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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잊을 수 없는 경험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지난 날 학습반에 참가해 사존의 설법을 공손히 들으며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오던 때가 생각난다. 사존의 홍대한 자비와 높은 법리, 넓은 흉금은 늘 나를 감화시켰다.

건강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사존을 뵙다

이웃의 리 선생은 퇴직 간부였다. 1993년 하반기 어느 날, 리 선생이 넓은 복도에서 기공을 연마했는데,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며칠 후 리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당신도 우리를 따라 연공해 보세요. 이 공은 정말 좋아요. 파룬궁이라 하고, 신체 건강에 정말 확실한 효과가 있어요. 내가 보니 당신은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는데, 당신도 한번 해 보세요.”

당시 나는 경추가 아팠고, 병이 재발하면 밤낮으로 하루 종일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뜨면 천지가 빙빙 돌았다. 요추도 아팠는데, 아프기 시작하면 2~3일 동안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류머티즘, 위장병, 부인병 등등, 괜찮은 곳이 거의 없었다. 곳곳으로 의사를 찾아 다녀도 낫지 않았고, 약과 침으로 연명할 뿐이었다. 나는 1993년 여름휴가를 병원에서 보냈다. 나도 두 가지 기공을 연마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리 선생이 좋은 뜻으로 권하니 그럼, 시험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7시 정각에 리 선생 일행에게 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막 동작을 배우니 느낌이 아주 분명했고, 하품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눈물은 짜디 짠 바닷물과 같았고, 가부좌할 때 두꺼운 패딩을 입었지만, 추워서 덜덜 떨렸다. 어떤 사람이 그건 파룬궁 사부님께서 내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때는 책을 읽기 전이라 나는 파룬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병을 고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보도원이 베이징 건강박람회에 파룬궁 부스가 있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보도원과 함께 부스를 찾아갔다. 도착해 보니 나중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다른 전시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우리 전시장 주위에는 빼곡하게 차 있었다. 세 줄로 섰는데, 첫 줄엔 아침 일찍 오전 번호가 다 나갔고, 둘째 줄은 오후 번호를 받으려고 기다렸으며, 다른 한 줄은 내가 서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1]

사부님의 제자는 나의 병을 고쳐 주었다. 나는 박람회장에서 ‘전법륜’ 책을 모시게 되었고, 사존의 서명을 부탁드렸다. 정오가 다 되어 사람들이 점점 흩어지자 그 보도원이 말했다.“좀 기다리세요. 여기가 좋겠어요.” 그녀는 일을 하러 가버렸다. 내가 몸을 돌리니 사부님께서 십여 미터 밖에서 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사부님의 커다란 신체와 인자하신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가 공백이 되었고, 사부님께 인사를 드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가 된다!

박람회 기간에 나는 운 좋게도 사부님의 보고회에 참가했다. 개회 전에 수많은 사람이 사존께 페넌트 기를 바쳤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아들의 백혈병을 고쳐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는 글이깃발의 양쪽에적힌 것이었다.

한 노인은 단상 위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나는 나았어요! 나는 나았어요!” 그는 기뻐서 고함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듣기로 그는 철도 기관의 모범 노동자인데, 직장암 수술을 두 차례 받고 또다시 재발했다고 한다. 그는 파룬궁을 찾아냈고, 사부님께서 그를 고쳐 주셨다.

사부님께서 오셔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나는 아주 성실하게 듣고 대법을 기초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강의를 마치신 사부님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파룬이 도는 것을 느껴 보라고 하셨다. 어떤 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어떤 이는 찬탄을 하며 대법의 신기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나는 이것이 정말 커다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드시 수련해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톈진에서 열린 사부님의 학습반에 두 차례 참가하다

연말이 되어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리 선생이1월에 톈진에서 파룬따파 학습반이 열린다며, 나에게 갈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갈게요!” 당시 방학까지는 4일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방학 전에 학생들을 위해 처리할 일을 모두 마치고 상사에게 휴가를 신청했다. 상사는 나의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담임이아니므로 흔쾌히 휴가를 승인해 주었다.

