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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훙쯔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했던 날을 기억하며

글/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8월 6일】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했던 소감을 쓰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리훙쯔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파룬따파와 연분을 맺기 바란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리훙쯔 사부님의 자비와 불법이 인간에게 펼쳐짐을 견증하기 바란다.

나의 아이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병원에서 조차 똑똑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파룬궁 수련생 2명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책과 파룬 휘장을 주었고 또 나와 아이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1994년 4월 27일, 아이와 나는 몇 십명의 일행과 함께 리훙쯔 사부님께서 창춘 지린대학 강당에서 개최한 제7기 학습반에 참가하기 위해 창춘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나는 사부님의 강의를 들을 때 한 말씀도 빠뜨리고 싶지 않아 마음을 조용히 한 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으려 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기공수련에 대한 뚜렷한 개념없이 막연하기만 했으나 학습 반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듣자, 마치 새사람이 된 듯 잘 이해되어 똑똑히 들으려 했다. 나는 사부님의 모습을 똑똑히 보기 위해 열 몇 번째 줄에 있던 자리에서 3번째 줄로 옮겼다. 그 당시 나의 오른쪽 눈이 약시(弱视)였고, 7백도 근시안경을 쓰고 있어서 물건을 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야맹증이라 저녁에는 집을 찾기 어려워 감히 집을 나서지 못했다. 세 번째 줄로 옮기니 사부님의 모습이 똑똑히 보여 나는 너무 기뻤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설법하시기 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앞에 앉기를 바라는데, 기실 당신이 어디에 앉아도 마찬가지며 멀리 앉을수록 더욱 똑똑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내가 자리를 바꾼 것을 아시는지 진짜로 신기했다!

5월 1일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생들과 사진을 찍으셨는데, 나도 사진을 찍은 뒤 사부님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이처럼 훌륭하게 이야기 하실 수 있으실까? 계속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사부님께서 머리를 돌려 나를 보셨다. 아마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뜻일 수 있어서 나는 머리를 숙였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생각을 모두 아셨던 것이다.

세 번째 강의 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신체를 조정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아이 몸에서 좋지 않은 것들을 아주 많이 청리했는데, 그때부터 아이가 줄곧 손가락을 연화지(莲花指)한 채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잡을 수 없어서 나는 사부님께 빌었다. 아이가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부님 도와 주세요라는 생각을 하자 아이가 젓가락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화지는 변하지 않았으며,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도 줄곧 연화지 상태였다가 뒷날에서야 풀 수 있었다. 아이는 가부좌를 했는데, 가부좌를 하기만 하면 다리를 내려놓을 수 없어서 대부분 동수들이 도와주어야 내려놓았다. 후에야 나는 사부님께서 나와 아이에게 아주 많은 것을 해주었음을 깨달았다. 한 번은 강의를 들으려 가다가 차가 막혔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다급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차가 지린대학교에 도착하자 한 노년수련생은 급한 마음에 울면서 녹음기를 안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우리 모두 강의 시간에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강당에 들어가 앉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큰 버스 한대에 문제가 생겨서 수련생들이 서둘러 왔으므로 지금부터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격은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대단히 자비하셨다!

6강의를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누군가 사부님께서 아이를 만나보려 하신다고 전해 주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사부님께서는 강의시간을 일분일초도 안 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급히 밖에서 안쪽으로 달리며 아이를 찾다가 갑자기 발에 무엇인가 걸리면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사람들까지 놀랐는데 나는 아주 멀리 튕겨져 나뒹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고려할 새도 없이 기어 일어나자 수련생이 괜찮으냐고 하기에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를 찾은 후 강단에 데리고 올라가 사부님을 뵈었다. 사부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아이를 보면서, 몇 살인가, 고등학교에 다니는가? 라고 물었다. 나는 사부님께 중학교 2학년에 다닌다고 했다. “우린 집에서 이미 >을 보았고, 연공도 했습니다.” 나는 아이의 신체상황을 말했고, 사부님께서는 아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셨다.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또 사부님께 우리가 돌아간 뒤 무슨 일이 있어 사부님께 여쭈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들고는 주머니에 명함이 하나밖에 없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격동된 나는 줄곧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명함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좌석에 돌아와서야 나는 심하게 넘어졌던 일이 생각나 이곳저곳을 살피고 만져보았지만 아픈데는 하나도 없었다. 진짜로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하였다.

법을 듣는 동안 아이에게 공능이 많이 나타났는데 여기서 더 말하지 않겠다. 얼음물을 살려고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워 얼음이 빨리 녹아버려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얼음 장수에게조차 얼음조각이 없었다. “엄마, 나는 얼음조각이 필요해요”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에 있던 얼음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우리와 함께 있던 보도소장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 강의를 들으려가다가 갑자기 열쇠가 침대 위에 떨어뜨린 게 생각났다. 돌아온다 해도 열쇠가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는 당황하지 말고 먼저 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서 열쇠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문은 내가 잠갔기에 꺼내지 못한다고 했지만 잠시 후 아이가 돌아와 열쇠를 넘겨주었다. 내가 의아해서 어떻게 꺼냈는지 묻자 아이는 묻지 말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공능을 주신 것을 알았다. 5월의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아주 차가웠지만 아이는 연공 할 때 엷은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더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집에 있을 때는 온몸에 병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온몸이 가벼웠다. 과거에 나도 특이공능을 그리 믿지 않았지만 오늘 나는 보았을 뿐만 아니라, 내 자식의 몸에서 나타났는데 질문할 게 무엇이 더 있겠는가? 사당 문화가 주입된 대뇌와, 사당의 독소로 여러 해 동안 구속 받은 사유는 대법을 듣는 사이에 사부님께서 청리해주셨고, 나로 하여금 확고부동하게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신사신법(信师信法)하게 만들었다.

