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수련 중 정념을 확고히 하니 대법이 신의 위력 드러내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여성 대법제자로, 수련한 지 이제 거의 30년이 다 돼갑니다.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살핌 아래 제자는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래에 수련 중 겪은 크고 작은 체득을 글로 써서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행운으로 법을 얻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귀여워해 주셨고 오빠들은 양보해 줬기에 제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이후 남편과 지낼 때도 이런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1)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다

1996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하다 보니 몸도 갈수록 나빠져 자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링거를 맞았습니다. 집안의 유전병 내력과 남편의 배신으로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었고, 저 자신도 어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날 것만 같았습니다.

삶과 건강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던 바로 그때, 직장 사람들이 어떤 공법을 연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동창이 그 공법을 연마했는데 예전에는 여름에 수박도 먹지 못하고 찬 찐빵도 먹지 못했지만, 연마한 지 두 달도 안 돼 이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신기한 공법도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동창에게 물어봤습니다. 동창은 “마침 오늘 저녁에 직장 회의실에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상영하니 와서 봐”라고 말했습니다.

2) 설법 영상을 보다

밤이 되어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니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동북 지역 억양으로 말씀하셨는데 부모님도 모두 동북 지역 출신이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앉아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며 이 법이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 매일 새벽 3시 40분에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고,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모두 연마했습니다. 비바람이 불든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든 언제나 변함없이 연공했습니다. 매일 저녁에는 법공부 장소에 가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한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대법이 수련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몸에도 천지가 뒤바뀔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 체중이 10kg 늘었습니다. 때로는 밤에 잠을 잘 때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때로는 몸이 로켓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무척 신기했습니다. 또한 다른 공간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도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며 많은 법리를 깨달았고 심성도 계속 높아졌으며 가정도 화목해졌습니다. 매일 법공부를 하거나 법 암기를 했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대법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이는 이후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데 좋은 기초가 됐습니다.

2.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한 여정

1) 성(省) 정부에 가다

1999년 7월 20일, 수련생에게서 대법이 불법적으로 금지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성 정부에 청원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저희도 성 정부로 갔습니다. 당시 성 정부 정문 앞에는 많은 수련생이 와 있었고 모두 조용히 도로 양쪽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수많은 특수경찰과 대형버스가 나타났습니다. 특수경찰은 수련생들을 몰아내며 대형버스에 강제로 태우려 했지만, 수련생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버스에 올라타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성 정부 앞 도로 전체와 앞쪽의 작은 화원까지 수련생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성 전체 수련생들이 잇따라 모여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희는 일제히 ‘논어(論語)’를 암송했고 그 소리는 하늘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 광경은 정말 천지를 뒤흔들 만큼 장엄했으며 지금까지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결국 저희는 아주 넓은 마당으로 납치됐고 각자 소속된 직장에 인계돼 현지로 돌아왔습니다.

2) 베이징에 가다

1999년 11월 어느 날, 수련생 집에 갔다가 현지 파룬궁 보도소장도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막 베이징에서 돌아온 참이었고 베이징에 다녀온 상황을 이야기해 줬습니다. 모두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고 사부님과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감동해 눈물을 흘렸으며, 그 자리에서 저도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희 일행 6명은 베이징으로 출발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철도 경찰이 갑자기 제 가방을 수색하다가 대법서적을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기차에서 끌려 내려와 역 안의 한 방에 갇혔습니다. 11월의 밤은 이미 몹시 추웠고 방은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서로 바짝 붙어 앉았지만 마음은 따뜻했으며 함께 수련 심득을 교류했습니다.

그 후 현지 경찰에게 끌려 돌아왔고 경찰은 가족들도 불러왔습니다. 시아버지는 제게 머리를 조아리시며 다시는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쓰지 않았고 얼마 후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중에야 시동생이 그 경찰과 아는 사이여서 대신 보증서를 써주고 무마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보도소장은 불법적으로 2년형 노동교양 처분(강제노동)을 받았고 다른 수련생 1명은 불법적으로 7일간 구류됐습니다.

