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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으로 대천을 보면서 신통이 차츰 소생하다

글/ 대련(大连)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0월 9일】신통에 대하여 나는 몇 편의 교류문장을 썼었다. 어떤 일은 들으면 마침 마술 같지만 그러나 사실 불법 신통이 나타난 것이다. 생활에서 항상 신통을 응용하려고 생각했는데 신념이 더 강하여 신통을 더욱 마음대로 응용하기를 희망했다. 오늘 이 방면의 교류 문장을 다시 쓰는 것은 늘 인터넷에서 불법 수감 당한 동수들이 매우 엄중하게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매번 볼 때 마다 나는 늘 매우 심통한 동시에 속으로 무엇 때문에 신통을 쓰지 않는가 하고 소리친다. 당신에게는 무엇이나 다 구비되어있고 온 몸에 법기와 보물인데 무엇 때문에 가져다 쓰지 않는가?

기억하건대 2000년에 내가 마삼가(马三家)에 불법 수감되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아름다운 한 떨기 꽃이 앞에 있었다. 나는 오른손 식지로 그것을 찍으면서 속으로 그것의 색깔이 변하라고 생각했더니 곧 바로 변했다. 나는 또 몇 번 찍어댔는데 무슨 색깔로 변하라고 하면 무슨 색깔로 변하여, 나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깨어났다. 지금 보아하니 꿈속의 신통은 차츰 차츰 현실에서 발생했다.

사부님께서는『샌프란시스코 설법』에서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은 몹시 저능(低能)한 것이다. 어떤 정도에까지 저능한가?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완성하려고 한다면, 한 가지 일을 하는데 직접 손발을 움직여야 하며 당신의 육체노동을 거쳐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부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부처는 오로지 사상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 부처는 많은 신통이 있고 많은 공능이 있으며 그 자신은 또 강대한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의 매 미립은 모두 그 본인의 형상이며 그 미립은 또 더욱더 작은 미립으로 조성된 것으로서 모두 그의 형상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가 척 생각할 때에 그 공은 곧 나간다. 극히 미시적인 데서 모두 그 부동한 층차의 입자의 구조를 바꾸며 시간 또한 가장 빠른 공간의 시간이기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부처가 일을 함은 대단히 빠른 것으로 우리 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일순간에 그는 가장 기초적인 데서부터 그 물체를 다른 물건으로 바꾼다. 이것이 바로 불법신통이 작용을 일으키는 원리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이런 설법은 나의 심령을 열어 놓았다. 비록 나의 천목은 닫혀 있지만 내가 매 번 신통을 응용할 때 마다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사상이 미시적으로 들어가서 한번 보고 다음 한번 생각한다. 그러므로 표면이 개변될 때 나는 특별히 의아하게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지구상의 인류가 일찍이 매우 큰 신통을 구비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황제가 치우(蚩尤)와 대전을 벌일 때도 모두 매우 많은 신통을 응용했다. 내가 생각 하건대 그때의 사람은 만약 시끄러운 일에 봉착하면 제일 먼저 신통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중에 사람이 갈수록 자사적임에 따라 신통도 갈수록 효과가 없었고 나아가서 사람이 더욱 나쁘게 변하여 곧 모든 신통을 잃었으며 사람은 곧 자신의 두 손으로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속인들은 자신의 선천적인 본성과 재간을 완전히 잊고 불법신통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하며 신통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이것이 마술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사람의 슬픔이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만약 오늘 아직도 자신과 혹은 수련생이 신통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의 매우 중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제에서 만약 자신이 늘 신심이 없다면 사실 역시 신사신법이 없는 표현이다. 사부님은 여러 차려 설법에서 대법제자는 지금 사실 무엇이나 모두 구비되었다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대법제자라고 자청하지만 도리어 자신이 신통이 구비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가?

