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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부부 수련생, 법을 굳게 믿으며 바르고 순수하니 기적이 나타나다

글/ 산둥 대법제자 수선(修善)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부부는 평범한 농민이다. 예전에 아내는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렸었고 병 치료를 위해 몇십 년이나 의사를 찾아다녔다. 치료비로 헛돈을 아주 많이 썼지만 낫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엄중해졌으며 마흔 몇 살도 안 돼 아내는 앉기도 힘들어졌다.

1996년 가을, 아내는 파룬따파를 얻었다. 보름도 안 돼 모든 질병이 기적처럼 사라졌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농사일마저 모두 할 수 있게 됐다. 대법의 신기함과 아내의 신체가 완전히 변한 것을 직접 목격한 나는 1998년 자연스레 수련을 시작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나는 쟁투심과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이 아주 강해 늘 자신이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했다. 게다가 지금은 사회 도덕이 나빠졌기에 평소에 늘 남을 경계했고 문을 나설 때는 대부분 호신용 칼을 지니고 다녔는데 가끔은 두 자루를 지니고 다녔다. 늘 어떻게 남과 싸우고, 어떻게 해야 남한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수련 후,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행동하고 이익 앞에서도 남과 다투지 않았으며 남을 잘 대해주었다. 모순 앞에서도 참을 줄 알게 됐는데 모순은 자신이 예전에 빚진 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안정됐다.

1999년 7월 20일 후, 사악한 당은 천지를 뒤덮을 듯한 기세로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했다. 나와 아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법을 수호하며 박해를 부정했다.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나누어주며, 진상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우리의 주요 방식이었다. 비록 수많은 어려움과 사악한 시련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호로 모두 지나왔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은혜를 표현하기 위해 법회의 기회를 빌려 수련 중 겪은 몇 가지 이야기를 써내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적합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옥수수밭이 아내가 위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다

여러 번 베이징에 가서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했기에 우리 부부는 현지 사악이 박해하는 주요 인사가 됐고 몇 번이나 불법적인 감금을 당했다.

2002년 늦가을의 어느 날 점심, 아내는 우리 집 농지에서 옥수수 그루터기를 거두고 있었다. 바삐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불렀는데 알고 보니 우리 마을 간부였다. 구(區)에서 파룬궁 (말살) 담당책임자 40여 명이 이미 마을에 왔다고 하면서 아내에게 반드시 마을 위원회에 참석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말하기를 그들에게 협조하라고 했다. 아내는 정중하게 말했다. “내가 연공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데는 잘못이 없어요. 당신을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강박한다면 마을 위원회에서 부딪쳐 죽더라도 절대 전향(폭력과 회유로 파룬궁수련생이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압하는 것)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 가족들은 당신을 찾아가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겠죠.”

마을 간부는 아내의 확고함에 놀랐고 태도가 누그러졌다. 아내에게 “빨리 도망치세요. 그들이 곧 당신을 붙잡으러 올 겁니다. 큰길로 도망치지 말고 얼른 옥수수밭으로 도망치세요.”라고 말했다. “오늘 당신이 나를 떠나갈 수 있게 했기에 큰 덕을 쌓았습니다. 반드시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겁니다!”라고 아내는 말했다.

자전거를 밀고 떠나려 했지만 금방 가을걷이를 마쳤기에 사면이 한눈에 다 보이는 개활지(開闊地)였다. 아주 작은 물건도 멀리서 똑똑히 보였는데 하물며 이렇게 큰 사람은 더욱 그랬다. 남쪽에 수확하지 않은 옥수수밭이 한 뙈기 있었기에 남쪽으로 가야만 했다. 동서 방향은 모두 대로이고 북쪽이 우리 마을이었는데 옥수수밭은 공교롭게도 동서 방향으로 재배한 밭고랑이었다. 빽빽하고 무성한 옥수수잎 때문에 남북방향으로는 거의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매우 난처하여 다급하게 “사부님, 저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깜짝 놀랄 기적이 나타났다. 빽빽이 세워진 옥수숫대가 ‘쏴’ 하면서 즉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졌고 그녀를 위해 남북방향으로 통하는 반 미터 너비의 작은 길을 내주었다. 그래서 신속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얼마만큼 신사신법하면 대법의 신기함도 그만큼 나타났다.

