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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형에 대한 깨달음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다년간 비바람의 단련을 거쳐 최근에서야 비로소 차츰차츰 ‘대도무형’의 광대함과 무변의 법력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마다 속인사회에서는 자신의 직위와 배역이 있으며, 사회에서 각 영역, 각 계층, 각 부류의 인물 모두 여러 면으로 서로 접촉하며 연계하고 있다. 속인사회에 입각하여 생활과 일, 수련의 관계를 잘 배치하려면 대도무형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이 한 법문의 수련의 근본이며, 또한 대법제자가 사람에서 신을 향해 나아가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초이다.

대도무형의 법리는 생활과 일, 수련의 각 영역, 방방곡곡에 관통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에 부합해야만이 수련의 길이 갈수록 넓어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구우주의 요소에 제약되어 걸어갈수록 좁아지고 어려울 것이다.

장기간 나는 매일 법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진정으로 법의 내함을 터득하지는 못했다. 비록 몸은 속인사회에 있으나 마음 속 깊은 곳은 속인사회와 대립, 저촉되어 사회를 회피하고 있었다. 내가 그러한 심리적인 곤경 상태에서 걸어 나오는 과정은 아주 어려웠다. 어떤 때 법리를 명백히 깨달은 것 같으나 늘 반복됐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이 일체를 깨닫고 법공부를 했을 때 법리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거의 사부님의 한편의 설법마다 나에게 어떻게 자신의 일의 편리와 장점을 운용하여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다. 문학예술부분에 몸을 담고 있어 일과 시간 모두 비교적 느슨했다. 그럼에도 법이 자신에 대한 요구와 짊어진 책임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할 수 없었다. 속인들과 같이 늘 직장에 나가지 않았고 속인의 일체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오직 수련만이 중요하며 개인 수련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속인사회에 오염되는 것이 두렵고 속인무리에 떨어질까 두려웠다. 문학예술계의 연구토론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각 부류의 활동과 전람회에도 대충 몇 폭의 작품만 출품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명리를 내려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 동창, 동료, 가족의 각종 모임은 될수록 피했고 시간낭비라 생각하여 친척친우들과 점차 멀어졌다. 속인 중에서 나는 예전에는 꽤 재능이 있고 각계로부터 깊은 찬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동료가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당신은 일체에 대하여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고 노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앞날이 없는 것이 아닌가?!” 나 자신의 상태가 법에 대하여, 사회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람의 관념으로 ‘수련’을 제 마음대로 생각하여 인위적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을 파괴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공부 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 때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최후에는 걸어 나왔다. 사부가 당신들에게 이런 한 갈래 길을 배치해 주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걸어왔는가? 이 일체의 최후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이런 것들 역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 일이든 모두 홀시할 수 없다. 편리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사람은 수련함에 있어 가히 출가하지 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속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한다면, 이 일체는 다른 하나의 어려움을 조성하는바, 당신은 그 일체를 잘 해야 하며 어느 방면이든 모두 잘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다.”(《2006년 캐나다 설법》)

오직 진정으로 깨달아야 법리는 비로소 펼쳐지며 비로소 실천 속에서 법리의 지도하에 잘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이 문학예술계의 인사들을 구도해야 하는 더욱 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의식했다! 그들이 진상을 알고 구도될 수 있을지는 그들 및 대응되는 천체가 미래로 진입할 수 있는지의 관건인 것이다.

내가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처한 환경 일체가 따라서 변화됐다. 직장은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항목이 늘어났으며 컴퓨터 및 각종 설비가 들어와 나와 파트너한테 전문적인 카메라가 배당됐다. 신문 칼럼에서 나는 편집에 참여했고 내가 전담한 몇 가지 업무에서 상사와 동료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직장에서 연말에 회식을 했을 때 상사는 내 곁에 앉으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업무에 대한 나의 재능과 됨됨이를 긍정을 해주었고 개인 수련(파룬궁)에 존중을 표시했다. 나의 문학작품은 점차 지면에 많이 나타났고 한 세트의 예술작품은 전 도시의 집집마다 발행되는 지면에 게재됐다. 동료와 예전의 각계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의 문필과 예술작품이 예년에 못지 않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대법은 우리에게 일체 사람 마음을 깡그리 버릴 것을 요구하는바 결코 형식만이 아니다. 대도무형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는가는 사람이 신으로 되는 미래의 길을 개창하는 것이며 미래의 참조이고 수요이다. 또한 미래 전반 우주 대궁체계의 원용과 관계된다.

갈수록 ‘대도무형’의 이러한 무형의 형식의 광대함과 현묘함을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갈수록 사부님께서 이러한 형식으로 모든 각계 중생을 구도하시는 호탕한 홍은을 깨닫게 되었다. 대통령도 수련할 수 있고 공인 농민도 수련할 수 있으며 폐품을 수집하는 사람 또한 수련할 수 있다. 대법은 단체, 직업, 학력을 보지 않으며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 대법제자는 사회의 매 세포에 해당되며 만일 대법제자마다 능히 자신의 영역에서 우리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낸다면, 그럼 대법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갈 것이며 견실하고 안정된 기초가 있을 것이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장대해져 장래에 더욱 많은 천체대궁이 갱신될 것이다.

파룬따파는 대도무형이나 없는 곳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며 법력이 무변하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자면 1999년 7.20 시기에 우리는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와 사람의 일체를 내려놓았다. 조사정법의 비바람 속에서 연마를 거쳐 우리는 다시 ‘사람’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시 새롭게 사람의 일체 유형적인 생활과 일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는 원래의 그 사람이 아니다. 바로 신이 인간 세상에 있는 바, 생각은 속인 중에 있지 않고 일체는 모두 무(無)에 있는 것이다.

처한 층차의 옅은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은 지적하여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5/交流–体悟大道无形-2362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