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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모집선정】사부님의 세 차례 시드니 설법을 회상

글/ 호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13일] 1996년 8월 2일,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처음으로 호주에 왕림하셔서 법을 전해 우주대법을 호주 이 아름다운 국토와 중생에게 전해 주셨다. 사존께서 이미 세 차례 시드니에 친히 오셔서 설법하셨는데 호주수련생들은 얼마나 행운스러운가!

비록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로 시드니가 아니지만 시드니는 오히려 수도의 기세 및 실질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고고학 각도에서 보면 원래 시드니는 다루크(Daruk)족 거주지로 지금까지 원주민 유적을 200개 넘게 발굴했으며 아울러 많은 지명도 여전히 원주민의 언어로 부르고 있다. 시드니는 개성이 충만되고 생기발랄하며 햇빛이 넘치는 도시다. 흰색 돛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해변에 우뚝 솟아 시드니항 대교와 잇닿아 있어 이곳에게 무수한 자랑과 즐거움을 가져온다. 시드니는 매년마다 수백 만이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오는 전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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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일,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호주에 오셔서 법을 전하셨다. 그날 수련생들은 손에 생화, 꽃바구니를 들고 시드니 비행장에 와서 사부님께서 오시기를 삼가 기다렸다. 사부님의 체구가 크고 위엄 있는 모습이 출구에 나타나자 한 노제자는 “사부님께서 오셨다!”고 기뻐서 말했다. 사부님 뒤에는 사모님과 어린 사매가 있었다.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 주위로 몰려들어 사부님과 사모님을 향해 문안을 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이날 설법 회의장이 잘 준비 됐느냐고 관심 있게 물으셨다. 연락인 수련생은 사부님께 수련생들이 회의장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드렸다. 그때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위해 여러 개의 방이 딸린 숙소를 준비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담당 수련생에게 방 하나를 물리라고 하시고 어린 사매에게 소파에서 자라고 하셨다. 수련생은 사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키가 커서 소파에서 자기 불편할 것이며 방을 이미 정했으니 물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자 사부님께서는 그제야 그만 두셨다.

이튿날인 8월 3일 8시경, 사부님께서 회의장에 오셔서 매 입구에서 업무를 맡은 수련생들과 악수를 하시면서 문안하셨고 또 특히 그때 유일한 한 서양 수련생이 입구에서 일하는 것 을 보고 특별히 몇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히 하지 않으시며(懷大志而拘小節)’, 손을 흔드시고 발을 들여 놓으시면서도 일언일행을 몸으로 가르치시고 모두 친절하게 한 보 한 보씩 가르치셨다.

그 때 호주에는 애쉬필드(Ashfield) 공원과 카브라베일(Cabravale)공원에 2개의 연공장만 있었고 평소 나와서 연공하는 수련생이 2곳을 합쳐야 겨우 10여명에 불과했다. 사부님께서 시드니에 오셔서 설법하신다는 것이 알려진 후로부터 설법하실 때까지는 3~4일 시간 밖에 남지 않았었다. 때문에 우리는 100여 명쯤 와서 법을 들어도 놀라운 숫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무려 2, 300 명에 달했다. 대법은 초상적인 것으로서 인연 있는 사람들은 절로 찾아 왔으니 어찌 인간의 마음으로 이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호주 첫 번째 설법은 여러 동수들의 기대심이 담긴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그때 법을 들으러 오는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혹은 갓 수련한 사람들이었다. 사존께서는 설법 처음부터 법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어려운 법을 쉽게 풀어내셨으며 생동하고 간결했다. 무량한 자비가 담긴 높고 낭랑한 목소리는 온 세상을 뚫고 장내 매 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으며 온 장내는 매우 조용했다. 당시 설법 내용이 바로 이후에 출판한 『法輪佛法(시드니 설법)』이다.

