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인의 수련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나는 87세 여성 대법제자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다들 겉보기에는 60대 같다고 한다. 증손자가 벌써 18살이라고 말해 줘야 그제야 겨우 믿는다. 등이 굽지 않고,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귀도 어둡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에 주름이 거의 없고, 피부는 대부분 희면서도 붉은 기가 돈다. 말할 때 사고가 명확하고 민첩해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노쇠한 느낌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들 부러워하며 감탄했다.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가졌어요?!” 그러면 나는 자랑스럽게 그들에게 말한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며, 파룬따파가 내게 이렇게 건강한 몸을 줬어요.” 이어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배우기 전후의 심신 변화와 중공 악당이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믿었고, 모두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다.

1. 다행히 대법을 만나다

나는 1996년 4월에 대법을 얻었다. 당시 외지에 있는 딸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다행히 대법을 만났다. 대법을 얻은 후 마음이 더없이 기쁘고 설렜다. 60세의 나이였지만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었다. 예전에는 약을 한 움큼씩 먹어도 소용없던 위장병이 한 달도 안 돼 나았다. 이전에는 몸 어디 하나 편한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아프곤 했는데, 이제는 온몸이 편안하고 어디도 아프지 않다. 안색도 변해 희면서도 붉은 기가 돈다. 딸과 사위도 내가 연공한 후 달라진 모습을 보고 모두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나는 대법이 너무 좋다고 느꼈지만, 고향 사람들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에 당장 집으로 돌아가 대법을 널리 전하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집에 법공부와 연공 장소를 마련하고 근처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와서 배우게 했다. 대법을 배운 후 사람들은 모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각종 질병이 나았고, 오랫동안 약을 달고 살던 사람이 치료 없이 낫기도 했으며, 연공장에서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몸을 정화해주시는 사람도 있었다. 대법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놀라운 효과는 금세 널리 퍼졌고, 먼 길을 걸어 우리집까지 법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도 생겼다. 어떤 사람은 오는 길에 뱀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못 가게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못 가게 해도 나는 갈 거다. 나는 대법을 배우러 갈 거야.” 그가 말을 마치자 뱀이 기어가 버렸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에 법공부와 연공을 하러 오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인연 있는 많은 사람이 대법을 배우려는 것을 보고, 우리는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여러 마을을 다니며 대법을 널리 알렸다. 머지않아 대법은 우리 현(縣) 도심과 각 마을에 널리 퍼졌고, 연이어 많은 법공부와 연공 장소가 세워졌다.

대법을 배운 사람들은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승화했다. 우리 지역의 많은 마을 주민은 양을 길러 생계를 유지한다. 매년 가을 양털을 팔 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설탕물을 묽게 끓여 모래를 섞은 뒤 양털에 뿌려, 모래가 양털에 달라붙게 해 무게를 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듣기로는 이렇게 수거한 양털 때문에 가공 공장 기계 톱니바퀴가 부러졌다고 한다. 대법을 배운 후 사람들은 법리를 깨닫고 선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남에게 해를 끼치며 자기 이익을 챙기는 부도덕한 일을 더는 하지 않았다.

2.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 악당 우두머리는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대법에 대한 박해를 일으켰다. 그날 우리는 연공장에서 연공하고 있었는데, 경찰차가 오더니 모두 차에 타라고 했다. 큰 광장으로 끌고 가 한 사람씩 심문하며 연마하지 않겠다고 하면 집으로 보내고, 연마하겠다고 하면 구치소에 가뒀다. 당시 모두 어리둥절해 무슨 일인지 몰랐고, 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수련생도 있었다. 하지만 대법은 이미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기에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집이 연공장이고 내가 현지 보도원이었기에, 나는 주요 인물로 지목돼 구치소에 갇혔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각지의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에 가기로 결심했지만, 뜻밖에 현지 기차역에서 가로막혀 돌아왔다. 나는 단념하지 않고 남성 수련생 한 명과 동행해 무사히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경찰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지만 우리가 대답하지 않자 첸먼(前門) 파출소 철창에 갇혔다. 당일 현지 공안에 이끌려 지역으로 돌아왔다. 공안국에 도착했을 때, 리상훙(李尙洪)이라는 경찰이 전기몽둥이를 들고 내 왼쪽 얼굴에 대고 ‘탁탁’ 소리가 나게 이리저리 전기 충격을 가하며, 입으로는 차마 듣기 힘든 더러운 욕설을 퍼부었다. 약 30여 분 동안 전기 충격을 가했다. 당시 내 왼쪽 얼굴은 화상으로 껍질이 벗겨져 고름과 피가 계속 흘렀고, 얼굴 반쪽과 입이 심하게 부어올랐으며, 지금까지도 두 개의 검은 반점이 남아 있다. 그 후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두 달 만에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후 경찰은 내가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까 봐 사람을 보내 감시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떠나, 마찬가지로 떠돌며 생활하던 수련생 한 명과 외지에 방을 하나 빌렸다. 이 기간에 나는 베이징에 한 번 더 갔는데, 당시 베이징 교외에 수련생이 빌린 방에 머물렀다. 대법과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줄곧 이루지 못해 마음속으로 무척 죄책감이 들었다. 하루는 혼자 천안문 광장에 갔다. 당시 다른 지역 수련생 몇 명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즉시 달려가 그들과 함께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크게 외쳤다. 우리 몇몇 수련생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하늘 높이 울려 퍼졌고, 천안문 광장 상공에 메아리쳤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고,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내 마음속 가장 신성한 그 말을 외친 것이다! 경찰차가 요란하게 달려왔고, 경찰과 사복경찰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잡고 때리며 우리를 경찰차에 던져 넣었다. 첸먼 파출소로 끌고 가자, 젊은 경찰 한 명이 내 머리채를 잡고 벽에 세게 박으며 때리고 욕을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뽑혔고 머리에는 혹이 여기저기 생겼다. 그러고 나서 나를 철창에 가뒀다. 수련생은 내가 이렇게 맞은 것을 보고 서둘러 의자를 내주며 누워서 쉬라고 했다. 밤이 되자 경찰 한 명이 들어와 “집에 갈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네, 기어서라도 갈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나를 풀어줬다.

