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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강대한 정체적 정념으로 사악한 흑수 최후의” 미친”(疯狂)것을 깨끗이 소멸하자.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7월 10일】(작자의 제목 :”미친” 두 글자를 괄호 친(引号)것은 우리가 근본상 이런 소위의 표현을 승인하지 않는다

최근에 호주대법제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南非)에서 받은 총격사건을 듣고 놀라고 또한 스촨청두(四川成都)대법제자들이 많이 붙들리고 최근 헤이룽장(黑龙江)지구에서 파룬궁을 주관하는 각급 관원들이 2륭싼(二龙山)에 회의한 일 등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는 견해를 말하니 부족한 점은 지적하여 바로 잡아주기를 바란다.

현재의 정법형세로 보면 사악한 검은 손은 남은 것이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청리 당하는 결과를 보자 정말로 최후 발악한다. 마치 독벌이 죽기 전에 명을 다하여 사람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는 것을 알지만 죽기 전에 또 한번 나쁜 짓을 한다. 이것은 사악의 본질이 결정한 것이다. 이런 물건들은 천목으로 본다면, 그자들은 그 중의 층차가 비교적 높은 생명의 인솔 하에서 집중적으로 장기간 근본 집착심을 못 버린 대법제자들과 한 방면 집착심이 강한 수련생에게 그 집착심을 강화 해주는데 최종적으로 좌우지하는 목적에 도달하려고 한다. 표면 공간을 보면 이 두 방면의 누락 있는 동수들이 7.20후에 수련을 그만뒀다. 어떤 분은 진압 중에서 생사의 최후도 박차고 나왔지만 속인의 명리정의 고험 중에서 패하여 깊이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정법의 최후시기에 처해있다. 자기를 잘 수련하는가는 정법을 잘할 수 있는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관건적이고 역시 최후까지 견지할 수 있는가의 관건이다. 자신의 당초“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홍음—법을 돕다》) 본래 염원의 고험이다. 또한 사부님이 말씀하신:“당신들의 수련은 그런 방대한 생명 군체의 좋고 나쁜 것, 남고 남지 못한 것을 결정한다!”(《북미 순회설법》) 대법공작을 할 때 사악을 폭로하든지 세인을 구도하든지 또한 해외의 평화적 청원,대륙관원을 기소하는 등등의 일체는 자신의 수련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는 응당히 “대법 제자들이 대법의 일을 해야 한다.” 우리지역으로 말하자면 원래 많은 동수들이 정법공작방면, 확실히 대량의 일을 하였다 .시간이 길자 자신에 대한 수련을 홀시하여 많은 집착심이 생기여 사악에게 틈을 주게 되였고 피의 교훈은 이 방면에 경각성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법제자들이 하는 일체는 모두 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하는 과정 중에 신성(神圣)한 일은 반드시 신성(神圣)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래야만 이 일이 신성(神圣)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들이 응당히 있어야 할 심태다. 현재 대법의 우리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높다. 우리는 최종에는 사람을 떠나게 된다. 사부님은 93년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경상적으로 말한다. 속인의 마음은 나를 동하지 못한다. 누가 나를 좋다고 한마디해도 나는 이로서 기뻐하지 않고 ;누가 나를 나쁘다고 한마디 말하여도 나는 이로서 성을 내지 않는다. 사람지간과 속인지간의 더욱 엄중한 심성 교란도 나에게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연공인은 일체 얻은 이익을 담담하게 보고 무엇이든 마음에 놓지않으면 그때야 당신이 도를 깨달은 마음은 성숙한 것이다. ”(《파룬궁 (수정본)》)사부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 내가 여러분에게 불교중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과거에 한 사람은 무척 애를 써서 나한(羅漢)으로 수련 되었다. 그 사람이 정과를 얻어 나한으로 수련 되었으니 그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삼계(三界)를 벗어났다! 이 기뻐함이 바로 집착심이고 환희심이다. 나한은 마땅히 무위(無爲)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므로 그는 그만 떨어졌으며 헛되게 수련했다. 헛되게 수련하였으니 또다시 수련해야 되지 않는가. 또다시 위로 수련하며 무척 애를 써서 또 수련해 올라가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두려워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기뻐하지 말자, 기뻐하면 또 떨어질 것이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자 또 떨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두려움 역시 일종의 집착심이다.”《전법륜》

우리는 나한 층차보다 얼마나 더 높이 수련하는지 모른다. 이로써 대법이 우리들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높고 엄격한지를 가히 생각할 수 있다. 손을 가슴에 놓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 자신이 도달하였는가? 우리 자신을 잘 수련하여야만 진정한 정념이 있고 더욱 많은 법리를 알 수 있고 더욱 순정한 정념을 수련해낼 수 있다.

