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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수련해야 비로소 세상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글/ 형심(馨心)

[밍후이왕] 한동안 나는 하나의 문제를 늘 사색했다. 똑같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데 왜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크게 다를까? 왜 어떤 사람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효과가 좋고 어떤 사람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효과가 떨어질까? 물론 그 결과는 아마 각종 원인으로 촉성됐을 것이다. 첫째, 진상 내용이 적당한지? 둘째, 진상을 듣는 사람의 마음의 매듭이 다르다. 셋째, 진상을 알리는 사람의 심태에 차이가 있는 등등으로 인한 것이다. 그 외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라면 진상을 알리는 사람이 진상을 알릴 때 행위의 표현이 어떠한지이다.(이는 사실 수련인의 심성상태의 진실한 반영이다) 이것은 직접 진상을 알리는 효과의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에 관계 된다.

어느 날 배달회사 사장 부부에게 진상을 알리게 됐다. 비록 그들은 내가 말한 진상에 이치가 있다고 여겼으나 대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한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번은 자신들이 시장에서 콩을 사고 있었는데 한 할머니도 콩을 사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콩을 고르면서 가게 주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가게 주인은 할머니가 말하는 내용을 열심히 듣고 있었으나 점차 두 눈은 할머니의 손동작을 주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잘 고른 콩을 자신의 비닐 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지 좋지 않은 콩은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가게 주인의 얼굴색은 갈수록 어두워졌고 양미간도 점점 찌그러졌다. 나중에 가게 주인은 더는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할머니가 말한 진선인(眞善忍)은 매우 듣기 좋아요. 그러나 지금 한 일은 진선인입니까? 콩을 골라 사면 나머지 차한 것은 누구한테 팔까요? 할머니 그만 이야기하세요. 이게 어디 좋은 사람으로 되는 겁니까?” 할머니가 콩을 사 간 뒤 가게 주인은 여전히 할머니의 언행불일치를 비웃었다. 배달회사 사장 부부는 이야기를 하고나서 나에게 “가게 주인이 할머니 말을 믿겠어요?”라고 되물었다.

물론 이 수련생은 기타 방면에서 아마 모두 매우 잘 수련했을 것이다. 아마 할머니는 이 모든 게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하는 것이며 매매에서 정상적인 작은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때문에 전혀 이 행위의 결과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할머니는 기타 큰일에서 매우 잘했을 것이나 이런 작은 일을 홀시했다. 그러나 이 작은 일이 오히려 진실하게 한 수련인의 심성 높이를 반영해주고 있다. 이 역시 직접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지 하는 큰 문제에 관계된다. 생각하건대 이런 생각이 있는 수련생은 우선 마땅히 속인의 “대의를 돌봄에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도덕적 행위의 틀을 타파하고 엄격히 사부님의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정진요지-성자(聖者)]라는 법리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잘 수련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뱉은 말에 이치가 있더라도 대법의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어찌 속인을 통제하고 있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할 수 있겠는가. 사악을 해체할 수 없으면 사악은 곧 속인을 통제해 진상을 거절하게 되며 그럼 이 사람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만일 가게 주인에게 좋은 행위를 보여주었다면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갑 수련생이 자신의 한 가지 일을 소개했다. 어느 날 계란을 사러 갔는데 계란 바구니 위가 꽤 더럽고 또 콩알만 한 작은 구멍이 난 계란이 있었다. 그는 우선 그 계란을 한 쪽에 놓았다. 계란 가게 주인은 갑 수련생도 기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계란을 사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갑 수련생이 대법이 좋다는 진상을 알려도 그다지 듣지 않았다. 갑 수련생은 나중에 또 그 계란을 쥐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계란도 살 것입니다. 아까 한쪽에 놓은 것은 눌리어 깨질까 생각되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산 계란 박스에 담았다. 갑 수련생의 이 초상(超常)적인 행위는 즉시 계란 가게 주인을 감동시켰고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계란은 많은 사람이 싫어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그들과 다릅니다. 당신이 대법이 좋다고 말한 것을 나는 정말로 믿습니다.”

한 움큼의 콩, 계란 하나의 가치는 보잘 것 없으나 한 수련자가 타인을 생각하고 있는지의 문제와 금전이익을 담담하게 보는 심성이 비춰져 있다. 생각해보자. 한 수련자가 한 움큼의 콩, 계란 하나에 대한 이익마저 내려놓지 못한다면 우리 수련자의 본질은 또 어떻게 개변하겠는가? 본질적인 개변과 승화가 없다면 또 어찌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말한 진상을 상대방이 접수하더라도 이 사람은 꼭 구도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만할 수 있는 것조차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제고가 없다면 아무것도 이야기할 바가 못 되며 역시 중생 구도를 이야기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제고가 없고 당신의 원만이 없다면 당신이 구원한 중생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가지겠는가? 왜 이처럼 문제를 보지 않는가?”(2008년 뉴욕법회 설법)

이러할진대 오직 착실히 자신을 잘 수련해야 비로소 실재적으로 세상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특별추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5/2585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