3) 다시 베이징에 가다

2001년, 다시 베이징에 가서 소원을 이루기로 결심했습니다. 동행한 사람은 저희 연공장의 연세 많은 수련생 세 분과 시내의 수련생 두 분이었습니다. 저희 일행 6명은 베이징행 기차에 올랐고 이번 베이징행은 무척 순조로웠습니다.

천안문 광장으로 가는 지하보도에 도착해 수련생들을 2명씩 한 조로 나눴습니다. 저와 한 수련생이 맨 앞에서 걷고, 뒤의 한 조가 저희 조를 바짝 따라오도록 했습니다. 맨 뒤의 두 수련생은 앞서가는 수련생들을 주시하며 너무 빨리 걷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천안문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습니다.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보니 맨 뒤의 한 조가 따라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에게 지하보도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아래로 내려가 찾았지만, 30분 동안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천안문 광장에는 관광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중에 상의한 끝에 더는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에게도 작은 현수막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안문 광장에 도착해 화표(華表) 아래에 섰습니다. 다른 두 수련생은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5m 떨어진 곳에 섰습니다. 당시 마음이 긴장돼 쪼그려 앉아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뒤 일어나 “시작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은편 수련생과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은 현수막을 꺼내 수련생과 양쪽 끝을 각각 잡고 서로 팔짱을 낀 채 관광객이 많은 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밝혀라!” “대법의 결백을 밝혀라!”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군중 속에서 한 관광객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빨리 도망가세요! 조금 있으면 그들이 와서 당신들을 잡아갈 거예요!”

계속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키가 크고 마른 군인 한 명이 험악한 기세로 달려와 현수막을 확 움켜잡았습니다. 저희는 곧바로 군중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뒤돌아 맞은편에 있던 수련생을 보았는데 그 수련생이 제 뒤에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달리다가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곳에 이르자 멈춰 섰고 그들에게도 더는 달리지 말라고 손짓했습니다. 그제야 그 조에서는 수련생 한 명만 달려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다른 수련생은요?”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멍하니 몸이 굳어버려서 뛰지 않더군요.” 우리 3명은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3.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1) 많은 진상 자료

2000년, 수련생들이 많은 양의 진상 자료를 만들어 줬고 일부 외지 수련생들이 보내온 자료도 있었습니다. 매번 각자 자료를 가져가 배포했습니다. 주택단지 건물 복도로 갈 때는 진상 소책자를 작은 봉지나 봉투에 넣어 문에 걸어두었습니다. 걸기 어려운 문에는 양면테이프로 붙였습니다. 농촌에 갈 때는 사탕을 포장하는 봉지에 진상 자료를 넣었습니다. 때로는 수련생과 함께 배포했지만 대부분 혼자 배포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 두 명과 함께 진상 자료를 몇 꾸러미나 가지고 한 주택단지에 가서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배포했습니다. 밤새 걸어 다니며 길을 따라 진상 자료를 모두 배포했습니다. 그날 밤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많았고 마치 별들이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2) 농촌에서 짖는 개들

또 한번은 저 혼자 진상 자료를 한 꾸러미 가득 가지고 농촌에 배포하러 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막 도착했을 때 10여 마리의 개가 저를 향해 사납게 짖어댔습니다. 가슴 앞에 손바닥을 세우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 몇 마리가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듯 낑낑거리며 울부짖었고 다른 개들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흩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조롭게 집집마다 빠짐없이 배포를 마쳤습니다.

인근 마을에도 모두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아마 시어머니께서 무슨 소문을 들으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처 마을에 누가 파룬궁 자료를 배포했는지 모르겠구나.” 저는 “아, 그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시어머니 눈빛을 보니 제가 배포한 것으로 의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칠흑같이 어두운 길

또 여러 차례 혼자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걸으며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2000년에서 2001년 무렵에는 우리 지역 공공시설이 무척 낙후돼 주요 도로가 아니면 가로등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4. 정념으로 세뇌반을 탈출하다

2002년 늦봄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우리집으로 달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거라. 사람들이 너를 잡아가려고 하는데 지금 우리집에 와 있다.” 서둘러 옷가지를 간단히 챙기고 대법서적 한 권을 가지고 외지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갔습니다.