누가 나를 때리면 그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다

아내가 핍박 때문에 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지 ‘610’의 지시를 받은 파출소 경찰이 우리 집 담을 넘어들어와 나를 파출소로 납치해갔다. 동시에 사부님 법상과 대법서적, 그리고 진상자료를 빼앗아갔다.

내가 그들의 불법적인 요구에 전혀 협조하지 않자 한 경찰(그는 대대장이라 불렸다)이 흉악하고 잔인하게 나를 두들겨 팼다. 한쪽 발로 나의 태양혈을 밟아 나를 기절시키기도 했다. 깨어나 보니 4, 5명의 경찰이 나를 누르고 있었고 손을 등 뒤로 채우고는 유치장에 감금했다.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며 파출소 경찰의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동시에 왜 사악이 경찰을 조종해 나를 박해하게 됐는지 안으로 찾아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대법을 배웠기에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대법과 사부님을 보호 우산(保護傘)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부님의 보호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순조롭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환희심이 나왔다. 찾은 후 즉시 이런 마음을 제거했다. 이튿날 오전, 그들은 나를 수갑으로 의자에 채우고는 혹독하게 때리면서 괴롭혔다. 대대장은 주먹으로 나의 앞가슴, 어깨, 허벅지, 등을 호되게 때렸고 구두 뒤축으로 발가락, 발등을 밟았으며 구두 앞 뾰쪽한 부분으로 내 종아리를 찼다.

그들이 대법제자에 대해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고 견정한 일념을 내보냈다.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제자다.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시지 않으니 나 역시 승인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이번 박해를 승인하시지 않으니 나도 승인하지 않는다. 악한 경찰을 조종하여 나를 박해하는 사악을 제거하고 경찰의 나에 대한 박해를 경찰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경찰이 감당해야 하고 나는 전혀 감당하지 않겠다.’ 결과 전혀 아프거나 괴롭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때리던 경찰은 괴로워하며 “아이고, 아이고”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

이어 그들은 나를 세뇌반으로 납치했고 11명이 지키면서 ‘전향’ 시키려 했다. 한 사람은 앵무새처럼 남의 말만 따라 하며 파룬궁 수련생의 ‘4.25’ 평화 청원을 비방했다. 나는 평온하게 그에게 말했다. “중난하이는 중앙부처의 지도자가 일을 처리하는 곳입니다. 거기에 군대와 무장 경찰이 있나요?” 그는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계속해 물었다. “무장 경찰이 근무를 설 때 총이 있나요?” 그는 있다고 답했다. “그럼 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는 파룬궁 수련생이 어찌 군대와 무장경찰이 지키고 있는 중난하이를 포위·공격할 수 있나요?” 그는 듣고 나서 생각에 잠긴 채 떠나갔다.

또 한 사람은, 톈안먼 광장에서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 머리를 짓밟는 사진을 가져다 나에게 보여주면서 파룬궁 수련생이 법을 위반했다고 비방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사진에서 누가 사람을 때리나요?” 그는 경찰이라고 했다. “누가 맞고 있나요?” 그는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했다. “법률 규정에 의하면 사람을 때리는 것과 맞는 것, 어느 것이 법을 위반했나요?” 그는 질겁해 하며 말했다. “됐어. 됐어. 이제 됐어.” 그리고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것은 그를 조종하던 사악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한 주 뒤, 나를 감시하던 사람을 잠들라고 발정념한 후 담을 넘어 나왔다.