사부님께서는 5시간 동안 계속 서서 설법하시며 수련생들이 준비한 물을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책임자 수련생이 몇 차례나 사부님께서 앉아서 말씀하시고 동시에 물도 권했지만 사무님께서는 오히려 “내가 서야만 뒤(수련생)에서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설법 과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또 전체 수련생들을 위해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설법이 끝난 후 어떤 수련생들은 사부님께서 『전법륜』 책에 서명을 요청했고 어떤 수련생들은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기념하고 싶어했다. 그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줄을 서서 서명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지만 사부님께서는 일일이 수련생들의 요청을 들어주셨고 마지막에 또 장내에 있는 수련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셨다. 온 하루 사존께서는 법회 휴식시간에 물만 조금 드시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또 수련생들이 서명과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호주 수련생들은 진정한 행운아였으며 또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사부님께서는 몇 명 제자들과 시드니 다링항을 지날 때 이곳에 연공장을 세우면 괜찮으며 사람도 많으니 돈도 써서 신문에 파룬궁을 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다(원말씀 아님)…사부님께서 떠난 지 며칠 후, 우리 23명 수련생들은 다링항에서 곧바로 주말부터 연공을 시작했다. 다링항 연공장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호주의 주요 대외연락 연공장이 됐으며 사람이 많을 때는 연공하는 사람이 200 명이 넘고 적을 때에는 2, 30명이 된다. 많은 수련생들이 이 연공장에서 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떠날 때 수련생들은 아쉬워 하며 사부님, 사모님과 사매를 비행기 입구까지 호송했다. 대기실에서 수련생들은 유리 창문을 통해 비행기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한 수련생이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을 현상해보니 비행기 주위에 큰 파룬과 기묘한 에너지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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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이 지난 1996년 11월 24일, 사부님께서 두 번째로 시드니에 오셔서 하신 설법은 수련생들에게 진귀한 기억을 남겼으며 지금까지 눈앞에 생생하다.

사부님께서 호주에 도착했을 때 숙식비 때문에 일부 호주 달러를 환전해야 했다. 그때 은행은 이미 문을 받아 호주 달러를 바꿀 수 없었지만 사부님께서는 현지 수련생들의 돈 한 푼도 쓰지 않으셨다. 수련생들은 일부 호주 달러를 사부님 신변 수련생에게 주어 그가 쓰도록 하려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것은 사부님이 또 한 번 몸으로 가르친 사례이다.

사부님께서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아침, 사부님께서는 26명의 수련생들이 다링항 연공장에서 맑고 투명한 바닷물을 등지고 작은 숲속 풀밭에서 연공하는 것을 보셨다. 수련생들은 눈을 감고 연공했다. 사부님을 따라온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연공을 중지시키려는데 사부님께서는 제지시켰다. 사부님은 다만 기쁘고 편안하며 친절한 눈빛으로 연공음악이 끝날 때까지 26명의 수련생들을 바라보셨다. 한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오셨으니 모두들 앞으로 모이세요”라고 소리쳤다 일부 수련생들은 연공이 끝나자 눈을 뜨고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사방을 살펴봤다. 그때 그곳에 있던 한 수련생은 당시 눈을 뜨고 보니 사부님께서 상화하게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시는 것을 보고 사부님의 법신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사부님이 오신 것을 보았다. 수련생들은 기쁘고 놀라서 얼른 사부님 신변으로 다가가 정신을 집중해 자비하신 사부님의 설법을 한 시간 동안 귀담아 들었다. 당시 광경은 참으로 매우 상화로워 수련생들은 이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링항 연공장은 호주에서 유일하게 사부님께서 친히 지명해 만들어진 연공장이며 또 사부님께서 친히 그곳에서 설법하신 유일한 연공장이다. 춘하추동을 막론하고 이 연공장에서 연공을 하면 상쾌하고 묘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부님께서 다링항 연공장에 친히 오셨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지자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한번 뵐 것을 바랐다. 사부님께서는 1996년 11월 26일 저녁, 호주 수련생들과 시드니 중심 매소닉(Masonic)센터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 설법에 참가한 수련생들은 600명이 넘었다. 사존께서 처음 시드니에서 설법하신 그때부터 짧은 3개월간, 호주에서는 법과 연공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번 설법에서 사존께서는 우주 층층의 구조까지 많은 것을 말씀하셨다. 회의장을 임대한 마지막 시간이 됐지만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사부님께서 더욱 많이 말씀하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회의장을 빌린 시간이 초과되면 수련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기에 제 시간에 마치셨다. 사부님의 일언일행은 수련생들에 대한 관심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시드니에서 캔버라로 떠나기 전에 몇몇 수련생들도 사부님을 따라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이 몇몇 수련생을 보면서 당신들이 생생세세에서 모두 고생하면서 이번 이 마지막에 법을 얻었는데 아직도 왜 빨리 정진하지 않느냐고 하셨다.

