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우리는 사부님께 이 마지막 시험답안을 어떻게 바칠 것인가?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23일】 《<명혜주간》 374회에 오른 문장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를 읽은 후 감상이 아주 깊다. 수련생은 문장의 서두에 “정법은 정말로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고, 원만 전의 시험도 진작 시작되었을 것이므로 ‘부처’와 ‘사람’을 선택하는 요긴한 시각이 정말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동수들, 당신들은 어떻게 대할 계획인가?”라고 썼다. 이는 확실히 하나의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깨나지 못하고 여전히 급해하지도 바빠하지도 않으면서 보귀한 시간을 모두 속인의 생활 속에 소모해 버린다면 나중에는 합격되지 못한 시험답안을 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달 전에 나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에 많고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다. 나는 시험장에 앉아 시험답안을 쓰고 있었는데 판단 문제를 쓸 때 한 문제도 알만한 것이 없었다. 시험 시간이 곧 끝나는데 아직도 쓰지 못했으니 급한 대로 앞에 앉은 한 사람에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도 대강 짐작을 하는데, 몽땅 체크를 하든지 아니면 몽땅 가위표를 하든지 하면 어차피 맞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것도 방법이겠다고 생각해 판단문제에 대해 몽땅 체크를 하였다. 시험답안은 다 쓴 셈이었으나 나의 마음은 자꾸만 불안하였다. 깨어난 후에 나는 이것은 사부님의 점화로서 나더러 시간이 얼마 없으며 원만 전의 시험은 곧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다지 정진하지 않았다. 시험지의 문제에 왜 대답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평소에 공부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도리로 우리가 평소에 법공부를 참답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잘 하지 않으면 나중엔 완미한 대 원만이 있을 수 없는데, 정법이 종료되는 그 날에 가서 우리는 어떻게 사부님을 대할 수 있겠는가?

대 원만의 시험답안이 어떠한가는 조사정법 가운데서 우리가 한 것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정법 수련에서 어떤 때 우리는 사부님 설법을 날마다 견지하여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법의 지도가 없게 되어 일을 틀리게 할 수 있다. 틀리게 하는 것은 두려울 게 없지만 틀린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을 귀정하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어떤 때는 어떤 일에 부딪치면 확실히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모를 수 있지만 오직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마음속에 ‘나’라는 것이 없으면 깨끗한 호신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나는 이런 일을 만났다. 한 수련생을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해 한 번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얼굴색이 아주 나쁜 것을 보니 ‘병업’ 상황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발정념 해주었고, 기타 동수들도 그녀에게 발정념 해주어 그녀의 공간장을 청리하였다. 그녀는 나와 반 달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법공부 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고 나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전화로 다른 동수에게 물어서야 그녀가 ‘병’이 더 중해져 먹지 못하고 먹기만 하면 토하여 상황이 몹시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수 셋이 가서 발정념 했지만 낫지 않았다. 나는 주소를 물어가면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 들어갔는데, 첫눈에 그녀를 보고 무척 놀랐다. 얼굴이 몹시 보기 싫었고 원래 키 크고 실하던 사람이 말라서 한 덩어리가 된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의 상황이 하루하루 엄중해지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먹지 않으면서 사부님이 자기를 고험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가족은 매우 반감을 가지고 나에게 물었다. “당신들 사부님은 정말로 약을 먹지 못하게 하는가?” 내가 말했다. “우리 사부님은 약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법리로서 수련과 약을 먹는 관계를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지금 밥 한 술도 먹지 못하고 우유마저도 마시지 못하며 마시면 토하니 정말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이 일 때문에 그녀와 가족은 각기 제 고집을 부려 관계가 아주 팽팽해졌다. 그녀는 인내성 있게 진상을 알려주지 않았고 단지 가족이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면서 내심적인 고뇌에서 자신을 해탈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부딪치면 안을 향해 찾으라고 하셨는데 그녀는 안을 향해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그녀는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기면서 가족에 대한 원망을 증오로 변화시켰고 자신과 남을 대립시켰는데, 이렇게 해서야 어찌 수련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비록 그녀도 법공부, 연공을 하지만 견지함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 마음도 조용하지 못하여 가족과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공부, 연공 한다는 것도 자신의 ‘병’이 나아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형식화로서 구하는 행위인데, 구한다는 것은 곧 집착이며 사악은 바로 집착을 틀어잡고 박해하는 것이다. 당시 누렇고도 허약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속인의 한 마디 말이 떠올랐다. “남자는 신을 신을까 두려워하고, 여자는 모자를 쓸까 두려워한다.” 뜻인 즉, 중병을 앓고 있는 남자는 발과 다리가 붓는 것을 두려워하고, 여자는 얼굴이 붓기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인데, 그건 바로 사람이 이젠 살기 어려워 생명이 막 끝에 왔다는 의미이다(이는 사람의 관념이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령 그녀가 정말 간다면 대법에 엄중한 부면적인 영향을 조성할 것이다. 이 몇 년 간 우리 직장에서 이미 대법제자 3명이 병업으로 연이어 세상을 떴던 것이다.