자료점 이야기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와 아내는 자료점에 오게 됐고 현지의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운송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그 이후 4년이 넘는 힘든 자료점 생활 속에서도 나와 아내는 매일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였고 또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발정념했다. 한 시각도 느슨히 하지 않았으며 아내는 매일 18번 발정념을 했다.

비록 생활이 어려워 간혹 몇 달 내내 호박만 먹기도 했지만(그때 1위안에 호박 5kg을 살 수 있었다) 매일 법 속에 있었기에 생활은 충실했고 마음 상태도 매우 순정했다. 신사신법했기에신기한 일들도 늘 나타났다. 아내는 가부좌할 때 두 번 신체가 공중에 떴는데 매우 강한 힘이 그녀를 위로 밀어 올렸다. 발정념하면서 연화장을 할 때 한 줄기 큰 빛의 기둥이 공중으로 직통하기도 했는데 기둥 주위는 위로 날아오르는 연꽃으로 가득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정념을 확고히 하라고 우리를 고무·격려해주셨다.

사부님의 가지로,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심성과 경지는 승화됐다. 하지만 사악의 교란과 고험(考驗)도 시시각각 우리를 따라다녔는데 나타난 문제를 사람의 관념이 아닌 법리로써 이지적으로 가늠할 때면 모두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를 받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고난 끝에 광명이 나타났다.

집주인은 우리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그때 우리는 한 마을에서 집을 세 얻어 살았다. 집주인은 그 마을 사람이 아니었고 일가 전부가 성(城)에서 살았다. 이 집에는 방이 6개 있었는데 중간을 벽으로 갈라놓아 한쪽에 방이 세 개 있었다. 우리는 서쪽 켠 셋방에서 살았다.

어느 여름 깊은 밤, 우리 부부와 외지에서 온 남자 수련생이 심야 12시 발정념을 한 후 아직 잠들지 않았을 때 갑자기 저쪽 주인집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갈수록 소리가 커졌는데 도둑이 그 집 알루미늄 합금 창문틀을 떼어내는 것 같았다.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외지에서 온 남자 수련생은 우리 집 방문을 두드린 후 의논했다. “이런 정황에 부딪혔으니 수수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담을 넘어 도둑의 범죄를 막으려 했다. 나와 아내는 단호히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이 일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들이 자료점을 향해 온 것으로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 사악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응당 움직이지 말고 먼저 발정념하여 자료점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일체 사악을 해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장시간 발정념을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우리는 협조인 수련생에게 즉시 여기의 모든 설비와 소모품을 가져가라고 했다. 우리가 세낸 이 집은 현지 협조인이 그녀의 형님 명의로 세낸 것이다. 협조인이 집주인에게 그 집이 도둑맞은 일을 알려주자 집주인은 감격하면서 말했다. “당신 형님은 참 좋은 분이네요. 우리 집을 세 맡고 있으면서 집까지 지켜주다니.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훔쳐가도 우리는 몰랐을 것입니다.”

집주인 친척이 공안간부이기에 즉시 경찰을 파견해 현장에 와서 정찰했다. 그들이 동쪽 마당에서 하는 얘기를 나는 똑똑히 들었는데 그들은 세입자를 의심했다. 그래서 서쪽 담을 관찰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서쪽 담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 자랐는데 만약 우리가 기어올랐다면 틀림없이 뚜렷한 흔적이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 담 아래의 양쪽 잡초를 관찰했는데 짓밟은 흔적이 없었고 뒷마당에 가보아도 그 어떤 의심스러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그들은 이 마을에서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젊은이를 몇 명 체포했는데 확실히 그들이 한 짓이었다.

후에 생각해보니 만약 당시 우리가 담을 넘었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연루될 뿐만 아니라 도둑의 친인들도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신분이 폭로되고 자료점도 파괴돼 손실이 너무나 컸을 것이다. 우리가 바르게 했기 때문에 집주인은 우리를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했다.

