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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병업관 등의 마난을 해체한 체득

글/ 칭다오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1월 31일】 요즘 칭다오시 및 시 주변에 엄중한 병업 상태가 나타난 수련생이 있다. 어떻게 병업 중에 있는 수련생을 대할 것인가에 대하여, 나 개인의 깨달음을 말해 보고자 한다.

정법 수련의 10년 노정을 걸어오면서, 오늘까지 걸어온 진수 대법제자에게는 모두 중생구도의 위대한 장거와 빛나는 점이 있을 것이다. 사람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수련이 잘 된 부분은 표준에 도달되어 이미 떼어졌다. 원만전 까지는 늘 사람이 수련하므로 분명 사람의 마음과 부족이 있을 것이며, 어느 한 걸음을 잘 걷지 못하고 바르게 걷지 못하여 누락이 있게 되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단지 어느 한 가지 일에서 잘하지 못했다 하여 이 사람이 어디에서나 다 나쁘고 다 안된다는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련생이 마난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는 정체상에서의 동수들의 첫 번째 의념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내가 인식하건대, 우리 대법제자 중에서 나타난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우연하지 않으며 모두 정체상에서의 대법제자의 심성제고와 승화에 대한 한 차례 검증이라고 본다. 매 사람의 이 사건 중에서의 일념(一念)과 과정 중의 행위는 바로 매 개인이 있는 경지 중의 진실한 체현인 것이다.

나 개인에게는 깊은 체험이 있는데, 문제가 나타나면 첫 일념이 바로 자신의 부족을 찾아야 한다고 의식하는 것이다. 당시에 나타난 일이 어떠하던지, 자기 생각이 아무리 옳고 아무리 법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자기 몸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을 자기가 한 것이 아니더라도, 만약 내가 보고 들었다면 역시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찾아보고 일마다 대법을 표준으로 가늠하였다.

그 일의 옳고 그름 속에 빠져 문제를 보지 않았고. 발생한 일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정체상에서 매 개인에게 버려야 할 마음과 제고할 요소가 안에 있는 것으로서 그렇지 않다면 이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병업 중에 있는 동수도 끊임없이 안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있으며, 병업의 시달림과 뼈저리게 집착을 찾는 중에 이미 아주 고통스럽고, 아주 자책을 하고 있다. 만약 그들을 도우러 간 우리 동수들이 그들 당시의 감수를 헤아리지 않고, 사람마다 모두 자기가 있는 층차에서 깨달은 이치를 동수에게 강요한다면 이때의 수련생은 아주 접수하기 어려워 할 것이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이미 저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남이 말한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동수와 교류하여, 자신이 관을 넘던 체험과 어떻게 집착심을 내려놓고 걸어왔는가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면 동수로 하여금 아주 홀가분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별로 큰 압력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자기도 재빨리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와 함께 법 공부를 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를 제고 승화시키는 것은 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그와 함께 법 공부를 많이 하기만 하면 심성이 제고돼 올라올 것이고, 이미 그 한 층의 법에 동화된 것이며, 이미 그 한 경지 중에 있게 된 것이다. 신체는 더는 아래 한 층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래 한 층 공간의 나쁜 물질은 순간에 해체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교란을 배제하자〉)

나는 일찍이 사악이 음모를 꾸민 발광적인 납치 사건중에서 납치된 적이 있었다. 파출소에 있는 동안 나는 한 켠으로는 법을 외우고 한 켠으로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는데 납치 과정 중의 어떤 일은 눈앞에 선하였다. 하루는 점심 때 내가 사부님 경문 『길』을 외우고 있는데,집 사람이 밥을 가져온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집 사람은 바깥에서 어떤 동수들이 나를 책망하면서 나에게 너무도 정념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단식을 하라면서 집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때인데 아직도 밥을 먹는가 라고 하면서 밥을 보내오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방금 외운 사부님 설법 중의 말씀이 생각 났다. “마난(魔難)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는 모두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매 차례 제고가 바로 자신이 증오(證悟)한 과위가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 한 대법제자가 걷고 있는 길은 바로 한 부의 휘황한 역사로서, 이 한 부의 역사는 반드시 자신이 증오(證悟)하여 개창(開創)한 것이다. “(『정진요지』〈길〉)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 주신 길로 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수련생이 한 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 동수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지 내가 있는 층차의 경지 중에서 깨달은 법리가 아니므로 오직 나 스스로 깨달은 것만이 비로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비로소 착실한 것이다. 나는 주불의 제자이고, 나의 사명은 사부님 정법을 따라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나의 일체는 사부님으로부터 결정할 수 있으며, 사악은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좌지우지 하지 말고 밥은 정상적으로 가져와야 하며, 먹고 안 먹고는 나 개인 문제이니 당신들은 반드시 나와 잘 협력해야 한다. 공안이 나에 대해 불법 수감하고 고문하여 자백을 강요하는 것은 법을 범한 것이니 당신들은 각급 공, 검, 법 부문에 가서 공소하고, 나에게 외부 정의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경찰의 범죄행위를 기소하게 해야 한다. 당신들은 마음을 놓으라, 나는 신사신법을 확고하게 할 것이며,일체는 사부님께서 결정할 것이다.

