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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심태와 행동에 주의 할 것을 해외제자들에게 건의한다.

글 / 워싱톤DC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6월 18일] 해외수련자들은 마치 조건반사처럼 법회와 행사에 참가하거나 (응당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법회에 참가하는 것을 정기적으로 정해진 일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진정 정법과 진상하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수련자들이 먼 길을 떠나는 이유는 사부님을 뵙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런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주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퍼레이드나 기타 활동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어떤 수련자들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또 여기저기 살피면서 다닌다. 아주 장중하고 엄숙한 퍼레이드나 촛불 시위 등에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한 손으로는 현수막을 들고 한 손으로 책을 읽곤 하는데 속인에게는 우리의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수련자들은 고형을 재현하는 앞에 서서 희희락락하며 수다를 떠는데 이런 행동은 우리가 세인들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박해의 잔혹함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는 모두 우리의 심성과 마음 쓰는 정도를 보여준다.

해외에 있으면서 우리는 국내 수련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그런 잔혹한 박해를 겪지 못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2003년 애틀랜타 법회에서 사부님께서는: “ 대법제자는 아직도 박해 중에 있는데 당신이 나더러 기뻐하라고 해도 나는 기뻐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이 시각에도 중국의 그 사악한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가.” 라고 마말씀하셨다. (2003년아틀랜드 법회에서의 설법) 우리가 참가하는 많은 활동은 모두 박해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동시에 세인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의 바른 마음으로 참가하는 것이 바로 정념의 일부분 이다.

수련자로서 우리는 목숨을 잃은 동수들이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감당한 것만큼 얻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에 그만큼 이제는 생사의 고통을 담담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해야 하고 박해의 잔혹함을 폭로함으로써 세인의 선념과 동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 사람의 이 한층 효과를 나타내야 한다.

사실, 그런 아무렇게나 하는 심태와 행동이 진정으로 담담하게 보아서 인지 아니면 감각이 마비되어서 인지? 그것은 아주 쉽게 보아낼 수 있다. 만약 지금 박해 받아 목숨을 잃었거나 형벌을 받는 사람이 자기나 혹은 가족, 친지, 친구로 가정해 볼 때 자기가 어떤 심정인지 볼 수 있다면 자기가 수련해야할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퍼레이드나, 촛불 시위등 활동에서 응당 어떤 심태와 행동으로 행사에 임할지 알 수 있다.

그 밖에 ??당은 수십 년 동안 정치운동과 무신론으로 중화민족의 전통도덕과, 문명, 예절을 파괴시켰다. 대부분 중국에서 넘어온 해외 화교들은 모두 장기간 그런 사회에서 생활하던 습관이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표면 문화를 중시하는 서양사회에서 대법제자가 응당 갖추어야 할 속인보다 더 나은 이미지를 체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더욱 자각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문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공인하는 제일 낮은 교양표준이 있다. 그것이 잘 안되면 사람들에게 반감을 싸게 된다. 예를 들어:

1.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다.
2. 화장실의 청결을 유지시켜주면서 다른 사람이 정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
3.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4. 지정된 곳에서만 큰 길을 지나가고 교통신호를 준수한다.
5. 회의장 질서를 준수하며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때는 조용히 한다.
6. 공공장소에서 자기아이의 행동을 엄격히 제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7. 회의 시간을 지키고 회의결속을 선포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흩어지지 않는다.

이상 등등은 아무리 말해도 모두 사부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이 있는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매 수련자가 기본으로 응당 지켜야 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대법의 서적을 봐서 대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형상은 바로 그들이 대법에 대한 인상이다.

사부님은 99년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고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지저분하고 말소리가 대단히 큰가 하면, 장소•지점을 가리지 않고 위생을 지키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겠지만 당신들은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한다. 수련하는 제자로서 당신들은 실행해야 한다. 본래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내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일부 백인 수련생들로 하여금 홍법 중에 감히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여러분은 주의해야 한다! 이는 단지 일개 행위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이 면의 일에 주의해야 한다. 나는 당신들더러 몸차림을 강구하고 유행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가장 표면적인 인간의 문명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대법 속에도 가장 낮은 층차의 내포가 포함되어 있다면 내 생각에 당신들도 일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법륜불법≫-미국 동부법회에서의 설법)

사실 많은 수련자들은 잘 하고 싶어도 간혹 잊어버리기 쉽다. 또 어떤 수련자들은 서양사회의 문명과 풍속습관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관계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제때에 보아내기 힘들다. 만약 모두들 자아를 좀 적게 생각하고 진정 사부님의 요구대로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대법제자의 정체 이미지를 생각하면 많은 문제에서 우리는 자연적으로 저절로 잘하게 되고 더욱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장완성 : 2004년 6월 17일
문장발표 : 2004년 6월 18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18일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4/6/18/773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