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샤오웨(曉月)
[명혜망] 우리 지역은 현급(縣級) 시다. 2023년 6월, 우리 지역 대다수 주민센터, 촌위원회 입구 및 인근 진열장이나 벽면에 대법을 비방하는 사악한 전시판이 나타났다. 일부 주민센터, 촌위원회에는 A3 용지 크기의 모함하는 스티커도 있었다. 대개 각 주민센터, 촌위원회에 전시판이 2개씩 있었으니, 전체 시의 전시판 수량은 대략 500개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수많은 주민센터, 촌위원회 입구에는 민중을 유도해 인터넷에서 ‘×교’(중국공산당이 진정한 사이비 종교임) 반대 서명을 하도록 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 어떤 기업, 사업 부서에서는 직원들에게 휴대폰으로 ‘×교’ 반대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지역에 새로 부임한 ‘610’ 우두머리와 정법위 서기가 정치적 실적을 올리기 위해 벌인 인력과 재물을 낭비하고, 남을 해치며, 자신도 해치는 큰 악행이었다. 한때 사악이 기승을 부렸고 공포 분위기는 대법제자들에게 아주 큰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
진수(眞修)하는 대법제자는 모두 대법을 수호해야 하고 중생이 세뇌당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사악한 전시판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시 전역의 300여 개 주민센터, 촌위원회를 모두 돌아다니며 모든 전시판, 스티커를 제거하는 것은 무척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첫째, 전시판 수량이 많고 도농 곳곳에 분산돼 있었다. 특히 촌위원회는 대부분 외진 시골 구석에 있어서 교통이 불편해 가기도 어렵고 위치를 찾기도 어려웠다. 둘째, 한창 무더운 여름철이었다. 셋째,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고 미행, 감시가 있어 사악의 공포스러운 압력을 견뎌내야 했다.
처음 보름 정도는 전시판을 제거하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주민센터, 촌위원회의 이름도 모르고 위치도 몰라서 맹목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주치면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낮에 제거할 수 없으면 밤에 제거했다. 제거 방법은 대개 검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하거나 직접 뜯어내는 것이었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 모자를 착용하고 자외선 차단 옷을 입었다.
이후 9월이 되자, 어떤 수련생이 인터넷에서 우리 시의 모든 주민센터, 촌위원회의 이름을 찾아냈다. 또 다른 수련생은 바이두 지도에서 모든 주민센터, 촌위원회의 위치를 찾아낸 뒤 지도로 그렸고, 지도상에 주요 도로와 주민센터, 촌위원회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런 다음 지도를 들고 나가서 전시판을 제거하니 훨씬 빨라졌다. 어떤 수련생은 지도, 내비게이션을 들고 나가서 제거하니 더욱 편리했다.
1. 밤낮없이 부지런히 제거하다
수련생들의 생각은 오직 사악한 전시판이 중생을 해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빨리 제거할수록 좋다는 것뿐이었다. 비록 밖으로 나와 전시판을 제거하는 데 아주 큰 압력(주로 박해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법제자에게는 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할 사명이 있기에 오직 생사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건다는 마음가짐으로 가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올 수 있는 수련생들은 모두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하는 기초 위에서 낮이든 밤이든 시간이 나면 나가서 전시판을 제거했다. 거리가 멀고 노선이 익숙하지 않은 곳의 전시판은 주로 낮에 가서 제거했다. 낮에 제거하기 불편하거나 어떤 수련생은 밤에만 나갈 시간이 있으면 밤에 가서 제거했다. 보통 주민센터, 촌위원회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가서 제거했다. 어떤 수련생은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제거했고 어떤 경우는 한 명이 오토바이에 다른 한 명을 태우고 나가서 제거했다.
A 수련생은 3조 2교대 근무를 했는데 종종 아침 8시에 야간 근무를 마치거나 저녁 8시에 주간 근무를 마쳤다. 방금 12시간이나 근무한 피로를 무릅쓰고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쉴 틈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전시판을 제거했으며 밖에서 한 번 돌아다니면 몇 시간씩 걸렸다. 한번은 A가 아침 8시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시의 아주 외진 향진(鄕鎭)으로 가서 전시판을 제거했다. A는 혼자서 뙤약볕 아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8시간 넘게 전시판을 제거했고 그 진(鎭)의 전시판을 기본적으로 다 제거한 후 오후 4~5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한번은 B 수련생, E 수련생이 낮에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한 촌위원회로 가서 전시판을 제거하려 했다. 촌위원회에 사람이 많아 전시판을 제거하기 불편한 것을 보고 그날 밤에 다시 와서 제거하기로 했다. 저녁 8시쯤 돼서 B, E가 오토바이를 타고 그 촌위원회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전시판을 찾을 수 없어 무척 의아해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A가 그날 저녁 무렵 촌위원회 직원들이 퇴근한 틈을 타서 가서 제거했음을 알게 됐다.