1) 사오(邪悟)한 자들의 악행 가담

약 1주일이 지난 후, 이미 사오(邪悟, 삿되게 깨달음)한 사람 2명이 우리집에 찾아와 가족들에게 권했습니다.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을 거예요. 세뇌반에 데려가면 그 사람도 알게 될 거예요.” 남편과 가족들은 그들의 말을 믿고 경찰과 그 두 사람을 데리고 외지에 있는 친척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사부님마저 인정하지 않게 됐나요? 그들이 당신들을 속이고 있어요. 사부님 설법반에도 참가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들에게 속을 수 있나요?”

결국 그들에게 강제로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식했지만, 이틀 동안 단식한 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달릴 힘이 없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세뇌반

세뇌반에서 독방에 감금됐습니다. 그들은 사부님을 공격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제게 강제로 보게 했습니다. 다가가서 텔레비전을 끄면 그들이 다시 켰고, 제가 또 다가가서 끄자 막아섰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한 사람을 텔레비전 옆에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절대 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잠을 잤는데 아주 푹 잤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 주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외지에서 온 사오한 직원 2명이 저를 전향시키려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들을 한바탕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그런 그릇된 이치와 사악한 말로 나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런 수법은 집어치우세요.” 그들의 말은 전혀 저를 설득하지 못했고 저는 그들의 실체를 완전히 간파했습니다.

사악은 한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자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아버지와 오빠, 시부모님, 남편과 아이까지 모두 불러와 저를 설득하게 했습니다. 가족들은 울고불고했고 시어머니께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제 뺨을 한 대 때리기까지 하셨지만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오빠가 저를 한 방으로 불러 말했습니다. “공산당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잘못하면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저는 “죽더라도 연공할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나자, 당시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고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습니다.

3) 가자!

불법 감금돼 있던 세뇌반에는 목욕탕이 하나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워 매일 목욕하러 갔고 식사는 목욕탕과 연결된 식당에서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끌려 식사하러 갔을 때 식당에 목욕탕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문을 열면 바로 목욕탕이었습니다. 때로는 그곳에서 식사했고 때로는 그들이 음식을 방으로 가져와 먹었습니다.

오빠가 제게 그런 말을 했던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후 목욕하러 갔습니다. 여경 3명이 저를 데리고 목욕하러 갔는데 그들은 매일 교대했습니다. 여경 한 명은 아마 밤에 그곳에서 묵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나는 씻지 않고 목욕탕 입구에서 기다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여경 한 명은 먼저 씻고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으로 나갔던 여경이 다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목욕탕 안뜰에 있었습니다. 목욕하지 않은 여경은 목욕탕 바깥뜰에 서 있었는데 아마 출입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나와 보니 안뜰에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당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자!’ 식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식당 정문을 통해 뛰쳐나갔습니다. 식당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대문을 향해 갔습니다. 큰길을 따라 달리면 그들이 반드시 따라잡을 것 같았기에 길 건너편 마당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4) 두 공간의 나

속으로 ‘달려서는 안 돼. 허겁지겁 달리면 나중에 그들이 행인들에게 물었을 때 내가 길 건너편으로 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신기한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다른 한 공간에 있는 제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쪽 몸은 달리지 않고 걷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 주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5) 유난히 밝은 달

길 건너편 마당에 있는 큰 화단으로 가서 그 위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큰길 한가운데에 이르러 아직 대문에 도착하기 전부터 목욕탕 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일 났다! 큰일 났어! 도망쳤다! 도망쳤어!” 화단에 숨어 있으면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쪼그리고 앉아 있던 다리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밖이 조용해진 것 같았고 화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의 집들도 모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날은 달이 유난히 밝아 걸어갈 때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담장은 화단과 매우 가까웠습니다. 담장 옆에 커다란 흙더미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흙더미 위로 올라가 담장 밖을 살펴보니 풀이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풀 아래가 물인지 땅인지 확신할 수 없어 벗어놓은 옷이 들어 있는 봉지를 아래로 던져봤습니다. 봉지가 가라앉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뛰어내렸습니다. 땅에 내려서니 매우 푹신한 느낌이 들었고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담장 옆에 마침 커다란 흙더미가 있어서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키가 150cm밖에 안 되는 제가 그렇게 높은 담장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제자를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6) 돈을 내고 택시를 타다

