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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심’은 수련이 아니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10일]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이 의뢰심의 표현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양성된 바람 따라 돛을 조정하듯 눈치를 봐가며 행동함은 의뢰심이 쉽게 생기게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깔고 개창하려 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기다리고 의지하면 타인과 정체에 무거운 부담을 안겨준다. 마치 밀차를 밀고 가는 것처럼 당신이 힘을 적게 쓰면 다른 사람이 힘을 많이 써야 하고 난이도가 커질 것이고, 시간이 길어지면 고통을 참지 못해 점차 차를 미는 것을 포기할 것인즉 이러면 누구나 모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의뢰심’은 수련을 포기하는 일종 표현이다. 수련인의 길은 사부님께서 우리의 감당능력에 따라 배치하신 것이므로 오직 넘으려고만 하면 넘을 수 있는 것이지, 넘지 않으려 할까바 걱정이다. 의뢰하는 것은 바로 넘지 않으려는 것이고, 자신이 감당할 책임을 밀어버리는 것이며 수련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체적인 승화만이 비로소 조사정법이고, 비로소 정법진행을 끊임없이 추진할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할 수 있다. 사악이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조성한 장애, 이를테면 인터넷 봉쇄, 씬탕런 방송 수신 제지, 자료점 파괴 등 이 모두는 우리의 수련과 관계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정체가 모두 대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부동한 층차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사악은 자멸될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마땅히 있어야 할 작용을 발휘한다면 사악은 보고 뒷걸음칠 것이고 우리는 마음껏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늘 다른 동수에게 의뢰하는 버릇이 있고, 외적인 요소에 의뢰하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정체제고, 정체승화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히 서둘러 돌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간 어느 때에 위덕을 세울 수 있겠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날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만들고 있는 그런 동수들 중 어느 누가 편안하게 순조롭게 걸어오면서 자료점을 건립했는가? 모두가 여러 가지 씬씽 고험과 가정 모순 속에서 확고한 정념에 의거해 뚫고 나온 것이다. 사악한 박해 속에서 신사신법에 의거해 환경을 열어놓은 것이다.

우리 함께 결심을 내리고 확고하게 이 한 걸음을 내디디자. 사람을 구하는 장애인 의뢰심을 돌파해 우리의 정체로 하여금 자신의 이 환경 가운데서 끊임없이 승화하게 하자.

문장발표 : 2010년 4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10/2212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