우리는 먼저 기차표를 끊었다. 뜻밖에도 떠나기 전날 밤에 내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이 과거에는 열이 나면 류머티즘 때문에 전신이 아프고 살이 모두 아파서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마음만 먹으면 일어날 수 있고 약간 어지러울 뿐이었다. 나는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미리 나의 몸을 정화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텐진에서 어느 대극장의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낮에는 가부좌하여 연공하고, 수련생들로부터 감수와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해 들었고, 저녁에는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다.

학습반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때는 영문도 모르게 들으려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고, 그렇게 비몽사몽 간에 며칠이 지나가 버렸다. ‘전법륜’을 배우고 나서야 사부님께서 머릿속의 병을 제거해 주실 때는 반드시 마취상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몸을 청리해 주시는 과정에서 수련생의 몸에는 온갖 상태가 모두 나타났다. 나는 밤낮으로 끊임없이 코를 풀면서(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때는 제외) 휴지 두 개를 썼다. 사부님께서 나의 몸을 정화해 주신 이후로 나의 몸은 갈수록 좋아져 자전거를 타면 뒤에서 바람이 불어 주는 것 같았고, 계단을 오를 때는 누군가가 밀어주는 것 같았다. 과거에 나는 길을 걷기조차 어려웠으니 마음속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다른 기공을 연마했던 노 수련생이 말했다.“이 공은 보통이 아니에요. 정말 고수를 만났어요!” 그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는데, 학교의 전자 강의실을 이용해 수차례 파룬궁 9일 학습반을 열어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상영했고,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파룬궁 수련을 하게 했다. 나도 그를 도왔는데, 매 기수마다 약 2백 명이 왔고, 많은 사람이 법을 얻었다.

3월에 사부님께서 톈진에서 제2기 학습반을 여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정말 가고 싶었지만, 많은 수업을 팽개치고 학습반에 참가할 수 없었고, 휴가도 내기가 어려웠다. 어느 일요일, 공원에서 연공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큰 기관에서 날마다 직원들을 차에 태워 톈진에 보내 사부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하는데, 빈 자리가 십여 개 남았고, 차비는 하루에 15위안(한화 약 2,600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 즉시 이웃인 리 선생과 함께 등록을 하고 차비를 지불했다. 학습반에 가기 위해 나는 매일 오후 수업을 오전에 끝마쳤고, 오후에는 한 시간만 휴가를 내면 되었다.

우리는 매일 오후 4시 반까지 용딩먼(永定門)으로 달려가 함께 차를 타고 톈진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12시가 되었다. 다음 날에는 예전대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했는데,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니 인생의 의미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수련인이 되는지 더욱 분명해졌다. 나의 세계관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공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는 친히 수련생의 동작을 바로잡아 주셨다.

마지막 이틀은 주말이라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어 우리는 톈진에서 이틀을 묵었다. 강의를 모두 듣고 여관으로 돌아와 가부좌를 하자 사부님께서 나의 천목을 열어 주셨다. 당시 보았던 광경은 지금도 여전히 눈에 선하다.

과거에 나는 웃을 줄 모르는 사람 같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즐겁고 기쁘며, 늘 꿈속에서 웃다가 깨어난다. 아마 내가 일생동안 고생을 너무나 많이 겪어 연공을 하면서 힘든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과거에는 관절염 때문에 책상다리를 하기가 어려웠지만, 처음에 양쪽 다리를 올리고 30분을 견뎠고, 나중에는 45분, 1시간, 나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다른 사람들이 연공을 마치고 떠나도 나는 다른 수련생 한 명과 함께 날마다 두 시간 가부좌를 견지했다. 때로는 아파서 생각이 굳어지는 것 같았지만,“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1]는 법을 생각하면 모두 괜찮아져서 결국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또 여러 차례 큰 병업관을 겪었지만,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으로 넘어왔다.

