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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마저 해친다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19일] 속인들 중에는 모순과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선 남을 탓하며 원망하고, 책임을 남에게서 찾을 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는다. 많은 동수들에게도 수련 중에 이 같은 속인의 사유와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있다. 모순에 봉착하기만 하면 우선 실망한 다음 바로 남이 어떠어떠하다고 원망하며, 더 한심한 경우 원한을 품고 악담을 하기도 한다.

원망을 품는 것은 사람 마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일종의 강렬한, 늘 볼 수 있으나 또 잘 발각되지 않는, 밖을 향해 찾고 안을 향해 닦지 않는 표현이다.

우리 원망의 결과를 보기로 하자.

사람을 해치다

1, 속인을 원망하게 될 경우 법을 실증하지 못하고, 대법 형상에 영향을 주며, 또 상대방을 쉽게 해칠 수 있다. 우리 시의 한 수련생이(여) 세뇌반에 불법 체포된 기간동안 그녀의 남편이 대법 책과 자료를 전부 태워 버렸다. 그녀는 돌아온 후 이지적이지 않고 원망과 증오를 품고 남편과 늘 모순을 일으키면서 크게 화를 내고, 집안일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와 교류를 했더니 그녀는 ”누가 그에게 내 책을 태워라 했는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당신 자신을 수련하라고 했더니 그녀는 “그도 수련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녀 남편은 책만 보았을 뿐, 후에는 수련하지 않았다) 많은 동수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유해도 효과 없었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사당의 올림픽 개최 전, 같은 회사에 있던 한 동수와 함께 납치 되었고, 다른 네 수련생은 구출되어 무사히 집에 돌아 왔지만 그녀만 노동교양 1년 6개월의 판결을 받았다.

우리는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으로만 말해서 될 것이 아니며, 또한 발정념을 할 때 읽는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모두 법에 부합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로지 두 갈래 길만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인데 한 갈래는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고, 한 갈래는 구세력이 배치한 것으로서 중간 길은 없는 것이며, 조금만 빗나가도 구세력의 길에 오르게 된다. 우리는 집착이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만큼 대조해 수련하고, 인식한 다음 버리면 되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구세력이 감히 틈을 타지 못한다. 하지만 장시기 동안 버려야 할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바로 구세력의 길을 걷게 되는 것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원망하는 정서를 지니고 있으면 정념이 있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흔히 정서에 이끌려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부 일을 하게 된다. 나의 시어머니는 나의 수련을 교란했는데 한 때 남편에게 나와 이혼하라고 충동하였으므로 나는 그녀를 미워하였고, 그래서 그녀의 모든 행위를 바로 보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녀에게 좋게 대해 남들이 나를 효성스럽다고 했지만 나는 동서하고는 늘 시어머니의 흉을 보았다. 옳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겐 괜찮았지만 어떤 땐 대법에 대해 불경스런 말을 하였는데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 버렸을 때에 와서야 비로소 일체가 평화롭게 될 수 있었다. 며칠 전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녀를 모시고 신운 만회 시디를 보았다. 원래 점심시간에 잠자는 습관이 있던 시어머니였지만 끝까지 공연을 다 보고 나서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더는 예전처럼 반감섞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의 요소 외에도 이는 내가 자신을 수련 했는가 안 했는가 하는 차이가 가져온 것이었다.

2, 동수에 대해 원망할 때는 흔히 상대방 동수에게 확실히 일부 표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원망은 자신의 착하지 못한 것(不善), 심지어는 악과도 같은 것으로서 좋지 못한 그런 물질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란, 당신이 원망할수록 문제는 더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순과 간격을 조성하게 되어 구세력의 속임수에 바로 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시의 한 노년 동수 갑은 수련 후에야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고, 이미 퇴직했지만 또 봉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휴가마저 없을 만큼 바쁘면서 몇 번이나 병 위급 상태가 나타났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더는 출근하지 말도록 권했더니 그녀는 노여워하면서 내가 그녀의 수련을 교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 기타 수련생을 찾아가 권유하도록 했지만 그녀는 매번 부동한 구실로 발뺌 하였다. 후에야 나는 그녀가 주요하게는 주민회의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출근했음을 알았고 또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변 동수들 거의 모두 그녀에 대해 견해가 있었지만 그녀는 도리어 여전히 원래의 길로 걸어가면서 고치려는 생각이 없었다. 더욱 엄중한 것은 그녀가 서서히 여러 사람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주변 동수들과 아주 큰 간격을 형성하게 되어 수련 상태가 어떠하였는지를 생각만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여러 사람의 원망이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게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해치다

