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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과 자아는 바르지 못함의 근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한 시기 나는 주위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늘 인자하지 못한 태도가 나타나곤 했다. 때로는 비록 말대꾸는 하지 않고 표면상으로는 화기애애한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수련생이 말하는 이성적인 인식을 인정하지 않고 그가 호언장담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또 늘 왕래하던 몇몇 수련생들과 약간의 쟁론으로 인해 그들과 왕래하기 싫어했고 심지어는 그들을 만나기조차 싫어했다. 나는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느끼게 됐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7.20 이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교류할 때 이렇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때 수련생들이 함께 모이면 모두 교류하는 수련생들의 일부 이성적인 인식을 듣기 좋아했다. 수련생이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에 대해 거의 들추지 않았는데 정말 상서롭고 화목한 정체상태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무슨 문제에 부딪히면 매 사람이 모두 법에서의 인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쟁론도 많아졌다. 마치 매 개인이 모두 자신이 깨달은 것이 옳은 것처럼 생각한다. 이것이 수련의 ‘성숙’이란 말인가?

어느 한번은 몇 몇 수련생이 만나 현지의 한 수련생이 수련생들 중에서 영향이 좋지 않고 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매우 크다는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이런 사람들은 장래 어찌해야 합니까?” 모인 수련생들은 마치 의사가 약 처방을 내듯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일이라고 말했는데 마치 말하는 것이 모두 자신의 인식과 분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결국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수련생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인식과 그들의 인식은 같지 않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만약 나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쟁론 중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상처줄까 두려워(사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상처줄까 봐 두려워서다) 말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의 물건이 나를 원격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옳지 않다. 현상의 실질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의 인식이야 말로 정확하고 비로소 법에 부합된다.” 생명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보이는 이 원격 조종은 당신 표면의 일면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게 조종한다. 심지어 아주 작은 일념, 사람마음, 집착, 명, 이, 정을 포함해 모두 사상 심처의 그 원격 조종이 ‘근원’인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무엇인가? 나는 끝내 보아냈다, 바로 그 ‘자아’인 것이다. 오직 그것이 있기만 하면 표면의 일체가 모두 원격 조종을 당하며 일체는 그것을 에워싸고 돌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시 설법’ 중에서 구 우주의 생명이 정법에 대한 태도를 제기할 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일에 기왕 우리를 포함한다면 당신들이 나에 대해 어찌하려 한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것인가? 나도 무량한 중생이 있으니 나 역시 선택되는 것을 쟁취하겠다고 여긴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보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높은 생명이 어찌 이런 염두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염두가 있는 생명은 그렇게 높은 경지에 있지 말아야 옳다! 생명은 얼마나 높든지 막론하고 그가 ‘자아’요소를 갖고 있기만 한다면 곧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한다. 오직 자아를 철저히 없애고 사(私)가 없어야만 광활하고 무제(無際)하며 성결하고 아름다운 경지에 있을 수 있다.

이점을 깨닫고 나니 내 마음은 단번에 밝아졌다. 발정념할 때 강대한 일념을 가했다. ‘자신의 생명 중 층층의 자아 요소를 철저히 해체한다! 나의 신체로 하여금 가장 표면으로부터 가장 미시적인 곳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진선인(眞善忍) 우주 대법에 동화되어라.’ 그 후 수련생들과 교류시 분쟁이 나타날 때 나는 생각했다. ‘자아를 다투지 말자. 자아에게 그 어떤 시장도 주지 말자. 쟁론이 발생할 때면 수련생의 인식을 자신의 인식에 동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통해 진선인 대법에 동화하게 하자. 수련생이 사오하지만 않으면 모두 각종 경지의 인식인데 무엇을 쟁론할 게 있는가?’ 이전에 일찍이 그 자아가 움직여 관을 넘을 때 늘 표면의 옳고 그름을 찾았다. 사실 다만 표면 현상만 찾아서는 부족한 것으로 심층의 그 자아의 근원을 파내야 한다. 매 일념, 매 하나의 마음, 매 하나의 바르지 못한 표현의 배후에는 모두 천만갈래 그 심층의 자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자아가 있으면 한 생명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자아가 많을수록 그 가치는 더욱 심하게 떨어진다.

내가 느끼건대 가장 어려운 것은 자아를 수련해 버릴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아의 표현을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으로 수련성취 하도록 하라.”[1] 이것이야 말로 수련에서의 진정한 성숙이며 비로소 서약을 더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문장완성: 2013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7/8/2763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