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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와 ‘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2월 14일】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홍음』내가 이해하기로는, 많은 일에서 만약 표면적으로 법리상에서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내심으로는 오히려 진정으로 명백하지 못하다면 실천 중에서 해내기가 아주 어려우며, 수련의 효과는 분명 좋지 못할 것이다.

외지에서 나는 이런 한가지 일을 들었다. 동수 갑이 사악에게 잡혀 구치소에 갔다가 후에 석방되었다. 다른 수련생이 그에게 직장에서 그를 세뇌반에 보내려 하니 그에게 집을 떠나 한동안 조정기간을 가져 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이는 사악의 박해와 사악의 교란이므로 나는 절대로 그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 수련생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후에 직장에서는 확실히 그를 세뇌반에 보냈고, 3일 후에 그는 사악의 이른바 전화를 받아 들였다.

그 수련생은 나에게 말하였다. ‘갑’ 수련생은 평소에 수련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사악의 박해를 부정한다’라는 것이 많은 동수들 가운데서는 일종의 ‘구호’로 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련생이 하는 말에도 일정한 도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수련인이라 한다. 하지만 많은 때 우리는 ‘수(修)’ 와 ‘련(煉)’을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얼마나 큰 정도로 진정한 신사신법을 했는가? , 진정 자신이 부딪힌 일체를 모두 반대로 이용하여 자신의 좋은 일로 삼았는가?

사부님께서는 ‘98년 《유럽법회 설법》에서 말씀 하셨다. “당신은 생각해 보라. 무엇을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가? 당신은 다만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였지만 실제로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진정으로 믿을 적에 당신의 언행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한 수련생이 나에게 그 자신의 2001년 현지 노교소에서의 한 단락 경력을 들려주었다. 당시 노교소에는 ‘전화’되지 않은 사람이 몇 사람 안되고 나머지는 모두 ‘전화’되었다. 사악한 소장은 이곳의 ‘전화율’이 100%에 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몇 사람과 ‘공방전’을 벌렸다. 한 번은 소장이 그를 찾아와 담화하면서 72시간 내에 ‘전화’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전 노교소의 졸개들을 시켜 그를 때릴 것이며,“맞아 죽어도 개죽음일 것이다!”하고 부르짖었다. 그는 이번 삶의 목적이 바로 수련과 정법을 위한 것이며, 생명은 대법이 준 것이란 것을 알고 정말로 꿈쩍하지도 않았다. 사악은 이 72시간 안에 공포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참 있다가는 아직 세 시간 남았다 하고 말하는가 하면 배불리 먹고 잠시 후에 우리의 ‘교육’을 잘 받아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서 조용한 마음으로 이를 대했다. 사악한 졸개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몰려 왔는데 저마다 술에 취하여 입으로는 쉴새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방에 두 줄로 꽉 차 있었다. 그때 그는 아직도 ‘전화’되지 않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일체는 대법이 주었다. 맞아 죽는다 해도 나는 원만될 것이다. (그때는 그저 이런 인식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때리지 않겠는가 하고 묻자 그 사람은 소장이 회의를 하고 있으니 소장이 오면 다시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소장의 이번 회의가 몇 시간이나 걸릴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 몇 시간 동안 집안의 공기는 굳다 못해 질식할 정도였다. 한 무리 깡패 졸개들이 손에 사람 때릴 물건을 쥐고서 흉악한 신과도 같이 그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기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사부님만 생각하고 대법만 생각하였을 뿐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의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소장이 왔고 그를 보면서 아직도 ‘전화’하지 않았는가 하고 묻자 그는 ‘전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각 밖에도 소장이 손을 저으면서 당신들 모두 돌아가라! ‘전화율’도 100%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이후부터 나도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 하고 말하고는 그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버렸다.

그들이 간 후 그는 정말 나중에서야 두려워졌다. 만약 그때 조금만 두려운 마음이 생겼더라면 그 큰 몽둥이는 분명히 그의 몸에 떨어졌을 것이며, 육체적인 고통은 말하지 않더라도 만약 정념이 없었더면 자신의 수련에 얼마나 큰 손해를 주었을지 모를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비할 바 없이 견정한 정념이 있는 것을 보시고 정념으로 이 관을 넘도록 가지해 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 자신은 근본적으로 이 대관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매 개인이 비록 수련 중 부닥친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만은 같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은 ‘사악을 부정한다’하면서 도리어 표면상 사악을 부정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원인을 캐어 보면 바로 기점이다. 사악의 교란은 위사한 것으로서 병업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시간상, 감정상이거나 아니면 잡히고 맞고 박해로 치사하거나 등등을 막론하고 말이다. 그들이 교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서 무슨 꼬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사악은 나쁘고 그는 바로 파괴를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금강부동한 위대한 신이라면 그 어떤 사악이라도 우리 곁에 얼씬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법 중에서 산발하는 불광은 진작 그런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 버렸을 것인데 왜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교란에 부닥쳤을 때 많은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란 개인 득실과 개인 감수이지 전체적인 각도로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생각해 보자. 우리가 교란 당하는 것은 단지 우리들 일 뿐이 아니다. 우리가 교란 당하면 그럼 중생구도의 일은 지체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자신이 평온하게 세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증할 수 있다면 이건 중생구도를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가 점차적으로 우리 신의 일면을 깨어나게 한다면 그 무슨 장애가 우리를 장애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만약 이런 것을 자신을 보호하는 빌미로 삼는다면 그건 다만 자신이 자신을 속일 뿐이다.

우리는 수련인이다. 수련 중에 착오를 면하기 어렵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땅히 될 수 있는 한 잘해야 한다. 무엇을 깨달았다면 될 수 있는 한 해야 하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수련을 위해서 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들을 구도할 신성한 사명을 지니고 왔으므로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개인 견해로서 참고로 드릴 뿐이다, 부족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2/14/214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