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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문제를 보는 것을 배우자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금년 3월 이래로 현지에서 수십 명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일에 참여한 이유로 붙잡혔는데, 이로부터 현지 수련생에게 여러 정도로 파장과 각종 인식이 나타났다. 일부분은 이에 대해 저촉하는 견해가 생겼는데 붙잡힌 수련생이 잘하지 못해서 엄청난 박해를 가져왔다고 여겼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붙잡힌 수련생이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박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책망, 비난이 비교적 뚜렷했다.

2002년 창춘(長春) 텔레비전 삽입방송 사건을 기억해보면 당시 사건이 발생한 후 창춘 수련생이 대규모로 박해 받은 상황이 나타났다. 당시 나도 삽입방송 사건만 아니라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박해 받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상황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사부님의 경문에 ‘정념으로 문제를 보자’가 발표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문제를 보는 기점에 착오가 있었음을 알게 됐는데 바로 자신도 모르게 사람의 물건을 보호하려 했으며 박해를 두려워하거나 자신이 박해에 연루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여전히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테두리 속에서 기어 다녔던 것이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여 나의 견해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정법 노정이 막바지에 닿은 현재, 최후의 제한된 시간에 이렇게 많은 일이 생겼고, 더욱이 최근 밍후이왕에 거듭 폭로된 각종 문제, 더욱 주요한 것은 사부님 평어의 발표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각성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해를 수련했는데 정념으로 문제를 보는 것을 배웠는가? 이런 일의 발생을 통해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냈는가? 정념으로 정체를 원용했는가? 다른 수련생이 모래인가 아니면 자신의 사람마음이 모래인가? 수련이란 바로 큰 물결이 모래와 자갈을 씻어 내는 것으로서 난(難) 중에서만이 진짜 금을 제련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 모두 사람마음을 폭로하고 사람마음을 버리기 위해서다.

내가 이러한 경지 중에 있게 된 것은 내가 여기건대 어떠한 일의 발생이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역사상 수많은 요소와 금생 개개인 수련의 각종 선택으로 인해 촉성된 것이며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도 올바른 용도로 제자를 제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수련생이 붙잡힌 여부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이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지 여부가 시험에 직면하게 됐는데 사람과 신의 사유를 구별하는 검증에 쓰인다.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수련생이 어떤 형식으로 법을 실증했던 간에 아마 모두 잘못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정념이 강대하고 심태가 순정했는가는 별개의 일이다. 바로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한 가지 했다고 해서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으며, 한 가지 나쁜 일을 했다고 해서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법 실증을 하는 어느 길이든 함부로 부정하지 말아야 하고 또 우리 자신도 전체 진상을 분명히 보아내기는 어렵다.

과정에서 동료 수련생의 쉽게 발견되지 않는 사람마음이 폭로되어 나오는 것도 정상적이다. 관건은 여러분이 제때에 발견하고 바로 잡는가,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갈수록 이성적이고 평온한가, 여러 사람에게 공동 정진하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 법을 실증하는 일을 보다 더 잘할 수 있는가 등 이것이 수련 과정이다. 설령 제때에 발견하지 못했거나 수련생의 선의적인 일깨움을 중시하지 않았거나 자아가 팽창되어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거나 등은 모두 개인수련에서 이성이 부족해 조성된 것으로써 결국 개인수련 문제이므로 엄청난 박해가 발생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대규모 박해가 나타났다면 그럼 개인 문제가 아니고 전체 수련 상태에 편차가 나타나 조성됐을 것이다.

마땅히 있지 말아야 할 상태가 나타났을 때는 반드시 법으로 가늠해야지 표면적인 문제만을 보아서는 안 되며, 문제를 어느 사람 혹은 어느 일에 돌리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 어느 활동에 참여했든지 막론하고 당신이 듣고 본 관련 보도는 모두 당신이 수련해 버려야 할 사람 마음의 요소와 관계있는데 어쩌면 당신이 수련생 가운데서 폭로되지 않은 사람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관련되어 기타 파생되어 나온 사람 마음 아닌가? 더욱 선의적으로 이해하고 정념으로 가지해 주는 자비심을 수련해 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마땅히 자신 이 방면으로부터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찾아야 한다. 자신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숭배하고 묵인하며 휩쓸리고, 좋지 않은 비난이나 사실에 맞지 않는 골목소식을 퍼뜨리며, 심지어는 자기만 옳다면서 독단적으로 동료 수련생을 오해하여 수련생 혹은 정체 환경에 간격이 생기게 한 것은 아닐까.

어느 때부터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 나타났는가? 문제가 나타난 후 우리 자신을 바로 잡았는가?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신불(神佛) 경지의 자비, 관용에 도달했는가? 남을 선의로 이해하고 수시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며, 자신의 매 한 가닥 바르지 못한 부정적인 사상을 틀어잡고 그것들을 부정하고 제거해야만 비로소 갈수록 이지적이고 청성할 수 있는데, 이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수련인의 상태다. 정체적으로 바로 잡으려면 사람마다 바로 잡아야만 정체가 제고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단체로 법공부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며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대법으로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 진정으로 대법에 동화해야 한다. 마난과 고험 중에서 단련해 낸 정념으로, 대법으로 수련해 낸 자비, 평온한 바른 표현으로 법을 실증하며, 사람마다 법 중의 정념으로 자신을 바로 잡고 선의적으로 수련생을 일깨워 주는 이것만이 비로소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수련 가운데서 이성적이고 청성하며 정념이 족하면 사명과 책임감이 증강된다. 나는 자신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달해야할 표준과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고 있으며, 나는 진정으로 사부님의 매우 고심한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식으로 우리를 점오하시어 우리에게 어서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늘 문제와 모순 중 표면적인 문제만 보고 심층 문제는 발견하지 못하며, 제때에 배후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는 여전히 사람 마음으로 수련생을 가늠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수련 문제 아닌가? 자신을 빨리 바로 잡지 않고 여전히 도처로 다니면서 자신이 안으로 찾아보지 않은 인식을 말한다….만약 법에서 인식하지 않는다면 동료 수련생을 영향 주게 되는데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스스로 책임지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때에 나는 사부님께서 정말로 자비롭다는 것을 진실하게 감수했다. 수련을 그렇게 오래 한 수련인을 보노라니 아직도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들의 사람 마음을 보니 가소롭기도 하고 또 마음이 조급하기도 하다”.[가짜 경문을 돌려보는 것이 바로 난법(亂法)이다◎ 사부님 평어] 잘하지 못해 정말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 모두들 “사부님께 걱정을 덜 끼치고 더 많은 기쁨을 드리자”고 말한다. 우리가 오직 잘해야만, 각 경지의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사부님께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고 조사정법을 저애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조사정법’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13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10/2732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