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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내려놓고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자.

글 / 대전 중국인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얻기 힘든 이 기회를 빌어 저 자신이 수련 중에서 체득한 조그마한 인식을 여러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1.정법이 결속되지 않은 것은 잘하지 못한 제자에게는 바로 기회이다

대륙의 한 대법제자로서 나는 응당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사악이 가장 창궐하고 대법제자가 가장 엄혹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또한 대법제자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인 2001년에 나는 마치 도망치듯이 한국으로 왔다. 나는 원래 내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내가 출국할 적에 정념(正念)․정행(正行)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집착을 갖고 왔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대법제자들의 단체[群體]를 다시 찾았을 적에 명백한 일면은 나로 하여금 재빨리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게 하였다. 당시 나의 마음은 깊은 고통 속에 빠져있었다. 나는 당시 사부님의 한차례 또 한차례의 점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과 진정으로 걸어 나와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뉘우쳤으며 눈물투성의 얼굴로 사부님께 “사부님, 제가 지금부터 시작하여도 제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저는 사부님의 제자로 될 자격이 없더라도 꼭 대법에 동화된 올바른[正的] 생명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견정한 일념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설법을 하시는데 나는 약 10분 정도 늦게 도착하였다. 내가 회의장 입구에 서서 ‘내가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하고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시면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사부님의 격려이며 사부님께서는 절대 진수제자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또 내가 늦게 ‘도착’한 제자이기에 더욱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부터 나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 , 진상 알리기에 모든 힘을 쏟았으며 법을 배우고 법을 베껴 쓰고, 법을 외우는 중에서 층층의 더욱 깊고 높은 법리들을 깨닫게 되었으며 한차례 또 한차례 사부님의 홍대(洪大)한 자비에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수련의 길에서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오늘까지 걸어 오는 과정에 내 상황과 비슷한 동수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부 동수들은 여러 가지 집착들의 장애 때문에 아직까지도 청성(淸醒)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비교적 엄중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아태지역 수련생회의에서의 설법》중에 한 단락의 문답 중에

“문: 근 4년간 중국 대륙의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은 아주 많은 돈을 쓰고 한국에 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불법체류이며 매월의 수입은 인민페로 7천 위안에서 1만 위안입니다. 그들은 대법제자로서 정법시기의 책임을 모르고 완전히 돈 벌러 왔습니다. 집에 돈을 부치면서 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수련생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중국에 돌아가 법을 실증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대법제자로서 중국 그곳의 형세가 준험하고 더욱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 당하며 많은 세인들이 아직도 중독되고 있는 것을 보고도 대법제자가 대법제자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대법제자란 말인가? 나와서 대법의 일을 해도 되는데 대법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어찌 대법제자의 자격이 있단 말인가? 중국 대륙이든지 아니면 중국 대륙 이외이든지 간에 모두 마땅히 대법제자여야 한다. 속인과 같다면 바로 속인인바, 때문에 이런 수련생에 대하여 말하면, 그들에게 똑똑히 말해야 하는데, 이곳에 남고 싶으면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하라.“

사부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설법하신 내용에 대해 우리는 응당 더욱더 청성해야 하며 법정인간 이후 낡은 우주의 일체가 전부 해체되면 돈도 종잇조각과도 같을 뿐인데 당신이 오늘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한 이것을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물론 우리는 다른 한 극단으로 가서 사업을 하지 않고 생활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안 되지만, 정법시기 대법 제자로서 우리들은 자신이 짊어진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모두 하루빨리 사부님을 뵙기를 바라는데 그러나 우리들이 많은 집착심을 버리지 않고 또한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것들을 잘하지 못하였을 때, 우리들의 표현이 대법제자답지 못할 적에, 사부님을 뵐 면목이 있겠는가? 또한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뻐하시겠는가?

여기서 나는 아태지구 수련생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동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왜냐하면 이 동수들이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조급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는 문제들을 제출하였는데 이것은 우리에 대한 동수들의 자비이다. 왜냐하면 정법시기에 법을 얻고서도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지 않는다면 사전에 맺은 서약을 이행(履行)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부님을 속이는 죄를 짓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2004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사람들을 말한다면, 한 생명이 역사상에서 오늘날 능히 법을 얻을 수 있는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며, 너무나 행운이다! 그러나 일단 그가 잃었을 때에, 여러분은 그가 직면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아주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큰 책임과 거대한 사명을 부여했는데 그가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한 생명의 원만과 그것은 반비례되는 것으로, 그 생명은 정말로 무생지문(無生之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의 시간은 대법제자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며 또한 이 시간은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원만하는 그 날,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는 바, 정말로 대법제자들이 백일비승(白日飛昇)하며 전 세계에서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박수)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그 날에 당신은 거기에 앉아서 울어라!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보건대 울어도 늦은 것이다.”(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한차례 또 한차례씩 기회를 놓쳐 버렸지만 그러나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줄곧 부단히 우리들을 점화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우리들이 다시 잘 할 수 있게끔 기회를 주셨으며 또한 잘하지 못하면 직면하게 될 무서운 결과도 알려주셨다.

동수여러분, 우리 청성하게 깨어납시다! 우리들이 사전에 맺은 서약 —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發心度衆生, 助師世間行)” (《洪吟, 助法》) 이것이 바로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의 진정한 사명입니다!

“수련은 자신이 하고, 공은 사부님에게 있다.” (《전법륜》),오직 우리들이 새롭게 잘하고 견정한 신념으로 진정하게 수련하고 선(善)을 향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이 돌아갈 길을 개척하여 주실 겁니다. 때문에 잘하지 못한 동수들은 의기소침[恢心]해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하여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명심합시다.

