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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법회]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자신을 수련

글/ 장쑤성 대법제자 일심(一心)

[밍후이왕] 법을 얻기 전 몇십 년을 나는 간부로 살았으며 현지에서 꽤 유명했으나 성격은 줄곧 내성적이었다. 1996년 10월 난징(南京)의 한 친구가 나에게 ‘전법륜’ 한 권을 보냈다. 나는 그 책을 열어본 뒤 다시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 박대하고 심오한 법리는 나를 깊이 빨아들여 하루저녁에 책을 다 읽게 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오래도록 평온할 수 없게 했다. 그로부터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법공부와 수련, 홍법에 뛰어 들었다. 생활은 그야말로 더없이 충실하고 즐거움이 가득했다.

99년 ‘7.20’ 이후, 홍색 공포가 뒤덮였고 그 압력으로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우리 현은 바깥 세계와 연결이 끊어졌으며 게다가 수련생들은 법을 늦게 얻었고(대부분은 97년, 98년에 법을 얻었다) 인원수도 적어 거대한 압력 앞에서 많은 수련생들이 핍박에 수련을 중단했다. 나는 비록 수련을 견지하기는 했으나 사부님의 가호 아래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왔다.

처음엔 어쩔 바를 몰랐으며 정말 하루가 1년 같았다. 얼마 후 사부님 경문과 설법이 속속히 전해왔으며 그야말로 칠흙 같은 밤하늘에서 북극성을 본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이성’이란 한편의 경문 중에서 “이지(理智)로 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함은 우리의 의무이며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인 나의 책임이었다.

나는 여기서 내가 11년간 어떻게 진상하고 중생을 구도했는지 말하려 한다. 크게 말하면 세개 단계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주로 친척이나 친구, 동창이나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상을 했다. 이것은 많이 쓰지 않겠다. 2004년 사부님의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란 경문이 발표됐다. 나는 이 경문을 반복해 외웠고 외우면 외울수록 자신의 책임이 중대함을 느꼈으며, 자신이 사부님이 요구하신 것과 거리가 먼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진상을 알리는 시간과 강도를 높이면서 진상 범위를 높여갔다. 나는 매일 집밖으로 나와 시내에서 진상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주위 농촌까지 가서 알렸다. 나는 1년 365일을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명절이나 휴일이거나 할 것 없이 매일 진상을 알렸다. 이것은 나의 두번째 단계다.

세번째 단계는 2007년부터다. 사부님께서 ‘2007년 뉴욕법회설법’ 중에서 “현재 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일은 바로 어떻게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가 하는 것으로 이 역시 현재 대법제자들의 원만 과정 중에서 완성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며 마땅히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반드시 해야 하며 반드시 완성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미국 수도 법회 설법’ 중에서는 또 “지금은 여러분이 곧 어떻게 더욱 잘하고 효율이 더욱 높으며 영향이 더욱 크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법의 요구에 비춰보면 나의 진상을 들은 사람은 많으나 ‘삼퇴’한 수는 적었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을 진정으로 구해내지 못한 것이다. 문제를 찾았으니 이전에 잘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결심했다. 2008년부터는 진상을 알리는 것과 ‘삼퇴’를 권하는 것을 참되게 해나갔다. 매일 아침과 저녁을 위주로 10여명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삼퇴한 이는 다섯 내지 여섯명, 일곱 여덟명 될 때도 있는데 기회와 인연이 좋을 땐 10명 이상이다. 이 삼년 안된 사이에 나의 진상을 듣고 ‘삼퇴’한 사람이 이미 5000명 좌우다.

구체적으로 나는 어떻게 했는가?

1. 사명을 명확히 하고 자각적으로 한다

진상을 방금 시작했을 때에는 인식상의 편차가 있었다. 한 면으로는 사부님을 도와한다고 여기면서 한 면으로 자신의 원만을 위해 한다고 여겼다. 마치 사부님께서 ‘나에게 시킨 것’처럼 ‘내가 해야겠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법공부를 계통적으로 함에 따라 나는 자신이 대법중의 한 입자임을 인식했으며 진상을 알리는 것은 자신의 사전서약을 체현하는 것을 알았다. 이때가 되어서 나는 문을 나서면 진상을 알릴 수 있었으며 밥 먹으나 잠자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졌다. 물론 인식이 제고된다고 해서 무엇이나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으며 두 가지 큰 ‘관’을 넘어야 했다.