정정당당하게 겹겹의 포위망을 뚫다

어느 여름밤, 협조인은 자료점 수련생 다섯 명을 불러 호숫가에서 교류하자고 했다. 아내와 내가 걸어서 약속장소에 갔을 때 호숫가에서 바람 쐬며 장난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다른 세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우리가 모인 지 몇 분도 안 돼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누가 우리를 미행하고 고발했는지는 몰라도 승합차 한 대가 앞에 와서 차 안에서 경찰 7, 8명이 달려와 우리를 포위했다. 협조인은 반응이 빨라 즉시 아직 엔진을 끄지 않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갔고 그 두 남자 수련생은 서쪽으로 도망쳤지만, 현장에서 경찰에게 붙잡혔다.

당시 속으로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제자로서 다른 어떠한 배치도 갖지 않겠다. 그 어떤 사악한 생명과 요소도 우리를 박해할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평온하게 입장한 채 발정념하며 되돌아갔다.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었고 매우 순정했는데 마치 이 일체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았다. 에워싸고 구경하던 사람들과 경찰들은 우리의 정념 마당에 억제돼 자진하여 우리 둘에게 길을 터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뭇 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서 입장한 채 정정당당하게 떠나왔다.

빙설 천지에서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다

아내가 (박해를 피해) 집에서 도망칠 때는 추석 무렵이어서 당시 홑겹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때 자료점 수련생들 대부분이 모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기에 다들 생활이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빙설 천지에서도 단 하나밖에 없는 그 홑겹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내가 일이 있어 아내가 시골 수련생에게 자료를 갖다 주게 됐다. 물방울이 떨어져 얼음이 되는 혹한에 홑겹 신발은 마치 신지 않은 것 같았다. 칼로 에는 듯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때문에 아내는 참기 너무 힘들었다. 사부님의 법, “그때 나는 추위에 대처하는 별도의 방법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추위인가, 네가 나를 춥게 하고, 나를 얼리게 하려 하는가? 내가 너보다 더 차가워져 너를 얼려 버리겠다.’ (뭇사람 웃음, 박수) ‘네가 나를 덥게 한다면 거꾸로 내가 너를 덥게 해서 네가 더워서 견디지 못 하게 하겠다.’”[1]가 생각났다. 즉시 갈래갈래 난류가 온몸에 흘렀는데 발과 모든 신체가 따뜻한 열기에 휩싸여 솜옷, 솜신발을 신은 것보다 더 따뜻했다. 눈물이 눈가에 가득했는데 법에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파룬이 앞에서 길을 이끌어주다

눈 내린 어느 겨울 아침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였고 짙은 안개가 자욱해 가까운 곳도 잘 보이지 않았다. 10여 미터 밖의 물건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으며 온 세계가 온통 새하얗다. 급히 외진 시골에 있는 수련생에게 자료를 가져다주어야 했기에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났다. 그때 머릿속에는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다는 관념이 전혀 없었다. 매우 순정했고 자욱한 짙은 안개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수련생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길을 잃었는데 주위가 온통 뿌옇기에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앞쪽 20m 되는 곳에서 지름이 1m 되는 채색 파룬이 회전하고 있었다. 기뻐하며 파룬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니 과연 모퉁이에 수련생 집이 있었다.

회오리바람으로 길을 돌아가다

어느 날 점심, 들판 오솔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련생에게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갑자기 앞에서 한 갈래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내 앞에서 회전하더니 한 가닥 높은 흙기둥을 말아 올렸다. 곧바로 나를 향해 덮쳤는데 즉시 다른 공간의 사악이, 자료를 가져다주는 것을 교란함을 깨달았다. 바로 발정념 구결을 외웠는데 외우자마자 회오리바람은 순순히 방향을 바꾸고는 내 옆으로 돌아갔다. 나도 순조롭게 자료를 수련생에게 가져다주었다.

수련하면서 신기한 일들이 아직도 수없이 많았다.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방법이 없는데 사부님의 제자로서 앞으로 오직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6년 11월 8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8/3371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