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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하니 매번 유암화명(柳暗花明)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었을 당시 29살이었는데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긴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생활 속에 대면해 고난이 언제쯤 끝날지 고통스러워했고, 일할 때 복잡한 모순에 대면하면 도대체 무엇이 하늘의 이치인지 고생스럽게 사색했다. 난이 왔을 때 바이러스성 뇌염에 걸렸는데도 오래도록 치료하지 못한 3살 된 딸을 안고 하늘을 쳐다보며 누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느냐고 외쳤다…….

대법을 보자 거친 바다의 파도 속을 항해하던 작은 배가 드디어 풍향계를 찾은 듯 다시는 헤매지 않았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심혈을 기울여 위험한 국면을 만회시켜 주시고, 우주를 바로 잡고 인간세상을 구하고 업력 투성이인 제자를 원만(圓滿)의 피안(彼岸)으로 가는 선박에 태워 주셨다. 그 후부터 내 인생은 희망이 생겼다. 삶의 방향이 생겼고 우리 일가족은 대법 중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싹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정진했으며 원망도 후회도 없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했다. 특히 중국대륙 학교의 큰 염색 독에 오염되어 교육하기 힘들었던 딸이 바른 길로 들어선 후 진정으로 무사 선량했고 법광에 푹 빠졌다. 온가족이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야(眞修)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1]라고 가르쳐주셨다.

아래에 20년간의 수련체득을 위대하신 사존께 보고하는 동시에 전 세계 수련생과 나누려 한다.

1, 약속

1996년 정월, 파룬따파가 우리 집에 전해졌다. 당시 부모, 자매들, 고모, 이모 등 많은 친척들이 배우기 시작했지만 무신론의 해를 입은 나는 초범적인 대법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3살 된 딸이 계속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서 바이러스성 뇌염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보름 동안 링거를 맞고 항생제를 바꿨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의사인 수련생은 대법이 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연마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아이를 데리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기 시작했다. 듣다가 아이가 잠들었는데 깨어난 후 믿기지 않게 열이 내렸고 머리도 아파하지 않았으며 깡충깡충 나가서 놀았는데 그때부터 다 나았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법 수련에 들어섰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것이 바로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2. 컨닝하지 않아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다

1997년 말,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향진 관리에 속했는데 성에서는 고시를 통해 상급 주관부서의 수직 관리에 편입시키려 했다. 만약 합격하면 임금, 복지가 원래 부서보다 매우 높지만, 안 되면 향진 정부는 개혁하기 때문에 실업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다들 온갖 궁리를 다해 들어가려고 했다. 시험을 칠 때 시험장의 기율이 엄격하지 않아 적지 않는 사람이 컨닝을 했고, 감독 선생도 시험장을 순시하는 사람에게 들키지만 말라고 했다.

당시 신속하게 답안을 적은 뒤 혼자 채점해봤더니 72점이었다. 속으로 갈등이 생겨 컨닝할까? 컨닝하면 진(眞)이 아니고 대법의 수련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컨닝하지 않으면 이 점수로 합격할 수 있을까? 점수가 높으면 확률이 높은데……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컨닝하느라 바빴다. 갈등하던 중 사부님의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치상 스승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 해도 가져갈 수 없다.” “속인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익 앞에서 모두 다투고 싸운다.”[2]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이 일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확고하게 답안지를 바치고 교문을 나섰다. 매우 많은 사람이 이번 시험이 어렵지 않아서 85점이 안 되면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내 마음은 정말이지 괴로웠다! ‘수련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것은 뻔히 손해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불안했다.

시험 성적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일찌감치 뛰어가 결과를 봤지만 나는 그 어떤 희망도 바라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한번 봤더니 합격자 명단에 뜻밖에 내 이름이 있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우리 부서 6명 중 나만 합격했다.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3. 돈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수월하게 주택 대출금을 다 갚다

2004년 우리 부서에서는 원가로 직원을 위해 큰 면적의 주택을 지어주었다. 당시 임금이 높지 않아서 사실 우리 집을 개선할 조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10여 만 위안의 빚을 졌더니 채무에 대한 압박이 매우 심했다.

