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교류 원고 작성의 깨달음
1) 사부님의 일깨움
안일심이 있어 10여 년간 중국법회 원고모집에 투고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수련생이 저희 집에 와서 제게 물었습니다. “중국 대법제자 법회 원고모집을 하는데 쓰실 건가요?”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돌아간 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후 8월 14일 새벽, 저는 선명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한신(韓信)이 글자를 부쳐[郵字] 사람을 구하는데 당신은 글자를 부쳐 사람을 구하지 않나요?” 깨어난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일깨워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한신’은 ‘서신[信函]’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글자를 부친다’는 것은 원고를 발송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제게 쓰라고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시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의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수고로움과 무량한 감당, 자비로운 안배와 가지(加持)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셨고, 반드시 교류 원고를 잘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 무엇을 쓸 것인가?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을 박해한 이래로 긴 세월 동안,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 인도, 일깨움 속에서 저는 줄곧 끊임없이 공안과 정법위 등 부서에 진상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거나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해 왔으며 한 번도 늦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렇게 견지하며 진상을 알리면 세 가지 큰 이로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그들이 진상을 안 이후에는 그들 배후의 중생들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고, 그들 자신도 악업을 짓지 않게 됩니다. 둘째, 그들이 진상을 깨달은 후에는 본 지역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박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박해를 경감시킵니다. 셋째, 박해가 가벼워지고 환경이 자연스럽게 여유로워지면, 걸어 나오는 수련생이 많아지고 중생들에게 복이 생기며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 역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량의 법공부로 정념이 가지돼, 저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고, 공안의 관련 책임자들이 진상을 일부 깨닫게 해 그들이 대법제자에게 선행을 베풀게 했습니다. 아래에 저는 수년간 현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과 대면해 진상을 알린 일과, 시 위원회, 공안, 검찰, 법원, 교육국 등 부서(주로 공안국 관련 직원)에 진상 편지를 쓴 경험을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2. 저와 현지 국보 경찰 사이의 이야기
1) 국보 대대장의 전화번호를 얻다
이것은 처음부터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대략 10년 전, 제가 대면해서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붙잡혀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파출소에서 저는 오전 내내 갇혀 있다가 집으로 풀려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저희 집에 있던 대법서적 일부를 국보 부서 경찰이 가져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다음 날, 저는 공안국에 가서 국장에게 책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수위는 국장이 없다고 했고, 국장 사무실은 출입을 금지해 저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안국 로비에 앉아 가부좌를 했습니다. 약 30분 정도 앉아 있었으나 아무도 제게 묻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저는 일어나서 뒷마당으로 갔고, 뒷마당에서 위층을 향해 국보 대대장의 이름을 부르려 했습니다. 뒷마당에는 전부 주차 공간이었고 문이 있었으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그 자리에 서서 위층을 향해 직접 국보 대대장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선한 인상의 경찰 한 명이 내려왔습니다.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길을 따라 걸으며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우리 둘은 걸었고 저는 걸으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는 많은 질문을 했고, 저는 그에게 모두 명백히 알려주었으며, 그는 ‘위민(爲民)’이라는 가명으로 탈당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국보 대대장이 저희 집으로 차를 몰고 가 제 아들에게(나중에 제게 말해줌) 말했습니다. “빨리 어머니를 모셔 와. 공안국 건물에서 소리치게 하지 말고. 내 전화번호를 줄 테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부르면 바로 갈게.” 그렇게 우리는 이 국보 대대장의 전화번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번호는 아주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한번은 국보 대대장과 그 ‘위민’이라고 불리는 경찰이 저희 집에 왔는데, ‘위민’은 대대장이 문 앞에 간 틈을 타 제게 자기는 정말 박해하는 일을 하기 싫다면서 자신을 위해 부서를 바꿔줄 사람을 찾아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뒤에서 대법제자를 보호하는 것을 굳게 견지할 수 있다면 당신의 공덕은 무량할 것입니다. 당신이 정 이 일을 하기 싫다면, 대법 사부님께 당신의 직종을 바꿔 달라고 빌어보세요. 아주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 후로 저는 다시는 그 경찰을 보지 못했습니다.
