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료중현(遼中縣) 대법제자 정서우쥔(鄭守君), 고문으로 치사당해(사진)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1일] 선양시(沈陽)시 대법제자 정서우쥔이 2006년 2월 16일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료중현 판자바오(潘家堡) 구치소에 납치당했으며, 료중현 구치소에 감금되었는데, 머리부위에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후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족들은 정서우쥔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2008년 8월 18일, 선양 경찰은 갑자기 전화로 정서우쥔의 가족에게 “감관병원(监管医院)”에 가서 정서우쥔을 만나라고 알려주었다. 가족들이 서둘러 도착했을 때 보게된 것은 도리어 정서우쥔의 시체였다. 중공악당 인원들은 박해 죄행이 폭로될까봐 두려워 현재는 이미 정서우쥔의 시체를 선양시 원관툰(文官屯) 화장터에서 비밀리에 화장시켰다.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폭로한 바에 의하면 정서우쥔이 박해당해서부터 화장하는 동안까지 그의 가족이 거처하는 곳(아내와 아이가 잠시 머무는 곳)으로 출입하는 사람은 모두 사복경찰이었다고 했다. 외부사람들은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더 정확한 소식은 얻지 못했으며 상세한 정황은 현재 조사중이다.

정서우쥔 남 45세, 집은 선양시 료중현 뉴신퉈(牛心坨)향에 있다. 1998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세 식구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아내와 딸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정서쥔의 심신의 건강한 변화를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정서우쥔은 전에 선양시 허핑(和平)구역 “팔일시장” 등지에서 장사를 했다. 주위의 많은 고객들은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는 개인사업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열심히 일하고 솔직하고 사람을 잘 도와주는 사람”, “장사를 하면서 근수는 절대로 속인 적이 없었고 또 더 많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고객은 “역시 쩐(眞), 싼(善), 런(忍)을 배운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지요!” 라고 말했다.

1999년 7월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정서우쥔은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권리를 견지하였지만 도리어 여러 번 사당(邪黨)에 의해 박해를 당했다. 2000년 말에 정서우쥔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진실한 정황을 반영하려다가 납치되어 불법으로 노동교양 3년을 받게 되었다.


대법제자 정서우쥔이 생전에 직접 당한 중공의 혹행을 보여주었다
대법제자 정서우쥔이 생전에 직접 당한 중공의 혹행 “사오지다워보(烧鸡大窝脖)”를 보여주었다

선양시 장스(張士)교양원은 정서우쥔을 압박하여 신념을 포기시키기 위해 그에 대해 장기적으로 여러가지 수단의 혹형으로 세뇌시켰다. 정서우쥔은 2004년에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에 직접 박해당한 혹형 “사오지다워보(烧鸡大窝脖)”를 시범했다. 당시 정서우쥔은 이런 혹형을 당한 아래와 같은 경과를 진술했다.

2001년 9월 27일 아침 7시 반에 장스교양원 경찰 스펑유(史鳳友)와 청뎬쿤(程殿坤)의 배후 지시하에 7~8명의 “도움교관(帮教)” 인원들은 나에 대해 세뇌를 진행했다. 내가 협력하지 않자 그들은 비공식적으로 나에 대해 큰 싸움을 벌였다. 나는 엄격하고도 정중하게 그들에게 “이런 비열한 행위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이 7~8명의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 올라 분노하면서 나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나는 몸부림을 쳤고 나의 발은 철기구에 베어 양말은 찢어지고 발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나중에 나는 철책상 아래에 짓눌리게 되었고, 그들은 먼저 나의 다리를 수평으로 바닥에다 고정시키고 약 네 명이 나의 발(두 다리는 30도 정도 각도로 되어 있었음)을 짓눌러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남은 몇 사람은 나의 목을 두 작은 종아리에 묶어놓고 나서 나의 등을 아래로 짓눌렀다. 나는 당시 건장하여 몸집은 크고 또 뚱뚱했는데, 당시 체중은 90kg이었고 배가 컸다. 평시에 앉아 있을때, 상반신과 하반신을 최대한 90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 도리어 나의 상반신을 짓눌러 하반신과 0도로 되게 하였고 배는 짓눌려서 양측으로 밀려나갔고 목과 복사뼈는 직선으로 되었다. 그리고 나서 침대 시트로 나의 목과 발을 같이 고정시켰는데, 나로 하여금 상반신은 조금도 치켜들 수 없게 하였다. 이때, 나의 얼굴과 복부는 동시 바닥에 닿았고, 그리고 나서 또 두 손을 반대로 묶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의 다리를 차면서 나에게 “또 연마할 것이냐? 만약에 연마한다면 계속 묶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뼈가 가루가 되어도 연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온몸의 근육이 모두 잡아 당겨져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고 만 개의 칼이 몸을 찌르는 것처럼 매우 고통스러웠다. 몸의 옷은 땀에 흠뻑 젖었고 바닥에는 물이 잔뜩 있었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몸부림치면서 지르는 소리가 매우 컸기에 경찰들이 상관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경찰들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고 또 가로막지 않았다. 사실은 바로 장스교양원의 경찰은 “기일 감수(减期)”와 기타 “느슨한 정책(宽松政策)”을 미끼로 하여 그들의 배후에서 “도움교관”(帮教)” 인원들을 부추겨 악을 행한 것이었다.

