목표가 없는 것 같았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사악이 어디에나 있음을 감수했다. 정념은 수시로 내보내야 한다. 지금 교란이 선명하게 적어진 것을 느낀다.

대법에 돌아온 지 이미 14년이 되었고 나는 온몸에 업력이 가득하고 진정한 자신을 잃어 사상 표준이 지옥 이하 수준에 떨어진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점차 속인 경지에서 걸어 나오는 대법제자로 환골탈태했다. 대법의 세례가 없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가 없었다면 절대로 오늘날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나 자신에게 아직 아주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아직도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으며 사부님의 요구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한 수련생이 교류문장에서 말했는데 집착에 대해 생사를 내려놓듯이 그것을 제거했다고 했다. 역시 이렇게 집착이 죽지 않으면 집착은 우리를 죽게 할 수 있고 우리의 수련을 한순간에 망치게 하여 원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에게 무사무아로 중생을 구도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집착은 똑같이 모두 난잡한 귀혼이다. 지금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나는 일 속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잘할 것이며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것이고 정법의 최후 시각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걸어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5-우주 망나니 며칠이나 더 설쳐 댈쏘냐’

 

원문발표: 2020년 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ah/articles/2020/1/7/3986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