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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는 것은 정법수련에서 매우 관건이다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최근 농촌에 내려가 수련생들과 교류를 했다. 그때 한 수련생이 우리에게자신의 집안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남편(‘7.20’전에 수련)이 정신병에 걸렸는데, 수련하지 않는 일가 친척들이극구 병원치료를권한다면서 그녀는 반대한다고 했다. 이 일을 두고수련생들이 교류의 장을 펼쳤다. 어떤 수련생은 그를 병원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 수련인은 법리를 명백히 알고 있는데 어찌 그에게 병원에 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병원에 보내지 않으면 속인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마땅히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나는 떠오르는 게 있었다. 왜 우리가 이러한 문제에 봉착했을까? 의심의 여지없이 이 일은 좋은 일이며, 표면으로 천변만화이고 갖가지 연관되는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 수련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속인과 같을 수는없다. 표면에서 원인을보아서는 안 되며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선 자신을 냉정히 해야하며 조용히 대법에 대조하여 자신의 최근 수련상태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나는 문제가 생긴적이 있다.나는 대법제자는 물론 일체 교란 요소를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왜냐하면 우리는 조사정법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처해 있는 것으로, 마땅히 발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만약 나에게 엄중한 문제가 존재하는데 단순히 발정념만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마땅히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으로,나는 법공부를 마친 후 조용히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나는 성심으로 사부님께 말씀 드렸다. “제자는 사부님께 가지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제자가 집착을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을 바로 잡을 수있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집착심이 하나 또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재물을 구하는 마음,평형을 잃은질투심, 허영심,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쟁투심, 과시심, 색욕 또한 매우 중했으며, 두려운 마음, 등이었다. 나에게 있었던일을 법에 대조한 후 대응되는 마음을 찾아내고 발정념을 했다. “철저히 이러한 집착심을 깨끗이 제거한다” 잠깐 발정념을했음에도 종래로 있어본 적 없는 가벼운 감을 느꼈다.

이튿날 친구가 나를 찾아와 나의 상황을 알게 된 후 나에게 월급이 꽤 높은 일자리를 알선해주었다.(전에 받던 월급의 다섯 배였다)

이 일에서 체득한 것이라면 한 가지 어려운 일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업력으로 인한 것이든 구세력의 교란이든 우리는 우선 마땅히 조용히 자신의 안에서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선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집착을 찾아낸 후 그것을 배제해야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비로소 우리의 그것을 제거해버려주실 수 있다.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좋은 일로 여겨야 하는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으로, 이런 마난(魔難)과 고통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 좋은 일로 보면서 그것더러 많이 오고 빨리 와서 자신을 빨리 제고하게 한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우리 수련인은 관념을 전변해야 하며 불편함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고 손해를 보는 것을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마난이 왔다면 좋다, 네가 왔으니 나는 곧 대법에 대조하여 사부님의 가지에 의거하여 수련해 제고할 것이다. 물론 만일 이 마난이 정법 일을 교란하는 것이라면 나는 곧 가볍게 이런 교란요소와 패물을 깨끗이 제거할 것이다. 이런 일을 통하여 우리의 수련상태가 좋게 변하며, 심성이 제고되고 업력이 전화되어 층차가 제고된다. 동시에 정념으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여 위덕도세울 수 있는데 이것이 수련인에게 요구하는게 아니겠는가? 다른 한 각도에서 우리가 특정한 한 가지 일에서 수련하여 제고되고, 심성경지가 제고되며, 층차 표준이 제고된다면, 생각해보라, 그 마난 혹은 무슨 고험이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겠는가? 누가 배치한 것이든 사부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부님께서 그것을 발생하지 말라고 하시면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수련에서 제고하여 정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면 된다.

구세력의 교란 역시 우리 수련 중의 누락을 뚫고 들어오는바,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서 원인찾지 않고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교란이니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 발정념하자.” 우리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어찌 구세력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구세력은 개인수련을 가장 중하게 보며 그것들은 곧 이것을 구실로 대법도를 고험한다. 우리가 바르게 걷지 않으면 구세력은 곧 이것을 구실로 교란하며 사부님의 정법에 번거로움을 가져다준다. 실은 자신의 수련을 홀시하여 가져온 것이다! 정법에서 사람을 구도함이 긴박하나 우리는 반드시 수련인이어야 하며 진정으로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세인을 구도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정법시기대법제자’의 칭호에 부합된다.

나는 깨달았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음은,대부분 사부님이 우리가 일을 할 때의 마음 씀씀이를 보시고, 심성이 한 층의 법의 요구에 부합된다면 우리를 가지해 주시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잘하여서가 아니다. 과정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런 집착은 수련하지 않고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매번 모순과 마난에 봉착했을 대그것을 모두 교란으로 여길 뿐,자신을 수련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사부님께서 정법하고 계시며 우리는 아직 수련하면서 조사정법하고 있는 것이다.

‘7.20’ 이전에 우리 모두 개인수련을 중시했다. ‘7.20’ 이후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게 긴박하여 일부 대법제자는 일을 하는데 치우쳐 개인제고를 홀시했다. 집착이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하고 사악한 요소에게 틈을 타게해 우리의 정체에 간격을 조성했으며, 넘을 고비가 커지게 됐다. 또 정법하고 사람을 구도하는데 많은 손실을 조성했다.

우리 수련인은 일에 봉착하여 일부 현상을 볼 수 있고 모순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사람 중에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한다고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 오직 근본적으로 자신의 안을 향해문제를찾고 집착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국면을 돌려 세울 수 있다. 아울러 안을 향하여 찾는 과정이 수련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바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억제하고 시간과 정력을 들여 자신을 찾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의 집착을 제거해 주시는 분은사부님이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轉法輪)』) 만일 우리가문제에 부딪혔을 때자신을 찾지 않는다면 수련의 체현은 어디에서 나타나겠는가? 그건 한 속인이 일을 하는게 아니겠는가!

마음이똑 발라야 행위를 바르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여 모든 일 속에 자신을 놓고 시시각각 자신의 사상동태와 일언일행에 주의하며 자비롭고 상화하게, 관용과 대범함으로 사람을 대하며, 개인의 이익을 손해보고 고생도 기꺼이 받아 들이며, 옥신각신하지 않고모든 것은법을 우선 위치에 놓아야 한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남다른 수련인이 되어야사람들은 대법제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서 자연히 대법이 좋다고 할 것이다.

옅은 인식이니 부족한 부분은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6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수련체득>특별추천>정법수련에 관하여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3/2428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