하나는 체면이라는 관이었다. 과거 몇십년간 사당, 행정두목이 었으며 현지에서도 명성이 자자했음은 물론 표창만 받았을 뿐 비평은 받지 않았다. 또한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각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주동적으로 그들과 인사를 해야 하는데 공인, 농민, 상업하는 사람들 모두가 비웃고 질책하는 이 심성관 역시 작은 것이 아니었다.

몇 년전 길에서 한 농민에게 진상을 알리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쭉 그를 따라 다니면서 진상을 얘기하자 그는 싫증을 내면서 “이 영감탱이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뭐라 중얼거려! 가가가, 당신의 궁상스러운 일이나 가서 해!”라고 했다. 나의 속상하고 분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반평생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대한 적은 없었다! 그 후 사부님의 “수련성취를 한 사람으로서는 당신이 나를 욕하고 당신이 내가 듣기 거북한 말을 하여도 나는 끄떡하지 않으며, 당신이 나를 좋다고 하여도 나는 역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며 당신이 나를 나쁘다고 하여도 나는 역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떠 올리자 억울함도 사라졌다.

또 한번은 채소 시장으로 쑹화단(松花蛋)을 사러 갔었다. 한 가게에 가자 그 집이 다른 집보다 가격이 훨씬 비쌌으나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계란을 사면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진상을 다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큰 소리로 “당신 정부를 반대하는구만! 다른 사람이 보고만 한다면 당신을 잡아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 당신이 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 믿기 어렵다면 그만 둡시다”라고 말했으며 마음은 아주 평정했다. 물론 이런 사람은 필경 극소수였다.

둘째는 두려움이었다. 2004년말 ‘9평공산당’이 발표됐고 2005년 초에는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가 발표됐다. 당시 정법 노정을 따라가지 못했던지라 ‘삼퇴’일을 하긴 했어도 가족과 친척, 친구 등 작은 범위에서 맴돌 뿐, 큰 범위에서 진상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과 경문을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사부님께서는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회와 인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막다른 고비이다.”(막다른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두려운 마음은 이렇게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하는 실천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지워져 갔다.

지금은 대면 진상을 해도 아무 두려움이 없다. 과거에 한 사람씩 얘기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여러 명을 동시에 해도 아주 자연스럽다. 2010년 8월 16일 한 공사 현장에서 4명의 인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 중 3명은 기뻐하며 단, 대를 탈퇴했다. 정법 형세의 변화에 따라 중생들은 각성하고 있으며 나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일도 매우 순조롭게 해 나갔으며 효율도 높아 ‘삼퇴’한 비율이 90%이상 달했다.

2. 주동적으로 시간을 다그치다

매일 아침과 오후는 내가 진상을 알리는 시간이었으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설사 섣달 그믐이나 설날이라 할지도 변함이 없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그 사람집에 선후 6차례나 갔었다. 한번은 노간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키기 위해 3번이나 그를 찾아 갔었다. 마지막 한번은 그가 병에 걸린 과정과 치료 과정을 자세히 듣고 나서 그에게 동정을 표하기까지 했다. 그가 다 말하자 나는 진상을 알려줬으며 그도 집중해 듣고는 마지막에는 마침내 사당에서 탈퇴했으며 노부인도 탈대했다.