2. 정념으로 대하자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다
어느 날 A가 촌위원회 직원들이 출근한 시간에 촌위원회로 가서 전시판을 제거했다. A가 촌위원회 입구 옆에 있는 비닐 소재로 된 전시판을 힘껏 뜯어낼 때 소리가 아주 커서 촌위원회 안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몇몇 직원이 방에서 뛰쳐나와 A를 에워싸고 소리쳤다. “왜 그걸 뜯는 거야!” A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여기에 쓰인 건 다 거짓말이고 사람을 해치는 겁니다. 그 배후에는 아주 안 좋은 것들이 있어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고 심지어 목숨까지 해칩니다. 마치 옛날 달기(妲己)가 조정을 어지럽힌 것과 같은데 달기 배후에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 해로운 전시판을 제거하는 것은 여러분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직원들은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A를 그냥 보내주었다.
또 한번은 저녁 무렵에 A가 G 수련생과 오토바이를 타고 시외곽으로 가서 벽에 붙은 큰 전시판을 제거했다. A가 힘껏 전시판을 뜯어내 G에게 안고 있으라고 건넸다. 두 수련생이 막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려 할 때 현지에 사는 한 남자가 갑자기 A, G 앞에 나타났다. 그 남자가 말했다. “여기엔 광고를 붙이면 안 됩니다. 다른 데 가서 붙이세요.” 두 수련생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어느 날 오후 3시, 마침 촌위원회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에 D 수련생, E가 오토바이를 타고 꽤 먼 촌위원회에 가서 전시판을 제거했다. E가 검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전시판을 다 칠하고 막 떠나려 할 때 촌위원회의 한 여직원이 방에서 뛰쳐나와 E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왜 멀쩡한 전시판을 이렇게 칠해버리는 거죠?” E는 신속하게 D 앞으로 가서 D와 함께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떠났다. 촌위원회 사람들도 뒤쫓아오지 않았다.
3. 아무리 어려워도 대법제자를 막을 순 없다
비닐 소재로 만든 전시판은 페인트 스프레이로 칠하거나 뜯어내면 그만이다. 유리 진열장 안에 끼워져 있는 전시판, 철판에 인쇄된 전시판은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겉보기에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서 손쓸 방도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대법제자를 막을 수는 없었다.
B는 이런 종류의 전시판을 제거하는 데 아주 능숙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끼워진 전시판의 경우 B는 먼저 드라이버로 진열장 밑부분의 두 잠금장치를 푼 다음 바깥쪽 유리문 밑부분을 손으로 잡아당겨 위로 젖혀 올린 후 한 손을 진열장 안으로 집어넣어 전시판을 뜯어내어 훼손했다. 철판 위에 내용을 인쇄하고 그 철판을 다시 철제 틀에 못으로 박아놓은 전시판의 경우 B는 전시판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서 일자 드라이버를 철판, 철제 틀 사이의 틈새로 밀어 넣고 드라이버로 힘껏 철판 오른쪽 아래 모서리를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철판 오른쪽 아래 모서리를 손으로 잡고 힘껏 뜯어냈는데 몇 번 만에 철판이 뜯겨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리가 아주 크게 나기 때문에 아주 강한 정념이 필요했다. 유리 진열장 안의 전시판, 철판 위의 전시판을 제거할 때는 주로 비가 내리는 밤을 택해서 갔다. 이때는 밖에 사람이 적고 우비를 입고 마스크를 쓰면 감시 카메라도 방어할 수 있다.
힘이 약한 수련생은 철판 위 전시판을 제거할 때 페인트를 뿌리는 방식으로만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인트를 뿌려놓으면 쉽게 지워질 수 있었다. 이래서 하나의 철판 전시판을 보통 여러 번 제거해야만 없앨 수 있었다. 어느 지역의 철판 전시판은 수련생이 페인트로 네 번이나 칠했는데 수련생이 한 번 칠할 때마다 촌위원회 사람이 한 번씩 닦아냈다. 수련생이 네 번째로 칠하고 나자 촌위원회 직원은 그 전시판을 방 안으로 거둬들이고 더 이상 전시하지 않았다.