3. 자비로운 보호

정법 노정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려 거짓말에 속은 중생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현지의 떠돌며 생활하는 수련생 몇 명과 방을 빌렸다. 수련생이 인쇄된 자료를 가져오면 우리가 제본을 맡았고, 제본이 끝나면 각 현의 수련생들에게 배달했다. 박해 초기라 시내에 대형 자료점 한 곳이 아래 각 현의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공급했다. 나는 나이가 비교적 많아 그들에게 밥을 해주고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맡았다.

그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몹시 추웠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석탄으로 난로 불을 덮어두어야 해서 나는 마당으로 석탄을 가지러 갔다. 마당 가장자리에 놓인 석탄 자루를 집어 들어 쓰레받기에 쏟아 부으려던 순간, 갑자기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석탄과 함께 거꾸로 처박혔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구덩이 입구 위에 얇은 철판을 덮어 놓은 곳이었는데, 방을 막 빌린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다. 수련생들은 모두 방 안에서 자료를 제본하느라 바빴고, 밤 12시에 발정념을 할 때 나를 불렀지만 어느 방에도 없었다. 다급히 마당으로 찾으러 나갔다가 구덩이에 떨어져 의식을 잃은 나를 발견한 것이다. 수련생이 서둘러 내려가 나를 방 안으로 옮기고 끊임없이 나를 불러서야 나는 천천히 깨어났다. 깨어난 후에도 어디가 아픈 줄 몰랐는데,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해주신 것이다!

당시 얼굴과 머리는 온통 피투성이여서, 부엌으로 가 찬물을 한 대야 받아 머리와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핏물을 몇 대야나 씻어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주사를 맞거나 약 한 알 먹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는 서서히 다 아물었다. 나중에야 그 구덩이 입구에 계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내 머리가 바로 계단에 찧어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났던 것이다. 정수리가 부딪혀 크게 파였는데 지금도 손으로 만지면 파인 자국이 있다. 나중에 그 일을 떠올려보니 정말 아찔했다! 60대의 나이에 그렇게 심하게 떨어졌으니,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자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얼마나 많이 감당해주셨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밤, 나는 수련생 한 명과 농촌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각자 3~4백 부 정도 든 가방을 하나씩 멨다. 우리는 마을마다 배포하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서로 흩어지게 됐다. 자료를 거의 다 배포했을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아주 매섭게 내려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이번에는 수련생 언니 집 근처에서 배포하려던 거라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채소를 심은 비닐하우스 옆에서 짚더미를 찾아 몸에 덮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렸다. 천천히 길을 찾았지만, 눈이 너무 두껍게 쌓여 길이 보이지 않았고 신발 밑창도 미끄러웠다. 아마 내리막길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벌렁 나자빠지며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 채 깨어나 천천히 일어났는데, 머리는 조금 어지러웠지만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마침내 수련생 언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를 본 수련생은 놀랍고도 기뻐하며 흥분해서 말했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요. 밤새도록 찾았다고요!” 나는 길을 잃었다고 말하며 간밤에 겪은 일을 이야기해줬다. 수련생은 감격스럽게 말했다. “이건 모두 사부님의 보호입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중생구도는 고사하고 우리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4. 대법을 굳게 믿다

