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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 ㅣ 욕심이 없으면 굳건해 질 수 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전에TV드라마 ‘이위당관(李衛當官)’을 보았는데 그 중에 이러한 줄거리가 있었다. 몇 차례 한 마을에 임명된 현령들이 살해되자 강희제는 이위를 불러 물었다. “만약 네가 현령이 되어 한 빈곤한 마을을 다스리라고 하면 잘 다스릴 수 있느냐?” 이위는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강희제는 또 물었다. “너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느냐?” 이위는 대답했다. “저는 관리가 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위의 한 마디 말은 진기(眞機)를 밝혔다, 욕망과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일을 잘할 수 있다. 욕망이 없다는 것은 사실 사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위는 돈으로 자신의 벼슬길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돈을 전부 백성들을 위해 쓸 것이므로 그는 자신이 관리직을 잘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청나라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천녀유혼 (倩女幽魂)’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귀신이 영채신(寧采臣)의 몸에 달라붙고 싶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소원이 있죠? 내가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어요.” 영채신은 대답했다. “나는 어떠한 소원도 없어요.” 귀신은 또 물었다. “당신은 돈을 벌고 싶어요?” 영채신은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귀신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름을 날리고 싶지 않아요?” 영채신은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당신은 멋진 용모를 갖고 싶나요?” “좋아하지 않아요.” 어떠한 욕망도 없으니 귀신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사실을 바로 이러하다, 하나의 순수한 양기가 넘치는 환경에는 음성(陰性)적인 것이 감히 침입할 수 없다. 한 지역 환경이 어떠한가는 바로 이 지역 수련생의 전체 수련상태의 반영이다. 요즘 현지 여러 명 수련생이 세뇌반에 납치된데 대해, 정법 최후에 이러한 일이 여전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우리가 깊이 생각 할 가치가 있다. 사악이 비록 가증스럽고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정법이 사람을 구하는 큰일을 교란하지만 문제는 만약 우리가 모두 바르게 하고 정법에 부합됐다면 사악이 여전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는가? “당신들은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온다는 것을 정말로 모르는가?”(각성하라)

지금도 이러한 일이 나타나는 것은 주로 두 가지 방면의 원인이 있다고 나는 인식한다. 첫째는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 서로 협조하는 중에서 안으로 찾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法寶)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우리는 관, 난을 만날 때 늘 밖을 본다. 어떠한 하나의 마음이라도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안으로 찾지 않으면 제고할 수 없고 그 물질을 버릴 수 없고 음성(사악)에게 물질 마당을 제공하면 사악이 침입해 결국 파괴를 한다.

천백년 이래 형성된 일부 관념은 이미 자신의 층층 신체 중에, 혈액 중에 용해됐고 심지어 자신의 일부분이 됐다. 안으로 찾는 것은 심장을 도려내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을 동반하지만 이를 통해 자신 신체에 용해된 이 물질을 버릴 수 있다. 가슴의 살을 베어내는 것은 당연히 아프다. 그러나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만 제고할 수 있고 이 흑색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매 한가지 마음은 모두 한 덩어리 물질이다. 예를 들면 두려운 마음이다. 만약 두렵다는 물질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자신을 강제로 두렵지 않게 할 수 없다. 안으로 찾아 제고한 후 그 물질을 제거하면 자연히 두렵지 않고 수련 중의 매 한가지 마음도 모두 이렇다. 나한 그 경지에 이르면 당신이 그를 때리고 욕해도 그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속인이 보기에는 정말 잘 참는데 사실 그는 그 경지 중의 생명이다.

안으로 찾지 않으면 외부의 사악이 침입할 기회를 주어 박해가 누차 발생되고 엄중하게 정법을 교란하고 사람을 구하는 큰일을 교란한다.

두 번째 원인은 박해를 전면적으로 철저히 부정하지 못했다. 정법,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며 박해가 된 원인은 우리가 사상 중에 여전히 박해의 요인을 승인해 사악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어떤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는 대법의 일을 하기만 하면 늘 박해를 생각한다. 정법, 사람을 구하는 것과 박해는 어떠한 인과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박해를 부정하고 발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지만 박해는 여전이 발생했다. 사실은 박해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말로는 박해를 부정하지만 잠재의식 중에는 박해를 승인한다. 나의 이해는 진정으로 박해를 부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박해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머릿속에 박해가 없고 구세력이란 이런 개념이 없는 것이다. 오직 정법에 부합되면 하고 일체 표상을 모두 보지 않는다. “대법과 사부의 요구에 따라서 해야 한다. 일체 일은 모두 바르게 걸어야 하며 비할 바 없이 중대하고 비할 바 없이 위대하다!”(북미순회설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하여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각지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정법은 이미 최후다. 사악이 대량으로 소각됨에 따라 대법제자의 성숙, 환경은 마땅히 점점 좋아야만 옳은 것이다. 간혹 환경이 나쁘면 우리는 여전히 밖으로 찾는다, 무엇 때문에 박해는 여전히 지속되는지 사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환경은 사람의 마음이 조성한 것으로서,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당신이 그것으로 하여금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다.”(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 설법) 교훈은 마땅히 우리를 성숙되게 한다. 만약 우리가 법리를 똑똑히 알고 서로 협조할 때 안으로 찾으면 사악이 아직도 우리 수련생을 납치할 수 있단 말인가?

만사를 대법으로 대조해 안으로 찾고 전면적으로 박해를 부정하고 자신이 정념이 매우 강하면 외부의 사악은 감히 침입하지 못하며 박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정법, 사람을 구하는 일은 우주 중에서 가장 큰일이므로 바른 신이 마땅히 협조하면 사악은 마땅히 길을 양보해야 한다. 사실 박해는 원래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현 단계의 약간의 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6월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9/2421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