당시 그곳에 있던 몇몇 수련생들은 내심에 매우 큰 진동을 느꼈으며 사부님의 고심한 가르침을 느꼈다. 그러나 이 단락 말씀의 박대한 함의를 수련생들은 당시 완전히 법에서 깨우치지 못했지만 내심으로는 놀라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몇몇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따라 캔버라로 가는 길은 햇빛이 빛나고 바람도 따스한 화창한 날씨였다. 갑자기 한 수련생이 “아이고, 앞에 비가 왔어”라고 말했다. 모두 앞을 보니 길에는 물이 깊고도 넓게 들이찼으며 도로변의 잔디밭도 물속에 잠겨 수면은 마치 파도처럼 도로변까지 밀려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때 비가 오지 않았고 날씨는 맑았는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다른 공간의 물이라고 사부님께서 해석해서야 여러 사람들은 다른 공간의 경치를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캔버라 국회산장 잔디밭 위에서 휴식할 때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두 마리의 큰 갈매기가 싸우는 것을 보고 계셨다. 몇몇 수행원들도 자신도 모르게 주시하기 시작했는데 두 마리의 큰 갈매기는 서로 격렬하게 부리로 상대의 깃털을 쪼으며 뒹굴며 싸웠다. 갑자기 한 마리가 상대에게 목이 물려 부르르 떨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두 발이 하늘로 향하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사부님은 “사람과 같다”고 한 마디 하셨다. 사존께서는 시시각각 제자들의 수련제고에 걱정과 점오를 하셔서 제자들이 쟁투심과 경쟁심을 제거하도록 가르치셨다.

(3)

1999년 5월 2일부터 3일간 ‘전 호주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가 시드니의 아름다운 다링항 국제회의전시센터에서 열렸다. 그때 호주, 미국, 캐나다, 스위스, 태국, 일본, 네덜란드, 싱가폴, 홍콩, 마카오, 인도네시아, 중국대륙 등지에서 2천7백명이 참가했다. 사부님께서도 오셨다.

그때는 세인들의 주목을 끈 ‘4.25 파룬궁 만인 평화청원’이 지난지 일주일 후여서 각 매체 기자들이 잇달아 사존을 인터뷰하려 했다. 일부 기자들은 나쁜 마음을 품었으며 더욱이 홍콩의 한 중문 잡지는 수련생들의 단체연공 당시 인각한 眞·善·忍을 촬영한 후 돌아가서 글자 모양을 악의적으로 다른 글자로 고쳐서 크게 잡지에 실었다.

5월 2일 오전에 사부님께서 회의장에 도착하셨으며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서 강단에 오르셔서 참가한 제자들에게 설법하셨다.(당시 설법한 내용이 바로 이후에 출판한 『法輪佛法(호주법회에서의 설법)』이다.) 그 후 대법제자들은 돌아가며 발언하면서 수련 심득체험을 교류했다. 사부님께서는 회의장에서 제자들의 교류를 들으셨다.

이때 문밖의 내외신 기자들이 회의장에 들어가서 사부님을 만날 것을 요구하자 사부님께서는 그들이 회의장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먼저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고 파룬궁에 대해 좀 이해한 후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이리하여 일부 기자들은 회의장에 들어와서 수련생들의 교류발언을 들었는데 이후에 한 기자는 법을 얻어 대법제자가 됐다.

