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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고소장에 서명하던 그 순간

글/ 밍더(明德)

[밍후이왕] 두 달 넘게 거세게 밀려드는 장쩌민 고소 물결이 중국대륙과 해외를 휩쓸고 있다.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십만 명 이상의 파룬궁 수련생과 그들 가족이 중국 최고검찰원과 최고법원에 장쩌민 고소장을 발송했다고 한다. 인터넷 봉쇄와 정보 전달의 미숙함을 고려한다면 실제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밍후이왕에 등재된 글만 보더라도 장쩌민 고소장은 한 장 한 장 모두 눈물과 피로 써낸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과 그들 가정이 16년간 겪은 불행은 몇 천 자의 짧은 글에 압축돼 있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슬펐다. 가정을 잃어버린 얼마나 많은 수련생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어린이가 부모의 사랑을 잃고 멸시받고 따돌림 당했을 것인가, 또 자식을 잃은 얼마나 많은 노인이 오갈 데 없는 외롭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고, 심지어 ‘자식을 앞세워 보낸’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우울하게 인생을 마무리했는지 모른다. 또한, 얼마나 많은 청년이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청춘을 허비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간난신고를 겪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거 혹은 현재, 감옥에서 혹형 전향의 고생을 겪으며 1분 1초마다 고통스럽게 시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그들 곁에서 일반인과 다름없어 보이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16년 동안 감당한 고난이 인류 고난의 극한에 다다른 사실을. 하지만 이 불행의 원인은 장쩌민이 파룬궁 수련생들의 굳은 신념과 지조, 선량에 대한 굳은 믿음을 두려워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이 장쩌민 고소장에 서명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내가 서명하려는 그 순간 지금까지 있어 본 적이 없을 만큼 기분이 엄숙해졌다. 어려서부터 내 이름을 얼마나 많이 적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번처럼 글을 적는 게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슬픔과 간난신고가 모두 펜으로 몰려 묵직해졌는지 모른다. 마치 한 획마다 한 부의 무거운 역사를 짊어진 것만 같았다. 16년 동안 박해의 고달픔과 반박해 가운데의 어려움이 이 몇 개 방촌(方寸) 글씨 안에 응집해 있어서 갈아도 갈아 없앨 수 없었다.

박해 초기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을 때의 비장함이 생각났다. 오늘날 장쩌민 고소 물결처럼 수천수만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대법의 억울함을 씻고 바른말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오히려 불법으로 내몰려 베이징 여러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베이징에 다 가두지 못하면 매주 끊임없이 전국 각지로 분류해 보냈다) 나와 같은 감방에 갇힌 수련생들은 매일같이 누군가는 모욕, 폭행을 당했고, 음식물주입, ‘널빤지 치료(板子療)’ 및 각종 다양한 고문을 당해 많은 사람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래도 육신의 고달픔은 가장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마치 사람들이 유대인의 고생을 묘사한 것처럼 제일 고달픈 것은 응당 생명이 누려야 할 일체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었다. 심신의 존엄과 운명이 수시로 독단적인 강제 정권에 의해 마음대로 짓밟히고 유린당하고 박탈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국공산당의 사악은 나치보다 더 잔혹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때부터 고통에 시달리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때부터 감감무소식이 된 많은 사람은 아마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생체장기적출의 ‘원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자유를 갈망하던 날들이 생각났다. 담장 하나가 인간 세상과 지옥의 분계선이었다. 매일 저녁 어두컴컴한 감방 안에서 창문 밖 먼 곳 네온등 아래에서 북적거리는 세계를 바라보며, 광명과 자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쌍의 날개가 생겨 날아가고 싶었다. 또한, 타향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초라한 셋집에서 늘 고독하게 창밖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감히 사유의 고삐를 늦추지 못했던 것은, 그 순간 가정이 파괴된 고통과 고향을 등지고 떠난 처량함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였다. 되도록 생명의 모든 의지로 얻어낸 자유로운 상태를 생각하려했고, 이런 얻기 어려운 행복감으로 현실의 온갖 근심을 막아내려 했다.

나는 이처럼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통해 심신의 자유와 한 생명에 대한 의의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의 자유를 박탈한 사악한 자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그야말로 마귀의 화신임을 똑똑하게 보아냈다. 장쩌민은 국가의 모든 기구를 통제해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 감금, 혹형 세뇌를 했고, 가장 잔혹하고 비열한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라고 협박했다. 무수한 인간 참사를 빚어냈고 심지어 장기를 산채로 적출하여 폭리를 얻는 이들은 치가 떨리는 죄행까지 추진했다. 이는 진정한 마귀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장쩌민을 심판대로 보내 그가 양심, 도의와 인간 법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내가 장쩌민 고소장에 신중하게 나의 이름을 적는 것은 그때, 심지어 더욱 오래전의 서약을 실현하는 것이고, 파룬궁 박해 원흉인 장쩌민을 정의의 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그 시각 나는 이미 수천수만의 온갖 고생을 겪은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장쩌민의 모든 반(反) 우주, 반(反) 인류범죄 행위에 대한 심판을 완성한 것이다. 또한, 하늘땅에서 제일 튼튼한 대못이 되어 그를 역사의 치욕스런 기둥에 박아 사람들이 영원히 혐오하게 할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박해당한 그 날부터 극심한 고통을 감당하는 상황에서도 반 박해에 게으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본 것은 혈육의 몸으로 강권 정부와 대응하는 모습이지만, 이는 천지간에 정의와 사악의 힘겨룸이었다. 더구나 파룬궁 수련생들의 선량과 감당은 세인들의 양심을 일깨우려는 자비임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마귀의 거짓말을 믿고 그것과 한 무리가 되어 사악한 마귀의 순장품이 안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예 억울함을 풀 곳이 없던 것에서 오늘날 사악의 우두머리를 법정에 고소하고, 법으로 제재하기에 이르기까지, 파룬궁 수련생들은 완벽한 반박해 행위로 세인들에게 정의를 바로잡고 인류를 위해 밝은 장래를 마련한 본보기를 세워주었다. 장쩌민이 법정에 서는 그 날, 세인들은 파룬궁 수련생이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할 것이며 그들의 불요불굴의 위대한 반박해 정신에 탄복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6/3130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