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은 이미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고, 대법은 눈부시게 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처럼 제 인생의 길을 밝혀줬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1. 어르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심성을 단련하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서 제게 가장 깊게 와닿은 점은 인생에서 수십 년간 형성된 저 자신의 생각과 낡은 관념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입니다. 대법은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도록 요구합니다. 처세와 가정의 재산, 이익 등의 문제에서 수련인과 속인의 다름을 유독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수련인의 심성 기준은 일을 할 때 남을 배려하고, 이익 면에서 기꺼이 손해를 보며, 사람 간의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고, 선량하고 자비로운 생명의 본성을 수련해 내는 데 반영됩니다.
남편의 고향은 농촌으로 집에서 둘째입니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비롯해 위로 누나가 한 명,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습니다. 남편은 대학 졸업 후 타지에 배정받아 일했고, 당시 남동생과 여동생은 이미 모두 가정을 꾸린 상태였습니다. 시아버지는 집, 식량용 밭, 도급받은 밭을 포함한 집안 재산을 모두 결혼한 막내아들에게 줬고, 막내아들 내외를 도와 손자 두 명을 돌봐줬습니다. 사실 시아버지가 막내아들과 함께 산 것도 그가 노후를 책임져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저와 남편이 결혼할 때 시아버지는 돈이 한 푼도 없어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제게 “결혼 비용을 내주지 않으시니 분명 너희에게 노후를 기대하지도 않으실 거야, 그것도 괜찮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편과 집을 빌려 결혼했고, 조금씩 돈을 모아서야 비로소 우리집을 장만했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시동생 내외는 시아버지와 지내기 매우 힘들어했고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퉜습니다. 나중에는 만나기만 하면 원수처럼 여겨 항상 심하게 싸우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결국 시아버지는 아침에 집을 나와 저녁에 돌아오는 식으로 피해 다녔지만, 집에 돌아와도 따뜻한 밥 한 술 없었고 구들장도 얼음장같이 찼습니다. 시아버지는 아무런 방법이 없자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상황을 보러 시동생 집에 갔습니다. 가보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상황을 묻자마자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할 듯이 다퉜습니다. 시동생 내외는 진심으로 시아버지를 내쫓으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대법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상의해 시아버지를 우리집으로 모셔 와 지내기로 했습니다.
처음 함께 지낼 때 저는 최대한 자비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시아버지를 대했고, 의식주를 세심하게 살피며 과일, 과자, 즐겨 드시는 통조림을 끊이지 않게 뒀습니다. 시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셔서 저는 커우러우(돼지고기 찜) 만드는 법을 배워 해드렸고, 명절이면 늘 새 옷을 사드렸습니다.
자신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갈등이 찾아왔습니다. 시아버지는 유독 폐지나 생수병을 주워다 파는 것을 좋아하셨고, 주운 물건들을 우리집 1층의 작은 창고에 쌓아둬 겨울을 나려고 저장해 둔 배추가 눌려 다 썩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시아버지는 대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아 변기 밖은 온통 소변 얼룩투성이였고, 폐지를 줍고 와서 옷이 아무리 더러워도 그대로 침대나 소파에 누웠습니다. 매일 시아버지가 남긴 뒷수습을 하다 보니 억울한 마음을 피할 수 없었고 남몰래 눈물도 흘렸습니다.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할 때면 저는 책을 보며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 늘 사건 표면 아래 아주 깊이 숨겨진 사심, 이익을 중히 여기는 마음, 쟁투심, 원망심, 질투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제 심성이 높아지자 더는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는 친척 집에 놀러 갈 때면 늘 제가 효도하고 자신에게 잘해준다고 기쁘게 말하시곤 했고, 어느새 남편 집안에서 제 위신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할 때마다 효과도 매우 좋았습니다. 결국 우리집에 7년 반 머무신 시아버지는 85세 고령에 병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진심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중생이 대법 안에서 혜택을 얻고 가정이 원만하고 행복해지도록 해주셨습니다. 대법의 복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쳤습니다.