몇 번 째 강의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사부님의 강의를 들은 후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더니 사부님께서 한 무리 수련생들에게 둘러 싸여 사인을 해주시는 게 보였다. 한 수련생이 다급히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 휴식하지 못했고, 밤에 또 다른 강의가 있기에, 당신들은 사인을 받지 말라. 그럼에도 수련생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모두 앞 다투어 사부님께서 사인해주시기를 기다렸다. 나는 머리를 들어 사부님을 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고 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계속 사인을 하셨다. 급해진 그 수련생은 우리 모자에게 “우리 손을 잡아 원을 하나 만들면 원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인이 끝나면 밖의 사람들은 사인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 10명 안 되는 사람들이 원을 만들고 안에 있는 수련생들은 줄을 섰는데, 한참 후에야 사부님께서는 서명을 끝내고 돌아가 휴식을 하셨다. 또 한 번 나는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苦度)를 감수하면서 사부님께서 대단히 고생스러우셨는데, 법을 얻고 어찌 귀중히 여기지 않는가?

기억에 의하면 5월 8일 오전 마지막 강의가 끝났는데도 수련생들은 떠나지 않고 문 가까이 서서 사부님께서 멀리 가실 때까지 지켜보면서 어떤 수련생은 울었고 나도 울었다. 9일 강의를 다 듣고난 뒤 나의 세계관이 모두 개변되었다. 나는 온몸이 가벼워져 올 때 가져온 한 보따리 약을 전부 버렸고 나의 사유도 모두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사람무리 속에서 걸었지만 그들과는 거리가 아주 멀리 있음을 느꼈고, 이젠 사람 속에서 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파룬궁을 끝까지 수련하려고만 생각했다.

사부님의 강의가 끝난 뒤 다른 수련생이 내 아이에게 사부님을 따라 다니며 계속 사부님의 강의를 들으라고 통지해 주었다. 아이는 베이징, 청두, 충칭에 가서 줄곧 사부님의 신변에서 법을 들었다. 아이는 돌아와서 사부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사부님께서 반찬을 집어주셨고, 고기반찬을 집어주시면서 먹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기차에서 몇 명의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생신인 것을 알고 식당차에서 식사를 준비하려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수련생이 그럼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씀 드렸지만 사부님께서 계속 허락하지 않자 마지막에 수련생이 울려고 하자, 그제야 사부님께서 동의하시고는 라면 한 그릇만 사 드셨다. 아이는 사부님께서 언제나 이렇게 검소하셨다고 말해 주었다. 사부님은 또 남은 돈을 정의를 보면 용감하게 뛰어드는 기금회(见义勇为基金会)에 기부하셨는데, 아이는 이런 것을 직접 보고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돌아온 후에 검소하게 생활할 줄 알았고 먹고 입는 것을 따지지 않았다.

아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쓰촨에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산에 올라가기 전 아이에게 사부님께서 지정한 범위를 떠나지 말라고 알려주셨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아주 난잡했다고 한다. 당시 아이의 천목은 열려있었고 또 공능이 있는 동시에 쟁투심과 현시심도 아주 강했기에, 사부님께서는 수시로 이 어린 대법제자를 보호해주신 것이었다.

창춘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우리가 떠난 후 어느 날 갑자기 한 갈래 빛이 두 번 지나갔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집 환경을 청리해주셨음을 알았다. 남편의 신체도 과거에 엄중한 위병, 혈조(血稠), 풍습, 심장병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청리 하에 전부 없어졌다. 온종일 병 때문에 근심하던 남편도 만면에 웃음꽃이 피었고, 우리의 법 공부와 연공을 적극 지지했다. 아이가 사부님을 따라 법을 들은 근 1달 동안 일부 비용은 전부 사부님께서 대주셨다. 아이가 집에서 떠날 때는 온몸에 병이고 아주 여위었지만, 돌아올 때 기차역에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아이가 아빠 엄마를 불러서 우리는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몹시 놀랐다. 아이의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하얗고 키도 컸으며, 이전보다 살이 올랐고 머리카락도 까맣고 윤기가 반드르르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또 아이의 온 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을 발견했는데, 머리카락에서까지 아주 좋은 향기가 났다.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달간 집에 없는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되다니.

나는 직접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했고, 세인들도 우리의 심신의 변화를 통해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사부님을 그의 집에 청해 병 치료를 해주기를 나에게 부탁하면서 돈은 얼마를 써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우리 사부님은 돈을 바라지 않고 병 치료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사부님은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당신은 파룬따파를 수련하세요라고 말했다.

16년간 수련하면서 나는 위대한 사존님의 자비를 마음깊이 체득하고 있다. 세간에서 펼쳐진 불법은 비할 바 없는 불은호탕(佛恩浩荡)이다. 정진 실수(实修)하여 3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께 더 많은 제자들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 드리자.

문장발표:2010년 08월 0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톱기사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6/22803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