원망 자체가 바로 밖을 향해 찾는 것이고, 일종의 강렬한 집착심이기 때문에 흔히 원망하게 되면 쉽게 성미가 거칠고 급해지게 되어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은 평정이 되기 어려운데 이때는 속인이라도 역시 이지적이 못되고 청성하지 못할 것인 즉, 자연히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수련인이라도 이때는 지혜가 없어지고 사람마음과 나쁜 생각을 조장할 것이며,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좋지 못한 그런 물질도 강화될 것이다.

나는 한 가지 경험이 있다. 법을 실증하는 항목 중,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된 수련생은 늘 일을 잊어 버렸다. 처음에 나는 참을성 있게 지적해 주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불만이 차게 되었다. 사실 이때는 나의 거칠고 조급한 마음, 쉽게 급해지는 마음을 버릴 때였으나 나는 깨닫지 못하고 늘 상대방을 원망하는 흠을 고치지 못하였다. 한 번은 항목을 하고 있을 때 또 그가 일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비록 속으로 그리 조급하지 않다고 여겼으나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 속이 공백이 되는 듯해 하마터면 동수에게 발정념으로 도와 달라는 통지를 잊을 뻔하였다. 만약 오랫동안 이렇게 나간다면 이 항목의 진행을 영향 줄 것이었다. 그것을 회상하기만 해도 온 몸이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원망의 위해를 인식했을 때, 나는 이 부분을 써내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준비했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바로 내가 이 문장을 구상하고 온양하고 있을 때, 하루는 내가 빵을 찌려고 밀가루봉지를 열 때 머리 속에는 납치된 을 동수의 일이 생각났다. 오늘까지 동수 을의 정확한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 동수 을은 동수 갑이 매 번 생사관을 넘을 때마다 주야불문하고 보살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수 을에게 일이 생겼고, 동수 갑은 진상을 똑똑히 밝힐 수 있는 조건이 제일 좋으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으니 너무 양심이 없고 속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밀가루봉지가 열리지 않았고, 여는 구멍을 알고 있었음에도 열수 없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나 자신이 또 원망하기 시작했음을 의식하게 되었고, 바로 그 사실을 의식하는 그 순간에 주머니의 실이 스스로 풀리는 것이었다……

사실 원망을 하는 것은 마음의 용량이 부족한 표현이다. (속인은 속이 좁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며, 자아의 틀에서 뛰어나오지 못한 것이며, 나쁜 생각을 깨끗이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관용도 좋고, 표용도 좋고, 자아관념에서 뛰어 나와 문제를 보는 것도 좋은바 모두 일종의 경지로서 수련해 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에서 말씀 하셨다. “그들은 어떠한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에서 말씀 하셨다. “한 생명으로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할 수 있는 것과 표현된 관용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서는 말씀 하셨다. “나는 바로 당신들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을 생각(先他後我)의 정법정각의 원만으로 수련성취 시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사(私)를 제거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수련이 잘된 그 부분은 보증하고 방금 내가 말한 것과 같고 모두 이러하다. 그러므로 당신들 이쪽에서 볼 때 당신들이 문제에 부딪칠 때 자신의 원인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닦고, 안으로 향해서 찾으며, 다른 사람의 좋지 못한 것을 적게 보고, 일마다 내가 말한 대로 따라 할 수 있다면 사실 당신들은 바로 정진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늘 남을 원망하는 것의 뿌리는 사를 위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우리가 “무사무아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후에 나를 생각하는 정각으로 수련성취”하려고 한 이상 우리 이 근본적인 집착을 깨끗이 버려 버리자!

문장발표 : 2009년 3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3/19/1974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