지식인인 남편은 우리 모녀가 대법 중 혜택을 본 것을 보았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의 소멸성 탄압에 대면해서도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가지 움직임을 제약한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완강한 의지로 바깥의 모든 풍랑을 막아냈다. 시종 건강한 신체로 낙관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한 동안 내 대법 수련을 막았던 남편은 몰래 ‘전법륜’을 들고 보기 시작했고 대법의 법리는 남편의 귀와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그는 완전히 정복됐고 2005년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섰다. 만성 간염에 시달렸던 남편의 몸은 기적같이 다 나아 예전의 어두웠던 얼굴색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온 집안의 힘든 일을 찾아하며 우울하던 남편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매일 새벽 3시 50분이면 우리 가족이 모두 일어나서 새벽 연공을 했다. 오래 전부터 병가로 입원하던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곤 새로운 과학연구에 투입되어 여러 항목에서 성과를 거뒀다.

당시 자료점이 곳곳에서 피어남에 따라 우리 부부도 마땅히 주변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제공해주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인식했다. 부부가 수련하는 가정은 매우 적으므로 대법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우리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샀고, 기타 경제력이 없는 수련생에게도 컴퓨터를 사 주며 적지 않는 돈을 내놓았다. 평소에 우리는 아껴 먹고 절약해 돈을 모아 빚을 갚아 나갔다. 그런데 생활이 매우 빨리 전환됐다. 남편의 임금이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대폭 올랐고, 보너스도 받으면 단번에 몇 만 위안을 가져왔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매우 빨리 주택 대출금을 다 갚았다. 남편의 병이 다 나았고 대출금도 다 갚았다. 우리 일가족은 더욱 확고하게 신사신법하고 정진하며 착실하게 수련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이쪽의 것이 아니면 저쪽의 것으로, 모두 겪어야 할 고생이 있는바, 바로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기 때문이다. 당신이 수련할 수 있다면, 일체는 아마 모두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수련은 오히려 실재적이고도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3]

4. 신사신법, 갑작스런 악인의 습격을 벗어나다

2004년 봄 어느 날, 수련생과 함께 상가를 따라 길을 걸으며 직접 대면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도 배포했다. 아직 대여섯 개 진상자료가 남았을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악의로 모함해 대여섯 명 경찰이 쫓아왔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본 우리는 문을 나서 차를 타고 떠났다. 우리를 본 경찰차가 따라오면서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며 차를 세우라고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 요청을 하는 한편 남은 진상자료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끼워 넣었다. 기어코 쫓아와 차를 멈추게 한 그들은 우리에게 이름, 직장, 가정주소를 대라고 강요했지만 어떤 정보도 알리지 않았다. 다른 한 무리 경찰이 차량을 한바탕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계속 발정념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로 통지했다. 매우 빨리 대법 진상을 아는 공안국장의 친구가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했다.

5. 딸의 마음이 바르게 되고 길을 바르게 걷자 유암화명

딸은 어릴 적부터 나를 따라 수련했다. 1999년 ‘7.20’ 이전에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장에 따라 다니면서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을 했다. 방학기간에 우리 지역에서는 늘 어린이 대법제자를 모아 법공부와 연공을 했기 때문에 딸은 자신이 어린이 대법제자이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심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99년 ‘7.20’ 이후 박해가 한 걸음 한걸음 확대됨에 따라 이런 활동은 적어졌고 우리도 딸에 대한 요구가 점차 느슨해졌다. 중국 대륙 학교의 이 큰 염색 항아리에서 아이는 점차 이기적이고 놀기 좋아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을 배웠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대한 압력도 점점 커져 딸은 법과 갈수록 멀어졌다. 속인의 방법으로는 아이를 잘 교육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부득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입 시험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참을성 있게 학업에 대한 압박에 대면한 딸을 인도해 법공부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4]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딸에게 전자책을 가지고 학교 가는 길에 ‘홍음’을 하나씩 외우라고 했다. 동창과 모순이 생겼을 때 우리는 수련의 이치로 그 친구를 인도해 너그럽게 대하고 그의 장점을 많이 보라고 했다. 천천히 아이의 마음이 올바르게 됐고 공부하면서 세 가지 일을 했다. 그랬더니 딸의 학업성적이 매우 빠르게 성장해 수능 때는 순조롭게 아주 이상적인 대학에 합격했다. 이후에 수능 전 그 한 단락 심리 변화의 과정을 회상했는데 딸은 “다행히 그때 매일 ‘홍음’을 외웠기 때문에 비로소 그 어려운 시기를 넘겼어요”라고 말했다.

딸의 수련제고 과정을 통해 아이가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은 수련하러 온 것이기에, 나의 집착 때문에 아이의 수련을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됨을 깊이 체득했다. 아이가 말을 잘 안 듣거나 학업 성적이 안 좋아도 부모로서 자신의 심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고 대법으로 아이를 인도해야 한다. 자녀가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었을 때 모든 것은 저절로 풀리는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박대(博大)’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문장발표: 2016년 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0/3238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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