수련 중에 겪은 신기한 일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연공장에 사람이 갈수록 많아져 우리는 아래층의 공터에서 연공을 했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중단한 적이 없다. 겨울에 눈이 온 후에는 기온이 영하 13, 14도로 내려갔다. 새벽 5시에 하늘이 아직 어두워도 우리는 바닥의 눈을 쓸어내고 방석을 놓고 하던 대로 가부좌하여 연공을 했다. 건물 사이의 바람이 너무나 강해 가끔 몸을 가누기 어려웠지만, 아무도 일찍 떠나지 않았다.그럴수록 얼마나 좋은지, 모두 비학비수하며 누구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모두 함께 법공부를 했다. 우리 집이 있는 복도 양쪽에 두 줄로 자리 잡고 돌아가며 한 단락씩 읽었다. 법공부가 끝나면 다시 각자의 수련 체험을 교류했다. 어떤 이는 가정의 모순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말했고, 어떤 이는 직장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 불의의 재물을 받지 않고 가짜 장부를 만들지 않았는지를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연공 후에 나타난 각 방면의 변화 등등을 말했다.

성이 리 씨인 노 수련생은 과거에 밤마다 화장실을 20여 차례 들락거려 전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연공을 두 달 하고부터는 두 번만 간다고 말했다. 성이 자오 씨인 여자 수련생의 여동생도 대법제자인데,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서 깁스를 했다. 똑같이 다친 다른 환자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깁스를 풀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의사는 부러졌던 곳이 어디인지 못 찾겠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보도원을 맡아서 접촉한 대법제자가 많고 교류할 기회도 많았다. 70세 된 노 보도원이 우리 집에 와서 교류를 했는데, 그녀는 자궁 절제를 한 지 10년이 됐는데, 뜻밖에도 또다시 생리가 왔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연공하는 노 보도원 한 사람은 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어느 날 저녁에 일이 있어 딸네 집으로 갔는데, 공원에서 먼 곳이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녹음기를 들고 공원에 연공을 하러 가려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과 복도에 등도 없어 칠흑같이 어두워 그녀는 생각했다.‘나는 사람들의 연공을 그르칠 수 없으니 기어서라도 내려가야겠다.’ 생각이 스치자 눈앞에 달빛에 비친 비탈길이 나타났고, 그녀가 건물 현관에 도착해 고개를 돌려 보니 뒤쪽은 여전히 깜깜한 계단이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한 번은 그 보도원이 연공을 마치고 류부커우(六部口)의 전봇대 옆을 지나가는데,“쾅”하는 소리가 들렸고, 커다란 손 하나가 자신의 눈을 막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주변에는 온통 유리조각이 널려 있었다. 바로 위쪽에 있던 커다란 전구가 폭발한 것이었다. 창안제(長安街) 거리의 그 전구는 커서 사람이 안을 수도 없는 것이었고, 주변의 사람이 모두 놀라서 멍해졌지만, 그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 할머니가 정말 명이 길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자신을 구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녀는 깨진 유리가 옷을 스쳐 여기저기 실밥이 터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두 곳을 집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대법이 너무나 좋아 나는 많은 친구에게 알려주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 십여 명을 이끌고 연공을 했다. 사람들은 날마다 일찍 학교에 와서 새벽 연공에 참가했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오에 법공부를 했다. 경비원 한 사람은 허베이 선저우 사람인데,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는 그도 연공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먼저 법공부를 하게 했다. 그는 ‘전법륜’ 제1강을 침대 위 공중에 앉아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 년 내내 입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그는월요일에 우리와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마침 금연에 관한 강의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목요일에 법공부를 하러 와서 웃으며 우리에게 말하기를 월요일 법공부를 마치고부터는 담배 피울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몇 십 년 된 골초가 그렇게 쉽게 담배를 끊은 것이었다. 모두들 너무나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며칠 밤낮을 말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2] 현재는 환경이 변해 단체 법공부, 단체 연공 환경이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종 방법을 동원해 소규모로 함께 법공부하고 토론하며, 진상 알리기를 멈춘 적이 없다. 그러나 가끔은 게으른 적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이런 경험들을 하나씩 떠올리면 스스로 정진하는데 격려가 된다.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하여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밍후이왕 2018년‘경축 세계 파룬따파의 날’ 공모문)

 

원문발표: 2018년 5월 13일
문장분류: 온고명금>사부님의 은혜를 회상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5/13/365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