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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지심을 제거하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자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2월 7일】 벌써 2년 전에 이 글을 써야 했지만 여러 가지 사람마음으로 인해 쓰지 못했다. 명혜주간 206호에 《남여 혼인문제에 대한 재인식》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자신의 생각과 소견 및 법에서 바로잡은 과정을 써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중년에 남편을 잃고 독신으로 살아오면서 속인으로 있을 때에도 색 방면에서 비교적 담담하다고 여겨왔다. 지금은 수련하니 이 부분에서 나는 꼭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가정을 다시 꾸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당시(7.20 이전) 법 공부가 깊지 못해 법리를 잘 깨닫지 못했다. 다만 사부님께서 “우리 이 한 법문,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이 한 부분은 당신에게 화상(和尙)이 되고, 비구니가 되라는 것이 아니며,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전법륜》)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나는 젊은이가 아니므로 재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법 인식이 제고되면서 “욕과 색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한다.”(《전법륜》)는 사부님 말씀을 보고 만약 내가 재혼한다면 색욕문제가 생겨 사람의 집착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 재혼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동수들이 좋은 마음으로 배우자를 여러 명 소개해주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나중에 수련 중에서 일부 방면에서 잘하지 못하여 흑수가 틈을 타 박해받게 했고 행동이 곤란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집안 일도 동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때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동수들도 모두 바삐 보내고 있는데 나까지 와서 도와주는 것에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자연히 가정을 이룰 생각을 했지만 또 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 시기에 명혜주간을 열심히 보면서 혹시 어느 수련생이 이 방면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있으면 수련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체 이 방면의 글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전법륜》을 정중하게 앞에 놓고 두 손을 모아 허스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제자는 색욕이 없습니다. 다만 생활상에서 동수들의 도움을 받게 되어 동수들의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괴로워서 가정을 이루려고 생각하는데 괜찮은지요?” 라고 하고는 두 손으로 전법륜을 펼쳤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그가 보니 큰길에서 한 사람도 없이 조용했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모두 배치하셨는데 이 길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더 무엇을 추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포기하고 무조건 사부님께서 시키시는 것에 따라 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색도 없고 욕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약 반년 전에 우연한 사건을 겪었는데 그때 나는 스스로 생활을 자립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길에서 진상을 알리던 중 한 대법제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외지에서 왔는데 우리는 수련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는 현재 자신이 배우자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동수에게 나의 상황을 말하지 않고 아무런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냉정하게 나의 일념을 돌이켜 보니 나는 원래 색과 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있었다. 정말로 색도 없고 욕도 없었다면 그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염두는 나 자신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 그것이 매우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류 사회에서 사람들은 팽창된 색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속에 빠져있다. 심지어 손자를 둔 팔순이 넘는 사람마저 텔레비전에 혼인 광고를 내고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행위가 아니다. 오늘날 사회는 변이되었고 사람들은 이미 도덕규범이 사라졌으며 동성애, 성해방, 불륜으로 가득 차 있다. 대법제자는 무조건 대법에 동화되어야 하며 사부님이 배치하신 수련의 길에서 순리에 따르면서 수련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바르게 걷는다면 구세력은 감히 박해하지 못한다. 수련은 간고한 것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제외하고도 수련의 길에는 또 고생과 난이 있으며 그것은 또 자기 업력의 일부분이다.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의 길에서 각 층차에 배치해 놓으셨고 그것을 이용해 우리의 의지를 단련시키며 심성을 제고하게 하셨다. 이런 고생과 난은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에 빚진 것으로 자신이 반드시 정확하게 대해야 하며 감당하고 갚아야 한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는 것으로 이 길을 우리가 사람의 방법으로 그것을 개변시킬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역사상에서나 고층 공간 중에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볼 때 사람의 욕망·색 이런 것을 아주 주요하게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이런 것을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우리 지역에는 아직도 정에 끌리고 있는 동수들이 있다. 수련의 최후시기에 이르렀지만 마비된 상태로 뉘우치지 못한다. 우리는 반드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색심을 제거해야한다. 일사일념을 엄숙히 대하며 정념으로 후천에 형성된 관념을 철저히 제거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법을 스승으로 삼아 최후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한다.

합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2월 7일 a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2/7/14844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