담장 밖은 농경지였습니다. 길가로 걸어가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다른 성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납치돼 올 때 경찰이 몸을 수색했는데 당시 700위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지혜를 주셔서 저는 돈을 은밀한 곳에 숨겼고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택시비로 200위안을 썼습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터미널 화장실에 가서 다리에 묻은 진흙을 간단히 씻었습니다. 양쪽 발에 모기에 물린 붉은 점들이 빽빽하게 나 있어 성한 피부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슈퍼마켓에 가서 양말 한 켤레를 사서 신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시 잡혀가지 않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5. 자료점을 설립하다

1) 자료점의 중책을 맡다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지 수련생 한 명이 저를 찾아와 현지 자료점 업무를 맡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현지 수련 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됐고 기존 자료점들도 모두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우리 3명은 자료점을 설립했습니다. A 수련생은 기술과 컴퓨터, 인쇄 장비 유지보수 및 자료 다운로드를 담당했고 저는 인쇄와 제본을 담당했으며 C 수련생은 진상 자료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몇 년간 평온하게 지내며 현지 수련생들에게 끊임없이 진상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진상 소책자, 전단지, 스티커,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 ‘9평 공산당’ 등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대법서적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 등도 제작했습니다.

2) 주민센터의 감시

이 기간에 이사도 몇 번 했습니다. 첫 번째 자료점은 한 수련생의 친척 집에 있었습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집에 들렀다가 “이 방은 왜 문이 닫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즉시 이사했습니다.

친구의 빈집을 빌려 그곳에서 진상 자료를 인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에 공안이 붙여놓은 쪽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파출소에 가서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 같았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 이웃을 만났는데 이웃이 말했습니다. “여기 사세요? 경찰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등록하러 가라고 알려주라더군요.” 저희는 위험을 감지하고 그날 즉시 장비를 한 수련생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그 수련생 집에서도 몇 년간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3) 가는 곳마다 자료점을 설립하다

2011년, 외지로 일하러 가야 했기에 한 수련생을 찾아가 장비를 그녀에게 넘겨줬습니다.

외지에 도착한 후 외지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았고, 그곳에서도 작은 자료점을 설립해 그 지역 수련생들에게 진상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6. 실명으로 장쩌민 고소

2015년 8~9월 무렵, 명혜망에서 적지 않은 수련생이 장쩌민 사악한 불량배 집단을 실명으로 고발하고, 그들이 여러 해 동안 대법제자들을 박해한 범죄를 고소하는 내용의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저 자신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수련생을 찾아가 이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수련생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실명으로 장쩌민과 사악한 불량배 집단이 대법을 박해한 범죄, 그리고 저 개인에게 가한 박해를 고발하는 거예요.” 수련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써요!”

각자 장쩌민 고소장을 작성해 인쇄한 뒤 우편으로 발송했습니다. 수시로 택배 정보를 확인했고, 고소장이 이미 베이징에 도착한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어서 최고인민검찰원 웹사이트에서도 장쩌민 사악한 불량배 집단이 저지른 범죄를 실명으로 고발하며 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남기고 고소장 첨부파일 등도 제출했습니다.

고향 수련생들이 저를 찾아와 장쩌민 고소장 인쇄를 도와달라고 했는데 10여 부가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이 자필로 쓴 고소장을 문서 파일로 입력한 뒤 인쇄하고 각각 제본해 그들에게 가져다줬습니다.

연말이 되자 주민센터 직원이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편지를 썼습니까?” 저는 “썼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러 차례 우리집에 찾아와 물었습니다. “아직도 연공합니까?” 저는 “당연히 연공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법서적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 책은 전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좋은 법을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합니까?” 그들은 “집에서 연공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흐지부지됐습니다.