두번째는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박해 초기, 나는 상하이, 난징 등 곳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또 각 현 동창과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때마다 항상 빈손으로 다니진 않았다. 한번은 시외의 한 집을 찾아가 진상을 알릴 때었다. 버스를 타면 1위안 이었는데 나는 삼륜차 기사를 불렀다. 원래 가격은 3~4위안이었으나 이 기사는 5위안을 요구했다. 나는 두 말 없이 그의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 나는 아주 순리롭게 진상을 알렸으며 기사는 단, 대를 탈퇴했다. 나는 5위안으로 한 사람을 구했으니 너무나 수지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나는 예물을 갖고 30년전 함께 일했던 동창에게 진상을 알리러 갔다. 그들은 다 감동을 했으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모두 ‘삼퇴’를 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한 사당 서기를 탈퇴시켰으며 그의 자녀들도 대신해 단, 대를 탈퇴시켰다. 법을 실증하는 일이라면 돈을 얼마를 써도 기꺼이 할 것이다.

세번째는 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진상을 알리려면 사람들을 접촉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기 위해 이 몇 년간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많이 탔다. 매일 20여리씩 총 여정은 2, 3만리 된다. 가는 길에 사람 있을 때도 있었지만 반대 방향에 사람이 있으면 돌아오면서 탔다. 이렇게 매일 만나면서 어떤 때는 하루에 몇 번을 오갔다.

직접 농촌 논밭까지 가서 길옆에서 농민들에게 진상을 했으며 그들은 일을 하면서 내 말을 들었다. 시간도 충족하니 진상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올해 여름 어깨 부위가 벌겋게 되어 자전거를 탈 때면 아팠으나 밀라레파가 수련할 당시 겪은 거대한 고난에 비해 내 요만한 것은 별볼 것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3. 생활속에서 이지롭게 하자

나는 매일 외출할 때 진상이 쓰인 돈과 호신부, 과일 사탕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내에 있는 찻집 7,8곳을 나는 늘 다녔고 채소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은 다 구도 대상이었다. 채소를 파는 어떤 농민은 나와 아주 익숙해져 만나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하고 말한다. 다른 재봉사라든가 차수리공이라든가 신발 수리공, 쓰레기 버리는 사람, 삼륜차 기사, 과일 상인, 생강 상인,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 거지, 냉음료수 상인, 폐품을 줏는 사람, 폐품을 사는 사람, 시장에서 장보는 사람, 학교 가는 학생, 학생을 데려다 주는 가장 등등 모두가 내 진상 대상이다.

나는 또 진상에 유리한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먼저 말을 걸 때 우선 타인을 칭찬하거나 표창해주는데 이러면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계도 가까워진다. 한번은 한 교사를 만났는데 그에게 몸이 정말 좋다고 하면서 전동차를 탈 때 안전에 조심하라고 하자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참을성 있게 진상을 듣고 사당을 탈퇴했다. 가게에서는 한 처녀가 그녀 고모에게 스카프를 사주는 것을 보았는데 고모가 싫다고 하고 처녀는 꼭 사주겠다고 할 때 내가 정말 효성스럽고 인심이 좋다고 하면서 좋은 사람은 좋은 보답이 있다고 하면서 이 기세를 타 진상을 알려 처녀를 탈단시켰다. 배를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보니 이 사람이 언제나 몇 냥씩 더 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마음이 정말 바르다고 하자 그도 자기 자신이 했던 좋은 일들을 흥겹게 얘기했다. 이렇게 열을 올릴 무렵 나는 식기 전에 진상을 알렸으며 그에게도 탈단시켰다. 손자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를 보내는 사람에게 몸이 진짜 좋다고 한다거나 손자(손녀)가 잘 생겼다고 하면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도 효과가 아주 좋았다. 큰 시장에선 상품 파는 사람이나 돈을 받는 사람에게 복무 태도가 좋다고 칭찬하면 그들도 나에게 아주 정겹게 대한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당신 사람이 참 좋네요, 한 가지 소식이 있는데 얼마 후에 큰 재난이 닥쳐올 것인데 어떻게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그들은 아주 즐겨 듣는다. 이렇게 3개 시장에서 10여명을 탈퇴시켰다. 또 한 노인은 80세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몸이 정말 좋다고 하면서 그와 친구가 됐다. 그리고 그의 집에 몇 번 다니면서 마지막에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 줬으며 노 부부 둘 다 사당을 탈퇴했다.