이 자세로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 정도 지속하다가 밥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인 12시가 되어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당시 나는 이미 활동능력을 잃었고 또 설령 끈을 풀어주어도 여전히 혹형의 자세로 유지하고 움직일 수 없었으며 조금만 부딪쳐도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발로 차고 또 꼬집고 나의 상반신을 억지로 쪼갰다. 쪼개는 과정에서 가슴과 폐가 찢기는 고통은 나로 하여금 거의 의식을 잃게 하였는데,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후 세 달 반 동안 나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고 발과 다리는 위치가 바뀌었고 발바닥은 위로 향했고 복사뼈는 바닥에 닿았으며 걸음을 걸을 때는 다른 사람이 부축해주어서야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2001년 3월 1일 전후에 장스교양원 관리과 부과장인 스펑유가 악인을 지시하여 정서우쥔더러 잠을 못자게 하고 또 보도블록에 고정시켜 놓아 무릎을 꿇게 하는 벌을 가하였다. 나중에 또 그의 머리를 강제로 두 다리 사이에 밀어넣고 끈으로 두 다리를 묶었다. 이렇게 치켜들고 5시간이 지난 후에야 끈을 풀어주었는데, 이때 정서우쥔은 이미 거의 의식을 잃었고 발은 부어서 빵처럼 되었고 다리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2년 설이 막 지나 전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전문관리대대” 교도원 쑹바이(宋百)가 2대대 몇 명 노동교양 범인 졸개를 뽑아 배치하여 파룬궁 수련생 정서우진, 류셴융(劉憲勇) 등에게 잠을 못자게 하고, 무릎을 꿇리고, 구타를 가하는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진행하였다.

정서우쥔이 잔혹한 혹형을 여러 번 겪고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자 노동교양소에서는 3개월을 초과하여 구금시켰으며, 2004년 봄이 되어서야 풀어주었다.

2005년 3월 1일에 정서우쥔은 민중들에게 파룬궁 진상CD를 배포하다가 순찰하고 있던 선양시 허핑구역 허베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 되었고 3월 3일에 선양시 허핑구치소로 압송되었다. 정서우쥔이 단식으로 항의하자 일주일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소식에 따르면 파출소에서 악경은 정서우쥔에게 강제로 짓누르고 이름모를 약물을 주입해주어 그로 하여금 병세가 다시 나타나게 하였다.

2006년 2월 16일 저녁 약 9시 즈음에 정서우쥔이 동료 파룬궁 수련생 추칭화(邱青華)과 함께 판자바오향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판자바오 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되었고 현지 610 사무실 책임자인 펑둥창(馮東昌), 국보대대장 리웨이(李偉), 판자바오 파출소 소장 주더전(朱德振) 등의 불법(不法) 인원들에게 잇따라 밤을 새면서 고문을 당했다. 그리하여 2월 17일, 료중현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판자바오 파출소와 료중현 구치소에서 정서우쥔은 모두 악경 리웨이 등의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정서우쥔의 머리부위는 맞아서 심한 중상을 입었고 중공사당 인원들은 소식을 봉쇄하면서 치료해 주지 않았으며, 가족들이 면회도 하지 못하게 하고 이 일에 대해 참견하지도 못하게 했다. 정서우쥔은 전에 단식 단수로 항의하여 엄중한 박해를 당했다.

2년 넘는 기간 동안 중공 사당이 소식을 봉쇄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정서우쥔의 어떠한 소식도 얻지 못했다. 2008년 8월 18일이 되어서야 선양 경찰이 가족에게 전화를 주었는데, 이미 정서우쥔은 고문박해로 치사한 상황이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상세한 정황을 보충해주기 바란다.

<<이번 정서우쥔 납치에 참여한 선양시 료중현과 관련된 회사와 전화번호(지역번호 024)>>

공안국 국장 더우훙량(竇洪良) (악인) 사무실전화: 87899199 , 집전화: 87800005, 핸드폰: 13840502006
부국장: 린융셴(林永憲) 사무실전화: 87897855, 집전화: 87800009, 핸드폰: 13604015000
부국장: 왕톄(王鐵) 87885023, 핸드폰: 13504988801

610책임인: 펑둥창(馮東昌)(악인) 사무실전화: 87883425 87822610, 핸드폰: 13504008811
안보대대책임인: 리웨이(李偉)(악경) 경호: 115225 핸드폰: 13604909119, 사무실전화: 87820003
즈융(智勇)(악경): 13604909562 , 딩궈챵(丁國强): 13514206868
판자바오 파출소소장: 주더전(朱德振)(악인) 핸드폰: 13898890033 사무실전화:87971419 87893455 87971410

료중현구치소전화:
구치소사무실: 024-87882061
구치소소장실: 024-87882638
구치소당번실: 024-87882250

선양시료중현 구치소 우편번호: 110200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8/9/5/100386.html)

문장완성 : 2008년 9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9/2/185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