7. 구류소에서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다

1) 속아서 체포되다

2019년 여름, 많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어느 날 오전, 출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가 제 차를 들이받았다며 내려와 교통경찰에 신고하고 처리하자고 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경찰 8~9명이 저를 에워싸며 다가왔습니다. 벗어나려 하자 제게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먼저 저를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경찰 몇 명이 저를 붙잡고 문을 열라고 요구하며 불법 가택수색을 하려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수색영장이 있습니까?” 빈 수색영장을 꺼내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이건 위법입니다. 백지 수색영장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집은 도어록이었는데 그들은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저를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건물 아래로 내려왔을 때 저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졌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가짜이며 파룬궁에 대한 박해입니다!” 주택단지 건물 아래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제가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악인에게 신고당했고, 경찰이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저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파출소에서 진상을 알리다

파출소에 도착해 저를 감시하는 경찰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습니다. 잠시 후 경찰 한 명이 저를 한 방으로 데려가 불법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앉아”라고 하길래 저는 “안 앉을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방 안을 왔다 갔다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앉지 않으면 어떻게 물어봐?” 저는 “수갑을 풀어주면 앉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불러 수갑을 풀어줬습니다.

경찰이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야?” 저는 대답했습니다. “제 이름도 모르면서 왜 여기로 데려왔습니까?”

그는 다른 질문도 했지만 저는 모두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파룬궁 연공을 시작했어?” 이 질문을 듣고 답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진상을 알릴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게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는지, 수련 전후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며 심성이 크게 높아져 다른 사람과 사소한 일로 따지지 않고 항상 남을 배려하게 됐으며 이익도 담담하게 보게 됐다는 등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제자는 진선인에 따라 수련하며,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져 있어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상황을 볼 수 있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서명하라고 했지만 서명하지 않겠다고 하자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먹을 컵라면을 하나 준비하더니 제게도 한 그릇 줬습니다. 옆에서 저를 감시하던 경찰이 말했습니다. “구금된 사람한테 컵라면 준 적 한 번도 없어. 이런 대우는 처음이야.” 저는 “저는 좋은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3) “성격이 달라요”

낮에 그들은 남편을 불러왔습니다. 남편은 몹시 초조해하며 끊임없이 저를 설득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그들은 가택수색을 하겠다며 도어록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도어록을 교체한 지 얼마 안 됐고 남편은 외지에서 일해 아직 번호를 알려주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이 제게 말했습니다. “도어록 하나에 거의 2000위안이나 해. 얼른 비밀번호 말해줘. 들어가서 수색 한 번 하면 되잖아?”

제가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어요.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그들의 수색에 협조하는 게 돼요. 강제로 자물쇠를 뜯는다면 저에 대한 박해예요. 두 가지는 성격이 달라요.”

끝내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자, 경찰은 열쇠공을 불러 도어록을 뜯어냈습니다. 저는 파출소 맨 끝 방, 그들이 ‘우리’라고 부르는 곳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안에는 청년 3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4) 구류소에서 진상을 알리다

파출소는 저를 시 공안국과 정법위원회에 보고했고, 밤늦게 경찰은 15일간 구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파출소 경찰 한 명이 저를 데리고 채혈과 지문 채취 등을 하려 했습니다. 저는 “안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좀 협조해”라고 하자 저는 “협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협조 안 하면 강제로 할 거야”라고 하자 저는 “강제로 해도 협조 안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에이, 됐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경찰은 차로 저를 구류소에 데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어디든 진상을 알릴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구류소 감옥경찰은 저를 한 감방으로 데려갔는데 그 안에는 약 20명이 있었습니다. 구금된 사람 대부분은 도박, 싸움, 절도, 성매매 등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금세 친해졌고 한 사람씩 진상을 알렸습니다.

청년들은 삼퇴를 권하기 쉬워 말만 하면 탈퇴했습니다. 구류소에서는 매일 사람이 나가고 새로 들어왔습니다. 나가는 사람은 모두 삼퇴했고, 들어오는 사람에겐 다시 진상을 알렸는데 대부분 삼퇴했으며 단 2명만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진선인에 따라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한 글자씩 읽도록 가르쳤고, 온전히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알려줬습니다.