4. 기회를 잡았을 때 하다

2007년 4월, 시내의 자전거 길 옆 펜스에 페인트로 새롭게 칠하고 있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임시공들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3일간 20여명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 중 다수가 ‘삼퇴’를 했다.

매년 식수절 전후해 많은 농민들이 길가에 곡물을 말리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것도 나에게는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다. 매년마다 이런 곳에서 몇십 명을 탈퇴시킨다. 또 배와 사과철이면 길가에 임시 가게들이 많은데 배를 사면서 일상생활 얘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탈퇴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시내에서 건축 일을 하는 조적공이나 잡부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진상을 알리면 효과가 아주 좋다.

작년 10월쯤 난징에서 퇴직한 한 처급 간부였던 초등학교 친구가 우리 현에 병문안을 왔다. 전에 내가 세 차례 난징에 있는 그의 집에 찾아 가서 진상을 알렸을 때 진상을 겨우 받아 들였으나 사당은 좀처럼 탈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기회다 싶어 나는 상을 차려놓고 그의 친구까지 데려와 합석까지 했다. 그도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으며 마침내 사당에서 탈퇴했다. 친구가 떠날 때 나는 세트로 된 진상자료를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속인 속에 있는 좋은 일들 혹은 생일잔치에서도 진상을 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작년에 나는 70세가 됐다. 대법 수련자로써 원래 생일은 쉬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일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소형 생일잔치를 했다. 손님들을 접대하고 돈 봉투를 돌려주는 이 기회를 빌어 나는 30여명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16명이 사당을 탈퇴했다.

11년의 정법수련 노정은 그야말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었으며 주요하게 세가지 체득이 있다.

1. 법공부가 근본

법공부는 진상을 잘 알리고 자신을 제고하는 근본적인 보장다. 사부님의 경문과 설법에서 번번히 법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듯이, 특히 수련 중에서 확실히 법공부의 중요성을 체득했으로 나는 평소 ‘전법륜’을 최소한 한 강의 읽는다. 사부님의 99년 이후 설법을 나는 매년 계통적으로 두세번씩 보며 보면 볼수록 법공부의 중요성을 느끼며 볼수록 정념이 강해진다.

올해 4월, 한 향진에 사는 친구가 점심 식사를 청했다. 나는 식사 전 시간을 이용해 선물을 산 뒤 자전거를 타고 세 개 촌의 간부를 방문했으며 세 집 모두 아주 순조롭게 이야기가 됐고 사당의 전 정, 부서기와 전 생산대대장이 모두 탈당을 했다.

점심 먹을 때 갑자기 파출소 경찰(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이 찾아 와서는 “할아버지 ,파룬궁을 도처를 다니면서 말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갔던 촌에 우리가 방금 조사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손님을 청한 주인이 급히 일어나며 “이 분은 내가 청해온 손님이오, 자네도 시간이 괜찮다면 합석해 술이나 한잔하지”라고 했다. 그러자 그 경찰은 한참 같이 앉아 있더니 누구도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자 저절로 재미가 없던지 가버렸다. 나는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리며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정진요지 2-마지막 집착을 버리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안을 향해 환희심이나 일을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찾았으나 없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려운 마음을 버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이처럼 큰 법이 있으며,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이 같이 있는데,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맨해튼 설법) 나는 누가 파출소에 가서 신고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오후에 또 현지에서 당원 두 명을 탈퇴시켰다. 이튿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평소처럼 외출하고 진상을 알렸으며 그것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2.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

오래된 습관이 있는데 가족이든지 외부인이든지를 막론하고 의견을 말하면 나는 무조건 반박했다. ‘맨해튼 설법’을 몇번을 읽고 나서야 나는 이 나쁜 습관을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그러나 그 반복은 여전했다. 작년에 특별히 모시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오전에 청급과 처급간부 집에 가서 사당, 단, 대를 4명 탈퇴시켰다. 오후에 40년간 가장 친했던 동창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전에 그에게 몇 번 말한 적 있었지만 그때마다 웃고 넘겼다. 이번엔 물이 오면 도랑이 열릴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가 하는 말이 편지함에 늘 전단지가 있는데 보지도 않고 버린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부님에 대한 불경의 말을 했다. 결과 나는 참지 못하고 한바탕 말다툼을 하다 나왔다.