2) 신전문화가 선념을 일깨우다
이 전화번호가 생긴 후, 저는 거의 보름에 한 번씩 그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리거나 그에게 퇴근 후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는 정말 부르면 바로 왔습니다. 어떤 때는 전화로 할 말이 없어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면, 그는 아직 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저녁 5시가 넘었을 때, 제가 국보 대대장을 단골 장소로 불렀는데 경찰 세 명이 왔습니다. 저는 대대장에게 신전문화 등의 내용이 담긴 휴대용 소형 녹음기 하나를 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안에는 우리 중화민족 신전문화의 정수가 들어있어요. 젊은이들은 이 방면의 지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당신들 세 사람이 돌아가서 한번 들어보세요. 분명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그것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잠시 듣더니 챙겨 넣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법 사부님께서 저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겁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집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저는 서둘러 집에 가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제가 떠나려 할 때 그들 세 명은 모두 제게 천천히 가라고, 사람이 많으니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하며 동시에 제게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속으로도 다소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공안 내부에서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들이 다 듣고 난 후 대대장이 그 소형 녹음기를 국장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국장이 회의할 때 그 녹음기를 손에 들고 말했습니다. “파룬궁이 나쁘다고들 하는데 여러분 이것 좀 들어보시오. 이 안에는 전부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내용이오.” 그때 한 경찰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럼 위에서 정책으로 압력을 가하면 어떻게 합니까?” 국장이 말했습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길 수 없소?” 이것이 바로 신전문화가 국장의 선념을 일깨워 준 것이었습니다.
3) 장쩌민 고소 이후
‘장쩌민 고소’의 큰 물결이 시작된 후, 우리 현지 수련생들은 협조를 잘했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정말 마음을 썼는데, 인터넷에서 양식을 찾거나 전화를 걸어 장쩌민 고소를 도왔고, 어떤 이는 타이핑, 원고 정리, 발송을 돕고 택배 기사 연락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 기간에 어느 수련생은 잠을 거의 자지 않아 한 달 만에 체중이 몇 kg이나 줄었고,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저는 매일 한 수련생과 함께 농촌으로 내려가 그곳 수련생들이 장쩌민 고소 원고를 정리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왕복 거리가 멀어 그곳 수련생들을 교란하지 않기 위해 점심때마다 밖에서 음식과 물을 조금 사서 작은 숲속에서 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마을로 들어가 수련생을 찾았습니다. 특히 일부 노년 수련생들은 고소장 원고를 정리하도록 도와준 후 부칠 줄을 몰라서 저는 그들을 모두 저희 집으로 오게 했고, 우체부를 저희 집으로 불러서 부치게 했습니다. 나중에 이 고소장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공동 노력 덕분에 본 지역(현급 시)의 90% 수련생들이 모두 장쩌민 고소에 참여했습니다.
나중에 일부 고소장이 현지로 반송됐고, 국보 대대장이 고소장을 가져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는데, 그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천상이 도래하면 당신이 어쩌겠습니까?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죄업을 지으면 하늘이 장부를 기록할 것이고 당신은 갚아야 합니다. 당신은 위로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 아내와 자녀가 있는데 어쩌려고 합니까? 그러니 당신은 반드시 한쪽 눈을 감고 모른 척하며 월급이나 받으면 됩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장쩌민만 폭로하십니다. 당신이 억지로 자기 몸에 끌어당기려 하지 말고 자신의 생명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장래에 파룬궁이 명예를 회복했을 때 만약 당신이 법정에 고발당한다면, 당신이 잘 처신해 대법제자를 보호했다면 제가 반드시 나서서 당신의 변호사가 되어 주겠어요. 어떻습니까? 게다가 당신이 잘 처신하면 하늘에도 모두 기록이 남아 당신에게 큰 공을 기록해줄 것입니다.”