이튿날인 99년 5월 3일 아침 7시, 회의에 참가한 각국 파룬궁수련생들은 시드니에서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다링항 잔디밭에서 단체 연공을 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파룬궁수련생들은 ‘眞·善·忍’과 영문 ‘파룬따파(FalunDafa)’ 글자 모양으로 배열해 앉아 아름다운 연공음악을 배경으로 단체 연공을 했다. 푸른 하늘아래, 비단 같은 잔디밭 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멀리서 보니 매우 아름다웠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전망대 위에서 제자들이 연공하는 것을 지켜보셨다. 얼굴에 웃음을 띠우시고 기뻐하시면서 마이크를 잡고 글씨를 배열하는 제자들을 고무격려 하셨다. 제자들은 모두 놀라고 기뻐했으며 자비하신 사부님의 크고 낭랑하며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매우 행복감을 느꼈다. 그 당시 장면은 매우 사람을 감동시켰으며 참으로 특별했다.

뒤이어 교류회가 계속 진행됐다. 이때 한 수련생이 적지 않은 신수련생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직 사부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설법을 마치시고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기억해두고 시간을 마련해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수련생은 기뻐하면서 어린이를 데리고 온 수련생들에게 어린이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후에 회의 때문에 어린이를 데리고 온 수련생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다른 방으로 이동시켰다. 이 수련생이 나중에 갑자기 사부님의 사전 분부가 생각나서 어린이방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사부님께서는 이미 시간을 내서 가보셨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 행운스러운 수련생들은 그 당시 정경이 아직도 기억에 새로워 감동하며 말하기를, 당시 사부님께서 갑자기 어린이방으로 들어오시자 모두들 사부님 앞에 몰려가서 악수하면서 문안을 드렸다. 그때 4달 된 두 어린이에게 사부님께서 다가가셔서 자상한 사랑의 손길로 그들의 작은 얼굴을 만지시고 손을 잡아주셨는데 그 당시 정경을 그곳 수련생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당시 이 행운스러운 아이들은 지금 이미 대법 속 소제자가 됐다.

교류회 사이에 사부님께서는 국제회의전시센터의 한 회의실에서 국내외 매체 기자들과 만나시고 아울러 그들의 여러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셨다. 그중 한 외국가자가 갑자기 아주 좋지 않은 말투로 말을 하여 그곳에 있던 수련생들이 그를 매우 예의 없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드넓은 흉금과 기세 높은 정기로 태연하고 상화하게 그 기자의 문제에 대답하셨다. 그 당시 정경은 그 곳에 있는 여러 인사들을 매우 탄복하게 했다. 제자로서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공경심과 자부심을 느꼈다.

법회가 끝난 그날 저녁, 사부님께서는 일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그런데 그 당시 사부님의 표정은 매우 어둡고 엄숙하셔서 모두들 심정이 조금 무거웠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모두들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자 수련생들에게 어서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동시에 또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중에서 우주 역사상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비장한 역사와 호주의 관계, 특히 호주 이 지역은 유구한 역사상에서 이미 사부님과 대법과 맺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이야기하셨다. 사부님 자신은 매우 적게 드셨다. 두 달 후 중공악당은 1억이 넘는 대법수련자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호주에 법을 전하신지 이미 14년이다. 호주 대법제자들은 반박해 중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겹겹이 마난을 겪으면서도 의지는 시종 확고부동 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로 호주 대법제자들은 풍우 속에서 천지행(天地行)했다. 이 하늘의 뭇신들의 모이는 시각, 인류역사상 휘황한 이 순간, 우주역사의 이 한 페이지를 넘기려는 이 시각, 호주대법제자들은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분부하신 가르침을 기억하고 다그쳐야 한다. 정법노정을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 마지막 길을 바르게 걸어, 다시는 사부님께서 호주 대법제자들을 근심하시게 하지 말아야 한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13일

문장분류: 온고지신 > 사부님의 은혜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13/2235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