우리의 대형 자료점은 자료를 전달하던 수련생 한 명이 납치돼, 모든 수련생과 자료점을 자백하는 바람에 거대하고 참혹한 손실을 보았다. 그날 밤 나와 함께 자료를 배포했던 양위팡(楊玉芳) 수련생은 구치소에서 잔혹하게 구타당해 숨졌다. 남편 말에 따르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풀어주겠다며 가족에게 1만 위안을 사기 치기도 했다. 세 명은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나는 10년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두 수련생은 각각 12년형,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전에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아직도 연마할 텐가? 연마한다고 하면 징역을 살고, 안 한다고 하면 풀어주겠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숨이 붙어있는 한 연마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선고 당일은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됐고 현장에는 많은 민중이 찾아왔다. 당시 2003년 사스 시기라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 또한 중공 악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역사적 증거다!

감옥에서 그들은 줄곧 나를 전향시키려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이 마음은 누구도 흔들 수 없었다. 나는 감옥장에게 편지를 썼다. “나를 전향시키러 올 필요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전향시킬 수 없어요. 대법은 잘못이 없습니다! 사부님도 잘못이 없으십니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들어왔지만, 나는 절대 전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그들은 정말로 나를 더는 간섭하지 않았다.

결국 내 혈압이 200 이상 오르자 그들은 두려워져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떠나기 전 그들은 내게 글을 하나 써야만 풀어줄 수 있다고 했다. 쓸 줄 모른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써놓은 것을 가져와 베끼라고 했다. 당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사악에게 빈틈을 내주었고 마음에 없는 글을 베껴 썼다. 집에 돌아온 후 몹시 후회하며 잘못을 깨닫고 즉시 엄정성명을 써서 무효로 했다! 감옥에 불법 감금된 지 7년 만에 나왔을 때 내 나이는 74세였다.

출옥 후 나는 서둘러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정법 노정에 따라가기 위해 자신을 조정했다. 나는 최대한 빨리 현지 수련생들 속에 녹아들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냈다. 매일 새벽 3시에 정확히 일어나 연공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매일 소그룹 법공부에 참여했으며, 수련생들과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대면으로 진상을 알렸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이처럼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5. 불법(佛法)의 신기함

한번은 수련생이 차에 우리 6명을 태우고 100리 밖 농촌으로 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보통은 아침 일찍 출발해 아주 늦게야 돌아왔다. 그때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배포를 마쳤을 때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막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운전하는 수련생이 보니 기름통에 기름이 부족해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다들 몹시 다급해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고 사부님께 간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념을 발하며 사부님께 간청했다. 잠시 후, 운전기사가 기름통을 보고 외쳤다. “와! 기름이 가득해요! 너무 신기하네요!” 다들 감격해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기름을 가득 채워주신 거예요! 사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 신기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 일은 수많은 일반인이 불법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했고, 중공 악당의 무신론 거짓말을 타파했다.

박해 초기 무렵, 나는 각 현의 수련생들에게 자주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그날 어느 현의 수련생 집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고 다른 수련생들도 없었다. 조금 이상해서 밖으로 찾으러 나갔다가 문 앞에서 이웃을 마주쳤다. “다들 ○○씨 집에 갔어요. 그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수련생이 돌아오자 내게 그 신기한 일을 들려주었다. 돌아가신 그 노년 수련생은 당시 집에 아무도 없고 혼자 계셨는데, 점심이 되어 남편이 집에 돌아와 보니 부엌에 밥을 아직 안 한 것 같고 사람도 없었다. 이상해서 방에 들어가 보니, 노인이 온돌 위에 앉아 이불 더미에 기댄 채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런데 겉모습은 매우 평온했고 조금의 고통도 없어 보였다. 남편이 서둘러 자녀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온 가족이 갑작스러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해 노인을 둘러싸고 울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가버리시다니요?” 가족들은 몹시 슬퍼하며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온돌에 깔아둔 큰 담요 한가운데 갑자기 연꽃잎 하나가 나타나더니 이어서 또 한 잎, 한 잎 생겨나며 순식간에 크고 예쁜 연꽃 한 송이가 만들어졌다.

가족들은 이 신기한 광경에 깜짝 놀랐고, 순간 노인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이미 공성원만(功成圓滿)했음을, 천국 세계로 가셨음을 알려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 일가족은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집에 찾아온 이웃과 일반인 친구들도 모두 이 장면을 목격했다. 약 30분 정도 지나서야 연꽃이 사라졌다. 일반인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정말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일은 빠르게 현 도심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이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것이 나라는 90세를 바라보는 한 노인의 수련 이야기다. 30년에 가까운 수련 경험 중 비록 이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대법이 얼마나 훌륭한지, 사존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이 30년 동안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당하며 희생하셨는지 모른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로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에 대한 감사를 다 표현하기 어려우니,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많이 구하려 한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6/51059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6/510594.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