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말하는 법’을 배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비록 서른 살이 됐고 수련한 지도 20년이 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야 아직도 ‘좋게 말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간혹 사람들이 “말을 왜 그렇게 거칠게 해?”, “말을 좀 좋게 할 수 없어?”라고 했지만 진지하게 깨닫지 못했다. 이후 결혼해 아내와 함께 살게 됐다. 그녀는 온화하고 늘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다. 말 때문에 몇 차례 불쾌한 일이 생긴 뒤에야 이 방면에서 수련을 아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좋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수련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반문하는 말투: 조급하고 참을성 없는 마음

좋게 말하지 못하는 데서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는 한 가지 표현은 말할 때 반문하는 말투를 즐겨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이 어떤 일을 하라고 당부할 때 “아까 이미 하지 않았어?” 혹은 “지금 하고 있잖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 속에는 ‘이미 다 했거나 지금 하고 있는데 왜 또 묻는 거야!’라는 뜻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 그 배후에는 참을성 없는 사람의 정과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는 데 대한 반발심이 있다.

사실 많은 경우 상대방은 그저 선의로 한마디 일깨워 주는 것뿐인데 곧바로 되받아치려 한다. 이것 역시 ‘남이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한 가지 표현이다. 상대방이 심지어 어떠한 선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전법륜)라는 수련인의 기본 요구에 도달하기에도 아주 큰 격차가 있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기: 선하지 못함

또 다른 표현은 말할 때 표정이 없고 심지어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족들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지만 수련생인 어머니와 나는 때때로 잘 호응하지 못하고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 가족들의 미소를 굳어버리게 했다. 집에 대법제자가 두 명(어머니와 나)이나 있지만 가정환경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평화롭고 온화한 분위기가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내는 말할 때면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그녀가 내 문제를 깨닫도록 돕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것은 우선 선(善)이 부족한 것으로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비롭고 평온한 마음가짐이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 배후에는 ‘다른 사람을 얕보는’ 마음이 숨어 있어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살핀다. ‘이 일이 뭐가 그렇게 기쁜가? 기뻐하는 것은 어떤 심리 때문인가?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기뻐하는 그 일이 도덕적인가?’

법에서 늘 다른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집착을 더 많이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속인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자신의 세계 속 중생을 대하듯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고 언제나 선의로 대해야 한다. 예전에는 어머니만 늘 그렇게 굳은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 역시 똑같았다. 예전에는 늘 다른 사람만 바라보았으니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됐다.

명령조로 말하기: 자만

한번은 아내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시켰는데 아내가 울면서 내게 소리쳤다. “당신은 늘 이런 식이야!”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아내는 울면서 하소연했다. “당신은 늘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듯 말해.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

어릴 때부터 공부를 비교적 잘했고 스스로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며 능력이 강하다고 여겼기에 늘 일을 계획하고 배치하기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여기며 자신을 높였다. 또 상대방의 계획은 적절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남의 의견도 귀담아듣지 못했다. 매우 강압적으로 행동해 자만하는 마음이 생겼다. 평소에도 내가 한 계획이나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자주 되짚어 보면서 일을 얼마나 빈틈없이 잘 처리했는지 스스로 흡족해하며 우쭐해하는 마음과 과시심을 키웠다. 엄중하게 말하면 이것은 자심생마(自心生魔)의 전조다.

원망하는 말투: 원망심

“내가 진작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어?!”

상대방이 내 ‘조언’대로 일을 하지 않아 결국 결과가 좋지 않을 때면 자주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말했다. 그 말속에는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일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던 기간에 일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자 때때로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강한 원망심이 담긴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사실 이런 순조롭지 않은 일과 마주하면 상대방도 마음이 괴로운 법인데 법리로 상대방을 개도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지적하며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모든 일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안배는 사람 마음과 편안한 생활을 바라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사부님의 안배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설령 한동안 ‘순조롭지 않게’ 보이더라도). 수련인이라면 ‘마음에 드는’ 안배와 ‘마음에 들지 않는’ 안배를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 사람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러한 사람 마음이 수련인이 닦아 없애야 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부님의 안배 속에서 어떤 사람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는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재촉하는 말투: 조급한 마음

“그냥 이렇게 해! 이렇게 해!”, “됐어! 됐어!”, “그건 그만하고 빨리 저거나 해!” 이런 재촉도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어떤 일을 하기로 계획하면 늘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은 늘 조급하고 부산해 좀처럼 평온해지지 못했다. 오히려 속인인 아내는 언제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했다. 그녀도 때때로 내가 요리하거나 채소를 썰 때 너무 서두르기 때문에 손을 베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내가 일을 재빠르게 하고 그녀가 느긋한 성격이라 일을 질질 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게는 일을 하려는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있었고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평화로움이 없었으며 법에서 말씀하신 “느슨하게ㆍ천천히ㆍ둥글게(緩ㆍ慢ㆍ圓)”[대원만법-2. 동작도해(動作圖解)]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여기에 또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하는 마음도 숨어 있어 내 행동이 일의 발전 방향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안배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을 그리 조급해할 필요가 있겠는가?!

맺음말

좋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심성 문제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좋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이렇게 많이 짚어냈고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냈다.

수련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도 뜻밖에도 말하는 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정말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 그 속에 비치는 것은 모두 내 사람 마음과 부족함이다. 이후 나는 자신을 더 많이 찾고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에 덜 집착하며 이러한 사람 마음을 하루빨리 닦아 없애 법의 요구에 도달하려 한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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