2. 딸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들
딸은 다섯 살 때 저를 따라 함께 대법을 배웠습니다. 어릴 적에는 천목이 열려 있어 사부님의 법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딸을 데리고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에 법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자전거에 앉아 있던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자전거 끌고 가세요, 덜컹거리지 않게요.” 제가 배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배꼽 주위가 너무 아프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맹장염일까 두려웠는데 마침 시립병원 근처를 지나던 참이라 제가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괜찮아요, 업을 소멸하는 거예요, 제가 ‘홍음(洪吟)’을 외울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는 내내 함께 법을 외우며 집 문 앞에 도착했고, 딸은 자전거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배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기한 일들은 또 많습니다. 한번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매우 심하게 끓었고, 몸은 뜨거웠으며 얼굴은 새빨갰습니다. 서둘러 의사에게 데려가려 하자 딸은 또 업을 소멸하는 거라며 가부좌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둘은 가부좌를 시작했습니다. 딸은 결가부좌를 했는데 조금 지나자 다리가 너무 아파했습니다. 당시 겨울 오후 4시쯤이었고 날이 그리 어둡지 않았는데, 딸이 제게 말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사부님이 계세요, 다리가 너무 아파요, 제가 참아내면 사부님이 엄청 또렷하게 보이는데 다리를 내려놓으려 하면 사부님이 흐릿해져요.” 딸은 또 사부님이 파란 머리카락이고 가사를 입고 계시는데 가사 색깔이 책에 있는 사진보다 진하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발가락이 엄청 커져서 끝이 안 보이고, 사부님 주변에 또 많은 사부님이 한 손을 세우고 서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번 가부좌를 45분간 버텼는데 얼굴이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아파하다가 다리를 내려놓은 뒤 열이 내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딸의 업력을 소멸해 주신 것이었고 다시 활기차게 뛰어놀았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딸은 사부님을 볼 수 있는데 나는 보지 못할까?’ 결국 저는 제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사람 마음이 너무 많아 대법에 대해 반신반의할 뿐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딸의 모습을 통해 저는 수련을 잘하겠다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딸이 대입 시험을 준비하던 기간에 정규 수업 외에도 과외를 받아야 했고, 학업 스트레스가 커 매일 잠을 매우 적게 자며 대입 복습에 몰두했습니다. 대입 점수가 나왔을 때 딸의 점수는 2군에 지원하기엔 조금 부족했고 3군에 지원하기엔 매우 아까운 점수였습니다. 그때 저는 문제에 대한 인식 층차가 매우 낮아 이 일을 수련의 한 과정으로 여기지 못했고 집착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몹시 괴로워하며 구세력이 안배한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온종일 딸의 대학 지원 문제로 근심했습니다.
어느 날 한 노수련생이 저를 보러 우리집에 왔습니다. 딸의 대학 지원 상황을 묻기에 저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1군, 2군 합격자 발표가 끝났는데 아직 아이에게 아무 소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노수련생이 “마음을 내려놓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세요! 사부님께서 돌봐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문득 깨닫고 앉아서 ‘제 앞뒤 모두 대법에 속하고 사부님께서 주관하시며, 내 딸은 가장 훌륭하니 집착심을 내려놓자’라고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안 돼 집으로 성(省) 중의약대학 입학처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1군 전공인 약물제제학과에서 해외 공동 교육과정 학생을 모집하는데, 성 전체에서 합격선을 1점 낮춰 21명을 선발했고 딸이 합격했다며 학비를 준비해 제때 등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 대법이 남편을 구하다
제 남편은 2016년 4월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출혈량이 30~40mL에 달해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검사 결과 선천성 뇌혈관 기형이 발견됐는데, 현(縣) 병원에서는 감히 수술하지 못해 그날 밤 성(省) 병원 중환자실로 긴급 후송했습니다. 우리는 남편이 개두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치료 과정 전체가 순조로웠으며 12일 후 실밥을 풀고 우리는 재활을 위해 현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수술 후 남편은 계속 마비 상태였고 몸 한쪽에 감각이 없었으며, 침대에서만 대소변을 봐야 했고 밥도 먹여줘야 했으며, 말도 못 하고 글자도 못 읽었습니다. 매일 침을 맞고 추나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수련인으로서 겪는 일은 자신의 수련 제고와 관계가 있는데, 이 문제를 겪게 됐을 때 저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고난 속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제가 갈 길이고, 중생을 제도하는 동시에 사부님께서 제 고난을 풀어주실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당시 병실에서 대화할 수 있는 의사, 환자, 가족들에게 저는 모두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매일 밥을 가져다주는 길에 저는 진상 소책자를 챙겼고, 지나는 길에 주차된 차량의 창문이 열려 있어 진상 자료를 차창 안으로 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남편이 의식을 찾았을 때 저는 그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도록 이끌었고 매번 30분 이상씩 했습니다. 처음 외울 때는 발음이 불분명했지만 서서히 또렷해졌습니다. 이튿날 그는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화장실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감각이 없던 손이 다른 쪽 손의 도움을 받아 찐빵을 집어 입으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우리가 다 외우고 나자, 그가 병실 밖 복도를 걷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부축해 복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걸어갔고, 잠시 쉰 뒤 다시 천천히 걸어 돌아왔습니다. 의사는 이런 변화를 보고 모두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 남편의 업력을 소멸해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이 고난 속에서 그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법을 선택했습니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제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퇴원 후 남편은 줄곧 파룬궁의 1~4장 공법을 연마했고 몸이 아주 잘 회복됐습니다. 걷는 것도 정상인과 똑같아졌고 글자도 읽을 수 있었으며, 천천히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정상적으로 출근하게 된 후에는 고급 직함까지 받아 뇌출혈로 개두술을 받은 환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 남편은 줄곧 딸을 도와 갓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 외손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대법 안에서 혜택을 얻었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저 자신부터 남편까지 모두 대법과 사부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절실히 체득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제가 겪은 기적을 공유함으로써 하루빨리 정신적으로 각성하고 선악을 분별하며, 신속히 중공의 당(黨), 단(團), 대(隊) 조직에서 벗어나 재앙을 멀리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1/516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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