후에 사악의 박해로 내가 병원에 보내졌을 때 의사가 경찰에게 하는 말을 은연 중에 듣게 되었다. 환자는 이미 매우 위험하다, 이 며칠간은 위험한 시기인데 오늘 저녁을 넘길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나의 첫일념은 의사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머리 속에는 사부님 법만 남아 있었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내가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속인의 법률 각도로 보면 불법재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때 어느 수련생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세뇌반에 수감 당했지 구치소에 갇힌 것이 아니므로 세뇌반에 수감된 날자는 형기에 넣을 수 없으며, 판결이 내려지면 구치소에 갇힌 동수보다 거의 일 년이란 시간을 더 감옥에 갇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집을 떠나라고 하면서 각지에서는 모두 들것에 실려와 재판을 받은 실례가 있다, 감옥마다 모두 노약병자 구역이 있고, 불구가 되어도 판결을 받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각지의 실례를 드는 것이었다. 나는 수련생이 한 이런 말과 사유는 모두 아주 부정적인 면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사람의 관념을 품고 사람의 이치로 분석 추리한 것으로서 무의식 중 사악을 높이 놓고 자신을 낮게 보면서 무형 중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였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것이 정념이 아니라고 여겼고, 확고하게 신사신법 하고 사부님 안배한 길로 걷는 것이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서 그 무슨 판결 선고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 당신들 자신이 바르게 하였을 때에 사부는 어떠한 일이든 당신들을 위하여 다 할 수 있다.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정념(正念)이 아주 강하고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으며 금강부동(金剛不動) 할 수 있다면 그런 사악은 당신들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북미 순회 설법』)

또 어느 수련생은 나의 집에서 함께 발정념을 하자고 하였다. 우리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로서 사악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당신이 돌아올 수 있은 것은 바로 구세력을 부정한 것이고, 바로 사부님의 안배한 길로 걸은 것이니 누구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동수들의 자비와 선념의 바른 장을 감수할 수 있었고 동수들의 나에 대한 도움과 관심에 몹시 감동되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 발정념을 했던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정념이 있어야 하며, 당신이 정말로 정념이 아주 족하다면 누가 가한 부면적인 물질이든 모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내심으로부터 인식하였다. 그런데 정념이란 법공부에서 오는 것이므로 법공부를 잘하고 법에 동화되기만 하면 일체는 모두 사부님 안배중에 있게 된다.

막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사람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진하였는데 모든 전문가 교수들은 모두 너무 늦었다, 왜 이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보냈는가, 치료할 방법이 없다, 석 달 후 병 상황이 발전하는 것을 다시 보자고 하였다. 나는 생각 하였다. 사람 중의 전문가 교수는 그의 의술이 얼마나 높든지 간에 그는 단지 속인의 병만을 볼 수 있을 뿐인데 그가 어찌 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의사가 나를 가족에게 밀어 보낼 때 나의 마음은 아주 평정하였고 당시 오직 생사를 내려놓아야만 생사는 당신하고 철저히 멀어진다는 것을 정말로 감수하게 되었다. 나는 집 사람에게 말하였다. 인간의 이치는 모두 반대이다. 당신들은 걱정하지 말라, 석달 후에 나는 긍정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나중에 정말로 석 달 후에 나의 당시의 그 일념과 같은 결과였는데 위에서 말한 법정심리, 판결도 모두 당시의 나의 그 일념과 같은 결과로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하고 확고하게 사부님의 안배하신 길로 걷게 되었다. 속인의 이치에 따르면 모두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온다”(『전법륜』)

이상은 단지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기에 부당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 2010년 1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1/31/2172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