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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나의 견해

[명혜망 2007년 4월 26일] 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동수들은 법공부에 아직도 정진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속인의 이 한 층 면으로부터 독서 공부에 대한 견해를 동수들과 연구 토론해 보고자 한다.

한 동안 나는 법공부에 아주 정진하지 않았는데 몇 가지 표현이 있었다.

1 . 법 공부 상태가 나빴다. 마음이 조용하지 못하고 잡생각이 많으며, 초조하여 앉아 있지 못했다. 졸리고 피곤하여 정력이 집중되지 않았다. 소극적으로 도피하며 잡일을 한다.
2 . 법공부 효율이 높지 못하였다. 시간을 적지 않게 들였지만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 하였고, 보면 곧 잊어버려 헛공부 하였고 아무 효과도 없었으며,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3 . 법공부를 두려워 하였다. 법이 좋고 법공부가 중요하다는걸 알면서도 흥취가 나지 않았으며 법공부하기 두려웠다. 두어 번 책을 보고 나면 새로운 감이 없어지어 다시 공부하자 해도 들어가지 않으니 대법의 고심한 법리를 깨우친다는 것은 말할 바가 못 된다. 각종 사람 마음이 죄다 올라와 아주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좋은 대법을 배워낼 수 없는가 ? 왜 법공부 하는데 대법의 신성하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정진하는 동수들은 법공부가 그렇듯 착실하고 법공부 상태가 그렇듯 좋아서 배울수록 더 배우려 하고 배울수록 더 신기해 하는가? 사부님께서 법공부에 상관되는 일들에 대해 그렇게도 많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참답게 대조해 보았는가? 매듭이 있는 곳을 찾아 냈지만 또 마땅히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가? 나는 깊은 사색에 빠졌다.

아래에 속인의 독서공부 각도로부터, 한 측면으로부터 나 자신의 일부 견해를 말해 보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공부할 때 한편의 문장을 본 후 문장 글자가 표달하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문장은 또 단락, 구절로 조성 되었고 제일 작은 단위는 글자이다. 사람이 보고 쓰는 것은 글자의 “모양” (形)이고 읽는 것은 글자의 “음” (音)이며, 표달하는 것은 글자의 “뜻” (意)으로서 이것이 바로 글자의 “소리, 모양, 뜻” (声、形、意) 이다. 그것들은 글자의 정체를 구성하였다.

먼저 ” 모양”을 말해보자. 어떤 사람은 책을 반나절이나 봤지만 머리에 인상이 없어 써내려 해도 써낼 수 없으며 써냈다 해도 모두 틀린 글자이다. 책을 볼 때 인상이 깊지 못하면 본 후엔 곧 잊게 되며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책을 볼 때 머릿속에 글자의 “모양”(결구, 쓰기)이 반영된다면 효과가 더욱 좋을 것이며, 매 글자마다 모두 머리 속에 들어가고, 매 글자마다 모두 눈앞에 나타나 지울래야 지울 수 없게 되면 이것은 바로 배워낸 것이다 .

다시 “소리”를 말해보자. 한 글자, 한 마디 말은 입을 통해 읽고 귀로 듣는다. 바로 누가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접수한다. 특히 시, 가사, 가곡을 낭랑하게 입으로 읽으면 쉽게 복창할 수 있어 인상은 필연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 속인들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중이 염불할 때면 입이 있어도 마음은 없다(和尚念经,有口无心) 고 한다. 만약 책을 볼 때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듣는다면 이 ” 소리”는 절대로 귀가를 스쳐지나는 바람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보아하니 “소리”의 효과에 도달하려면 입만 놀릴 것이 아니라 귀도 써야만 비로서 “마음”이 있게 되는 것 같다 .

글자의 “뜻”에 대한 것은 그 중요성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책을 반나절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헛공부한 것과 같다. 글자의 “소리”와 “모양”은 최종에 가서 여전히 “뜻”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문장을 읽을 때 문장에서 표달하려는 뜻을 이해하고, 흡수해야만 공부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독서할 때의 상태가 나쁘면 여러가지 나쁜 표현이 있게 되는데 집중적인 표현이 바로 “조용해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독서할 때 머릿 속에 “소리, 모양, 뜻”을 아주 개의하고 눈을 깜박이기도 아쉬울 정도로 “모양”을 보고, 입으로는 일심불란( 一心不乱)하게 “소리”내어 읽으며, 또 귀를 가시고 “소리”를 듣는다면 머리에 약간의 잡생각도 없이 “뜻”을 생각할 것인데 이렇게 5관 (五官)이 모두 출동하고 바깥으로 머리, 몸, 사지가 배합하면 전반 사람은 스스로 조용해 질 것인즉 무슨 심사로 다른 무엇을 표현할 여가가 있겠는가. 공부는 곧 조용히 할 수 있게 된다.

일을 함에 효과를 따지는데 공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질”과 “양”의 문제이다. 공부할 때 만약 진정 온 몸과 마음으로 그 중에 투입될 수 있다면 반드시 좋은 효과를 얻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공제하거니 억제해야 하며 아니면 제거해 버려야 할 나쁜 물건이 안에 있을 것이다. 학습시간의 합리한 배치와 보증, 이것은 그의 “양”( 量)이다. 참말로 “입에서 노래가락 멈추지 않고, 손에서 책 떨어질 줄 모르는” 전업화한 정도에 이른다면 학습문제는 그 무슨 문제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습 “태도”에 대해 말해 보기로 하자. 속인의 책을 읽으면 천박한 일가지언( 一家之言)이므로 많은 사람들은 많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쾌속으로 뛰어넘으며 읽는다. 이는 공부할 때 온 몸과 마음을 대법에 용입시키는데 대하여, 자연적으로 돼버린 이런 습관이 미세한 차별일지라도 모두 엄중한 교란으로 될 것이다. 만약 동수들께서 진정으로 경사경법을 할 수 있고 대법 가운데의 그 금빛이 반짝이고 배후에 층층첩첩으로 무량무계한 불도신이 있는 매 하나의 글자를 소중이 여긴다면 법공부는 필연코 하나의 수성하고 미묘한 일로 될 것이다.

문장발표 : 2007년4월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4/26/1534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