일이 있은 뒤 나는 자신에게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하나는 오전에 순리롭게 일이 풀려 환희심이 생긴 것이고 둘째는 언어가 선하지 못하고 쟁투심이 있다. 자비심은 더욱 말할 것도 못된다. 셋째는 급한 마음이며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다. 집으로 돌아 온 후 나는 그에게 전화로 잘못함을 빌었다. 올해 또 한 번 갔는데 이번엔 ‘9평공산당’등 많은 자료를 가져갔으며 오로지 한 가지 요구만 제기했다. “네가 진정으로 보기를 바란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처리한 뒤 얼마 후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양지(良知)를 불러오지 못하리라 믿지 않노라” (제세)

가정도 좋은 수련환경이다. 과거 발정념하고 법공부 할 때 아내가 나에게 일을 시키곤 했는데 나는 교란이라 여기고 기분이 좋지 않아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안으로 찾아보면 확실히 집안 일을 한 것이 얼마 없다. 지금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일을 먼저 한다. 아내도 이전 같지 않으며 웬만하면 나를 부르지 않는다. 어떤 때엔 나에게 발정념 시간이 됐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가정환경도 온화하게 됐다.

3. 발정념은 아주 중요

과거 나는 발정념을 임무로 생각했으며 어차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하면서 발정념 할 때 조용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후에 사부님의 설법 한 단락을 보게 됐는데 “여러분 알다시피 중국대륙에서 대법제자들이 받은 박해는 참으로 심하다. 그러므로 매 한 사람의 수련생들은 모두 반드시 진정하게 자신의 책임을 뚜렷이 인식해야 한다. 발정념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면 진정으로 정념의 작용을 일으킨다. 때문에 이는 지극히 관건적인 일이다” (각지 설법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라는 말씀이 나를 아주 진동케 했다. 이후에 또 ‘밍후이주간’에서 발정념에 관한 몇 편의 수련 심득을 보았는데 나에게 계발이 아주 컸다. 그리하여 나는 금년 초부터 발정념을 하는 횟수를 하루 여덟번으로 늘였다. 이 기간 한 가지 사건이 나에게 아주 큰 충동을 주었다. 올해 4월에 들어 시에서 사당들이 모 현에 가서 회의를 했는데 파룬궁에 대한 박해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소란을 떨었다. 얼마 후엔 시와 현에서 속속히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가할 것이었다. 이때 나는 발정념에 대해 진정으로 중시하기 시작했다. 네 개 정각과 전 현 9시 발정념을 하는 외, 조건이 될 때면 되는 한 많이 했다. 나는 이렇게 매일 12번 발정념 했으며 금후에도 계속 견지할 것이다.

지금 발정념 할 때도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하나 에너지 마당이 아주 강한 것은 느낄 수 있다. 사부님의 가호 하에 대법제자들은 발정념을 견지했으며 사악의 박해는 다만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우리 현은 큰 교란을 받지 않았다. 이것은 발정념의 거대한 위력을 직접 체현해 냈다.

나는 세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서 매 한 걸음마다 사부님의 가호와 가지를 깊이 느끼고 있다. 나는 사부님에 대한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조사정법의 11년간 나는 비록 대법제가 응당 해야 할 일부 일을 했지만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는 거리가 아주 멀다. 예를 들자면 마음상태가 불안정하다든가, 진상을 알릴 때 가리는 마음, 급한 마음, 어떤 때는 진상을 다 알리지 못하고 있다. 사부님께선 우리에게 “최후일수록 더욱 느슨히 할 수 없으며, 최후일수록 더욱 법공부를 잘해야 하며, 최후일수록 정념이 더욱 충족해야 한다”(캐나다법회에게)고 타이르신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이며 시시각각 정념을 가져 정진, 또 정진할 것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손색이 없는 한 명이 될 것이다.

이상의 글들에서 대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동수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밍후이왕 제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0년 11월 0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대륙제7회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5/明慧法会–在讲真相的同时修自己-23169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