비록 현지 수련생들이 장쩌민 고소를 할 때 모두 실명과 자신의 전화번호를 사용했지만, 장쩌민 고소 이후 공안 파출소는 움직이지 않았고 대법제자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4) 한 자료점이 파괴된 후
2016년 어느 날, 농촌 수련생 집의 프린터, 컴퓨터 등을 파출소 경찰이 압수해 갔고, 수련생은 당시 몸을 피했습니다. 일이 터진 지 3~4년 후, 이 국보 대대장이 저를 찾아와서 그 이후로 자기는 수련생을 단 한 번도 추궁하지 않았고 그녀의 집에 간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잘하셨어요. 대단합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요 며칠 내로 한 번 가봐야겠어요. 그녀를 보러.” 그가 막 가려고 할 때 저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절대 가지 마세요. 일이 지나간 지 3~4년이나 됐으니 내려놓으세요. 끝까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한쪽 눈을 감고 모른 척하며 월급만 받으면 됩니다. 게다가 그 수련생은 겁이 많아서 박해가 심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이때 그는 웃었는데 안 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손을 놓자 그는 떠났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그 수련생의 집에 가지 않았고 그 일을 추궁하지도 않았으며 수련생은 무사히 집에 있습니다. 그날 일어난 일 이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한낱 아녀자로서 어떻게 젊은 남자의 손을 잡고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참… 어쨌든 수련생이 박해받지 않으면 된 것이다.’
5) 정념으로 대법서적과 사부님 법상을 보호하다
저는 법공부 중에서 대법은 자비롭지만 위엄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이 국보 대대장은 결코 제 대법서적을 가져가지 않았지만, 만약 경찰 몇 명을 데리고 올 때면 이따금 공을 세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제 ‘전법륜(轉法輪)’ 책 한 권을 보더니 휙 집어 들고는 가져가서 새로운 ‘논어’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여기서 보라고, 금방 다 볼 것이라고 했으나 그는 기어이 가져가려 했습니다. 이때 그가 두 손으로 책의 위쪽 모서리를 쥐자 저는 책의 아래쪽 두 모서리를 쥐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손 놓으세요! 만약 오늘 감히 제 대법서적을 가져가신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 대법서적을 지킬 것입니다. 못 믿겠으면 한번 해보시죠.” 그러자 그는 웃으며 손을 놓았습니다.
또 한번은 젊은 경찰 한 명이 제가 방심한 틈을 타 사부님 법상(크기가 비교적 작은 것)을 손에 들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렸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단숨에 사부님 법상을 빼앗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분은 제 사부님이시지 당신 사부님이 아니니 가져가면 안 됩니다.” 저는 두 손으로 법상을 받들어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어쩌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6) 정념으로 삼퇴 명단을 보호하다
어느 날, 저는 집에서 1000여 명의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막 베껴 쓰기를 마치고 아직 정리하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온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경찰이어서 마음이 좀 긴장됐습니다. 저는 서둘러 안방으로 달려가 명단을 이불 밑으로 밀어 넣었는데 미처 다 덮기도 전에 경찰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국보 대대장은 쓱 보더니 제게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감출 수 없어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퇴 명단을 베껴 쓰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내게 줘봐.” 저는 말했습니다. “줄 수 없어요. 주면 찢어버릴 텐데요.” 그는 기어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베껴 쓴 공책 하나를 들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페이지는 탈당 명단이고 이것도 그렇습니다. 이건 탈단 명단이고요.” 이때 그가 두 손으로 공책의 위쪽 두 모서리를 잡았고 저는 아래쪽 두 모서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업을 지으면 괴롭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이 명단을 가져가려나 본데요. 손 놓으세요! 찢어지잖아요! 이 명단에 대법제자들의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과 고생이 담겨 있는지 아십니까? 한 명을 탈퇴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세요? 이것은 또한 중생의 목숨입니다!” 그는 웃으며 손을 놓았습니다.
명단은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게 지혜와 용기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7) 정념으로 경찰의 악행을 제지하다
중공의 박해가 시작된 이래, 제 전화는 모두 일반인의 신분증으로 개통한 것이었습니다. 고향 마을 간부가 제 정보가 불완전해서 노령연금을 받을 수 없으니 반드시 제 명의의 휴대폰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2년 전, 저는 제 신분증으로 휴대폰 번호를 하나 개통했습니다. 나흘 후 밖에는 비가 내려 저는 진상을 알리러 나갈 수 없었기에, 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저희 집 법공부 팀 수련생들을 법공부하러 오라고 불렀습니다. 오전 8시, 수련생들이 도착했고 우리는 침대 위에 앉아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국보 대대장이 경찰 두 명을 이끌고 저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저의 첫 번째 일념은 전화가 도청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물었습니다. “집에서 뭐해?” 저는 법공부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네 명인 것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누가 당신들보고 법공부하라고 했어?”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집에서 배우고 연공하는 건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는 또 말했습니다. “당신 말고 나머지 세 명은 날 따라와.” 저는 침대 안쪽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습니다. “오늘 누가 감히 한 명이라도 데려갈 수 있는지 볼까요?! 법공부가 잘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설령 잘못이라 하더라도 제 잘못입니다. 제가 그들을 오라고 했으니까요. 데려가려면 저를 데려가고, 저 세 사람은 누구도 건드리지 마세요.”