저는 매일 파룬따파의 훌륭함과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을 이야기하고 전통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그녀들은 모두 말했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게 없으세요? 아는 것도 많고 학식이 풍부하시니 분명 대학교 선생님이시죠?” 저는 “아니에요. 대법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불법 감금된 시간이 가장 길었기에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았습니다. 삼퇴 명단이 헷갈리지 않게 매일 머릿속으로 삼퇴 명단을 정리했습니다. 전후로 20여 명에게 삼퇴를 권했고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다 탈퇴했습니다. 나중에는 안의 사람들이 저를 ‘왕언니’로 모시려 했습니다. 저는 “저는 무슨 왕언니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만 기억하시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들을 바라보다 자비심이 나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로, 이번 정법에서 천체가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늘만큼 큰 담력으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 와서 세뇌돼 아무것도 모르게 됐고 얼마나 많은 업을 지었습니까. 사존의 제도가 없다면 어쩌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원래 천체도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중생을 자비롭게 제도해 주시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8. 원망심을 수련해 제거하고 정에서 벗어나다

1) 남편의 태도가 변하다

2022년 하반기,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떨어져 살았고 세 식구가 각기 다른 세 곳에서 지냈습니다. 거듭 고민한 끝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사를 마친 그날 밤, 남편은 제게 기선 제압을 하려 했고 말투도 예전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무척 이상했지만 ‘됐어, 돌아왔으니 돌아온 거지’라고 생각하며 남편과 크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저는 자주 넘어졌는데 몹시 심하게 넘어졌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으며 옷조차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별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신 것으로, 저 자신을 잘 수련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연로하신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셔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바빠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제 말을 무조건 따랐고 집안일도 도맡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온 후 남편은 태도가 몹시 냉담해졌고 집안일도 시켜야만 했으며 안 시키면 앉아서 휴대폰만 봤습니다. 때로 제가 요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빠 남편을 한참 불러야 왔고 채소를 씻을 때도 건성건성 씻었습니다. 씻고 난 후 확인해 보면 진흙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2) 정면충돌

또 긴 시간이 지난 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제 친척과 사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친척 남편이 외지에서 일해 집안에 일이 생기면 자주 제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렇게 오가다가 눈이 맞은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남편이 그 집 일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나한테 이렇게 냉담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설 연휴 초엿샛날, 시부모님 댁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다가 길에서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은 제 어깨를 움켜잡고 마치 병아리를 들어 올리듯 저를 거울 앞으로 끌고 가며 “당신 얼굴 좀 봐”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온갖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전화를 들어 시동생에게 걸고 딸(딸은 그날 할머니 댁에 머무름)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 사람 데려가요. 더는 못 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시부모님 댁으로 돌아갔습니다.

3)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다

일이 지나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자신이 매우 잘못했음을 느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지 않았고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속인 일로 여겼습니다. 20여 년이나 수련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형편없이 행동했을까요.

지난 몇 년간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줄곧 난관을 헤쳐 왔지만 심성을 착실하게 수련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팠습니다. 남편에 대한 강한 원망심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제게 그런 짓을 하고 가정을 배신한 것을 원망했고, 돈을 벌지 않으며 가정에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등을 원망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모두 집착심이며 수련인이 마땅히 수련해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4)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다

저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외웠으며, 동시에 강대한 정념을 발해 원망심과 쟁투심을 제거했습니다. 어느 날 밤, 연로하신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120 구급차를 불러야 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해 와서 도와달라고 했고, 함께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돌아와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 제 언행에 주의하기 시작했고 대법 기준으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습니다. 머릿속에는 때때로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가끔은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점차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지금은 가정환경 전체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남편은 앞장서서 집안일을 하고 요리도 도맡아 합니다. 발정념 시간이 될 때마다 남편은 제게 “곧 시간이야. 발정념 끝나면 밥 먹자”라고 일깨워 줍니다.

예전에 진상을 알릴 때 남편이 그 자리에 있으면 늘 불같이 화를 내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진상을 알려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길에서 남편 동창을 만났습니다. 남편이 동창과 인사를 나누자 제가 다가가 그 동창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동창은 예전에 직장에서 하급 간부로 일했으며 당원이었습니다. 순조롭게 그를 설득해 삼퇴하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신 동창 삼퇴하도록 설득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당신이 또 한 사람 구했네”라고 말했습니다.

맺음말

지난 29년간의 수련 과정을 돌아보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줄곧 끊임없이 제자를 일깨워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제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31/51574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31/515747.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