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주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년 수련생입니다. 부모님이 모두 수련하시기에 어려서부터 법을 얻었습니다. 수련하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중학교에 올라간 해가 돼서야 비로소 수련에 책임을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련 과정을 되돌아볼 때마다 치밀한 안배에 감사함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수련의 엄밀함은, 한 고리 한 고리 연결되어 있으며, 설사 매 시각, 매 일보마저 교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2024년은 처음으로 정부에 진상을 알리는 일에 참여한 해입니다. 전년도에 서호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캔버라로 이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과거에 참여했던 모든 대법 항목이 기초를 다져주었고, 정부에 진상을 잘 알리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갖추게 해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퍼스 시내 중심에 있는 대법 진상 부스에서 행인에게 진상을 자주 알렸습니다. 대다수 행인은 바쁘게 잠시 머물다 가기에 요점을 빠르게 전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중요한 기술은 지금 시간이 촉박한 정치인들과 대화할 때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미국의 청년 수련생들과 협력해 4개 언어로 진행되는 온라인 국제 청년 대법제자 교류회를 조직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수련생들과 협력하고 대법 항목을 조율하는 데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우리 청년 대법제자 팀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개설해 인포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게시했습니다. 이를 돕기 위해 그래픽 디자인을 배웠는데, 이 기술은 국회 행사를 위한 각종 브리핑 자료와 초대장을 디자인할 때도 마침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점차로 자신을 돌파하게 해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나보다 내성적이었고 사교성도 부족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집에서 조용한 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진상을 알리려면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더 자신감이 생겼고 말도 더 조리 있게 잘하게 됐습니다.
학창 시절 글쓰기에 전혀 소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글쓰기가 강점이 아니라고 하셨고, 저도 결국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글쓰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은 우리 브리핑 자료의 대부분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두 분 덕분에 중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분의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격도 물려받았습니다. 이는 더 나은 협조인과 협력자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절묘한 안배 같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데 필요한 많은 기술은 바로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걸어온 여정을 되돌아보고 나서야 사부님께서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안배를 해주셨는지 깨달았습니다.
겪은 모든 시련은 마치 다음 단계의 제고를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계단과 같았습니다. 다음으로 지난 몇 년간 겪은 잊기 힘든 몇 가지 수련의 시련과 깨달음을 나누려 합니다.
1. 정부에 진상 알리는 과정에서 무조건 협력하기
정부를 상대로 하는 일은 줄곧 연마의 과정이었습니다. 일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협력하고 어떻게 자신의 수련을 할 것인지에 더 중점을 둬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몇 년간 캔버라에 갔던 대부분의 일정은 준비 작업이 항상 서둘러 진행됐습니다. 올해 첫 일정은 아주 일찍 계획을 세웠고 면담 요청과 행사 초대장도 더 일찍 발송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면 더 많은 사람이 참석 답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났는데도 국회 행사와 면담에 대한 답변이 아주 늦게 왔습니다. 핵심 팀의 모든 사람은 여전히 다른 항목으로 바빴습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무겁게 느껴졌고, 아직 정체(整體,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초조함을 느꼈고 진행이 순조롭지 않을까 걱정돼 다른 협조인과 이 일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국면을 전환하려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반성했습니다.
고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관건임을 깨달았습니다. 일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했는데, 즉 정념으로 일을 대해야 했습니다. 수련 중의 어려움은 사실 좋은 일이므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아니라 넘어야 할 고비로 여겨야 합니다. 또 한동안 발정념에 해이해졌음을 깨닫고 즉시 바로잡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다음 조율 회의에서 각종 의견과 견해를 조율하고 일치시켜 합의에 도달하고 정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일은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비록 몇 차례 뜻밖의 상황이 발생해 심성을 시험했지만, 정념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사부님의 도움 아래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뤄졌습니다.
시험은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때 직장의 일이 훨씬 바빠졌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동료 몇 명이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팀은 일손이 부족해졌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야근하며 공부하고 기술을 향상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캔버라로 갈 날짜가 다가오면서 준비 작업도 서둘러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협조인과 협력하고 우리 대표단에 합류할 법학 교수에게 연락하며, 면담 브리핑과 의제를 초안하고 조찬 간담회의 프레젠테이션을 디자인하는 등 수많은 기타 업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미 부담을 이기기 힘들다고 느꼈고, 더 많은 것을 맡아야 할지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중 어떤 임무는 제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기획 회의에서 마음속으로 수중에 있는 일들 때문에 근심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누가 무슨 일을 책임질지 배분할 때 순식간에 안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제가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임무를 자발적으로 맡았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내려놓아야만 다른 사람들과 더 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우려를 내려놓자 많은 임무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찬 행사의 프레젠테이션을 디자인할 때, 저와 다른 한 수련생은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달랐습니다. 저는 내용을 조금 간소화하자고 주장했고, 그 수련생은 일부 세부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압박감이 컸고 마지막 주가 돼서야 서둘러 만들고 있었으며, 다른 준비 작업 외에 프레젠테이션까지 디자인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좌절감을 느꼈지만, 제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 생각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나는 이 프레젠테이션을 전심전력으로 지지할 것인가?’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자신의 집착이 중생구도를 방해하게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비록 소수의 수련생만이 국회의원과 대화를 나눴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떤 성과를 얻었든 그것은 개인의 공로가 아니라 수련생 전체의 수련이자 사심 없이 서로 지지한 결과였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원래 강한 관념을 가졌던 수련생이 자아를 내려놓는 것을 보았고, 수련생들이 무조건 협력하는 것을 보았으며, 호주 수련생들이 정체를 형성한 것도 보았습니다.
