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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사업의 관계를 바르게 놓다

글 / 치치하얼(齐齐哈尔)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3일] 오랫동안 우리 지역의 일부 동수들은 줄곧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또한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속인과 마찰이 생겼을때, 속인이 악의적으로 고발하여 자신의 정상적인 생활과 수련에 번거로움과 손실을 가져왔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문제에 겨냥하여 우리는 교류해야 한다고 본다. 일하는 문제상에서 우리들은 의연히 의식하지 못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들이 수련과 일과의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하지 않았는가?

“많은 수련생들은 다만 연공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때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최후에는 걸어 나왔다. 사부가 당신들에게 이런 한 갈래 길을 배치해 주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걸어왔는가? 이 일체의 최후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련과정 중에서 이런 것들 역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 일이든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 편리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사람은 수련함에서 가히 출가하지 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속을 이탈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한다면 이 일체는 다른 하나의 어려움을 조성하는데 당신은 그 일체를 잘해야 하며 어느 방면이든 모두 잘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걸어나올 수 있다.” (<<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대법제자는 어디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어야 하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일을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비디오에서 일부 수련생들이 자신은 수련하러 왔지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는 우선 먼저 속인사회에 입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이 법문은 속인사회에서 열려져 있으며 형식상에서는 속인과 마찬가지이며 오직 일을하는 중,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대함에 있어서 체현되는 초상적인 경지가 속인과 좀 다를 뿐이다.

어떤 수련생은 사업과 수련의 관계를 바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세 가지 일은 매우 중요하고 사업은 중요하지 않다. 세 가지 일은 수련이지만 사업은 수련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인위적으로 수련과 일하는 것을 갈라 놓는다. 사회에서 일하는 것은 우리 생활의 기초이며, 역시 우리들이 수련하여 제고하는 환경이다. 이 일체를 탈리한다면 어찌 수련을 담론할 수 있으며 어찌 사람을 구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속인이 대법제자의 언행을 통해 내심으로부터 대법이 좋다고 느낀다면, 이 자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그들을 권하여 삼퇴하게끔 하는 가장 좋은 조건이 아닌가? 어떤 수련생들은 아르바이트할 때 업무가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하면서 손님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느라 분망하다. 물론 수련생이 중생을 구도하려는 마음이 간절한 정면적인 요소는 소중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탄복하게 한다. 다만 일하는 것과 수련의 관계를 바르게 놓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되면 중생구도를 더욱 잘하게 될 것이며 우리 자신들의 제고도 모두 그중에 있게될 것이다.

우리 이 법문이 속인사회에서 펼져졌고 최대한 속인사회에 부합되게 한 것은, 우리들이 더욱 광범위하게 속인과 접촉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의 아름다움을 봄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뿐만 아니라 조사정법 중에서 우리들이 하는 일체는 미래인들이 참조하게 하는 것으로써, 미세한 데로부터 홍관(洪观)한 것에 이르기까지 전체 우주체계의 원용에 관계되며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을 개척하는데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엄숙하게 속인사회의 사업을 대해야 한다. 단기간의 아르바이트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참답게 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어느 정도는 대법의 형상을 대표하고, 속인은 우리들의 언행을 통하여 법을 인식하며 심지어는 속인이 구도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수련과정은 상호간에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공동으로 제고하는 과정이다. 이 문장은 다만 일에 대하여 말한 것이지 사람을 견주어 한 것이 아닌 것으로, 취지는 공동으로 제고하는데 있다.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 2008년 9월 2일
문장발표 : 2008년 9월 3일
문장수정 : 2008년 9월 2일 21:52:58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9/3/1852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