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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관용, 정체원용

글 / 천진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1일] 친히 겪은 두 가지 일로부터 말해보고자 한다.

* 첫번째 일

나는 2004년 말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중에 악인에게 신고되었다. 현지 파출소에 납치당한 후에 악경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자료의 출처와 누구와 연계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내게 캐물었다.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한 악경이 악에 받쳐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깥의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네가 그들을 모두 말했다고 그들에게 알려 주어 그들이 너를 무시하게 할 것이다.”

그가 한 이 말에 대해 사후에 나는 자신을 깊이 찾아보지 않았다. 당시 머리속에 생각한 것은, 절대로 더이상 그 어느 동수도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되며, 더이상 박해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노동교양소로 납치되어온 후, 한 차례 면회 때 아이가 나에게 말한 한 마디 말이 나에게 준 진동은 매우 컸다. 내가 납치된 후 우리집에 더이상 동수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전에 나는 자료를 만들었기에 집에는 늘 동수들이 왔었다) 다만 한 어머니(동수)가 시장에서 나의 아이를 만났는데, 아이에게 사부님께서 네 엄마를 징벌했다는 등등의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이에게서 이 말을 들은 후 나는 참으로 더없이 고통스러웠다.(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당시 나의 머리 속에는 줄곧 ‘어찌하여 이렇단 말인가? 어찌하여 이렇단 말인가?’ 이 말 뿐이었다. 나중에 서서히 냉정해지기 시작했고 사부님의 《홍음2》를 반복적으로 암송하면서 묵묵히 자신을 격려하였다.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반성을 통하여 자신의 집착을 들춰보니 자신의 몸에 아주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음을 보아내게 되었다. 동수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마음에 둔 것은 명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었다. 비록 사람 가운데서 명을 따지지 않았지만 도리어 수련생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는 마음에 둔 것이었다. 장시기 동안 자신이 자료를 만들면서 주변의 칭찬이 점점 더 많이 들림에 따라 사부님의 경고를 잊어버렸고 점차적으로 환희심과 자아를 집착하는 마음을 키웠던 것이었다. 잠재의식 중에는 심지어 자신을 실증하는 물건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지만, 자신은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두번째 작은 일

노동교양소에서 사악과 배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죄인이 전담하여 나를 감시하였는데, 그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악경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돌아가면서 나를 세뇌시켰고 나중에는 더욱 심해져 감시원들마저 함께 각종 시달림을 받았다. 나는 마음이 점점더 괴로웠다. 그것들은 대법제자의 착한 마음을 이용하여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 마음, 사람의 정이 궤변을 부렸고 자신의 원활한 것도 폭로되어 나왔다. 문자 유희를 할 생각을 하여 수련인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일을 하였다. 일념지차라 그야말로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나중에 재빨리 청성해졌는데, 정념과 자기 마음속의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런 사심이 서로 겨룬 것이었다.(지금와서 생각하니 사실 당시 여전히 정념이 약했다. 위사위기(爲私爲己)한 그런 것은 원래 선천적으로 순진한 내가 아니며, 그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계속해 나갈 수 없다. 잘못한 것을 번연히 알면서 나간 다음에 다시 성명을 발표하고 폐지한다고 선포하는 그것은 여전히 자신의 사를 보호하는 것이다. 지금 곧바로 고쳐야 한다! 나의 몸에서 더이상 대법에 대해 부면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즉각 메워야 한다! 그리하여 악인들의 이른바 ‘전화검수(转化验收)’전의 담화 중에 악경에게 똑똑히 알려주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이홍지 대사님은 나의 사부님이시다.” 내가 말을 금방 마치자 악경은 괴상하게 집안에서 뛰쳐 나가더니 반나절이 지나서야 돌아왔다.(그때 나는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왜 나를 집안에 혼자 남겨두는걸까? 나중에 집에 돌아온 후 2005년 상반기의 설법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친히 체험했던 것이다. 사악은 대법제자의 정념적인 말을 들은 후 ‘되돌아 도망’갔던 것이다.) 돌아온 후, 그녀의 태도는 원래처럼 그렇게 오만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어쨌든 당신이 쓴 것을 되돌려주진 않을 겁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똑바로 알려주었다. “모두 쓸데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담화가 끝날 때 그녀는 화가 나서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게 만들테다.” 그리하여 이 이후의 오랜 동안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목으로 적지않은 분규를 연화해냈는데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모순을 포함해서이다. 나는 이런 가상의 배후는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 자신의 집착을 찾아낸 동시에 대법을 얻었던 사람들이 안에서 남을 전화시키면서 시비속에 뒤엉켜 분명하지 못한 것도 보았다.

이상의 두 가지 일을 통해 나에겐 하나의 반성이 있게 되었다. 어떻게 사악이 우리에게 형성해준 간격을 타파하겠는가? 동수간에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오해를 어떻게 없애겠는가? 나도 마땅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수련생을 잘 대해 주었는가? 나 자신이 한 것이 어떠한가? 그래서 이상의 내가 친히 겪은 두 가지 일을 예로 들어 이것으로 다른 각도로부터 자신의 약간의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하에서든지 모두 자신을 찾아보는 동시에 또 대법을 실증하는 기점에 서서 정체를 원용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구세력, 사악한 생명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중요한 목적에 도달하고자 할 것이다. 직접적으로 대법제자를 겨냥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또 기타 수련인의 사람 마음을 향한 것도 있을 것이다. 수련인 사이의 의심, 배척, 형성된 간격은 작은 일이 아니며 우연히 발생한 일이 없다. 우리 사이의 간격을 사부님께서 보시면 기뻐하지 않을 것이지만 마(魔)가 보면 기뻐할 것이다. 사악은 우리의 아직 닦아버리지 않은 사람 마음, 이를테면 의심, 질투심, 분별심, 자신을 집착하는 마음 등등을 이용하여 대법제자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게 하여 세인을 구도하는 이 대사에서 우리들의 정신이 분산되게 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사람 중의 화목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더욱 높은 경지로써 이해, 관용, 상호보충, 상호원용이다. 속인중의 각종 계책에는 이간계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 수련인은 법리가 분명하다. 표면적으로 보건대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그 배후에는 사실 모두 사악한 요소가 지배하고 있다.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시디롬을 우리도 모두 보았다. 외국 뿐만 아니라 대륙에도 유사한 정황이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이런 일을 해결하고 계시는데, 우리도 법리에 명백하고 아울러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여 그것들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순 속에 빠져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집착심으로 야기된 모순이기 때문에, 모순의 발생은 우리의 집착심을 폭로한 것이므로 절대로 모순 속에 빠져 분쟁을 일으키면서 인과도치( 因果倒置)하지 말아야 한다. 안을 향해 찾아보며 집착을 닦아 버려야만 비로소 모순을 없앨 수 있다. 나의 곁에 있는 한 수련생은 자신의 체험을 말하였다. 수련은 사실 아주 쉽다. 한 문을 틀어쥐고 수련하면서 사부님의 요구대로 끊임없이 집착심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은 또한 아주 쉽지 않다. 이 길에는 여러가지 유혹과 교란이 있는데, 여러 갈래로 뻗은 나무가지처럼 당신을 갈림길에 들어서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법공부, 법공부 또 법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12/1/1675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