2.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은 다 좋은 일
저는 잠시 캔버라 보도소의 보도원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보도원으로서 수련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모두와 함께 노력해 정체를 형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련생들을 방문해 그들의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한 수련생은 중국 본토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분이었습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캔버라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돌아서서 저를 가리키며 바꾸려면 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저에 대한 불만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적지 않은 비난이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습관적으로 팔짱을 낀다고 질책하며 사부님처럼 팔을 둥글게 모으는 자세로 바꾸라고 요구했는데, 그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상징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즉시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몹시 억울했고 저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습니다. 우스운 것은 그가 저를 비판하는 동시에 저는 그의 비판을 중국어를 모르는 수련생에게 통역해 줘야 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영문을 몰랐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에게 그의 일부 비판은 그저 상황에 대한 오해일 뿐이라고 설명하려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수련생이 제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자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모순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우선 마땅히 냉정해야 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석할 수 있으며,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하면 역시 안 된다.”(전법륜)
다행히도 제가 앞당겨 자리를 떠나야 했기에 그 수련생이 저를 비판하는 시간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집에 가는 길에 제 머릿속에서는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한편으로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꼈고, 온통 그의 비판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그가 어떻게 저를 억울하게 했는지에 생각이 집중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감정적인 충격을 뛰어넘어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이러한 비판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제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 했습니다.
자신에게 반문했습니다. ‘나는 비판받으면 안 되는가? 아니다. 나는 겸허하게 어떤 비판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받아들일 수 있다.’ 내면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지기 싫어하는 마음과 체면을 구긴 후 자신의 이른바 명성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정념이 사람의 관념을 이길 때까지 정말로 마음속의 갈등과 싸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팔짱을 낀 것에 대해 비록 불경스러운 의도가 없었지만, 자신이 보도원이 된 후 잠재의식 속에서 더 오만해지지 않았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비판을 저의 겸손함을 수련하라는 일깨움으로 여겼습니다.
‘허물을 들으면 기뻐한다(聞過則喜)’는 사자성어가 제 머릿속에 떠올랐고, 제고할 수 있는 부분을 또 하나 찾았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습니다. 이 역시 잊기 힘든 시련이었으며, 무조건 안으로 찾고 제고할 모든 기회를 꽉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제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의 심성 시험을 완전히 통과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번은 퍼스로 돌아가 한 수련생 친구와 교류할 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캔버라에서 정부 업무를 조율할 때 겪은 각종 어려움을 말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제가 말한 그 심성 시험은 이미 통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그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계속 제게 조언하며 어떻게 해야 이 고비들을 넘을 수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고비들을 나는 이미 넘었는데 그는 왜 아직도 내가 넘도록 도와주고 있지?’ 이어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정말 고비를 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는 이어서 자신이 최근에 겪은 몇 가지 시련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그중 한 고비가 마치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어려워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내려놓기가 매우 힘들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 저를 일깨워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생각에 어떤 고비는 참고 견뎌 넘길 수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당시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마침내 험준한 산길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 위험에 시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정말 철저하게 고비를 넘겼는지 판단하는 징표 중 하나가 바로 이 경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일지도 모른다고 깨달았습니다. 제 이해로는 이 감사함은 부분적으로 제가 이 시련에서 얻은 유익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으로 체득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제고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수련에서 제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득 한 가지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심성 시험을 다 통과했다 하더라도 매 시험마다 90%만 통과했다면 결국 제 수련도 90%에 불과할 것이고, 끝에 가서는 여전히 원만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수련의 요구는 엄격합니다.
감사함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 원망심을 푸는 해독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망심은 수련인의 정념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참는 것은 쉽고 용서하는 것은 어려우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2007년 사부님께서 호주 수련생들에게 하신 설법의 가르침을 줄곧 생각하며, 제가 정말로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을 좋은 일로 여길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 점을 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고비를 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무척 어렵습니다. 문제를 보는 마음가짐, 즉 정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수련은 본래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번 겪는 시련이 모두 하나의 계단이며, 어려움이 클수록 제고도 크다는 것을 항상 자신에게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이상은 저의 제한적인 인식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6년 호주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9/51590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9/51590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