그들은 웃더니 앉아서 말했습니다. “다들 산 채로 장기를 적출한다고 하는데, 우리 중에 장기 하나 모자란 사람이 있나?”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공안국은 그래도 선한 편이고 양심이 좀 있죠. 만약 당신들이 정말 대법제자 한 명을 박해해 죽인다면 생각해보세요. 당신들 공안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요? 천리는 공평한 법입니다.”
3. 진상 편지를 써서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을 구하다
1) 편지를 쓸 때 마음속에 목표를 두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는 반드시 공안, 검찰, 법원 등 부서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라고 생각합니다. 막 진상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마침 전염병 사태가 시작돼 집에 봉쇄됐습니다. 저는 오전에 법공부를 하고 오후에 편지를 썼습니다. 근 두 달 가까이 쓰고 나서야 이 일을 완성했습니다.
배움이 짧아 가끔 글을 쓸 줄 몰랐지만, 사부님의 인도와 일깨움 아래 마침내 다 써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장쩌민은 법률을 ‘제조’할 권한이 없다고 썼을 때, 머릿속에서 ‘입법, 입법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즉시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신 것임을 깨닫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저는 각종 진상 편지를 쓰고 마지막에 ‘발해만 조난기’(역주: 발해만 태풍 속에서 선원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자 풍랑이 잦아들어 배가 무사했다는 체험담) 한 장을 첨부했습니다. 편지를 쓸 때 마음속에 목표를 두었는데, 그것은 바로 상대방이 편지를 읽는 입장에 서서 대법의 자비와 위엄을 써내는 것이었습니다. 한 수련생은 제가 쓴 편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편지는 한마디도 더 쓰지 않았고 덜 쓰지도 않았네요.” 저는 사부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총 20통의 편지를 썼고 한 통당 10장씩이었는데 전부 제가 직접 썼습니다. 현지 시 위원회 서기, 교육국장, 공안국장, 정법위 서기, 국보 정(正) 및 부(副) 대대장에게 각각 한 통씩 보냈고 각 향진 파출소 소장들에게 각각 한 통씩 보냈습니다.
2) 진상 편지를 우송하는 과정에서의 풍파
진상 편지를 다 쓴 후 저는 발송하러 갔습니다. 먼저 총우체국에서 부치면서 우체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저희를 매우 동정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10여 통을 부치고 속으로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두 통을 남겨 작은 우체국에 가서 부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칠 때 제가 먼저 우체부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 사람은 우편물을 만지면서 듣기 거북한 말을 했고 밖으로 나가 차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좀 불안해졌습니다. 수속은 다 마쳤고 집에 돌아와 문 앞에 막 당도했을 때 경찰 몇 명이 다가왔습니다. 국보 대대장이 말했습니다. “○○씨, 나랑 같이 좀 가야겠어.” 저는 일이 터진 것을 알았고 말했습니다. “가는 건 좋지만 점심때는 돌아와서 밥을 지어야 합니다.” 그들은 경찰차로 저를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대대장을 보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저희 집을 가택수색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저를 심문하는 경찰은 제게 한가운데에 있는 죄수용 의자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어찌 죄수의 자리에 앉겠습니까?” 그는 작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 제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손에 그 편지 두 통을 들고 말했습니다. “이 편지 당신이 부친 거야? 누가 부치라고 했어? 이 편지 써서 뭐 하려고?”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부쳤습니다. 지금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당신들의 소중한 목숨을 해치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당신들에게 전염병 재난을 어떻게 넘길 수 있는지 알려준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하네, 이 편지 한 통 베끼는 데 며칠이나 걸렸어? 글씨도 너무 반듯하잖아.”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구원받게 하려면 우선 당신들을 존중해야 하고, 당신들이 읽고 싶어야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속으로 처음 부친 그 10여 통의 편지가 제발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 일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후 대대장이 왔고 차로 저를 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약 5~6일 후, 대대장이 아들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또 진상 편지 보냈더라?” 아들은 그 10여 통의 편지가 전부 도착했음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날 한꺼번에 부친 겁니다.” 그렇게 일은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3) 정념으로 대법서적을 되찾다
