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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의 문장을 읽고 자신의 사람마음을 제거

글/하북대법제자 류화명(柳花明)

【명혜망 2009년 4월 13일】 매일 명혜망에서 《자신을 내려놓은》 한편의 문장을 본다. 그중 한 단락이 나에 대한 촉동이 아주 컸다.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강렬히 집착할 때 우리의 마음은 긴장되며 두려워한다. 우리는 온갖 방법을 찾아 시간을 아끼려 하는데 부모님과 함께 산보하는 것도 시간을 지체할까 두려워하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지체할까 두려워한다. 우리는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다투어 절약하는데 사실 이는 이미 시간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하는 것이며, 자신을 제고와 원만에 집착하는 것이다. 우리역시 부모님과 함께하는데 부모님들은 왜 우리를 원망하는가? 이는 당신이 마음을 써서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집안 일을 하는데 가족들은 왜 불평을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내가 책을 읽어야 하며 제고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사(私)를 내려놓은 것이다. 사를 내려놓아야만 선타후아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할 때는 곧 각자(覺者)의 풍모와 여유가 있어야 하며 무슨 일은 하든지 모두 편안하고 진지하게 제대로 해야 하며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동수의 말에는 아주 도리가 있었다! 나로 하여금 마음이 확 트이게 하였다. 시간에 대한 집착은 본래 정법이 결속하는 시간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며 또 더 깊은 곳에서 자신이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에도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구나!

수련생이 말한 것을 보고 자신을 비교해보니 정말이지 하늘과 땅의 차이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예를 들면, 어제 나는 마침 컴퓨터 앞에서 법공부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서는 기어코 나더러 신선한지 맛을 보라고 했다. 나는 즉시 “저는 이러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면서 냉정하게 거절했다. 사실 그녀가 나의 법공부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 한마디로 자른 것인데 이는 시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좋은 마음으로 먹어 보라고 했는데도 도리어 받아들이지 않다니!’ 그 순간 나는 자신의 사(私)를 보아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남편이 “당신 오늘 물건 사러 가면서 장모님도 뵙고 와!”하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는 내가 너무 자주 오면 돈을 낭비한다고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자신의 법공부에 영향을 줄까 두려웠던 것이다. 남편은 나의 이 말에 불쾌해 했다. ‘좋은 마음으로 당신에게 어머니를 만나보라고 했는데 어째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가?’ 이 순간 나는 자신의 사를 보았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늘 나에게 밥 먹을 때 반찬이 없고 반찬이 너무 간단하다고 투덜거렸다. 남편 역시 내가 집안 일을 너무 적게 하며 오직 법만 본다고 탓했다. 나는 비록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들의 질책을 받아들였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반찬을 만들고 집안 일을 하면 법공부 시간을 지체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자신의 사를 보아냈다!

나는 온 종일 단지 컴퓨터 앞에서 법을 공부하고 문장을 썼는데(내가 하는 일은 주말에만 바쁘다) 종래로 가족들의 감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제고만 생각하면서 도리어 다른 사람도 나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시어머님이 내게 그렇게 잘 대해 주셨지만 나는 도리어 냉담하게 대했고, 남편이 나와 어머니에게 관심을 가져도 도리어 전혀 감격하지 않았다. 모친이 나를 키워주셨지만 나는 도리어 문안인사조차 모두 미뤘으니 찾아뵙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아들은 아직 어리고 한창 성장할 시기인데 무엇 때문에 시간을 조금 내어 몇 가지 반찬을 더 해주지 못하는가? 이것이 어찌 ‘무사무아, 선타후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어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 비록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밤낮 끊임없이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체계적으로 두 번 읽고, 『전법륜』도 두 번 외웠지만, 법공부를 아무리 많이 했다 해도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법의 표준에 따라하지 않으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는 헛배운 것이 아닌가?

새벽에 사부님의 설법을 보는데 갑자기 사부님의 한 구절 법이 나의 오래 침전된 사심(私心)을 깊이 촉동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때문에 수련 중에서 단지 당신이 상상한 것과 같이 수련을 제외하고 이것이 주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타 모든 일이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가정이 중요하지 않고 사회가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선 안 된다. 그러한 관계를 잘 평형 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예전에 이 법을 공부할 때는 이 구절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오늘은 무거운 망치처럼 여러 번 나의 사심을 두드렸다! 마치 방할처럼 그런 자비로운 한방으로 나로 하여금 단번에 깨우치게 했다! 사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제자를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마음을 제거해 주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려 동수의 이 한 단락 문장을 보게 하셨고 “제고를 집착”하는 나의 증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게끔 안배하셨다! 그리고 또 법 속에서 관련된 단락을 보여주시어 사람마음을 버리게 하셨으며 진정 ‘무사무아’한 각자로 수련하게 하셨다. 사부님!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정진하는 동력과 강대한 정념으로 삼아 3가지 일을 잘하여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내가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이런 사람 마음을 제거하리라 결심하고 그것을 폭로했을 때 마음은 아주 투명해졌다. 마치 그 화강암이 소실되어 흔적조차 없이 종적을 감춘 느낌이었다. 온 몸이 아주 가벼웠다! 정말이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막다른 골목에도 길이 열린다”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원용하여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특히 “위로는 노인이 있고, 아래로는 아이가 있는” 우리 중년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가정을 잘 평형 시켜야 하며, 노인을 잘 돌봐야 할뿐만 아니라 아이도 잘 교육시켜야 한다. 또 자신의 남편과 아내에게 관심을 갖고 자상하게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만년의 큰 연분으로 비로소 금세에 한 가정을 이룬 것을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들을 잘 인도하여 법을 얻게 해야 하고 그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진상을 명백히 알게 하고 이를 통해 진정으로 구도받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문장완성:2009년 4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4/13/19886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