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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쾌락은 법에 동화되는데 있다

[명혜망 2005년 11월 20일] 내가 법공부를 어떻게 많이 하게 되었으며, 법공부를 잘 하는 중에서 감수했던 비범한 행복과 수련의 수승 및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는 1996년 어머니와 함께 법을 얻었다. 『전법륜』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줄곧 찾으려고 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는바 길을 잃었던 어린이가 끝내 인자한 아버지를 찾은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매일 이른 아침 아침햇살을 맞으면서 짙푸른 잔디위에서 연공했었고 저녁이면 저녁노을을 맞으면서 가부좌하고 교류를 했었다. 사람들은 원래 그처럼 아름답게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었다. 동수들의 이름과 회사, 주소를 알 필요도 없이 오직 하나의 믿음에 의해 함께 모이곤 했다.

99년 7월 하순 어느 날, 우리는 가장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연공을 했다. 당시 TV에서 공안부의 이른바 ‘6가지를 해서는 안 된다.’를 공표하였다. 그 후 다시 공원에 가도 파룬궁의 현수막과 동수들은 볼 수 없었다. 탄압 전 동수들끼리는 각자가 자기 사업을 하고 다만 공원에서 만났을 뿐 서로의 주소를 몰랐기에 나는 단번에 동수들과 연계할 환경을 잃게 되었다. 그 당시 소식이 막혀서 어머니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다만 집에서 책만 보고 있었다.

생활은 마치 의연히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번뇌와 괴로움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법공부를 하지 않아 점차 속인 속으로 빠져들어 갔고, 판단력을 잃었으며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2002년 되던 어느 날 집 문 어귀에 놓아둔 진상 VCD를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매우 큰 진감을 받았다. 그것은 ‘천안문 분신 사건’에 대한 VCD였다. 어느 하루 어머니가 거리에서 직법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만나게 되어 우리는 비로소 동수들과 연계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이어서 신경문과 두 기를 보고 그때야 대법제자들이 세인을 향하여 진상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1999년 7월 20일부터 2002년 9월까지 이 3년간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지냈는가? 사업상에서의 아리송함과 고통, 혼인 중의 울컥함과 막연함 뿐이었다. 정말 사는 재미가 조금도 없었다. 대법을 떠난 뒤 나는 하나의 고갈된 우물이 되어 있었다.

나는 우선 먼저 사존님의 모든 대법 서적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보기 시작하였다. 생활은 다시 유쾌해졌고 충실해져서 인생이 다시 더 미망하지 않게 되었다. 이 사이에 나는 문 어귀에서 발견한 진상 VCD를 모반(母盘)으로 하여 복제하였다. 나는 매일 법학습을 하면서 정법노정을 따르기 위해 힘을 다 하면서 세 가지 일을 잘했다. 일체는 대법으로 가늠하고 지도 했는바 대법 속에 푹 잠겨 대법의 혜택을 받는 것은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사람을 보면 말하는 습관을 키웠다. 그리하여 상대와 말을 하기만하면 얼마간 대법진상을 알리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이틀에 하루를 쉬는 일을 했는데 낮에는 인쇄하고 저녁에는 자료를 배포했다. 일요일 휴일이면 시골로 진상을 알리러 갔었다. 마음 속에 정념이 있으니 걷는 것도 나는 듯 했으며 진상자료도 한 부 또 한 부 끊임없이 잘 배포하였다. 두려움없이 조리 정연하게 또 정정당당 했는바 그런 상황에서의 수성함과 기쁨은 동수들도 모두 체험했으리라 믿는다.

내가 본 지역의 협조인과 연계를 맺게 되었을 때는 인터넷 사용기술이 이미 매우 성숙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들어가 대법에 관한 간행물 두 개를 제작하고 3퇴 발송하는 등 인터넷과 관계되는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바쁘게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법공부를 더욱 많이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했다.

그 사이 역시 교란도 많았다.— 우선 사업상에서 오는 교란이다. 그 당시 출근하여 MP3를 듣는 것 마저 회사에 고발되어 사업시간에는 안 된다고 지령이 떨어졌다. 그러니 책을 보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그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를 했다. 나는 자신의 일체 기회를 이용하여 법공부를 해야 함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일은 매우 빨리 전개 되었는바 나는 전근을 가게 되었다. 비록 월급은 적지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나는 자신이 하나의 마음— 법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견정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런 환경이 마련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거의 매일 사업 중에서의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를 한다.

또 가정으로부터 오는 교란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 간에 아내의 핸드폰 메시지에서 다른 남성 동사(同事)자와 애매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나는 정말 멍해졌다. 내가 줄곧 법공부를 하고 바삐 보내면서 가정에서 응당 있어야 할 교류를 소홀히 한 것 같았다. 수련은 여러 측면에 있는 것으로서, 나는 일 주일 후 심태를 조절하고 아내와 진지하게 대화를 가졌으며 모순과 오해는 잇달아 풀렸다.

그리고 소자료점을 부추겨 건립하는 과정에서도 고험과 마난에 부딪쳤다. 그때 나는 반드시 이 일을 잘 해야겠다는 견정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물론 사부님의 가지와 점화가 매우 많았다.

반본귀진, 이는 한 개 생명의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거쳐 세간의 일체를 똑똑히 알았는바 아직도 그 무엇을 내려 놓지 못한단 말인가? 평온하고 지혜롭게 당전의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이것이 곧 수련이다.

우리는 법을 위해 왔다. 사존님의 말씀을 듣고 법에 동화되어야만 생명은 비로소 진정 즐거울 것이다.

문장완성 : 2005년 11월 19일
문장발표 : 2005년 11월 20일
문장갱신 : 2005년 11월 19일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20/11489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