다른 방면은 낡은 세력의 안배를 정법 중에서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꼭 하나의 청성(清醒)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우주의 순정과 무사의 기점에서 부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악의 생명이 우리 앞에서 나쁜 일을 한다. 우리가 보고도 못 본체 승인하지 않는가?눈을 감고 “주관 유심”적으로 소위 승인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정법의 기점에서 정념정행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승인하지 않는가? 일부 동수들은 입으로 말한다. 사악의 안배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재 행동 중에서는 주의하지 않는다. 안전과 다른 사람을 위하는 방면은 부족점이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낡은 세력을 부정하는 효과와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가? 낡은 세력의 안배를 승인하지 않는 것을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핑계로, 안으로 찾지않는 핑계로 삼으면 안 된다. 특별히 사악한 검은 손의 표현이 미칠수록 이 점에서 역시 철저히 부정해야 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 “우리는 낡은 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2004년 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

같지않는 항목을 맡은 동수들은 아주 분망하다. 나의 생각에는 그 많은 대법공작에 정력과 시간의 제한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 일체를 모두 마음에 두어야 한다. / 더욱이 공이 열린 동수들은 사부님께서 《2004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제기한 “공능을 가지고 수련”하는 동수들은 꼭 자기의 직책을 지켜야 한다. 사악한 무리들을 기소하는 것은 해외 동수들의 일 뿐만 아니다. 대륙에서 진상자료 공작을 하는 것도 자료점 동수들의 일 뿐만이 아니다. 사악의 검은 손을 제거하는 것은 대법제자 우리자신이 미룰 수 없는 직책이다.
기억하건대 요즈음 발정념시 낡은 세력의 검은 손을 청리할 때 일체 공간의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누락한 것이 없다는 지령을 내리니 그것의 일체는 정말로 눈앞에 나타났다. 표면의 공간을 놓고 말하면 내가 있는 곳은 대륙의 북쪽에 있는 성이다. 내가 멀리 있는 씬쟝하이난(新疆海南)과 기타 성에 갇힌 동수들 ; 중국 영사관에 청원하고 대륙의 동수들을 위해 뛰어다니며 호소하는 해외 동수들 :대법망 사이트의 수호등등을 생각하였다. 이 일체는 나의 부담이 안되고 도리여 정진하는 동력이 되였다. 이 일체에서 명백히 알았다. 무엇이 정체인가? 한가지 비유한다면 우리는 모두 대법이 만든 생명이다. 모두 공통점이 있다. 매개 생명마다 “쩐,싼,런”(真善忍)의 우주특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독립적인 개체 생명이다. 정법 중에서 우리는 대법의 전면을 생각하면 이것은 정체이다. 우리가 같지않은 항목을 하지만 심지어 천산만수를 멀리하고 면목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의 마음이 한데 연계된 이 사실만으로도 낡은 세력이 조성한 한단락 한단락 공간이 막힌 것을 일정한 정도에서 제거할 수 있다. 전면을 생각하는 것은 일종 심성의 용량, 수련 된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더욱 우리가 응당히 도달하여야 할 상태다. 만약 우리가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정념으로 대하면 구체적으로 항목하는 동수의 압력을 덜 수 있고, 더욱 좋게 정체정법의 진전을 추진할 수 있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북미수련생이 말한 : “우리는 정법의 최후의 시각에 반드시 서로간에 원용(圆容)시키고 서로간에 보충하면서 누락이 없는 정체를 형성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 우주 또한 모두 원용(圆容)하고 빈틈이 없으며 모두 다 대법특성에 부합된 입자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속으로 한 개의 불순함이 들어가게 되어도 그는 곧 불순한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새로운 우주가 윤허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정법의 일 가운데서 매 항목 모두가 정법제자의 책임이며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정념으로 대해야 하며 이로부터 힘의 상쇄가 발생되지 않게 된다. ”(《정법일의 항목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 대법은 무형이며 정체가 있다. )》 여기에 사부님의 평주 : “같지않는 방법은 바로 운전 중에 있어서 법의 유기적인 분공원용(圆容)의 방식이며 아울러 법력은 정체의 표현이다.” 반대로 정체를 마음에 두는 것은 대각자 지혜의 일종 체현이고 더욱 능력의 일종 표현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자기를 잘 수련하여야만 강대하고 순정한 정념이 나타날 수 있고, 마음에 정체를 두어야만 정체적인 제고를 가져올 수 있고, 근본상에서 사악의 검은 손을 숙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법제자들이 정념정행의 정체배합으로 사악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고 마지막 길을 잘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진정으로 중생을 데리고 “배에 가득히 유유하게 돌아간다. ” 최초의 신성한 맹세를 실현한다.

개인 체험이니 참고로 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4년 7월 9일
문장발표:2004년 7월 10일
문장갱신:2004년 7월 10일 6:34:45 PM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10/790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