“오로지 박해가 하루 끝나지 않으면, 그 하루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잘 이용하라, 더욱 잘하라, 빨리 새롭게 되돌아 오라, 다시는 놓치지 말라. 부담이 되지 말고 잘못하면 당신은 다시 잘 하라. 이전의 일을 생각하지도 말고, 이후에 어떻게 잘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당신 자신과 중생을 위하여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북미순회설법》)

2. 문제에 봉착하면 안을 찾아야 하며 집착해선 안 된다.

최근에 한 동수와 교류하는 시간에 그 수련생이 내게 존재하는 집착을 제때에 발견하고 지적해 준 데 대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전처럼 자기를 변호하지 않고 가급적 이지적으로 심각하게 자신을 찾고 부단히 자신을 순정하게 하였는데 느낌이 매우 좋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새벽 2시 반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새벽 4시가 약간 넘었을 때 공원에 연공하러 가야 했다. 2시간 밖에 못 잔 상태에서 수련생이 나를 깨웠을 때 나는 정말로 일념의 차이로 그냥 자버렸다. 수련생이 연공을 하고 돌아온 후에 우리는 같이 출근하게 되었는데 수련생은 웃으면서 나한테 “사부님께서 ‘연공은 제일 좋은 휴식이다.’고 하셨다. “라고 연이어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좀 불쾌했으며 마음속으로는 동수한테 대꾸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나도 사부님께서 “연공은 제일 좋은 휴식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이 수련생이 매우 잘 제출하였는데 그렇다면 내가 사부님이 하신 말씀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또 그 무엇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사부님의 말씀을 나도 알고 깨달았지만 하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때문에 나는 동수와 논쟁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마음속으로 동수에게 감격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일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향해 찾고 또한 자비와 관용으로 동수와 세인들을 대한다면 그러한 번뇌와 교란은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어떤 때는 안을 향해 찾지 않는 현상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공통점이 있는 동수끼리 함께 모여 교류하기를 좋아하며 문제가 나타났을 적에 안을 향해 찾지 않고 늘 “나의 시어머니는 어쩌면 저렇게도 나쁜가”(《전법륜》)하는 인식에 머물러 있으며 그가 어떠어떠 하다고 이러쿵 저러쿵 하며 심지어는 책임지지 못할 결론을 내린다. 또 어떤 수련생은 아직까지도 법공부 할 때 마음이 조용하지 않으며,일을 하려는 마음, 쟁투심,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식 등 여러 가지 집착으로 자신을 들떠있게 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이해로 과장하여 확대해서 골목 소식들을 전하며 무형 중 동수 지간에 집착의 시장을 형성하며, 동시에 또한 정체적인 ! 협조력을 약화시킨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일은 여러분이 협조(協調)를 잘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 누가 어떠 어떠하다는 것에 신경을 적게 쓰고, 당신들의 정력을 전부 법을 실증하는데 쓰기를 희망한다. (박수) 여러 사람이 모두 다 협조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 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위덕을 수립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할 때 신마저도 옳게 보지 않는다. 또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늘 다른 사람만 눈여겨볼 수 없다. 자신을 보고 자신을 수련시켜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보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부족함을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매 한 건의 일을 잘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는 과정 중에서 사상을 바로잡고 곤란 앞에서 대법제자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을 체현해내는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대단한 것이다. 한 대법제자로서 그것이야말로 정념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부끄러움 없는 대법제자가 되는 것이다.“(《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그렇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문제에 봉착하여 자신을 향해 찾는다면 많은 불필요한 논쟁들이 적어질 것이며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에서 해탈할 수 있으며 우리들의 경지가 제고되었을 때만이 ‘나의 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3.공력을 들여 일하며,잘 협력하고, 협조를 잘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마땅히 갖추어야할 경지이다.

정법은 엄숙한 것이며,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최후가 다가올수록 우리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다. 그러나 우리 어떤 노수련생 들과 대법사업에 참여한 동수들은 어떤 때에 수련의 엄숙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동수들이 우리에게 대법 일을 부탁할 때 그것은 동수들이 우리들을 믿고 있기에 또한 우리들이 능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므로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착실하게 힘을 들여 가면서 해내야 한다. 만약 우리들이 한번 혹은 여러 번 원만하게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을 때에 정체적으로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객관적인 이유를 찾아 자신을 변호하고, 동시에 또한 수련생이 제기한 의견을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자신의 명예가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면 이 모든 것은 다 부정확한 상태이다.

사부님께서는 “신에게 잘못이 있으면서도 승인하지 않고 남에게 당신은 잘못이 없으며 당신이 괜찮은 것으로 표현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업신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인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라고 말씀하셨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는 면하기 어려우나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고 고쳐야 하며 과정 중에서 우리는 부단히 성숙에로 나가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한 매 하나의 일들을 참답게 총결하여 안을 향해 부족점을 찾고 자신으로 하여금 더욱 순정하게 수련해야하지,자신을 실증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집착심을 조장(助長)해선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의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수련이다. 수련 중에서 곧바로 자신이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반대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이런 문제를 조장할 수 없다.”(《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몇 차례의 설법 중에서 자비롭고 위엄 있게 우리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셨다. 정법이 최후로 다가갈수록 우리들이 더욱 더 바르게 걸을 것과 더욱 잘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더 이상은 사부님께 근심을 끼쳐 드려서는 안 된다.

동수들이여 ,우리들의 신의 일면은 이미 부활되었다.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 신의 길에서 정진합시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 동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