어떤 촌위원회의 전시판은 수련생이 제거한 후 촌위원회 사람이 또다시 새로운 사악한 전시판을 붙여놓았다. 그러면 수련생은 그것을 발견하고 다시 가서 제거했는데 촌위원회가 더 이상 전시판을 붙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
4. 자신을 잘 수련해 구세력에게 속지 않다
처음 전시판을 제거하기 시작할 때 수련생들의 심성 높낮이가 달랐고 인식도 달랐다. 진수하는 제자라면 누구나 사악한 전시판은 제거해야 하며 사부님을 모함하고 중생을 해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박해당할까 봐 두려워서 제거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D는 두려운 마음이 커서 법공부 팀에서 전시판 제거를 적극 주장하는 수련생들에게 냉소적인 말을 하며 꼬투리를 잡았다. 전시판 제거를 주장하는 수련생들은 심성을 지키고 D와 다투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을 수련했고 구세력이 수련생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 정체(整體, 공동체)를 이뤄 전시판을 제거하지 못하게 막고 있음을 알았다. D는 나중에 법공부를 통해 제고된 후 자발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수련생들에게 함께 전시판을 제거하러 가자고 권유했지만 여전히 말했다. “가까운 곳은 내가 가겠지만 먼 곳은 안 갈 테니 다른 사람한테 가라고 하세요.”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D는 또 제고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수련생과 협력해 먼 곳으로 전시판을 제거하러 갔다. D는 훗날 오토바이에 수련생을 태우고 전시판을 제거하러 나가는 주력 중 한 명이 됐다.
한번은 낮에 날씨가 몹시 더웠는데 D가 E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전시판을 제거하러 갔다. 차량 통행이 많은 큰길가에서 달리던 중 갑자기 실수로 두 수련생이 바닥에 심하게 넘어졌고 두 사람 모두 바짓가랑이가 한 군데씩 찢어졌다. E의 다리에는 핏자국이 있었고 다리가 좀 아팠지만 걷거나 전시판을 제거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D가 E에게 얼마나 다쳤는지 묻자 E는 전시판 제거를 지체하지 않기 위해 다리에 피가 나는 일은 말하지 않고 그저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갑시다!” 두 사람은 바닥에서 일어나 오토바이를 똑바로 세운 뒤 다시 타고서 전시판을 제거하러 갔다.
5. 함께 협력해 전시판을 제거하니 위력이 크다
밖으로 전시판을 제거하러 나가는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으로 도와달라고 알리면 소식을 들은 수련생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집에서 협력해 발정념을 했다. 밤에 수련생이 밖으로 전시판을 제거하러 나갈 때면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은 외출한 수련생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발정념을 하곤 했다.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수련생은 먼 곳으로 가서 전시판을 제거했고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수련생은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시내나 진(鎭)에서 전시판, 스티커를 제거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수련생은 집에서 묵묵히 발정념으로 협력했고 어떤 수련생은 밖으로 전시판을 제거하러 나가는 수련생들에게 필요한 페인트, 철 브러시 등 도구를 사주기도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대법제자가 하나의 정체(整體)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일치하여 협조한다면 법력(法力)이 대단히 클 수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대법제자들이 6월 중순부터 전시판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7월 상순쯤 중공 인원들이 대법제자들이 전시판을 제거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사람을 보내 자주 전시판을 제거하러 나가는 대법제자들을 상대로 엄밀한 감시, 미행을 했다. 주로 대법제자의 집 앞, 자주 다니는 길, 수련생들이 만나는 장소에서 잠복하며 승용차, 오토바이, 스쿠터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미행했다. 그래서 한때 상황이 긴장되기도 했다. 게다가 7월은 날씨가 유난히 더웠기에 7월 한 달간 20여 일가량 전시판 제거 작업이 거의 중단됐다.
8월이 되자 수련생들은 사악의 기세에 겁먹어서는 안 되며 감시, 미행이 있어도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나와서 전시판을 제거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이것은 대법제자로서 회피할 수 없는 사명이며 관건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며 발정념을 많이 해서 사부님께 전시판 제거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가지(加持)해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대법제자의 정념이 족하면 사악의 감시, 미행은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
8월에 들어서 수련생들은 점차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서로 협력해 전시판을 제거했다. 대략 9월쯤 한 수련생이 우리 시의 주민센터, 촌위원회 분포 지도를 만들면서 전시판 제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다른 사람을 오토바이에 태울 수 있는 수련생이 적은 데다 그 수련생들이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휴식 시간만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나올 수 있는 수련생이 적었기 때문에 전시판 제거 작업은 11월에 이르러서야 기본적으로 끝났다.
사부님의 가지하에, 전체 수련생의 협력하에, 그리고 생사를 내려놓고 법을 수호하려 밖으로 나온 수련생들의 정념 작용하에, 우리 지역은 5개월 남짓한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사악한 전시판, 스티커를 기본적으로 다 제거할 수 있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5/515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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