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오직 자비롭고 순정한 심태라야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글/ 흑룡강 농촌 대법제자 심자(心慈)

【명혜망 2009년 7월 12일】 정법 노정은 최후 시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명혜주간’을 통해 많은 동수들이 배포한 진상자료는 악인 혹은 사악이 조종하여 통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훼손하고 심지어 태워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훼손된 자료를 목격한 적이 있으며 배포한 자료가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악이 조종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이 죄를 범하게 했다. 여기서 명혜의 일각을 빌어 나는 2년간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두근거리던 데로부터 심태가 순정하고 자비로우며 상화롭게 된 데 이르기까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로 걸어온 체험을 쓰고자 한다.

2006년 겨울 나는 외지에 가서 일했는데 그 공장 주방에 있던 폐지 더미에서 무의식 중에 앞, 뒤가 없는 몇 권의『9평』을 발견했다. 그중 한 권은 표지가 찢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마음이 매우 아파 재 빨리 주어서 닦았다. 친척에게 물어보니 그가 아침 일찍 일어나 집집마다 문 앞에서 몇 십 권을 주었는데 대부분 불쏘시개로 썼다고 했다. 나는 당시 그에게 진상을 이야기했으며 또한 이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매우 후회했다. 비록 당시 많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진상을 알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진상자료를 훼손하는 사건은, 일년 전에 속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고 또한 내가 배포한『9평』을 찢긴 적이 있다. 법 공부한 시간이 짧아 법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함과 동시에 자신의 심성 문제에서도 찾지 않았고 이런 일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이런 사람들은 구할 약이 없다고만 여겼다.

한번은 어느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려고 하던 전날 다른 수련생이 그 농촌 친척집에 놀러가는 꿈을 꾸었다고 말할 때에야 나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대법제자가 구도하는 중생은 우리 생생세세의 친인이라고 제자를 점화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무엇 때문에 두근거리는가?

이때 나는 내가 처음 몇 번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의 심리 상태가 생각났다. 당시 금방 걸어 나왔으므로 표면상에서 아주 진정된 것 같았으나 속은 도리어 당황해 사람을 보면 피하고 전문 편벽한 곳에 배포했고 또한 자료를 적게 가지고 넓고 쉽게 폭로되는 곳을 동수에게 남겨 주었으며 어떤 때는 도로 중간으로 가면서 자료를 대문 안으로 던졌다. 말하자면 두려운 마음의 농간이었다.

지금 그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생각해보면 단지 두려워하는 마음만이 아니다. 두려운 마음의 배후에 숨겨진 근본적인 집착은 사심(私心)이었고 사심은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으로 선하지 못한 것이다. 착한 마음이 없으면 자비를 논할 수 없으며 자비가 없으면 형형색색의 각종 좋지 않은 것들, 대법제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마음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이 모두 각종 방면에서 표현된다.

그때 사부님의 점화로 깨달은 후부터 나는 매번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삼퇴를 권할 때면 자비롭고 상화한 마음으로 가서 하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었다.

우리는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발정념 중에 다음과 같은 일념을 더한다. ‘이 마을 중생들의 사람의 일면이 청성해져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친인이며 사부님의 부탁으로 당신들을 구도하러 왔다. 당신들이 모두 진상을 알기 바라며 당신들이 구도되기를 원한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며 친인을 구도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친척집에 놀러다니는 것처럼 친근해졌고 일종 상화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와 온 몸이 편안했다.

또한 매 한 부의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마다 이렇게 대하고 이렇게 생각했으며 매 한 부의 자료를 모두 조심하여 자료를 감아서 대문 안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 곳에 끼워 놓았다. (대문에 닿기 전에 안전하고 믿음직한 위치를 선택한다.) (종래로 아무데나 던져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농촌 마당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며 또 당신도 자료가 어떤 곳에 떨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더러운 곳에 떨어지면 세인에게 반발심을 조성하게 된다. 진상자료는 사악을 해체하고 청리하며 세인을 구도하는 예리한 무기이기에 반드시 자비롭고 상화한 심태로 가서 해야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비는 안 좋은 일체를 용해시켜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할 수 있도다.”(『홍음 2』「법정건곤」)

만약 당신이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심태가 순정하지 못하면 사악은 사람의 악한 일면을 이용해 파괴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자비롭고 상화한 마음을 품고 가서 한다면 당신의 심태가 순정하기에 사악이 틈 탈 기회가 없다.

여기에서 나는 또 동수들과 위 화제와 좀 떨어진 문제를 담론하려 하는데 사실 모두 자비와 관계되는 것이다. 나는 여러 기 ‘명혜주간’에서 동수들의 교류문장을 보았는데 문장을 구성하는 언사, 어투 방면에 질책하는 것과 같은 경향을 발견했다.

자신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정진함이 부족하여 노 제자 또는 정진하는 동수에 비기면 법리에서 인식함이 얼마나 차한지 모르므로 경솔하게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 동수들과 담론할 수 있는 한 차례 기회라고 여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이 이치를 어떤 사람은 단번에 인식했으며, 어떤 사람은 천천히 깨닫고 천천히 인식했다. 어떻게 깨달았든지 안 될 것이 있는가? 단번에 인식하면 더욱 좋고 천천히 깨닫는 그것도 되는데, 모두 깨달은 것이 아닌가? 모두 깨달은 것이므로, 어느 것도 괜찮다.”

내가 생각하건대 연공하는 사람은 천천만만이며 매 수련자의 층차가 부동하므로 이치의 깨달음도 부동하다. 그러므로 천차만별의 어법이 있을 것인데 이것도 정상이다. 먼저 깨달은 매 동수들은 철저히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수련생을 구하기 위하여 깨달은 법리를 명혜망에 올리는 것을 통해 더욱 많은 동수들과 공동으로 제고하기 위해 언사에서 좀 격동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자비롭고 좀 적게 질책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의 홍대한 마음은 우주 만사만물을 포용하며 수련의 종지는 자비이다. 어느 방면이던지 막론하고 모두 대법제자의 위대한 자비심을 나타내야만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당연히 여기에서 정진하지 못하고 나중에 걸어 나온 동수들이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은 느슨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말한다: 스승님께서 수련은 서서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서서히 하자. 그건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불법(佛法) 수련에서 당신은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한다.”(『전법륜』)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7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7/12/20433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