이 이야기는 앞의 내용과 이어져야 합니다. 제가 진상 편지를 부친 일로 파출소에 갇혀 있을 때 대대장이 가택수색을 하려고 출근했던 아들을 집으로 불러 문을 열게 했습니다. 제 침대 머리맡에 큰 종이상자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대법서적 수십 권과 100여 장의 ‘인연 있는 분께 드리는 편지’ 전단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단순해 편지를 부치는 데 위험이 따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갈 때 정리하지 않았고, 결국 대대장 일행이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저는 후회돼 소리 내어 통곡했고 그날 밥도 먹지 못하고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대대장 일행이 출근하기도 전에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았고 그들을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 책 상자가 눈앞에 떡하니 놓여 있었으니 당신들 다섯 명이 보고 안 가져갈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안 가져가면 당신 입장도 곤란했겠죠, 그렇죠? 제가 오늘 전화한 것은 제 책을 돌려받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당신이 책을 돌려준다면 당신의 공덕은 무량할 것이고 하늘이 당신에게 큰 공을 기록해줄 것입니다. 만약 제게 줄 수 없다면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지만 국장에게 전해주세요. 내일부터 저는 공안국에 가서 머물 것이며, 책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책이 없으면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대법도(大法徒)로서 대법서적조차 보호하지 못하면서 저를 자비로운 제도로 이끌어 주신 사부님을 어떻게 뵐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몹시 슬퍼 울면서 전화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스님이 염불하는데 경전이 다 없어졌다면 무슨 경전을 읽겠습니까?! 어차피 저는 밥 먹을 생각도 없고 잠도 안 오니 죽고 사는 건 상관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허튼짓 하지 마,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아들한테 집에서 기다리라고 해.” 그는 제게 전화를 아들에게 바꿔주라고 해 몇 마디 나눴습니다.
오후 3시, 대대장이 집 아래층에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기뻐하며 큰 책 상자를 안고 돌아왔고 100여 장의 진상 전단지도 고스란히 돌려받았습니다. 저는 “고맙다는 인사는 했니?”라고 물었고 아들은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뻐서 웃었는데 정말이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전법륜)입니다.
4) 공안국장의 선행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인쇄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여러 시를 거쳐 현지 수련생의 손에 들어왔다가 다시 제 손에 전해졌습니다. 내용은 제 고향 이웃 마을의 어떤 사람이 외지 어느 시의 공안국장으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지시로 단번에 10여 명의 대법제자가 붙잡혔고 그중 몇 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아 매우 악랄하게 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저를 지명해 그 공안국장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한 이상 필시 사부님의 지시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썼던 진상 편지 초고를 그대로 다시 베껴 써서 그 ○○ 시 공안국장 앞으로 보냈습니다.
약 열흘 후 국보 대대장이 저희 집 문을 들어서자마자 말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까부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시까지 가서 까불다니.” 저는 말했습니다. “전 간 적 없어요. 그저 진상 편지 한 통을 보냈을 뿐이죠. ○○ 국장은 우리 고향 사람인데 우리가 그 사람이 악업을 짓는 걸 빤히 보고만 있을 수 있나요? 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이 어제 5~6명을 데리고 당신 잡으러 왔는데 우리 국장님이 막아주신 거야.” 저는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국장님께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당신에게도 고맙고요. 신의 눈은 번개와 같으니 하늘이 또 당신들에게 큰 공 하나를 기록해 줄 겁니다!”
맺음말
저는 수련인으로서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에 부합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개인의 집착을 내려놓고 생사를 내려놓으며 중생을 위해 생각한다면, 대법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담력과 식견을 주며 성공할 용기와 힘을 줄 것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번 생에 제가 대법 사부님의 제자, 위대한 대법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저는 반드시 계속 노력해 법공부를 잘하고 저 자신을 잘 수련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중생을 많이 구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들이 서로 돕고, 서로 협조하며, 서로 격려해준 것에도 감사합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1/51584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1/51584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