무엇이 우리가 신통을 나태내는 것을 저애하는가? 바로 사람의 후천적 관념이다.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이다.(『정진요지』「경언」) 이런 관념은 사람의 표면 한층 신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여러 층 표면 신체에 모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의 끈질긴 신심과 부동심으로 이런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돌파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본래 내가 선천적으로 구비한 본능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위대한 대법을 수련하는데 응당 이런 본능을 찾아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이 평시에 이 방면에서 후천의 관념(사람의 습관, 버릇)을 속히 버리지 않고 늘 자신의 신통을 응용하지 않는다면 일단 사악의 박해를 받을 때 매우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박해 중에서 자신의 불법신통을 응용하여 반 박해를 할 생각마저 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때릴 때 단순히 육신으로 막는다면 아무리 견강해도 상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이 평시에 매우 자유롭게 신통을 응용한다면 그때에 가서 자연히 신통을 응용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사부님께서 반 박해 중에서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억하건대 마삼가(马三家)에 불법 수감되었을 때 사악은 강박적으로 예방주사를 놓았는데 나는 당시 사부님께서 이 약물을 다른 공간에다 옮겨주십시오, 나는 이것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하고 일념을 했더니 팔에다 주사를 맞았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으며 맞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신변의 몇 십 명 사람은 주사를 맞은 부위가 모두 섞었으며 매우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나았다. 오늘에도 인터넷에서 사악이 독침, 전기침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졸렬한 것들은 지금 대법제자들에게 응당 아무런 소용도 없어야 하며 또한 우리들 자신이 일념으로 독침약물이 박해자 몸에 전이하라고 하면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아직도 어떤 동수들은 독침의 박해를 받으면 정신이 맑지 못하고 중독이 되는가? 이것은 혹시 그 병사처럼 만약 평시에 훈련하지 않는다면 전쟁터에서 수중에 있는 무기마저 익숙하지 못한데 이때 적이 온다면 결과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평시의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통을 응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경 우리들은 이미 천백 년도 쓰지 않았으며 또한 지금 아직 사람의 몸도 이탈하지 못했고 낡은 세력이 안배하여 봉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을 응당 돌파하고 사부님이 안배한 길로 가야 한다! 미래의 우주를 위하여 이 방면의 위덕과 증거를 남겨야 한다!

당연히 신통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성의 부족함을 검측하게 된다. 만약 일부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면 신통이 나타날 수 없다. 예를 들면 과시심, 환희심 등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도 있는데 예를 들어 그런 기적들은 대부분 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좀 지나야 나타난다. 여기에는 나 자신의 요소 외 또 무슨 요소가 있는지 나도 지금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진안으로 대천을 보면서 신통이 차츰 소생한다.”이 마디 말은 자신이 친히 신통을 응용한 하나의 체험이다. 만약 우리들이 대법이 열어 놓은 진안으로 이 대천세계를 볼 때 많은 집착심을 버리게 되며 이런 집착심이 아주 적을 때 심지어 순간에 소실될 때 그 쪽의 불법신통이 산생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어떤 때 내 앞의 일체 물건들이 내 심령 ‘진안’의 주시 하에 그렇게 멀고 희미하게 변한다. 이 공간의 모든 일체는 모두 무수한 입자, 성긴 것이 떠돌아다니는데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하게’ 변한다. 이때 나의 마음이 또 여기의 무엇을 집착하겠는가? 내가 신통을 응용할 때 바로 자신의 ‘사상’(신념(神念))을 이런 ‘투시’상태로 들어가서 진념을 하게 되면 왕왕 바로 되는 것이다. 당연히 지나간 다음에도 얼마나 신기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 신기함도 사실 역시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도리어 해내지 못하면 이상하게 느끼며 이럴 때는 자신의 심성에서 무엇 때문에 이번에 나타내지 못했는가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련생이 신기에 대하여 의심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의 완고한 사람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이 사람 마음은 하나의 견고한 자물쇠 이고 자신의 불법 신통을 안에다 잠가 버리며 이 자물쇠의 상표에는 ‘불가능’ 이라고 찍혀 있다. 만약 한 수련인으로서 이 자물쇠를 열지 못한다면 이 사람 마음은 견고한 자물쇠가 되어 자신이 선천적으로 소유한 위대한 불법 신통은 영원히 나타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공능은 본디 작은 재간이요 대법만이 근본이노라”(『홍음』 「정법문을 구하다」)라고 이야기 하셨다. 그러므로 수련하여서부터 우리가 줄곧 마음을 수련하는 것을 1위에 놓으면 그 어떤 공능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잘못 가게 된다. 나는 96년 6월에 법을 얻고 이미 13년을 수련 했으며 막 사십 살을 넘겼다. 나는 이전의 수련에서도 그 어떤 공능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박해가 발생한 후 사부님께서 우리들더러 정념을 하여 신통으로 사악을 제거하라고 하시니 이때 법과 대조하니 자신이 이 방면에서 사부님의 요구와 차이가 너무 멀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년간 나는 이 방면의 수련을 중시했으며 또 인터넷에 접속하여 동수들과 이 방면에서 교류했다.

대법이 세간에서 전한지 짧고 짧은 십여 년간 우주의 경천동지의 갱신, 변화에 따르는 동시에 우리의 매개 대법제자들은 환골탈태하게 변하여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걸어왔다. 모든 마음을 놀라게 하는 일체는 대법의 불가사의한 위대함과 휘황함을 실증한다.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거니 부처의 은혜가 천지를 이루노라” (『홍음2』「사도은」) 세간의 모든 언어를 다하여도 우리의 심령 심처에서 위대한 사부님의 자비하고 고심하신 구도에 깊은 은혜와 심심히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사악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대법제자는 신을 향해가는 최후의 길에서 응당 낡은 세력이 가로 막은 것을 타파하고 정신을 차리자! 우리는 신의 최후의 길에서 더욱 정진하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며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0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9/2098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