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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쓴 체득

글/ 중국대륙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1993년 정월 삼일 사부님께서 베이징 핵측정기 공장에서 제6기 학습반을 꾸리실 때 운 좋게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제기하신 그 자전거를 타고 지프차와 부딪칠 뻔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이튿날 퇴근하고 일찍 핵측정기 공장 강당에서 사부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다 사부님이 걸어오실 때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의 구명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나의 어깨를 다독이시며 “잘 수련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 오래도록 거기에 서서 사부님의 그 높고 큰 체구를 보았으며 마음은 평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사부님은 일곱째 날 설법을 마치시고 연공을 가르치시려고 준비하셨다. 이때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휘청거리며 강단에 올라가 사부님께 치료를 받으려 했다. 사부님께서는 “네 배 안에 있는 것을 내가 부스러뜨렸으니 너는 빨리 내려가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강단에서 내려오자마자 녹색 물을 토하였다. 이후 사부님은 또 나에게 몇 번 신체를 청리하셨는데 토한 것은 모두 자질구레한 허름한 것들이며 마지막 토한 것은 여과한 술처럼 깨끗한 검은 것이었다.

나는 운동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사당 체육위원회는 전국 제2기 운동회에서 더 많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당시 일본여자 배구단의 훈련방법을 배워 운동량을 늘리라고 했다. 내가 속한 역도팀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일 8시간의 훈련을 한 결과 많은 병 증상이 나타났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허리와 팔꿈치, 무릎 관절과 어깨부위가 상처를 입어 참가할 수 없었다.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자 운동선수는 해체되어 나는 공장으로 돌아왔다. 후에 나는 병 증상이 나타나 두 무릎과 종지뼈(무릎의 관절을 이루고 있는 종지 모양의 뼈)가 나른해지고 팔꿈치와 어깨 관절에는 염증증세가 있었고 허리도 다쳤다. 종지뼈가 나른한 현상은 늘 나타나 집에서 병가를 내어 쉬어도 어깨는 만질 수도 없어 슬픈 나머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도가 공을 연마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렇게 학습반이 끝나지 않았는데 사부님은 내 신체의 모든 질병을 전부 없애 진정으로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감을 체험하게 하셨다. 후에 나는 또 제7기와 제8기 학습반에도 참가했다.

사존님과 대법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나는 공장에서 대법제자의 모습을 체현하며 동료 간의 관계를 원용하여 공장에서 더러운 일과 힘든 일은 앞다투어 하고 다른 사람이 시간 외 근무를 하기 싫어하면 내가 하고 편리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며 매달 모두 임무를 초과 완성하고 이익에서도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아 매년 모두 선진으로 선출되었다.

1997년 연말 나는 퇴직했다. 이듬해 봄 나는 연공장에 가서 단체로 법 공부하고 연공하여 심성제고가 매우 빨랐다. 매 일요일에는 녹음기와 빗자루를 들고 연공장에 나가 수련생과 함께 연공장을 청소한 다음 단체로 홍법하고 연공했다. 그 당시에 우리의 심정은 너무 유쾌했고 가정도 매우 화목했다.

1999년 ‘7.20’ 중공사악의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연공장은 파괴당했으나 우리 연공소조는 여전히 법 공부를 견지했고 나는 스스로 집에서 연공했다. 후에 매일 나가서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고 전단지를 붙여 진상을 알릴 때도 매번 사부님의 보호 하에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2007년 사악이 17대를 열려고 할 때 틈이 있어 환희심이 나타나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고 진상자료를 나누어 줄 때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해 구치소로 갔다. 구치소에서 사악에게 동조하지 않아 이름, 주소, 나이를 말하지 않고 신체검사와 죄수 옷을 입는 것을 따르지 않았으며 감옥규칙을 암기하지 않았다. 한 호실에 있는 범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여 10여 명이 3퇴하고 어떤 사람은 진명으로 3퇴했으며 또 두 사람은 나가면 꼭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했다.

악독한 경찰은 마약죄수를 찾아 나를 감시하게 했다. 나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찬물에 샤워하게 해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사진 찍기 위해 그들은 네명의 범인을 시켜 나를 들게 했다. 나는 일념을 내보내 그들이 나를 들지 못하게 하고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네 사람은 정말 나를 들 수 없어 후에 두 사람이 더 왔으나 들 수 없었다. 악독한 경찰은 안달이 나 또 두 사람을 데려와 나를 받치게 하였고 내가 버티자 그들은 손을 놓아 나는 반공중에서 떨어졌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더욱이 널빤지와 시멘트 페이스트 플라스틱 바닥으로 베이징의 10월 중순은 이미 싸늘한데 또 찬 공기를 가해 범인들도 앉는 것이 쪼그리고 앉았지만 나는 도리어 홑바지에 홑옷을 입고도 서늘한 감을 느끼지 못하고 손발은 그래도 더웠다.

나는 사부님이 그리웠다! 정말 그리웠다! 자백서와 어떠한 사인도 없었기에 사부님의 가지와 수련생들이 밖에서 정념으로 가지 했기에 드디어 2007년 11월 16일 정념으로 마귀 굴에서 뛰쳐나왔다.

사부님은 나를 위해 그렇게 고생하시고 나를 대신해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당하셨다. 사존님의 홍대한 자비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밍후이왕에서 몇 번 응모작품의 기회가 있었고 협조인도 나에게 쓰라고 하여도 자신이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데다 또 쓸 수 없어 나는 다만 견정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응모작품으로 발표된 글에 ‘전법륜’에 언급된 두 수련생의 이야기가 나를 매우 촉동했다.

하나는: “우리가 저번에 길림대학(吉林大學)에서 학습반을 열 때, 한 수련생이 길림대학 정문을 나와서 자전거를 밀고 막 길 가운데까지 갔는데, 승용차 두 대가 단번에 그를 가운데 끼워 넣어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일들에 부닥쳐도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순간 차가 멈췄으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전법륜)

다른 하나는 “또 한 가지는 장춘(長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수련생의 집 옆에서는 건물을 짓고 있었다. 현재 이런 건물은 모두 꽤 높게 짓는데, 그 비계는 모두 두 치 굵기의 철관으로서, 길이가 4미터다. 이 수련생이 집을 나와서 얼마 가지 않아 철관 하나가 그 높은 건물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와 곧장 그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혀 왔다. 큰길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멍해졌다. 그는 말했다: 누가 나를 치는가? 그는 누가 그의 머리를 한번 치는 것으로만 여겼다. 바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머리 위에서 큰 法輪(파룬) 하나가 거기에서 돌고 있는 것이 보였고, 이 철관이 그의 머리를 스치면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끄러져 내려온 후 땅에 박힌 채 넘어가지 않았다.” (전법륜)

여기를 보고 나는 아주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워 진땀이 났다! 같은 사부님이고 같은 대법인데 수련생은 법을 실증할 수 있고 사존님의 홍대한 자비를 고맙게 여기는데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사부님은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고 나의 신체를 깨끗이 씻어 주셨으며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게다가 나를 도와 신체의 모든 질병을 제거하시고 나를 대신해 그렇게 많고 큰 고통을 감당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얼굴 혈색이 좋고 윤기가 흐르며 생기발랄하여 걸어도 온몸이 가벼운 사내 같은 사람이 됐다.

나는 오직 정념을 견정히 하고, 무조건 신사신법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께 기쁘고 위안이 되게 하고 수고를 적게 하시게 해야 한다. 사부님 따라 마지막 정법의 길을 잘 걸어 자신의 서약을 실행하며 법정인간 시기를 맞이하여 사존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6일
문장분류: 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6/229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