그녀 가족의 말에 따르면, 이튿날 병원에 갔는데 병원 사람들이 모두 그녀 가까이에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검사를 기다리는 그 사이에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검사 결과는 빈혈이었는데 수혈 후에 회복이 아주 빨라 3일간 입원하고는 퇴원하였다고 한다. 후에 그녀는 나에게 알려주기를, 그녀는 왜 ‘병업’이 점점 더 악화되는지 원인을 진지하게 안으로 찾아보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한 때 생명을 포기할 그런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가족과의 모순을 풀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수련할 공간이 없게 되자 그녀는 세상을 떠나 다른 공간에 가서 수련할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아마 이 착오적인 일념을 사악은 틀어잡고 그녀의 생명을 앗아가려 한 것일 것이다. 그녀가 ‘병업’ 가운데서 법공부, 연공을 견지하고 자신은 사부님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이미 생명을 버릴 것을 선택하였고 정념도 부족하니 사부님도 그녀를 관여하실 방법이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바르지 않아 불러온 번거로움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병’태가 일 년 동안 지속적으로 낫지 않았을 뿐더러 갈수록 중해졌고 그녀는 자신이 생명의 변두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부님은 말씀 하셨다. “만약 정념이 강하다면 사부와 호법신은 무엇이든 다 당신들을 위해 해줄 것이다” (《정원 대보름 설법》) 우리의 정념이 강하지 못할 때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병업’이 있는 동수께서 함부로 자신의 육신을 버리지 말기 바라는데, 좋지 못한 일사일념도 모두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련 중에 마땅치 않은 일을 만나고 얼마나 큰 모순을 만나든지 모두 사존님 말씀대로 하며, 안을 향해 찾고 정념정행 해야 한다. 지금 나타난 ‘병업’은 절대로 사부님께서 당신을 고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건 모두 우리가 정진하지 않아 불러오게 된 마난이며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박해임을 알아야 한다.

지난 해 부터 나의 원래의 직장과 주변 농촌 동수들 중에 7명이 입원 하였는데 어떤 사람의 병은 장시기 동안 끌었다. 어떤 사람은 병원으로부터 병이 위급하다는 통지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 나온 후에 수련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하였다. 이런 일은 직접적으로 그들 가족이 대법에 정확하지 못한 견해를 갖게 하였고, 따라서 세인구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나와 일부 동수들은 연 며칠 동안 우리 이곳의 이런 정확하지 못한 상태에 임하여 교류를 하였다. 우리 이곳 동수의 정체적인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세 가지 일, 특히 중생구도를 함이 좋지 못하였다. 나도 ‘병업’ 중의 수련생을 방문하여 그들과 교류하면서 일부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병업’의 마난 중에서 이런 동수들은 자신도 안을 향해 찾아보았고, 다른 동수들도 적지 않게 그들을 위해 발정념을 하였으나 효과가 너무도 미약 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이해한 상황에 따라 아래의 몇 가지를 총화 해냈다.

1. 법공부를 날마다 견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여러 날씩 하지 않았다.
2. 발정념을 견지하지 않고 중시하지 않았으며, ‘병’ 이 오면 많이 하고 나으면 적게 하거나 하지 않았다.
3.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 하지 않았으며, 어떤 수련생은 안전을 위해 종래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한다 해도 임무 완성 식으로 했다.
4. 사람의 관념이 많다. 어떤 수련생은 평소에 불편하기만 하면 약을 먹는데 실은 바로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인데 수련인 같지 않다.
5. 사람의 정이 중하여 집안일이 많다. 어떤 수련생은 집안일에 얽매이는 것을 수련상태로 여긴다. 왜냐하면 집안일을 하느라고 법공부, 연공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6. 어떤 사람은 돈을 벌려고 일하러 다니다 보니 대법 수련을 거의 포기하였다.

총괄해 말한다면 바로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란 문장의 말대로 한다면 바로 “속인의 일에 미혹되고 얽매여 기뻐하거나 걱정하면서 분발하지 못한다.”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음으로 하여 사악의 박해를 불러왔고,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 또 정념이 강하지 못하고 정진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우리를 고심히 구도해 주신 사부님께 죄송해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마지막 시험답안을 사부님께 바치겠는가? 여러분은 모두 마땅히 신중하고 진지하게 이 문제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상 만약 틀린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 허스.

문장발표 : 2009년 3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3/23/1975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